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구속사)

시편4편,하시드

호리홀리 2016. 4. 11. 09:36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 다윗의 왕권은 백성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천명하는 구절이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자기에게 대항하는 악한 자들의 행위가 멸망 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Calvin). 여기서 '경건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드'는 친절, 자애, 인자, 충성, 등의 의미를 지닌 '헤세드'의 파생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시드'는 능동적인 의미로서 자애로운 자, 충성스러운 자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수동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의 자애와 인자의 대상이 된 자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칼빈(Calvin)은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케이(Kay)도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보았다. 구약에서는 경건한자로 자주번역된 이 단어는 구원자로 해석된다. 1차적해석의 구원자는 다윗이지만 궁극적 구원자는 예수그리스도이다.

한편, 여기서 '택하다'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플라'는 단순한 선택을 의미하는 '바하르'와는 달리 존귀한 자로 구별하여 세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Delizsch). 여기서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본 구절은 경건한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리라는 확신의 말이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 여기서 '떨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분노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분노함으로 떨 수는 있으나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 범죄하지는 말라'(Craigie, Rawlinson). 이와 유사한 구절을 엡 4:26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 속에 있는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침묵을 지키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악인이 속에 있는 분노를 터뜨림으로 경건한 자가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침묵 자체가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악의 결과를 줄일 수는 있다(Craigie).

 

 의의 제사를 드리고 - 여기서 '의의 제삭'1절의 '의의 하나님'과 관계있는 말이 분명하다. 그렇게 볼 때 의의 제사는 단순히 의식적(儀式的)으로 드리는 제사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의를 인정하며 그동안 의로운 왕을 대적한 데 대해 회개하는 마음의 진정한 제사를 뜻하는 것이다(Craigie, Kraus, Rawlinson). 4절은 단지 대적자들의 분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경고인 반면 본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악을 제거하기 위한 다윗의 권면이라고 볼 수있다.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 이는 여호와와의 바른 관계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다윗은 대적들의 행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데서 비롯되었음을 확신했다.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 다윗을 따르던 자들 중에 자기의 운명에 회의를 품은 자들의 연약한 탄식의 말을 다윗이 인용한 구절이다. 이들은 인생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만 자신들의 절망적인 처지만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 다윗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회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적들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동시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의심의 생각들을 극복해야만 했었다. 그가 이 의심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본 구절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할 때 하는 말과 유사하다(6:25, 26). 이 말씀을 예배시에 누차 들어왔었던 다윗은 곤경에 처하게 되자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의심을 물리치게 되었던 것이다(Craigie). 그리하여 다윗은 주의 얼굴빛이 자기 무리에게 비취기만 하여도 좋은 것이 풍성하게 임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더하니이다 - 여호와께로부터 좋은 것()을 받은 다윗의 감격을 나타낸 표현이다. 그가 받은 좋은것이란 마음 깊은 곳에까지 미치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사람의 아들들'(2)이 권세자에게 아부함으로 누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또는 권세보다 더 영광스럽고 좋은 것이었다. 이 기쁨이 그러한 것들보다 더 좋은 이유는 그것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고위층의 인사들(사람의 아들들)이 누리는 물질적인 축복보다 더 좋다고 한데 대한 다윗의 확증의 말이다(Calvin). 다윗은 이 기쁨으로 인해 극한 환란 가운데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히 누워 잘 수 있었던 것이다(3:5).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 대적의 무서운 공격 앞에서 평안히 누워 잘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 때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특히 '오직'이라는 말은 다윗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의 도움을 바라지 아니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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