시51편,회복의 기쁨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라고 되어있다. 다윗을 떠올리면 얼른 두개의 사건이 생각난다. 하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즉 골리앗 사건이다.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최상이었다. 또 하나는 바로 밧세바 사건이다. 당시 다윗은 인생의 절정기였다. 전쟁에 나갈 때가 되었지만 더 이상 위험을 감수 할 필요도, 자신의 용맹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예배가 시들시들해 졌다는 것이다. 기도도 끊어졌고 찬송도 끊어졌다. 밧세바가 먼저 유혹했다고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윗이 왕궁을 거니는 시간, 대낮에 왕궁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목욕하는 것이었다.
우리야가 누구인가? 아둘람굴에서부터 다윗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30용사 중 하나가 아닌가? 형제나 다름없는 그들의 관계였다. 그러나 다윗은 교묘하게,추악하게 우리야를 죽인다.
다윗은 밧세바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한다. 그후 나단이 다윗을 찾아온다. 다윗은 편안하게 친구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단은 3인칭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가난한 이웃집 암양새끼를,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양을 빼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다윗은 죽일놈,사형선고를 내린다. 그 때 인칭이 바뀐다. 그가 바로 너다. 설교를 들으며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때 설교자는 당신에게 외친다. 그가 바로 너다. 난 다윗이 아니고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다라고 소리친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음성은 더 크게 들려온다 그가 바로 너다.
"dirt"는 흙이란 말이다. 여기에"y"가 붙으면 “더러운”이 된다. 흙 자체는 깨끗하다. 아니 너무나 귀한 것이다. 정원,채소 밭... 그 뿐인가? 남자의 재료이다. 그러나 흙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장소를 옮겨, 침대위에,안방에,화장실에 있으면 “더러운”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다른 장소에 가 있으면 더러운 존재가 된다. 인간은 움직이면 죄이다. 늘 죄를 지을 개연성이 있다. 하여 늘 죄를 씻어야 한다. 다윗은 죄,죄악,죄과로 구분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미 목욕한 자는 손발만 씻으면 된다 하셨다. 날마다 죄를 씻는 것이 중요하다. 번제단의 주위엔 늘 피가 응고 되어 있다.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슬초로 씻으면 피가 씻겨진다.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회개기도는 100% 응답하신다. 다윗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회개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무조건 회개했는가? 아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아 나를 긍휼이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감히 용서해 달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처분만 바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헤세드(인자)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언약적자비를 호소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은 고발,정죄가 아닌,용서,회복,즉 헤세드이다. 다윗이 회복되었을 때 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죄를 품은 채 형식적 제사드림을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상한 마음,애통한마음으로 나올 때 나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19절“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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