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구속사)

시편2편,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호리홀리 2016. 4. 8. 09:15

1편과 2편은 시편의 서론이며 짝이다. 또한 모두 메시아시이다.그러므로 서로 대조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기록자는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8-16). 그러므로 이 약속을 굳게 믿었던 시인의 눈에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왕에게 지배를 받아왔던 이방의 나라들이 반역을 시도하고 있는 사실이 대단히 의외의 일로 가소롭게 여겨졌던 것이다(Rogerson & Mckay).

 

열방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방 나라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세상적인 사람들을 내포한다고 말할수 있다(Rogerson & Mckay). 한편, '분노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쉬''음모를 꾸미다'(RSV, conspire)라는 뜻으로 역사적인 반역의 사건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반역을 위한 모의, 또는 은밀한 꾀를 나타내는 말이다(TWOT)그들은 악인이며 오만한자들로 1편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영하는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1:2에서는 '묵상하다'로 번역되었으나 본 여기서는 하나님과 언약에 대해 반역을 꾀하는 무리들로  나타난다. 언어유의를 사용하며 그들의 악의가 강조된다.

 

언약백성들을 대적하는 일에 세상의 주권자들이 앞장섰다. 여기서 군왕들이란 암몬, 에돔, 그리고 모압과 같은 나라들의 왕들을 지칭한다(A. A. Anderson).또한 헤롯를 가르킨다. 

 '관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죤'은 주권자, 군주를 의미하는 말로서 위의 군왕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서로 꾀하여'는 문자적으로 '함께 모이다'라는 뜻이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여 모의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기름 받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쉬야'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란 의미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왕을 의미하는 말이다.한편, 본절의 메시야는 궁극적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Alexander, Rawlinson, Rogerson, & Mckay).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 '맨 것''결박'은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그들의 피지배 상태를 의미하며(Kraus),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지배와 그의 율법을 의미한다(Rawlinson). 그 어떤 것이든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통치자들을 귀찮게 여기고 자기들의 육체적인 자유를 찾아 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다윗언약을 끊으려했던 아달랴를 떠올린다.

 

'하늘에 계신 자''하늘 보좌에 앉으신 자'라는 뜻으로 이는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Kraus, Craigie).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바른 지식으로 말미암아 1절에서 그는 세상 나라들의 반역 행위에 대해 그토록 놀라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은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anthropomorphic)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역 음모를 결국 이루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37:13:59:8).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 ''에 해당하는 히므리어는 '아도나이'로서 아도나이는 만물을 소유하신 분(8:1), 지극히 탁월하신 주, 만물 위의 주를 나타내는 말이다(TWOT). 이러한 분이 그와 그의 통치자들을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 비웃으신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은연 중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었다(Kraus).

 

5절, "그때에"는 본절의 미완료 동사와 연결되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미래의 때를 지시하고 있다(Kraus). 따라서 이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즉시 심판을 선포하지 아니하시고 일정한 기간 동안 방치해 두셨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2:4, 5).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 6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단지 당신의 뜻을 선포하심으로 이방의 왕들을 두렵게 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Craigie, Anderson, Kraus). 하나님께서 다만 선포만 하셨더라도 그 선포는 이방의 왕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꾀를 도모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저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Briggs).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 '내가'는 히브리 본문에서 강조 어법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저자는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언덕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를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세웠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케티''기름붓다'는 뜻의 동사 '수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Craigie). 이렇게 볼 때, 이 동사는 본 구절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메시야'를 의미한다.

 

6절이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장면이라면 7절은 세우심을 입은 왕이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기름부음 받아 세워졌음을 선포하는 장면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는 의정서(議定書)를 의미하는 말이다. , 이는 한 인물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인준하는 증빙 문서를 의미한다(Kraus). 이 의정서의 내용은 다음 구절에서 이어진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이 의정서의 내용은 다윗 언약인 삼하 7:14의 내용과 일치한다. 다윗 언약에서 다윗과 그의 후손은 여호와의 자녀로 선택되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여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 다윗 계열의 왕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땅을 기업으로 받고 아울러 그의 대적들을 심판할 권세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Weiser, Briggs, Rogerson, & Mckay).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된 시온의 왕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께서 대관식을 가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한순간에 인정하셨으나 그 인준의 증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그것은 (1) 예수의 세례(3:17), (2) 변화 산상에서의 변모하심(17:5), 그리고 (3) 예수의 부활 등이다. 이 셋 중에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만왕의 왕이심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는 것이다(Craigie).

 

 내게 구하라 - 자유로이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선택된 왕의 특징 중 하나였다(20:4;21:2, 4;삼하 24:12;왕상 3:5).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신 사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Lange). 아울러 이는 왕같은 제사장인 신약 성도의 특권이기도 하다(벧전 2:9).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 선택된 왕의 아버지이신 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소유하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온 땅을 물려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상속자(相續者)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21:38;4:7). 그리고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겠다는 표현은 그의 통치가 온 세상에 미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Kraus).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자녀에게 '아낌없이' 무엇이든 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Perowne). 한편, 이 우주적인 통치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Craigie, Rawlinson, Briggs).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 그릇같이 부수리라 - 애굽의 왕들은 대관식 때에 주변 세계에 대한 자신의 통치권을 과시하기 위하여 주변 나라들의 이름을 적은 질그릇들을 깨뜨리곤 하였다(Kraus). 이같이 애굽의 왕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질그릇을 깨뜨렸지만 메시야는 '실제로' 질그릇을 깨뜨림과 같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혹자는 깨뜨린다는 단어가 파괴적인 용어이므로 이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그라스도의 통치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Wette, Hupfeld). 그러나 이 구절은 계시록에서 세 번이나 그리스도의 통치와 관련되어 인용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묘사한 구절임에 분명하다(2:27;12:5;19:15). 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에는 평화적인 요소와 아울러 악한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심판적인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Rawlinson).

 

 지혜를 얻으며...교훈을 받을지어다 - 이방의 왕들이 시온의 왕 메시야에게 도전하는것은 아주 무모한 짓이다. 따라서 시인은 저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운 행동에 대해 다음 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 이는 (1) 신앙적인 차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라는 뜻이며, (2) 정치적인 차원에서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에게 복종하면서 다윗 왕조의 속국으로 만족하라는 뜻이다(Lange).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성경에서 발에 입맞추는 행위는 종으로 복종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49:23). 또한 손에 입맞추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경배의 표시였다(31:27). 따라서 시인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왕으로 계속 모시겠다는 복종의 표시로 경의를 표하라고 이방의 왕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아들'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된 히브리어의 '벤'사람의 아들이 아니고 아람어의 '바르'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다.이 용어는 잠 31:2에서 세 번 연속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특별한 경의를 내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순전한 아들', 또는 '빛나는 아들'이라고 번역되는 편이 좋다(Kraus).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 이 말은 문자적으로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자로' 해석되는데, 이는 열방의 군왕들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진정한 보호를 받게 됨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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