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느혜미야서(구속사)

느혜미야서9장,회개운동과 언약체결식

호리홀리 2016. 1. 27. 13:43

'이십사 일'은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난 22일의 이틀 후였다. 따라서 여기 언급되는 백성들의 회집(會集)은 초막절 행사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그들이 칠월 초하루날에 죄를 인하여 슬피 울기는 했지만(8:9), 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전한 회개를 할 수 없었다(8:9, 10). 따라서 에스라는 중요한 절기들이 지난 한날을 택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금식...굵은 베...티끌 - 이것은 죄의 자각(自覺)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의 외적인 표시이다(Fensham). 죄의 회개와 관련하여 금식만 언급되는 부분은 삼상 7:6, 굵은 베옷을 입고 우는 경우는 창 37:34과 왕상 21:27, 그리고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는 것은 삼상 4:12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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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거기에는 (1)본장이 에스라 10장 다음에 놓여져야 한다고 보고 여기의 '절교'가 이방 여인들과의 집단적 이혼 사실(9, 10)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udolph, Myers), (2)여기에는 상세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그때에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냄으로써 실제로 이루어졌었다고 보는 견해(Keil), (3)통혼(通婚)으로 인한 문제와는 무리한 것으로 보고, 여기의 '절교'는 사업상으로 친교를 갖던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헌신, 결단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awlinson, Schultz, Kidner), (4)그 당시에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이 초막절 행사 등에 참여했었던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백성들이 '금식...굵은 베...티끌 등을 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고 하는 견해(Batten)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의 한 부분을 충분한 증거가 없이 떼어내어 다른 부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둘째, 이방 여인을 내어보내는 일이 단 하루 혹은 2, 3일 만에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며 셋째,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사업상 상주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13:16)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세번째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 - 이와같이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 의식은 구약에서 종종 발견된다(106:6). 이러한 연대성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여전히 받고있었다(1:3). 이 같은 사실은, 조상들의 죄가 후손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한 긍극적 책임은 엄연히 각 개인에게 있다

 

 낮 사분지 일 - 고대 유대인들은 하루를 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八等分)했다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를 가리킨다.

 

 그 처소에 서서...율법책을 낭독하고 - 본절의 '처소'는 사역자의 자리와 구별되어 백성들에게 지정된 자리를 뜻한다(Rawlinson, 8:7). 한편, '율법책을 낭독하고'는 백성들이 직접 '율법책'을 읽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에스라가 높은 강단 위에서 낭독하면(8:3, 4) 백성들 중간중간에 위치했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상용어인 아람어로 번역해주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8:7, 8).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려 - 여기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이다(8: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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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 사람 예수아...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 한편, 본절에 열거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그들의 맡은 역할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본 문구를 '예수아...그나니는 레위 사람의 대에 올라서서'로 번역함이 더 낫다(Rawlinson)는 점에 근거해 볼 때(KJV, the stairs of the Levites ; RSV, the stairs of Levites) 이들을 모두 레위인 출신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LB, NIV)). 한편, '예수아'는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 주었던 레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8:7).

 

 큰 소리로...여호와께 부르짖고 - 여기서 '부르짖고'(, 자아크)는 고난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소리내어 간구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6:7;삼상 8:18;대상 5:20;22:5).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의 죄 문제 해결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동으로 보면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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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4절에서의 ''에 올라 있었던 자들로 짐작된다. 그 근거로서 4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은' 레위 사람중 세 사람이 본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갓미엘 - '하나님의 존전'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10:9'갓미엘'과 동일인일 것이다.

 하삽느야 - '여호와께서 생각하심'의 의미이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하사뱌'(10:11)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 하나님의 초월적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 이것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만하며, 또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강조한다(3:17).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 -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성경 전반의 한결같은 명령이다(Rawlinson, 20:7;72:19;15:4). 여호와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송축으로 그 부족을 채우시려는 분이 결코 아니다(17:25). 하지만 사람을 만드신 목적 중 하나가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또 사람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하다(43:2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의무이자 영광스러운 특권이기도 하다. 한편, '이름'은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서 볼 때 '인격'과 동일하다

 

6~ 38절까지는 백성들의 회개 기도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도를 인도한 것은 일단의 레위인들이었고(5) 에스라는 이들의 배후에서 교육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한 듯하다. 이 기도문을 가리켜 혹자는 시편 밖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예배 기도문들 중의 하나라고 평한다(Michaeli). 백성들의 거듭되는 배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 기도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1) 창조에 있어(6), (2) 예굽과 홍해에서(9-11), (3)광야와 시내에서(12-21), (4)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22-25), (5) 사사들을 통해서(26-28), (6)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7) 현재의 상황을 통해(32-37).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 '여호와''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이라는 문구(5)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이방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것임이 분명하다(86:10).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 '하늘'은 대기권 혹은 궁창(1:8), '하늘들의 하늘'은 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 즉 우주를 가리킨다(10:14;왕상 8:27;148:4).

 

 일월성신 - 문자적으로는 '모든 군대들'의 뜻으로서, 주로 '천사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본절에서 '천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와 동일한 단어임).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별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1:16, 17;95:4, 5;104;136:5-9). 한편, 이 천사들이나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148:3;6:1-4;4:8, 9).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 - 지구와 (1:1, 9, 10), 지구에서 살도록 창조된 모든 동식물과 사람을 가리킨다(1:20-30).

 지으시고(, 아사) - '만들다'의 의미이다.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1:16).

 보존하시오니(, 하야) - '생명을 주어보존하다'의 뜻이다(Keil). 이것은 하나님께서 (1)자연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섭리하시는것(벧후 3:7) (2) 생물을 지시고 그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36:6). 따라서 일단 창조된 피조물은 스스로 자기 보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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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오직 '아브람'만을 택하신 사실로 인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 히브리 원문은 본 문구가 관계 대명사 '아쉐르'에 이끌리는 그 다음 문구들에 의하여 수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24:2)에게 영광 중에 임하여서(7:2)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1:31;12:1;7:3).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을 본토에서 떠나게 한 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요 그야말로 찬양받을 만한일이었다. 그런데 '갈대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가리킨다. 한편,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 페르시아 만에서 약 250km쯤 떨어진 남부에 위치했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닙불'은 우르로부터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 하나님이 아브람과 더불어 후손에 관한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열국의 아버지' 란 뜻의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을 뜻한다(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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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음이...충성됨을 보시고...언약을 세우사 -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어떤 선행이나 공로 때문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15:6; 4: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셨고, 그 의() 때문에 그는 언약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믿음 조차도 그의 공로가 될수 없는 것은(4:2).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기 때문이다(7:2, 3;2:8, 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외아들 이삭을 희생제물로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신앙 또한 간과될 수는 없을 것이다(22).

 

 가나안 족속과...기르가스 족속의 땅을...주리라 -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기로 약속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5:7, 18-21).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 있은 지430년이 지난 후였다(12:40;3:17). , 그 약속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성취된 것이다. 한편,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대표적인 일곱 족속 중에는 본문의 아모리 족속 대신 히위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들어간다(9:1, 2 주제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참조). 그리고 아브라함 당시의 가나안 땅에는 초기 원주민들, 곧 르바, , 호리, 수스, 아낙 족속 등이 거주하였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 본 문구 앞에는 개역 성경에서 번역치 아니한 접속사 ''가 있다. 따라서 본문 '왜냐하면 당신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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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2절까지에서는, 출애굽시에 하나님이 그 크신 권능으로 백성들을 구출하신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성경 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구원 사건으로 간주되었다(78:12;105:27-37; 106:7; 135:8,9;136:10).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1:8) 중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핍박을 받았던 사실을 말한다(1:11).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2:23). 한편, '감찰하시며'(, 라아)는 원래 '보다' 혹은 '알다'의 뜻으로서, 자세히 살펴서 실제적 사실을 바로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삼상 24:15;왕상 10:7;왕하 7:13).

 

 홍해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 '부르짖음'이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는 탈출했으나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더구나 애굽의 추격군이 바싹 다가왔을 때였다(14:10). 그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가 갈라지도록 역사하셨다(14:21, 22). 한편, '부르짖음'(, 자아크)4절의 '부르짖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하지만 부르짖음의 이유는 다르다(4). 그런데 여기서 본서의 저자가 시간상 10절의 내용보다 뒤지는 사건을 먼저 언급한 것은 '고난을 감찰하신 사건''부르짖음을 들으신 사건'을 함께 묶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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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 여기서 '이적'(, 오트)은 성경에서 주로 '징조''표적'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사건을 가리키지만 그 사건에 담겨있는 의미를 더 강조한다(7:3;왕하 19:29;105:27). 따라서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표적'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세메이온'과 거의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2:18). 한편, '기사'(, 모페트)는 특별히 놀라운 사건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단어이다(32:20, 21). 따라서 이것은 복음서 등에서 흔히 '기사''기적'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테라스'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24:24;13:22;4:48;2:19;살후 2:9).

 

 바로와...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 문자적으로는 '바로에 대하여...그리고 그 나라 온 백성에 대하여'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누구에게 베푸셨는지 그 대상을 말해주는 문구이다.

 

 이는...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및 애굽 백성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보이신 이유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교만이 행함' (, 주드)'끓어오르다', '거만(오만)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맞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18:11;1:43;17:13; 18:20;50:29).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한 노역을 부과하고 아들이 태어날 경우는 죽이는 악행을 범한 것을 가리킨다(1:11, 22). 그리고 '아셨음이라'(야다)는 어떤 사물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4:1;1:8).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 출애굽 당시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권능이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명성이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NIV, You made a namefor yoursself, which remains to this day). 실제로 애굽에 대해 베푸신 기적과 기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셨다(9:16;14:17; 15:14-1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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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큰 물에 던짐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 하나님께서 갈라졌던 물을 합치심으로써 그 가운데 있던 애굽 군대를 수몰(水沒)시키신 것을 가리킨다 (15: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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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기둥 - '구름 기둥''불 기둥'은 별개의 두 기둥이 아니다. 다만 한 기둥이 낮과 밤에 따라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14:24). 이 두 기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적 임재의 표상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중에 임재하셔서, 낮에는 서늘한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로부터, 밤에는 찬란한 불이 되어(9:15, 16) 사막성 혹한(酷寒)이나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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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은 14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 언약, 즉 모세 언약을 주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 산 언약을 주시기 위해서 우뢰. 번개. 구름. 나팔 소리와 함께 불가운데에 임재하신 것을 가리킨다(19:16-18). 이때 백성들은 두려움 중에 자신들을 성결케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었다(19:10).

 

 정직한 규례..계명을... 주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같이 '규례' 등을 주신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여 당신의 백성답게 살게끔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9:2;5:48;벧전 1:15).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통하여 당신의 형상 혹은 성품을 만민 중에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이다(5:16). 바로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한 존재들로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7:6). 여기의 '규례'(, 미쉬파트)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해주는 삶의 기준(18:4;103:6)을 가리킨다(8:18). '규례'는 원래는 백성들 간의 시비를 가리는 일상적 법률이었을 것이나, 시내 산 언약이 백성들에게 주어지면서 거룩한 율법을 가리키는 표현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정직한'(, 야솨아르)'곧 바르다' 혹은 '곧바르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백성의 삶을 바르게 해주는 '규례'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아무튼 본서 기자는 본절에서 이같은 수식적인 형용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찬(禮讚)을 아끼지 않고 있다(Rawlinson). 이와 비슷한 경우는 시편 119편에서 능히 발견된다. 그밖에 하나님의 율법의 또 다른 명칭인 '계명'(, 미츠오트)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가리킨다.

 

 진정한 율법 - '율법'(, 토라)은 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므로, 함부로 그 뜻을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이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뜻을 수록한 '법전'(法典)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한 말이다. 한편, '진정한'(, 에메트)'확실한', '참된', '신실한'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으리만큼 참된'의 뜻으로 쓰였다(24:14;9:16;대하 18:15).

 

 율례(, 후킴) - 넓은 의미에서는 율법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의무와 그에 부속된 약속까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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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이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강조한다면, 본절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실, 13절과 14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다. 저자는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신 일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거룩한 안식일...알리시며 - 이처럼 '안식일'이 본절의 초두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20:8-11;23:12).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고 지엄하신, 안식일 준수에 관한 계명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랍비들은 '안식일의 규례는 모든 계명들보다 중요하다'고까지 하였다(Edwin Yamauchi). 이러한 안식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1) 가나안 칠 족속의 정복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예표적 안식(4:8), (2) 믿음을 통한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영적 안식(11:28; 4:3), (3) 주님의 재림을 통한 모든 성도들의  완전한 안식(21:4)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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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거역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을 뜻한다(16:12;11:6). 물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먹이기도 하셨지만 (1) 메추라기는 계속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2) 백성들의 탐욕에 따라 징벌의 성격으로 주어진 것(11:4, 31-45)이라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하늘 양식'(78:24;105:40)으로 보기는 힘들다.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리고 - (1) 르비딤에서(17:1-7)와 신 광야에서(20:2-13)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반석을 지팡이로 침으로써 거기서 마실 물을 낸 것을 가리킨다(78:24;105:41;48:21).

 

 주께서...주마 하신 땅을...명하셨사오나 - '주께서'...주마 하신'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뜻한다(15:18-21; 26:3 ;28:13). 그리고 '차지하라 명하셨사오나'는 출애굽 직전에 모세에게 (3:8), 출애굽 후 모세를 포함한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가리킨다(23:31;34:2-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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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 '저희와 우리 열조'의 접속사 '...'(, )를 해석적인 의미로 이해하여, 차라리 '저희 곧 우리 열조'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Rawlinson).

 

 목을 굳게 하여 - 이 표현은 말을 듣지 않고 뻗대는 완고한 황소의 모습에서 빌어온 것으로서(32:9;10:16;왕하 17:14;대하 36:13;7:26) 하나님의 뜻을 거듭하여 거스리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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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역하며(, 마엔) - '거절하다'혹은 '싫어하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어떤 일의 실행을 극력 기피하는 것을 가리킨다(7:14;25:7;삼상 8:19;77:2).

 

 행하신 기사(奇事)를 생각지 아니하고 - 율법 준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만 가능하다(20:2).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편, '기사'(, 니플로트)'기이한 일을 행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팔라'의 수동형 분사로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삼하 1:26대상 16:9;37:5;75:1).

 

 한 두목을 세우고...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 이 같은 생각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자들 중 상당수로부터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낙심한 백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다(14:4). 물론 그러한 생각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생각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에 기인한 만큼 커다란 범죄임에 분명하였다.

 

 더디 노()하시며 -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의 구체적 국면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사 백성들에 대해 형벌을 내리지 아니하셨다(14:1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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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의 사건은 앞절의 사건보다 분명히 시간적으로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언급한 것은, 본절의 사건이 그 범죄의 질에 있어서 보다 사악하기 때문이다. 앞절의 사건은 생각에 그쳤지만, 본절의 사건은 생각을 거쳐 행위로 구체화 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죄의 강도가 더 높아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셨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 이 같은 범죄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 산으로 올라가 있는 동안 행해졌었다. ,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오른 지 40일이 되도록 내려오지 않자(24:18), 그가 죽었을 것으로 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32:1-4). 이 같은 범죄의 주요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강력한 불만과 불신앙이었다. 특히 이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두드러진다(20:1-6).

 

 이는...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 그 당시 백성들의 범죄는 우상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지 다른 신을 섬겼다는 데 있지는 않았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백성들이 여전히 여호와를 섬길 의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백성들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여호와인 것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만하게(, 네아초트) - '업신여기다' 혹은 '멸시하다' 등의 뜻을 갖는동사 '나아츠'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극한적 행동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능욕하는 것을 가리킨다(74:8;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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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크신 긍휼 때문에' 의 의미다(NIV). 한편 '긍휼'의 히브리어 '라함'자궁'을 뜻하는 '레헴'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로서, 사랑스러운 자 혹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에게 깊은 관심과 연민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Edwin yama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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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장로와 유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했던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Schultz, Edwin Yamauchi, 11:17, 25). 혹자는 여기의 '선한 신'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악한 신'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Volz). , 이들은 포로 후기 시대의 신()개념이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분명히 잘못이다. 이스라엘에서 휠씬 이전에 벌써 '여호와의 신' (삼상 16:14), '악신'(삼상 16:14).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3)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는 것은, 본절의 '선한 신'이 페르시아의 영향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단적인 증거이다(Fensham).

 

 만나로...끊어지지 않게 하시고...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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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절은 신명기 2:7;8:4;29:5의 인용인 듯하다.

 사십 년 -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의 기간이다(13:18).

 기르시되(, ) - '유지시키다' 혹은 '먹을 것을 주다'의 의미이다(Davids-on, 삼하 20:3;왕상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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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여호수아의 활약상을 굳이 부각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Fensham).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 이것은 차라리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붙이셨고, 그것들을 나누어 주셨다'로 번역해야 보다 적절하다. 이같이 번역해야 할 기본적 이유는 우선 '주시매'(, 나탄)가 원문상 '나누어'(, 할라크)보다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시매'는 성전(聖戰)의 차원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특정한 대적들을 진멸하시고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보장해주시는 것을 가리킨다(10:30;11:8;1:4). 그리고 '나누어'는 정복된 가나안 땅을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해주는 일을 나타내는 이 사용된 단어이다(13:7;18:5, 10).

 

 시혼의 땅...차지하였나이다 - 이 언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부의 땅을 정복한 것에 해당된다. 요단 서쪽의 가나안 땅 정복에 관한언급은 24, 25절에 있다. 아무튼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여러 족속들에게 '나누어 주신' 결과이다. , 하나님께서는 그 지경의 땅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실 작정을 하셨고. 그 하나님의 절대적 의지가 백성들에 의해 성취되었던 것이다. 한편, '시혼'은 아모리 족속의 일과를 다스리던 왕이었다.

 

 헤스본 왕의 땅 - '헤스본''시혼'이 다스리던 땅의 수도였다. 따라서 '헤스본 왕''시혼'을 의미한다. 그 땅의 위치는 모압 땅의 북쪽이며, 사해 북단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지점에 해당한다. 이 땅은 르우벤 지파에게 정복됐었다.

 

 바산 왕 옥의 땅 - 이것은 '시혼의 땅' 북쪽 지역으로서, 므낫세 반 지파에 의해 정복되었다(21:33). 한편, '바산''비옥하고 돌이 없는 평지'의 뜻으로서, 그 범위가 북으로는 헤르몬 산, 동으로는 예벨 드루즈, 서로는 갈릴리 바다 동쪽의 산지(山地), 남으로는 야르묵 이남 약 10km 지점까지였다. 그 지명이 의미하듯이, 이 지역은 해발 480-690m에 이르는 고원 지대로서 밀재배와 목축에 적당했고(22:12) 상수리 숲으로도(2:13;27:6) 유명했다(S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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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 이와 관련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주어졌었다(12:2;13:16;15:5). 이러한 약속은 성취되어 출애굽 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있었다(1:7). 출애굽 직후의 인구 조사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 넘었다(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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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이 요단 동쪽 땅의 정복 사실을 다루고 있는 반면, 본절은 요단 서쪽, 즉 가나안 땅의 정복을 언급하고있다.

 가나안 거민 - 가나안 땅에 살던 여러 족속들을 가리킨다(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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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고한 성들 - '가데스'를 출발한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정복하기 곤란할 만큼 요새화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었다(13:28). 실제로 여리고(2:5), 아이(7:2), 립나(10:29,30), 라기스(10:31,32), 하솔(11:1-13)등 가나안 땅 대부분의 성읍들이 요새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바로 이와 같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진 땅 -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될 만큼 비옥하였다(14:7,8;8:7-9;삼상 14:25-27;왕하 18:32).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 - 이것은 문자적 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될 풍족한 삶과 물질적 축복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한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6:11).

 

 파서 만든 우물 - 팔레스틴 땅에서는 연중 강우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우물을 파서 사용하였으며, 비가 올 때에 빗물을 저장할 물탱크도 필요하였다(왕하18:31;5:15).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B.C.1200년 경에 방수 처리된 물탱크 제조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포도원...감람원...허다한 과목 - '포도원''감람원'은 팔레스틴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과일 산출 근거였다. 한편, '허다한 과목'은 무화과 나무, 모과 나무, 사과 나무, 편도(扁桃)나무, 호두 나무, 살구 나무, 뽕나무 등을 가리킨다(Rawlinson).

 

 배불리 먹어 살지고 - 항상 전반적으로 양식이 부족했던 고대 사회에서 이 같은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을 받았었는지를 밝혀 말해준다.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큰 복 안에서 먹고 마시며 즐겼다'의 의미이다. 한편, 칠십인역은 '주의 큰 복 안에서 마음이 뺐겼다'로 번역하였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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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치 아니하고(마라) - 이 단어는 개역 성경과 같은 소극적 의미로보다는 보다 적극적 의미인 '배반하여' 혹은 '거역하며'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78:17;106:7;13:16).

 

 거역하며(, 마라드) - 이 단어는 앞의 '마라'와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 반역의 행위를 가리킨다(왕하 18:20;대하 36:3;9:5).

 

 율법을 등 뒤에 두고 -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50:17).

 

 선지자들을 죽여 -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거의 대부분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부르짖는 내용이었다(삼상 7:3). 따라서 이러한 그들의 사역의 성격상 많은 핍박이 뒤따랐다. 유대인들의 전승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선지자가 백성들에 의하여 살해당했다고 밝힌다(Rawlinson). 이 밖에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선지자도 적지 않았다(왕상 18:4). 심지어 유다의 요아스왕은 자신의 은인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기까지 했다(대하 24:22;23:37;11:47).

 

 크게 설만(褻慢)하게 행하였나이다 - 선지자들을 죽인 일 자체가 하나님을 욕보인 것이라는 뜻이다(18). 왜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인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같이 선지자를 해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해하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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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까지의 내용이 출애굽 사건부터 여호수아의 사망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27절에서부터는 사사 시대 이후의 내용이 다루어진다. 그렇다면 26절에 언급되는 백성들의 패역은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 전 역사 기간을 포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겠다.

 

 대적의 손에 붙이사 - 여호수아의 사후(死後).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변의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여 압제케 하신 일을 가리킨다(3:7,8).

 

 부르짖을(, 차아크) -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것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애타게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26:7;4:3).

 

 구원자들을 주어...구원하셨거늘 - 여기의 '구원자들'(, 모쉬임)'구하다' 혹은 '구원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의 사역형 분사형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사사들'을 가리킨다(2: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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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 -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로부터 구원을 받은 후 태평 시대를 맞이했었다(3:11,30). 그러나 사실상 이 기간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는 기간이었다. , 이 기간 동안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만일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겼다면,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까닭이 전혀 없었다.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태평 기간동안 백성들이 다시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치 못했던 것을 가리킨다(3:11,12).

 

 여러 번 긍휼을 발하사 - 본 문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범죄-환난-회개-구원이라는 악순환이 수 차례 되풀이됐음을 말해준다. 사사의 특징이 백성들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세우심 받은데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에 사사가 최소한 열 명이 넘었다는 것은 곧 위와 같은 악순환이 계속적으로 반복됐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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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절과 다음 절은 굳이 시대적으로 구별할 경우, 왕정 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경계하셨으나(, 우드) - '증인'을 의미하는 '에드'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동사로서, '증인이 되다' 혹은 '경고하다'의 뜻이다. 특별히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경고의 메시지 자체, 혹은 여러 가지 것들을 증거로 삼으면서 악행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따른 형벌이 있게 됨을 알리는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4:26;8:19;32:46;왕상 21:13;11:7;32:10,25,44).

 

 준행하면...삶을 얻는...계명 - 이 구절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삶은 주께서 베푸신 계명들에 근거하여 전심으로 그 법도를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본문을 협의적으로 이해하면, 율법을 지켜 외적 부정(不淨)에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성전 출입의 자격을 얻는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18:5;20:11).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만큼 더 가치있는 삶의 국면은 없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이렇게 볼 경우에 여기의 '계명'(, 미초트)은 레위기적 의식법을 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 이 비유는 (1) 짐을 실은 짐승이 앞으로 가게 하려는 주인의 의사를 거스려 그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취하는 몸짓(Rawlinson), 혹은 (2)황소가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뒤로 버팅기는 것(Keil)등과 관련이 있다(4: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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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과 앗수르에 붙이시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서 특별한 징벌을 하지 않으신 것을 가리킨다(Rawlinosn, Keil). 북국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적극적 반역(왕상 12:25-29)에도 불구하고 무려 200여 년을 참으셨다. 그리고 남국 유다에 대해서는 북국에 대해서 보다도 약 135년을 더 인내하셨다.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 - 북국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남국 유다는 B.C. 568년 바벨론에 각각 끌려가게 하신 것을 말한다(왕하 17:23;25:21;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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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해방시키셨던 사실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조적으로 언급하고 있다(1: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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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절부터, 과거 역사의 회고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의 모색으로 내용이 전환된다.

 능하시고(, 기보르) - 이 단어는 (1) 하나님의 전능성(10:17;9:6), (2)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수들과 대신 싸우시는 측면(15:6;삼상 14:6;24:8,42:13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 '앗수르 열왕'은 하나님의 도구가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했으며(10:5) 이들의 뒤를 이어 바벨론 왕들이 또 징벌의 도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 왕들의 지배 하에 있었다. 한편, 징계의 도구로 쓰였던 '앗수르 열왕'에는 ''(왕하 15:19,20), '디글랏빌레셋 3'(왕하15:29;16:7;대상 5:6,26;대하 28:20), '살만에셀' (왕하 17:3), '사르곤 5'(20:1), '산헤립'(왕하 18:13-16), '앗술 바니팔'(대하 33:11)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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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에 주로 공의로우시니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취하신 하나님의 모든 조치가 정당하다는 뜻이다(9:14;3:5,6). 이어지는 문구에서 그 이유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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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35

이 부분은 앞절의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된다. 그 중에서 3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행위가 전 역사를 통해 모든 계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등 대단히 보편적이었음을 지적하며, 35절은 이스라엘의 범죄가 배은 망덕(背恩忘德)의 성격을 띄고 있는 지극히 사악한 것임을 말해준다.

 

 나라(, 말리쿠트) - 이것은 독립된 국가를 말한다(Keil). 바벨론 포로기나 포로 귀환기의 민족적 예속 상태와 대조된다.

 

 넓고 기름진 땅 - 여기의 '넓고'(1)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의 삼각주(47:27)보다 팔레스틴이 더 넓다는 사실, (2) 팔레스틴은 경작 가능 지역의 비율이 애굽보다 높다는 사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력 여하에 따라 팔레스틴 이외의 땅도 정복할 수 있게 (왕상 4:21) 약속되었다는 사실(3:8) 등과 관련시켜 이해될 수 있다(Rawlinson). 한편, '기름진'(, 하쉬메나)'살지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솨만' 의 사역형이므로 '기름지게 한'으로 번역되어야 타당하다(Schultz). 결국 이것은 모든 훌륭한 자연적 조건도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11:14;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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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절과 다음 절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전히 종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사실, 그들은 비록 바벨론땅에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예전의 주권(主權)을 되찾지 못한 상황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페르시아의 ''이었음이 분명했다.

 

 실과를 먹고...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시대 이래 살기 시작하여 바벨론 땅으로부터 귀환해서도 살고 있었던 팔레스틴 땅을 가리킨다(24,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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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 열왕이...많은 소산을 얻고 - 이것은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여갔음을 시사한다(4:13). 그 당시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징수해 간 세금 액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동일하게 페르시아의 피정복지였던 수리아의 세금 납부액이 일 년에 은 삼백 달란트였다는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역사 기록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awlinson).

 

 저희가...몸과 육축을...관할하오니 - 이것은 전쟁과 관련한 '징병'(徵兵)이나 '징발'(徵發)을 뜻한다. , 페르시아 정부는 외국과의 전쟁을 위하여 유대인들을 병사(兵士)로 뽑아갔거나, 필요한 물자를 거두어갔던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아닥사스다 왕의 고관이었던 에스라(혹은 느헤미야)가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을 비방하는 투의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의 기도는 반역을 기도하려는 내용이나 페르시아의 잔학상을 고발하려는 내용이 아니며, 단지 언약에 불충실한 백성들에게 닥칠 수밖에 없었던 환난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Ki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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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절은 9장과 10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며 내용상으로 10장의 첫절로 이해될 수도 있다.

 견고한 언약을 세워 - 문자적으로는 '견고함을 잘라'이다. 이는 '언약'이라는 용어의 기원을 밝혀준다. ,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 의무를 다짐하기 위해, 그리고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상징적 의식으로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 그 사이를 지나면서 엄숙히 선서하던 고대 사회의 계약 체결 관습에서 유래하여 '베리트''언약'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방백들...레위 사람들...제사장들 - 이들은 모두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다. 여기서 지도자들이 먼저 죄악에서 떠나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암시되고 있다.

 

 인을 치나이다 - 문자적으로는 '도장 위에 있나이다'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진흙에 새겨 구워 만든 도장을 언약문(言約文)에 찍는 행위를 가리킨다.

포로전 언약체결싯이 제의적절차(번제,화목제)의 회개라면 포로후는  말씀회복의 회개 운동으로 바뀐다.

레위인들의 세속화와 소수의 귀환때문일 수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역사운동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