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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아브라함언약

호리홀리 2014. 12. 17. 21:13

    4장,아브라함언약 

 


 

노아의 예언인 창9:26을 보면 ‘셈의 하나님 여호와’ 라고 나온다. 셈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셈은 단순히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성,언약의 대표성을 띄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야벳이 단순히 복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언약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아브라함언약의 배경은 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10장은 언약을 파기하는 함의 후손들이 등장한다. 족보는 늘 그러하듯 줌 앤 크로즈업 기법을 사용한다.

 


 

함의 족보의 중심인물은 니므롯이다. (10:8) 그는 악의 화신었고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였다. 그의 나라는 시날땅의 바벨(10:10)이었고 그는 고대바벨론 제국의 창시자가 된다.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바벨탑건설이었다. 바벨탑건설은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정반대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1:4 ‘흩어짐을 면하자’ ‘우리‘라는 말이 반복 강조된다.  대조적으로 7절에서 삼위하나님이 ’우리’라는 말을 쓰셨다. 인간은 범죄하고 타락한 것을 넘어 하나님에 대해 반역과 도전,대적이 시작된 것이다.

 


 

셈의 후손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은 12장1-3절에 구체적으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축복의 통로를 허락하셨다.’ 아브라함 언약의 법적선포는 ‘씨'와’땅‘의 약속이다. 아브라함 역시 우상숭배자의 집안(수24:2)이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아브라함언약은 은혜언약인 것이다.(사51:1-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겜으로 갈 것을 명하셨다. 세겜은 당시 지정학적으로 가나안의 중심이며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위치한 신비한 장소로서 각종 우상숭배의 총 본산이 되었다. 약속의 땅이면서 지정학적으로 세계의 중심인 가나안, 그리고 세겜에서 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그 중심에 아브라함을 세우셨다. 아브라함은 역동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나갔다.

 


 

아브라함언약의 중요성은 노아언약과 마찬가지로 가는 곳 마다 단을 세우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라함언약의 특징은 그를 죄 가운데(우상숭배자)부르셨다는 것이다. 또한 언약을 세우기까지 즉각적 순종이 아닌 육체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아비가 죽을 때 까지의 5년이 지났다. 이런 아브라함을 율법이전에 부르시고 죄 가운데 부르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창15: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의로 여기시고’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또한 율법이전 즉 할례 이전에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든 조상이 된 것이다.(이방인)

 


 

아브라함 언약체결식은 창 15:9-21절이다.   15:2절에 ‘씨’에 대해 의심하는 그에게 5절의 약속을 보여주셨고 이를 믿은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자 언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언약체결식의 장면은 기다림과 캄캄함을 통하여 언약의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신다. 또한 아브라함언약의 성취가 430년이 걸릴 것을 말씀하신다.(13) 그러나 아브라함은 얼마후 언약을 파기한다.

 

하나님은 16장16절과 17장1절 사이의 13년의 침묵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징계하신다. 이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은 다시 17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리고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다.

 


 

아브라함언약의 골자인 ‘씨’와 ‘땅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상징한다. ’씨‘는 22:17-18절의 메시야 언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복수가 아닌 단수로 강조된다. (갈3:16-17) 이 언약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  땅의 성취는 히11:9-16절과 같이 아브라함은 단순한 가나안을 사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그리고 본향을 향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창22장은 아브라함 언약의 결론이며 확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복의근원,축복의 통로는 창세기22:18의 “네 씨”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네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갈3:16절을 보면 “이 언약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르켜 그 자손들이라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르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창3:15절의 "seed" “그 씨”가 창22:18절의 "seed"로 이어지며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이 seed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창22장은 메시야의 시각으로 읽어야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당한 명령을 하셨는데 왜  아브라함은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아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둘째,언약의 아들 아닙니까? 하나님이 죽게 하시면 언약은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그가 대꾸 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평형법으로  해석해 본다.

 

아브라함아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이다. 나는 이 아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 아들을 죽여야한다. 

 

이것이 기독론적해석이다. 이삭이 짊어진 나무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22:6절의 불과 칼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한다.  앞으로 십자가의 사건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시는 장면이다.

 


 

번제할 어린양(7)은 이삭을 대신 할 어린양이 준비되었다. 이삭과 역할이 바뀐다. 어린양은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속의 원리이다.  예배에는 대속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담대하게 자기 아들을 바칠수 있었는가?

 

히11:19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아브라함에게는 부활신앙이 있었던 것이다

 


 

족장언약

 

족장언약의 본질은 ‘씨’와 ‘땅’의 완성이다. ‘씨’는 연약하게 이어졌으나 야곱의 12지파의 완전수로 확장된다. 그리고 70인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완전수 7의 10배수를 사용함으로 ‘씨’의 완성을 보여준다.

 

족장언약은 하나님나라의 각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역동적으로 이삭은 소극적으로 야곱은 고난을 통하여 그리고 요셉은 철저한 훈련과 긍정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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