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구속사)

시편35편,말라키 야웨

호리홀리 2016. 5. 23. 09:41

삼상 24:15에 근거하여 다윗의 대적을 사울로 보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과 사울사이에 재판장이 되셔서 옳고 그름을 판결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사용된 `판결하다'는 법정 용어가 본절에 나오는 `다투다'는 단어와 유사하다.

 

 본문은 34편과 짝이다.34편에도 여호와의 사자가 영혼 구원의 대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말라키 야웨로서 35편에도 등장한다.그러면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인가? 천사인가? 아니면?

구약에는 자주 등장장하는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먼저 삿13:18절이하를 보면 언약백성들을 구원하기위해 사사 삼손을 주실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한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자신이다. 여호와 자신이 얼굴을 보일 수 없으니 대신하여 보낸이가 사자이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자 내 이름은 기묘라 했다. 기묘는 사9:6절에 나오는 메시아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1.여호와의 사자는  장차오실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이시다.

2그의 사역은 구원사역이기에 삿13:5절에서도 이 아이는 이스라엘을 구원 할 아이라는 것이다

시34편에도 구원 사역이다.(6.18,21). 영혼이란 단어가 반복된다. 그러나 그의 구원사역은  영혼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 구원이다. 하여 건지소서라는 말이 반복된다.(4,7.17) 22절의 구속은 구원과 속량이라는 메시아사역이다.

3.구원아란 단어는 히,야사이다.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라 발음된다. 예수아 역시 여호수아와 같은 발음이다. 하여 구약의 구원이라는 단어는 예수의 이름과 사역을 생각나게하는 단어이다.

4.메시아 고난이 35편에 나오고있다.

 

35편의 구원(3.9.17) 건지소서(10,17,) 여호와의 사자의 사역은 구원사역이라는 것을 알수있다.

다윗이 원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원수를 정죄하는 것이다.

본시는 3개의 애가가 나뉜다.1~10,11~18,18~ 모두 호소, 구원확신, 찬양의 구조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종일 찬양 할 것 아닌가?(28)

 

이제 다윗은 메시아의 고난을 바라본다.7절, 무고히받는 고난,15절, 비류로 인한 십자가 고난 비류,무리는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니 그러하다.21,25절, 아하하며 비난당하는 메시아의 고난이  그려진다.

 

 다투시고...싸우소서 - `다투시고'에 해당하는 원어는 `리바흐'(*)인데 이 말은 법정적 용어이므로 `변론 하시고'로 번역될 수 있다(A. Clarke). 그리고 `싸우소서'를 가리키는 원어 `르함'은 전쟁 용어로 개역 성경을 그대로 따라서 번역하거나 `전투하소서'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용어는 대체로 수동태로 사용되는 단어이나 여기서는 능동태로 쓰이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Perowne, Delitzsch). , 저자는 마치 자신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탄원하듯 본 시롤 시작하고 있으며 능동태의 은유적인 전쟁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대적들에 대한 변론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되 강한 주도권을 가지고 힘있게 밀어붙여 완승을 거두실 것을 소원하고 있다. 한편, ()에 있어서의 이러한 표현 기법은 고대(古代) 전승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24:8; cnf 15:3, Weiser).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 방패는 `마겐'으로 `작은 방패'를 뜻하고, 손 방패는 `친나'로서 `온몸을 덮을 수 있는 큰 방패'를 뜻한다. 하나님을 인간 장수(將帥)가 사용하는 작고 큰 방패를 사용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신인 동형론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이미 모세 오경에서 자주 사용되어졌었다. 한편, 이러한 신인 동형론적인 기법은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하려는 목적 때문에 사용되었다(15:3; 32:41).

 

 길을 막으시고 - 여기의 `'은 원문에 없는 것이며, `막으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고르'는 문 따위를 `닫다', `걸어 잠그다'를 뜻한다. 본 용어의 용례에 의하면 본 표현의 의미는 박해하는 자들의 방편을 무색케 하며, 효과가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Barnes).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해 달라는 것, 즉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보증해 달라는 뜻이다. 성도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 주는 이와 같은 확신울 원하며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는 자에게 제공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개인에 대한 전 구원 계획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Barnes).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 본절에서 부터 8절까지에서 저자는 자신과 이스라엘 전체 운명에 치명타를 가하려고 하는 반역자들 위에 수치스러운 패배가 임하기를 저주하고 있다.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 저자 자신을 모해(謀害)하려는 반역자들의 계획을 방해하셔서 그 계획을 좌절시킴으로써 그들이 실망하고 수치를 당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미루어볼 때 결국 본절에는 동일 개념의 대구가 반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 앞에 겨 - 악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표현은 돕는 자가 없는 상태와 무가치한 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A.A. Anderson, J. A. Alexander). 한편, 1편에서도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였다(1:4).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 천사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쫓아내고 흩어지게 해달라는 뜻이다(34:7). 성경에서 천사는 흔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악한 자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고용된 중개자로 묘사되고 있다(삼하 8:16; 왕하 19:35; 대상 21:12,30; 37:36).

 

어둡고 - 먼저 저자는 대적의 길이 암흑이 되게 해달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앞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앞에 무엇이 있고 어떠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체 밤길을 방황하는 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Barnes).

 

 미끄럽게 하시고 - `미끄럽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할라코트'인데 여기서는 어미의 중복형인 `할라클라코트'가 쓰여 그 의미가 강조되었다 따라서 `굉장히 미끄럽게 하시고'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하다고 하겠다. 앞 구절에서 대적의 운명은 밤길을 헤매는 것에 비유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발고 있는 땅의 형편이 굉장히 미끄럽다는 악조건이 하나 더 추가됨으로써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좀더 분명히 실감케 된다.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다르게 하소서 -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것과 같으며 그 땅이 굉장히 미끄럽기까지 한데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악인들의 파멸 작업을 마무리 하기 위하여 그들을 추격하는 천사의 이미지는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상상케 한다(J. A. Al exander).

 

 무고히...무고히 - `이유없이' 본절에서 두 번 그리고 19절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이 단어는. 11-18절에서 좀 더 충분하게 표출되고 있는 다윗의 고통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부당한, 그리고 애매한 고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죄없이 고난 당하신 메시야를 연상케 된다(벧전 2:19).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 `그물을 웅덩이에'(, 솨하트 리슈탐)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들 그물의 웅덩이'인데 이것은 짐승을 잡기 위하여 그 안에 그물을 깔고 그위에는 무엇으로 살짝 덮은 웅덩이를 가리킨다. `함정' 역시 `솨하트' 로 웅덩이와 동일한 것이다(Perowne).

 

 졸지에 - `알지 못하는 때에'. 멸망이 생각지도 못했고 예상하지도 못한 때에 대적에게 임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 여기서 다윗은 그의 대적들이 그를 모해하기 위하여 계획했었던 바가 그들에게 임할 것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7:15, 16 주석을 참조하라.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 4-8절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의 몰락을 갈구했던 다윗은 돌연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시편 기자를 비롯한 구약성경의 저자들이 표현하는 시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들은 역경으로 인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역경 극복을 간구하는 탄원 중에서도 종국적 구원을 찬앙하곤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다윗이 경험하였던 것보다 더 큰위기를 만났었던 모세도 `하나님 같은 이가 또 어디 있으리'라는 찬양을 하나님께 올린 바 있고(15:11), 신약의 바울 또한 자포자기의 순간에 죽음으로 부터의 부활을 기억함으로써 소망을 회복한 기록이 있다(고후 1:8-10). 한편, `내 영혼이'라는 표현은 `', `나 자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는 표현으로(6:2, 3) `나의 뼈'(10)와 함께 사용된다. 이것은 진술한 사실에 대한 저자 자신의 확신을 보여주는 시의 표현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D. Kidner).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 `'`영혼'과 동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 이는 전인(全人)을 강조하는 저자 자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Briggs, Kidner), 51:8"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를 근거로 해서 볼때 하나님의 구원 하심을 생각하니 고통과 위험 가운데서 부서지고 어그러진 것 같았던 뼈들이 다시 힘이 생기고 기쁘다는 의미의 `내 모든 뼈'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Barnes). 이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을 취해도 무리는 없다. 그것은 두 해석이 다 성경적 근거 구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찬양의 노래이다. 성경 저자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선조들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다윗의 선조인 모세는 이미 총체적인 의미의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분만이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밝힌 바 있는데(15:11), 본절의 다윗은 이러한 모세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본 표현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 틀림없다. 또한 다윗의 후대 사람인 이사야의 글(40:18)에서도 우리는 그와 유사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나의 영혼이 ...을 잃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 속에서 홀로라는 저자의 외로움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친구 없는 자들을 돕고 고통 당하는 자를 위로하기를 애썼던, 그리고 남을 위하여 진실되게 기도하였던 자신을 모두가 버렸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Pe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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