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느혜미야서(구속사)

느혜미야11장,자원하는 사람들

호리홀리 2016. 1. 29. 13:40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1) '두목들'이 솔선 수범하여 먼저 예루살렘에 정착했다는 견해(Rudolph), (2) 포로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는 견해(Fensham, Rawlinson, Myers)등 두 가지 해석이있다. 이처럼 두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여기의 '머물렀고'(, 야솨브)가 그런 두 가지의 해석을 가느케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 도착 전에 이미 상류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언급이 있음(2:16)을 볼때, 대다수의 '두목들'은 애당초부터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이번의 언약 갱신을 계기로 타지역으로 가서 살았던 일부 두목들까지 일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봄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한편, '두목'(, 사르)은 다른 곳에서 '방백'(10:14), '귀인'(6:17), '족장'(7:70;2:68)등으로 번역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16:33)는 믿음에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26:55,56,;7:16-18;삼상 10:19-21; 대상 24:5;25:8; 1:26).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민 26:52-56의 주제 강해, '제비 뽑기'를 참조하라.

 

 십분의 일은...예루살렘에...거하게 하고 -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살던 백성들의 10%를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킨 것을 가리킨다. 이때 가족 전체가 이주했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 조치로 인하여 이산(離散)가족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룩한 성 - 이는 후기에 기록된 구약 성경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18;48:2;52:1;9:24). 그런데 이 같은 어구로 예루살렘을 수식한 까닭은, 예루살렘이 비록 이방 대적들의 위협이 가장 많았던 곳이긴 하지만 예배의 중심지이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의 거주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암시하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인 듯하다(12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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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하는 자 /(1) 제비뽑혀서 본의 아니게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된 백성 이외의 사람 중 그들과 함께 이주하여 살기를 자청한 사람들로 보는 견해(Rawlinson, Schultz, Myers), (2) 제비뽑혀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백성 중 기쁜 마음으로 가는 자들로 보는 견해(Williamson, Fensham, 박윤선) 등 두가지 해석이 제시된다. 그러나 첫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숫자를 십분의 일로 못박았고(1) 둘째, 여기의 '자원하는'(, 나다브)이라는 단어는 대개 재귀형으로만 사용되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를 기꺼이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5:2;대상 29:6;대하 17:16;3:5)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때 위의 두 해석 중 후자가 보다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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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은 솔선 수범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살았던 지도자들을 언급하는 4절 이하 내용의 서론의 형식을 띠면서 여전히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그밖의 사람들을 대조시키고 있다(Fensham, Myers).

 

 두목들(, 로쉬) - 이 단어는 '두령'(24:1) 혹은 '족장'(대상 23:8;대하1:2)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한 가문의 지도자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단어는 1절의 '두목'(사르)과 본질적 의미상 동일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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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절까지는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평민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오고 있다.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 -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백성들 중에는 여기의 두 지파 이외의 출신도 분명히 있었다. ,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출신 및 심지어는 아셀 지파 출신도 있었을 것이다(대상 9:3;2:36). 다만 그 당시 유다 지파와 베냐민지파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성하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점에서, 이처럼 두 지파만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베레스 자손 아다야 - '베레스'는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았던 쌍동이 형제 중의 형이었다(38:24-30). 그의 후손 중에는 다윗과 그리스도가 포함된다(1:3,6,16).'베레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균열'이다. 한편, '아다야'은 대상 9:4에서 '우대'로 나와 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장식하셨다'이다.

 

 6절은 내용상으로 볼 때 베레스 가문 출신의 지도자에 대해 언급하는 4절과 연결된다.

 용사이었느니라 - '용사'(, 아느쉐이 하일)에서 '하일'(1) 군사적 능력, (2) 재정적 능력 모두를 뜻하기도 하지만, 예루살렘 방비를 위한 인구 정책에 대해서 다루는 본문의 문맥에서 볼 때 전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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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부분(4-6)에서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의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밝혔으나, 여기서는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의 시조를 언급지 않는다. 베냐민 지파의 경우 사사 시대에 다른 지파들에 의해서 몰살됐었던 관계로 그 당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Fensham).

 

 구백 이십 팔 명 - 여기와의 평행 구절인 대상 9:9'구백 오십 육 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결코 중요한 문제는되지 못한다. 사본상의 오류이거나 혹은 역대기에서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들이 포함되었을 수도있다. 아무튼 이 숫자는 '갑배''살래'처럼 '살루'(7)의 지휘 아래 있었던 용사들의 합계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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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 '요엘'이 예루살렘 방비의 총책임자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물론 그는 느헤미야의 지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혹은 이 문구를 '요엘'이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직분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Rawlinson, 왕하 25:19).

 

 유다는 버금이 되어...다스렸느니라 - 본문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1)개역 성경이나 KJV, RSV등에서 처럼, 유다가 서열상 요엘 다음가는 행정 책임자로서 예루살렘을 다스렸다고 보는 견해, (2) NIV에서처럼 유다가 예루살렘의 '두 번째 구역'(the Second District of the city)의 책임자였음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많은 학자들이(1)의 견해를 더 지지하고 있다(Edwin Yamauchi, Kedner, Schultz). (2)의 견해를 취할 경우, '두 번째 구역'이란 성전 서쪽 지역으로 확장된 지경를 가리키는 듯하다. 마자르(B.Mazar)나 아비갓(N. Avigasd)에 의하면, B.C. 8세기 후반 무렵에 예루살렘 성이 그 방향으로 확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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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 - 여기의 '스라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대상 6:14). 바로 이 사람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가문 이름을 '스라야 가문'이라고 하였던 것이다(10:2).

 

 힐기야의 아들 - 대상 6:13,14에 따르면, '스라야''힐기야'의 손자이지 아들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히브리어 ''의 번역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술람의 손자 - 여기의 '손자'도 다만 '자손'으로 번역해야 한다.

 

 사독의 증손 - 이것도 '사독의자손'으로 번역해야 한다. 한편, '사독'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이었다(삼하 20:25;왕상 1:32-45;2:35).

 

 므라욧의 현손 - '현손'도 다만 '자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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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 - 이것은 대제사장들을 도와서 성전 봉사를 했던 22반차(12:1-7)의 제사장들을 가리킨다(원래는 24반차로 나뉘었으나 느헤미야 당시에는 22반차로 나뉘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가문명(家門名)을 갖고있었다(12:1-7).

 

 아다야 - 이러한 가문명을 소유했던 제사장의 무리들은 가르치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던 것 같다. 반면 앞에 언급됐던 스라야 가문은 성전 봉사를 주임무로 했었다(Ki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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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제의 족장된 자 -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12) 제사장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그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1,3).

 

 아맛새 - '아맛새'라는 가문명을 갖고 있었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을 경비하는 일에 종사하였다(Ki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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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형제의 큰 용사니 - 이것은 앞의 '아맛새'라는 이름을 가진 제사장 가문이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의 '큰용사'( 기보르 하일)(1) 하나님의 전에서의 봉사와 관련된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Rawlinson).(2) 군사적 능력을 소유하고있는 사람(Kidner)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 '아맛새' 가문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방비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 문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13절 주석 참조) (2)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15~18절까지에서는 레위 사람 중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세 가문에 대해 소개한다.

 삽브대 - 에스라를 도와서 개혁 운동을 추진했던 '삽브대'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많다(8:7,8;10:15). 그 이름의 의미는 '휴식을 주는' 이다.

 요사밧 - 추측컨대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해준 '요사밧'과 동일인 인듯하다(8:7).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셨다'이다.

 하나님의 전 바깥 일 - 이것은 레위 사람들의 전형적 직무인 성전 제사와 관계된 일 이외의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1) 성전세 및 십일조를 거두는 일(10:37-39), (2)백성을 다스리는 일(대상 26:29), (3) 성전의 유지 보수와 관계된 일(Rudolph)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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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는 레위 사람의 또다른 가문이 언급된다. '아삽 자손'이 레위 사람으로 분류된 것은 다소 특이하다. 왜냐하면 본서와 에스라서의 다른 곳에서는 항상 성전 제사에 관여하는 레위인들을 '레위 사람'으로, 아삽의 자손들은 '노래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7:44;2:41). 그러나 '노래하는 자들', 즉 아삽 자손도 레위 지파에 속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분류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맛다냐 -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한 사람이다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선물'이다.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 - 여기의 '말씀'(, 테힐라)은 당연히 '찬송' 혹은 '찬양'으로 번역되어야 한다(15:11;10:21;22:3). 한편, '인도하는'(, 예호데)'인정하다' 혹은 '감사하다' 그리고 '찬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다'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찬송하게 하다'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기도할때에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하는 지도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맛다냐'라는 아삽 자손이 오늘날로 치면 성가대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맡았음을 말해준다.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박부갸'가 맛다냐에 이어 두 번째의 지도자였다는 뜻이다. 한편, '박부갸'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던지는 자'의 의미로 추정된다(J. M. Ward).

 

 여두둔의 증손 - 이는 '여두둔의 자손'으로 번역해야 한다(15). '여두둔'은 다윗 왕때에 성막에서 찬양과 연주를 맡아하던 인물이다(대상 16:41,42;대하 35:15).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 팔십 사 명 - 이 같은 레위 사람들의 숫자는 다른 지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적게 살았던 것은 그들의 봉사 직무가 힘에 겨웠던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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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 - '성문지기'는 문자적으로 다만 '문지기'일 뿐이다. 한편, '악굽''달몬' 모두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사람들의 일파인 성전 문지기 가문들의 명단에서 발견된다(2:42). 따라서 여기의 '성 문지기'는 오히려 '성전 문지기' 혹은 그냥 '문지기'로 번역해야 한다.

 그 형제 - 여기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문지기 가문들의 대부분이 포함될 것이다(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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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절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칭송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삽입 구절이다. , 여기서 느헤미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신의 평안을 위해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각 지방에 정착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본 전후 문맥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 거주자들의 헌신적 자세를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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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벨'은 성전이 세워져 있던 구릉 지대가 뻗쳐져 있는 예루살렘의 동남부였다(3:26).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시하와 기스바가 느디님 사람들의 위에 있었다' 이다 '시하'라는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느디님 사람들의 가문명 중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기스바'라는 이름은 거기서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본절의 두 이름을 가문명으로 보다는 개인의 이름으로 봄이 더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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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서는 아삽 자손의 가문명만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그 가문의 우두머리가 느헤미야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진술한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 - 여기에는 느디님 사람들에 대한 감독권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Schultz).

 하나님의 전(殿) - 문맥상 찬양을 인도하는 직무를 가리킨다.

 

 왕의 명대로....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 - 여기의 ''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던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킨다. 이처럼 아닥사스다왕이 레위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양식' '봉급'을 주게 했던 것은, 성전 제사가 원활히 드려져야만 왕 자신과 왕자들을 위한 기도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질 것으로 생각한 때문이다(6:10). 이러한 배려는 레위 사람들이 생계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연의 직무에 힘쓸 수 있게끔 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되었을 것이다(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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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은 23절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레위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원인을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절은, 헌신적 자세로써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마당에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것이다.

 유다의 아들 세라 -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두 아들 곧 '베레스''세라'를 낳았었다(38:11-30).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 문자적으로 '브다히야는 백성들의 모든 일과 관련해서 왕 곁에 있었다'이다. 따라서 '브다히야'는 마치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서서 아닥사스다 왕에 대한 조언자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Fensham). 그래서 NIV는 본 문구를 '브다히야는 백성들과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의 중개자였다'(...was the king's agent in all affairsrelating to the people)라고 번역하였다. 이처럼 페르시아 황실에 '브다히야'와 같은 대변인이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 또한 레위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라는 명령을 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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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여러 계층 사람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마치고, 여기서 부터는 당시 백성들이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향리와 들 - 엄밀히 말하여 '들이 딸린 향리'로 번역된다. 여기서 '향리'(, 하체르)'울로 둘러싸인 구내'(區內)를 의미한다(Wigram). 그리고 ''(,사데)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작지를 뜻한다(2:5;24:63;8:24).

 유다 자손 -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이들은 팔레스틴 땅의 남부 지역을 기업으로 할당받았었다. 그래서 30절까지 언급되는 이 유다 자손의 거주지도 모두 남부에 위치한 성읍들이다.

 

 기럇 아바 - 히브리 원문대로 한다면 '기럇 아르바'로서 헤브론(14:15)과 동일한 지명이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남방으로 30Km 지점에 위치하였고 아브라함을 위시한 여러 족장들이 묻힌 유서깊은 곳이다.

 

 그 촌, 베노테이하) - 중심되는 성읍의 주변에 위치한 독립 마을을 가리킨다(3:12).

 

 그 동네(, 하체레이하) - 본절 초두의 '향리'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앞의 ''보다는 휠씬 작은 '정착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Fens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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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다 - 15:26에 언급되고 있는 유다의 남부 성읍이다.

 

 하살수알과 브엘세바 - '브엘세바'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며 '하살수알'은 여호수아에서도 '브엘세바'와 함께 언급되는(15:28) 것으로 보아, '브엘세바'와 인근한 성읍이었을 것이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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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글락 - 원래는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으나(19:1,5), 그들이 탈환치 못함으로써 사울 시대까지 블레셋 족속의 차지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사울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망명을 했던 다윗이 그 왕으로부터 빌리면서 계속 이스라엘의 땅으로 남게 되었다(삼상 27:6). 그 위치는 헤브론 즉, 기럇 아바(25)에서 남동쪽으로 약 45Km 지점이다.

 

 에느림몬 - '림몬의 샘'의 뜻이다. 바로 이 같은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성읍은 수 15:32'아인''림몬'을 합한 것인 듯하다(Rawlinson).

 

 소라 - 원래 유다 지파에게 분배됐었으나 한 때는 단 지파가 거주했었다(19:40,41). 단 지파였던 삼손의 출생지도 이곳이다(13:24,25).

 

 야르뭇 - 가나안 족의 한 왕인 비람 왕의 성읍이었다(10:3). 여호수아는 바로 이곳에서 전투를 벌여 비람 왕을 죽였다(10:3-27). '높은 곳'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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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아와 아둘람 - '사노아'는 수 15:34에서 언급된다. 한편, '아둘람'은 한 때 자체내에 왕이 있을 정도로 큰 성읍이었다 (12:15). 그 후에 르호보암 왕은 이곳을 요새화하여 유다 땅의 방비를 강화하기도 하였다(대하 11:5,7).

 

 라기스 - 여호수아가 '야비아'라는 가나안 족속의 한 왕과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10:3,3`1,32). '야비아'왕의 성읍이 바로 이 '라기스'였었다. 또한 이곳은 르호보암 왕에 의 하여 요새화됐던 곳이었던 관계로 후대의 앗수왕 산헤립은 자신의 전 군사력을 동원하여 공격 목표로 삼았었다(대하 32:9).

 

 아세가 - 이곳도 르호보암 왕에 의해서 요새화된 적이 있었다(대하 11:9).

 

 브엘세바에서부터 흰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 느헤미야 당시 유다 자손들이 거주했던 지역적 범위를 말해주는 문구이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역사상 그 영토의 최남단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었다(삼상 3:20). 그리고 '힌놈의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와디 엘라바비로 간주되며,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 밑을 남북으로 가로 질러가다가 예루살렘 남동쪽의 기드론 시내 쪽으로 구부러져 만난다(2:13). 이 골짜기는 베냐민 지파의 땅과 유다 지파의 땅을 나누는 경계로서 인식되었었다(15:8;18:16). 바로 이 같은 경계에 따라 '힌놈의 골짜기' 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 분류된 바 있다(18:28). 한편, '장막을 쳤으며'(, 하나)는 군대가 상대편을 공격할 거점으로 삼기 위하여 어느 지역에 일시 머무는 것을 가리킬 때사용되는 군사적 용어이다(Williamson, 1:52;삼상 4:1;삼하 17:26;왕상 16:15). 그러나 포로 후기에 가서는 다만 일시 머무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의미가 변한듯 하다(8:15). 그럴지라도 여기서 느헤미야가 바로 이 갈은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1) 당시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의 일부도 그 두목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했던 상황을 암시하며(1), (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주가 빈번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Myers)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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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냐민 자손 - 이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팔레스틴에 들어온 후에 유다 지파가 분배 받았던 기업의 바로 북부 지역을 그 기업으로 받았다. , 예루살렘부터 그 북쪽이 그들의 기업이었다(30절 주석 참조).

 

 게바 - 예루살렘 북쪽 약 25.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유다의 아사왕이 북국 이스라엘이 라마에 요새를 세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료를 빼앗아서 요새를 세운 곳이기도 하였다(왕상 15:22). '반석'의 의미이다.

 

 믹마스 - 게바 동북쪽 약 2.4km 지점이다. 사울의 군대와 불레셋 군대 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삼상 13:2,5-16;14:1-18). '감추어진'의 뜻이다.

 

 아야와 벧엘 - '아야'는 사 10:28,29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앞의 '믹마스'와 인근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벧엘''믹마스' 서북쪽 약 6.7km 지점이며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2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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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 - 게바와 예루살렘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 하다(1:1). '대답들'이란 뜻의 지명이다.

 

 - 예루살렘과 아나돗의 거의 중간 지점이며, 그곳에서 예루살렘이 보일 정도로 예루살렘과 가까이 위치했었다(10:32). 실로가 블레셋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됨으로써, 이곳은 한때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었다(삼상 21:1). '열매'의 의미이다.

 

 아나냐 -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함께 언급되고 있는 성읍들과 인접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호와께서 덮으셨다'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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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마 -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사무엘의 고향으로서 그가 사사 및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곳이다(삼상 7:15, 17). '높은 곳'의 의미이다.

 

 깃다임 - 베냐민 지파의 브에롯 사람들이 도망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곳이다(삼하4:3). 그 지명의 의미는 '이증 포도즙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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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딧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2:33). '날카로운'의 의미이다.

 

 스보임 - 믹마스 동편의 저지대에 위치했었던 것 같다(Rawlinson, 삼상 13:18). '무늬있는 새들'의 뜻이다.

 로드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덧'으로부터는 남서 서쪽로 6km 정도 떨어졌었다(2:33).

 

 오노와 공장 골짜기 - 예루살렘 북서쪽 약 5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베냐민 지파의 땅 중 가장 외딴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그곳으로 유인하여 거기서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었다(6:2). '강한'의 의미이다. 한편, '공장 골짜기'는 개역성경을 따를 경우 마치 '오노'와 별개의 지명인듯 보인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앞의 '오노''공장 골짜기' 사이에 '그리고' 혹은'...'의 뜻을 갖는 접속사 '와우'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오노''공장 골짜기'는 동격(同格)인 셈이다(KJV, LB, R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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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절은 레위 사람들의 일부가 느헤미야 시대에 유다 땅에서 베냐민 땅으로 이주했었음을 말해준다. 레위 사람들의 이 같은 이주는 십일조의 원활한 수납(收納)을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Fensham, 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