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하(구속사)

역대하24장,헤세드를 잊지말자

호리홀리 2015. 12. 11. 10:37

요아스 왕의 통치 기간은 B.C. 835년부터 796년까지 40년 동안이며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그때까지 그로 하여금 정직한 왕으로 살게 하였던 힘은 바로 여호야다의 교훈(왕하 12:2)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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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야다는 마치 요아스의 아버지된 심정으로 요아스에게 아내를 선택해 주었다. 이렇게 여호야다가 왕의 아내를 선택함에 있어서 혼신의 정성을 다 쏟은 것은 요아스가 고아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달랴와 같은 악한 여인과의 결혼으로 인한 비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 왕통을 이어감에 있어서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그의 개혁 과정에서 왕가의 풍습에 일부일처제의 원리를 확고히 세우지는 못하였다.

요아스가 집권 초기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고자 했던 것은 그 동안 아달랴의 악정 하에서 성전이 많이 파괴되었고 성전의 모든 성물이 바알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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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에는 '제사장'만이 등장한다(왕하 12:4). 성전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레위인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역대기 저자는 이일에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요아스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성전 수리를 명하였으나 그의 재위 23년까지 성전은 수리되지 않고 퇴락한 상태 그대로 있었다(왕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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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 왕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성전 보수 공사의 책임을 맡겼으나 이 공사가 지연되자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하였다. 요아스는 제사장, 레위 사람 모두의 무책임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제사장이 받은 질책은 열왕기하에만 나타난다(왕하 12:6,7). 이 차이점, 곧 역대기 하에서 제사장이 언급되지 않는 것에 대해 혹자는 역대기 저자가 다른 자료에 근거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Rudolph).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역대기 저자는 사건의 전모를 알고서 열왕기하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보충시켜 사건 전체를 균형있게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목숨을 걸고 반정(反正)을 일으켰고 개혁을 추진시켰음에도 성전 보수 공사의 일에는 힘을 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요아스의 계획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신앙의 한계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인물일지라도 연약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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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달랴의 아들들 - '아들들'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비유적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전자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죽임을 당한 아하시야의 아저씨와 형제들을(Keil) 가리키고(21:4;22:1),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면 '아달랴의 추종자'(Barnes, NEB), 또는 그녀의 '제사장들'(Oettli, Benzinger)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 '깨뜨리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형은 '파라츠'이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주로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된다. , 하나는 '깨뜨리다'(KJV, JB), 다른 하나는 '부수고 들어가다'(RSV, NIV, NEB, 공동번역)로 나타난다. 근래에는 후자로 번역되는 것이 지배적이다.

 

 모든 성물을 바알들에게 드렸음이었더라 - 아달랴는 여호와의 전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금그릇 은그릇 등을 바알을 숭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2:8)라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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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궤를 만들어...전 문밖에 두게 하고 - 새로운 계획이 왕에 의해 제시된다. 그것은 궤를 만들어 성전 문밖에 두고 모세의 정한 세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이전의 것(5,6)과 다른 방식이었다. 이전에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여러 성읍에 돌아 다니면서 성전 보수를 위해 세를 거두는 방식이었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다. 한편, 본절과 열왕기하의 기록에는 차이점이 있다. , 궤가 어디에 위치하였느냐 하는 문제다. 왕하 12:9에 의하면 궤는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대기 저자는 '여호와의 전 문밖에' 두게 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열왕기하의 상세한 기록에 따라 '단 옆' '번제단 옆'에 놓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손에서 은을 받아 그 궤에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왕하 12:9). 그렇다고 양자의 차이를 모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석학자들은 역대기 저자가 '전 문밖에'라고 고쳐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하고 있으나 그 설명의 불충분성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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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 열왕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본절에서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성전 수리를 위한 헌금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마치기까지 - 이것을 히브리 원문에 따라 직역해 보면 '그 궤에 가득차기까지'이다. 방백들과 백성들은 왕의 뜻을 기꺼이 받들어 그 궤가 가득찰 때까지 계속해서 헌금하였고, 그 궤를 비우고 다시 그곳에 궤를 갖다 놓으면 또 그 궤를 채웠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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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유사(有司) - '유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페쿠다''소집', '돌봄', '관리', '직분'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로서 왕의 일을 처리, 관리, 보호하는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고정된 직책이 아니라 임시로 어떤 목적을 위해 세운 직책을 가리키는 듯하다. , 이들은 요아스 왕이 헌금 관리를 위하여 특별히 세운 관리였을 것이다.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아전 - 왕의 서기관은 헌금 액수를 기록하고 문서화하여 보관하는 업무를 수행한 듯하며(왕하 12:10 주석 참조), 대제사장의 아전은 그 돈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전 간역자에게 주어 인건비로 사용케 하는 역할을 담당한듯하다(12).

 

 때때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욤 베욤''궤에 돈이 가득 찼을 때마다'라는 뜻이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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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의 전 간역자(幹役者) - 왕하 12:11에는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로 표현되어 있다. , 이는 성전 수리를 위하여 고용된 석수, 목수, 철공장, 놋공장들을 지휘하는 총책임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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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하는 역사가 점점 진취(進就)되므로 - 여기서 '수리'에 해당되는 히브리 단어'아루카''시간이 오래 걸리다'라는 뜻의 동사 '아라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연장'(prolongat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종종 '회복', '수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4:7;58:8;8:22;30:17;33:6). 따라서 이 '아루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이 회복되고 진척되는 모양을 묘사할 때쓰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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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하 12:13에는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로 기록되어 있다. 본절은 모든 사업을 다 필역한 후에 그 '남은 돈'으로 그릇을 만든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열왕기 기자는 성전 수리 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다른 목적으로 그 궤의 돈을 사용치 못하도록 하여 일의 진행을 신속히 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제사드리는 그릇 - 이것은 번제에 직접 쓰이는 그릇들, 즉 지성소 안에 있는 제단 그릇과 주발 및 금은 숟가락을 가리킨다(4:12). 이 그릇들은 성전 업무에 쓰이는그릇, 제사장들이 쓰는 다른 그릇들이나 잔과 구별된다(25:29). 한편 본래의 제사드리는 그릇들은 아달랴에 의해 바알 숭배에 사용됨으로 더럽혀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이렇게 새롭게 제사에 쓰일 그릇들을 만듦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예배 업무를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절 끝부분에 '항상 번제를 드렸다'는 기록은 바로 이러한 완전한 제사 회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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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야다가...죽을 때에 일백 삼십세라 - 비평학자들은 여호야다의 나이 130세에 대해 의문점을 시사한다(Myers, Curtis). 그러나 이 장수는 축복의 표지(Williamson)인 것이다. , 하나님께서 여호야다를 통해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그를 오랫 동안 살게 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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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가 다윗 성 열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 여호야다는 왕이 아닌 자로서 유일하게 열왕의 묘실에 안치되었다. 아마 그가 요아스의 목숨을 구하여 다윗 왕권을 잇게 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며 여호와 숭배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영예가 그에게 주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여호야다의 위치가 왕에 버금가는 위치였고 왕의 외척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대우를 하였을 것이다. 130세나 되는 그의 많은 나이도 존경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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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 여호야다의 죽음은 요아스의 통치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정직히 행하였다(2). 또한 여호야다가 사는 모든 날에는 여호와의 전에서 항상 번제가 드려졌다(14). 그러나 이제 여호야다가 죽자, 유다 방백들이 요아스를 우상 숭배에로 유혹하였다.

 

 유다 방백들이 와서 - 이들은 그동안 여호야다로 인하여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할 수 없었던 파당(a Party)이었을 것이다(Curtis). 그들은 아달랴 생존시 바알을 숭배하던 자로서 바알 숭배를 회복하려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파당이 집권 세력으로 부상(浮上)하기 위하여 '우상 숭배'를 주장한 것은 그것이 당시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데 보다 용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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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 - 여호와께서는 종종 유다의 왕들과 백성들의 실수와 죄악을 경계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시는데 이것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자비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죄악을 핑계치 못하게 하는 저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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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 학자들은 마 23:35에 언급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를 본절의 스가랴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Barker, Zockler). 그렇다면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감동시키시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브솨''옷 입히다'라는 뜻의 동사 '라바쉬'의 완료형 3인칭 여성 단수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하나님의신이 스가랴를 옷 입히셨다'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성령에 감동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스가랴가 온전히 성령에 감싸여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는 뜻을 나타낸다(대상 12:18 주석 참조).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설교할 때 서 있었던 위치는 백성들보다 높은 장소였던 것 같다. 백성들은 바깥 뜰에 있었고 제사장인 그는 안뜰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21) 안뜰은 바깥 뜰보다 높아서 백성들이 잘 바라볼 수 있었다.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 이는 스스로 축복의 길을 버리고 저주의 길을 가고 있음을 가리킨다. 한편, 스가랴가 예언할 이 때에 이미 '전쟁의 소문들'이 횡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B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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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殿) 뜰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 요아스는 무리의 꾀임에 빠져 의로운 스가랴를 돌로 처죽이도록 명하였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였거나(24:16), 몰렉에게 자녀를 바쳤거나(20:2), 아들이 아비에게 완악하고 패역하였거나(21:20,21), 간음을 하였을 경우에 이런 형벌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런 종류의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교의 길을 걷고 있는 요아스와 대립된다는 이유로 처형된 것이다. 언약의 나라에서는 왕권이 최종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가 최종적이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왕권은 그 자체가 육적이요, 세상적이요, 이방적이다. 요아스는 언약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유다를 다스려야한다는 본연의 자세를 완전히 상실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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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 '은혜'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며 구출(Williamson), 즉 목숨을 구출받은 사실(22:10-12)을 뜻한다.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 여기서 '감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는 죄를 찾아 응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혹자는 선지자인 스가랴가 어떻게 복수와 저주의 기도를 할 수 있는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다. 특히 스데반의 기도(7:60)나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기도(23:34)와 비교해 볼 때 이런스가랴의 기도가 매우 부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요아스 왕과 스가랴 사이에 올바른 공의의 판단을 구하는 기도이며, 백성들에게 공의가 가리워지지 아니하고 명백히 나타나기를 요구한 기도로 판단된다(대상 28:9;130:3;16: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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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주년 후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리트쿠파트 핫솨나'이다. 이것은 '그 해 마지막에'(KJV, RSV), '그 해가 바뀔 무렵에'(NIV, VEB,공동번역)등으로 번역된다. 그러므로 한글 개역이 '일 주년 후에'로 번역한 것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일 주년 후란 만 1년이 지난 시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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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 침략한 아람 군대는 적은 무리였고 유다는 '심히 큰 군대'였음에도 여호와께서 이 유다 군대를 아람 군대에 붙이시므로 유다는 패배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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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 요아스가 아람 군대의 침략으로 큰 부상을 입자, 그 신복들은 이를 호기(好機)로 삼아 침상에 누워있는 그를 살해하였다. 그들의 모반의 명분은 스가랴의 피를 갚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명목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25:3,4).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원수 갚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며 정당한 사법적 절차를 걸친 형집행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 이 사실은 요아스의 통치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역사적 평가가 어떠했으며 역대기 저자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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