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여호수아서1

여호수아서 1장: 형통의 법칙

호리홀리 2014. 12. 18. 14:49

1장: 형통의 법칙

 


 

  명령으로 시작된다.  약속한 땅을 주겠다. 그러나 역동성을 강조한다. 적극적으로 “토라הרות를 지켜라”이다. הרות는 좁은 의미에서는 율법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가르침이다. 모세오경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율법은 좁은 의미로  혹은 부정적의미로 사용된다. הרות는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그들이 누구며, 어떻게 언약백성이 되었는가?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나하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의 기술 방법 중 위기상황을 표현 할 때 쓰는 표현이 00가 죽었을 때이다. 모세가,여호수아가,웃시아가,다윗이.사울이 죽은 후(삼하1:1),아합이 죽은 후 (왕하1:1). 이것은 역사서의 기록 방법이다.

 

모세가 죽은 것은 이스라엘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여호수아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매뉴얼이 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란 말이다. 성경의 기술 방법은 한 사건이 시작될 때 주어가 누구인지를 먼저 밝힌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이다(창12:1). 내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하시는 것이다.

 


 

두번째, 여호수아의 신분은 모세의 시종으로 나온다. 그러나 24:29절에는 여호와의 종으로 나온다. 종은 주인이 있다. 모세의 종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바뀌었다. 즉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발바닥사건

 


 

셋째,모세에게 주신 신적권위를 여호수아에게도 주셔서(1:6-9) 백성들을 이끌게 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신명기적 언약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토라를 다 지켜 행할 것이다.

 


 

넷째,주었노니~지경이 되리라 already not yet

 


 

다섯째,언약문구/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강하고 담대하라,

 


 


 

1장은 여호수아의 리더쉽과 16절 이하의 팔로우쉽으로 나누어진다.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신적 리더쉽이지만 동시에 팔로우쉽이 없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영적 상승의 법칙). 그들이 아이성의 싸움이외에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것은 일치단결이었다. 17절의 순종 18절의 격려 , 리더를 격려하는 팔로워 , 리더가 부족할 때 격려하는 팔로우쉽이 있는 한 실패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형통의 원리이다.

 


 

1:7-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형통”이라는 히브리 어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챨라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통이다. 요셉이 누렸던 형통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형통이다. 다른 또 하나는 “셀라흐”이다.

 

“셀라흐”는 인간적인 번영을 이루어 가는 형통이다. 내가 내 계획에 의해 내가 이루어져 가는 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진정한 형통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형통이다.

 

인생길에 수없이 막힘이 있고, 걸림이 있고, 가시덤불이 있는 것은 복이다.

 

내 인생 내 계획대로 이루어져 간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앉아 있겠는가? 어딘가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질퍽거리는 삶이 잘 사는 삶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착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라고 요셉의 인생을 시편 105:17~19에 표현하였다.

 

여호수아서의 전체의 정복과정도 하나님의 형통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하나 밖에 없다.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싸움이다.  칼을 가지고 뺏고 쟁취하는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언약이 어떻게 신실하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는 싸움이 가나안 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