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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엘리야에게 주신 Gentle Whisper

호리홀리 2014. 12. 17. 22:16

9장. 엘리야에게 주신 Gentle Whisper

 

            

 

엘리야의 승천은   Good  or Bad?

 

엘리야의 승천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엘리야의 승천 자체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이 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언약파기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신 것이다. 이 사건을 어찌 낭만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왕하2:12을 보면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찢는다. 비극 앞에서 참기 어려운 행동의 표현이다.  2:14절에서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하며 절규한다.  하나님이 떠나셨다.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안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승천은 Bad 사건이다.

 


 

엘리야의 시대는 가장 영적으로 타락한 시기였다. 오므리왕조의 아합은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페니키아의 공주였던 이제벨은 바알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전체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엘리야는 생각하기를 모세와 같은 기적을 주께서 보여주시면 이 백성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왕상18:17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것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악한 시대에 기적을 보여주셔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켜주옵소서! 엘리야의 이 기도가 응답되어 불이 떨어졌다. 그러면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왔는가? NO! 그때 뿐이었다.

 


 

이것은 엘리야의 마지막 진검승부였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모든 백성을 갈멜산 정상으로 모아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엘리야의 실망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이제벨은 더욱 광분했다.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보고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아합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엘리야의 상실감은 죽기를 청했다.

 


 

우리도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기대할 때 있는가?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난들 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강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고 먹고 재워서 호렙산으로 데려간다. 19:8절의 “그 굴”은 모세가 언약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 굴인 것이다. 히브리어의 정관사 “하”(the)가 붙어있다.  엘리야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하나님께 대든다. 19:10“....이스라엘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 어디계십니까? 퉁명스러운 엘리야의 외침은 계속 허공을 가른다.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도,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아니하고 불가운데도 계시지 아니한다. 폭풍,지진,불은 엘리야의 사역이며 기적들이다. 엘리야야 이런 것들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Gentle Whisper"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은 ”Gentle Whisper" 인 것이다. 그래서 언약의 말씀을 받은 호렙산의 “그 굴”로 데려오신 것이다. 엘리야, 엘리사 이후 선지자들은 말씀을 기록하며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바꿔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리야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고 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 10절 말씀에 이어 14절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요나같이 끝까지 고집부리는 엘리야의 사역은 그래서 비극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데려가신다.

 


 

롬11:2절을 보면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송사했다..”고했다. 고소한 것이다. 법정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기적을 보여주었는데도 믿지 않는 저놈들을 다 쓸어 버리시옵소서’ 라는 것이 엘리야의 송사의 내용인 것이다. 모세는  주의 언약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생명을 건 언약기도를 드렸는데 엘리야는 자기백성을 송사한 것이다.

 


 

마17장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등장시킨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어리석게도 모세와 엘리야같은 기적을 원했으나 마17:5“....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사역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야의 사역은 이렇게 중단되었고 승천했다. 죽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죽지 않았으니 다시 올 것이라 믿었다.  예수님도 ‘엘리야가 왔다’라고 세례요한의 사역을 빗대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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