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느혜미야서(구속사)

느혜미야서7장,파숫꾼들

호리홀리 2016. 1. 25. 13:10

성벽 재건 사업이 마침내 최종 마무리되었다. 이제 성벽을 계속적으로 파수할 사람들이다.

'문지기''노래하는자' 그리고 '레위 사람'은 모두 레위 지파 속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만 그 역할의 차이로 인하여 이처럼 셋으로 구분되었다(43;2:40-42). 원래 성전 봉사를 주 임무로 하는 그들에게 성벽 파수를 맡긴 이유는(1) 예루살렘의 주민이 얼마되지 않았던 관계로 그들의 동원이 불가피 하였다는 점(4), (2) 성벽 문의 파수가 곧 성전문의 파수와 직결된다는 점(대상 9:17-22; 26:12-19) 등일 것이다. 그러나 성벽 파수의 직무를 레위 사람들이 전담하지는 않았다. 이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여기의 '세운'(, 파카드)이라는 동사가 책임자를 임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사용된다는 점이다(39:5;왕상 14:27;왕하 25:23;대하 12:10). 따라서 우리는 그때에 백성들도 성벽파수 직무를 위해 동원되었으며 레위 사람들은 그 직무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3).

) -->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친동생으로 추정되며, 페르시아 왕실에서 술맡은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의 참담한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먼 길을 마다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1:2).

 

 영문(營門)의 관원 하나냐 - '영문'에 해당하는 '비라''궁전', '성채' 혹은 '요새'를 뜻하며, '관원'에 해당하는 '사르'가 군대 조직 등의 책임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하나냐는 예루살렘 성벽 중간 중간에 있는 망대(3:1, 11,25, 27)에 배치된 파수꾼들의 총책임자였을 것이다. 한편 '하나냐''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의 뜻이다.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 이것은 예루살렘을 반분(半分)하여 각각 다스리게 하였거나 혹은 공동으로 협력하여 전체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음을 뜻하는것 같다. 그러나 3:9,12'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렸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 자체가 아니라 거기의 주변 지역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처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별도의 행정관을 둔 것은 (1) 일의 배분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자발적인 행정 처리를 도모하기 위함이었고, (2) 느헤미야 자신은 대적들의 비난과 같이(6:6) 왕이 되고자 하는 정치적 야욕이 추호도 없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3) 페르시아에 다녀오기 위한(B.C. 433-432) 준비의 하나였던 것 같다(Schultz).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 바로 앞의 문구와 함께, 느헤미야가 '하나냐'를 고위직에 등용한 이유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본서에서 곧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연결된다(5:15). 따라서 느헤미야가 하나냐의 성품 중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그가 마치 자신 처럼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 --> 

3절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경비하는 요령을 하나니와 하나냐에게 가르치고 있다.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 여기서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은 문자적으로 '해가 뜨거워지기까지'의 의미이다. 아무튼 이것은 당시 처지가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비상 상황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고대 중근동 지역의 성문은 해가 뜸과 동시에 열려졌기 때문이다(Rawlinson). 결국 느헤미야가 이 같은 지침을 하달한 까닭은, 비록 해가 떴다고 해도 이른 아침에는 백성들의 활동이 시작되지 않는 시간인 관계로 적의 침공이 있다고 한다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의 '해가 높이 뜬 시간'(1) 통상적으로 성문을 여는 시간과 정오의 중간(Rawlinson). (2)백성들의 일과(日課)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 여기의 이 문구는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은 문들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로 번역해야 옳다. 따라서 이것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절대로 경비 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성문을 열기 전까지의 근무에 대한 지침이다.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 예루살렘 주민들 스스로가 예루살렘 시()를 지켰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순번을 정해 놓고 며칠에 한 번씩 차례에 따라 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책임자는 레위 사람들이었다(1). 그런데 여기의 '반차를 따라'(, 베미쉬마로)는 문자적으로 '그의 보초 장소'를 뜻한다(Williamson). 그렇다면 본 문구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특별한 장소에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는 언급으로 이해됨이 무난하다(Fensham). 그런 점에서 다음의 문구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 앞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공동으로 파수를 서야함을 언급했으며. 여기서는 자신의 집 근처는 자신이 서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원리는 각 개인이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성벽의 공사를 담당했던 것과 잘 조화된다(3:23).

) --> 

4절은 개역 성경을 따를 경우 마치 3절의 이유인듯 느껴진다. 그리고 카우프만(Kaufmann)같은 학자는, 본절을 1-3절에 기록된 긴급조치에 대한 설명으로 보고 5절 이하의 인구조사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킨 에스라의 개혁 조치(10)와 관련시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절과 5절 이하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본절은 느헤미야가 5절 이하에서 인구 조사하게 된 이유에 해당된다(Williamson, Fensham, Myers). 즉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민의 수효가 극히 적었던 관계로 전체 귀환자의 현황을 조사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 시킴으로써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강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11:-36).

) -->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 문자적으로는 '내 하나님이 그것을 내 마음 속에 넣어 주시사'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인구 조사를 할 필요성을 절감케 하셨음을 뜻한다.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 '귀인' '민장' 그리고 '백성'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성하던 세 계층이었다(4:14). 따라서 본 문구는 느헤미야가 대회(大會)를 소집했었음을 가리킨다. 사실 여기의 '모아'(, 카바츠)는 국민을 대규모적으로 소집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7:5;28:4;대하 15:9,10).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하신고로 - 이것은 원문상으로는 '족보에 등록하다'의 의미'야하스'라는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족보에 등록한다는 것과 곧 인구조사를 하는 것이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일임을(Rawlinson, 1:17-47;대상 21:5,6;2:3-62) 감안한다면, 개역 성경의 이 같은 번역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대상7:5,40;8:1).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얻었는데 - 여기의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는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사람들(2:3-62)의 등록부이다. 느헤미야에게 이 같은 '보계'가 필요했던 까닭은 자신들이 마땅히 살아야 할 곳에 살지 않고 다른 지방에 살던 사람들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마땅히 예루살렘에 살아야 될 백성들 중 상당수가 대적들의 노략질 및 앞으로의 그럴 가능성(1:3) 때문에 성벽이 없었던 예루살렘을 떠나서 보다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가서 거주했던 것 같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그 면적에 비하여 주민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어서, () 경비가 매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느헤미야는 포로 전에 조상들이 예루살렘에 살았었고, 그래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직후에도 예루살렘에 정착한(6;2:1, 70) 사람들의 후손 중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이제는 성벽이 재건된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한 객관적 자료가 바로 여기의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였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만든 여기의 보계는 희생을 각오하고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훌륭한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 에스라에 의하여 만들어진 보계(2장 강해)와는 그 목적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

) --> 

6절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조상들이 살았던 고장에 각각 정착하였음을 시사해준다. 본절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스 2:1 주석을 참조하라.

) --> 

7본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주도했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다(2:2). 이 명단 중 스 2:2의 그것과 다른 점은, '나하마니'라는 이름이 추가된 점과 몇 사람('아사랴', '라아먀', '미스베렛', '느훔')의 이름 철자가 약간 다르다는 점 등이다.

) --> 

7:8-24

이 부분은 평신도 귀환자들 중 공인된 가문 등록부 (대상 5:7-9,22)를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자신들의 혈통을 입증한 사람들의 명부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문의 재산 등에 관한 권리는 가문 등록부에 의해서만 증명될 수 있었다(Myers). 따라서 백성들은 지방 관헌들에 의해서 기록 보관되는 가문 등록부(대상5:17)나 가문에서 보관하는 가문 등록부 둘 중 최소한 그 하나에 의해서 그 혈통을 확인받아야 자신이 어떤 가문에 속했으며 또한 그 가문에서 할당한 권리가 무엇인지를 입증할 수 있었다.

) --> 

7:25-38

이 부분은  귀환자 중 가문 등록부를 분실함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혈통임을 입증치 못한 사람들의 명부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 시대 이전에 살았던 지방을 앎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임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4-38절에 수록된 자들은 가문별로 분류된 것인지 아니면 거주 지역별로 분류된 것인지 다소 애매하다.

) --> 

7:39,40,41,42

제사장 계급의 명부이다(2:36-39).

) --> 

7:43,44,45

세 종류의 레위 사람들에 대한 명부이다(2:40-42).

) --> 

7:46-56

본래는 이방인이었으나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려온 후 성전의 막일을 부과받은 자들의 명부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느 정도 비천한 신분으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이들은 오히려 바벨론에서의 생활이 육신적으로 볼 때는 더 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2:43-54).

) --> 

7:57,58,59,60

이 부분은 원래 이방인이었다가 이스라엘 포로로 잡혀 왕궁의 경비 등에 종사하도록 된 자들의 명부이다. 이들도 '느디님 사람'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천민 계급으로 분류되었다(2:55-58).

) --> 

7:61,62

평신도 귀환자 중 가문 등록부를 분실했거나 조상들이 살던 지방도 알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혈통임을 입증치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약 공동체의 '회중'(2:59,60)에 편입될 수 없었다.

) --> 

7:63, 64, 65

귀환한 제사장 중 가문 등록부의 분실로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손들임을 입증치 못한 경우가 언급되고 있다(2:61-63).

) --> 

7:66, 67, 68, 69

이스라엘 회중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들의 총계이다(2:64-67).

) --> 

7:70, 71, 72

여기서는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드리는 신앙적 행위가 묘사되고 있다(2:68, 69).

) --> 

7:73

본절은 팔레스틴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포로 시대 이전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갔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방인들의 침입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갔었다.

 본성에 거하였느니라 - '본성'(, 아레이헴)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성읍'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조상 때부터 살아 왔던, 그래서 귀환자들이 각기 거주해야 할 성읍을 가리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