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샤는 유다의 제9대 왕으로서 B.C. 796-767년까지 다스렸다.
그의 통치 성격은 병행 구절인 왕하 14:3,4에 더 상세히 나타난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 왕의 훌륭한 통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의 통치는 부왕(父王) 요아스의 통치와 비슷하였다. 그 역시 산당을 제하지 않아 백성들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였다.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 역대기 저자가 아마샤의 통치 후반부를 한마디로 평가한 표현이다. 그는 이런 평가를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그 자료를 제시하였다. 즉, 아마샤는 에돔 정벌시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져 왔고 그것을 숭배하였다(14절). 또한 그는 선지자의 권고도 듣지 아니하고 에돔 신들을 의지하였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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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가 굳게 서매 - 나라가 굳게 섰다는 사실을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모반(謨叛) 세력(24:25)의 약화와 아마샤의 왕권 강화를 들 수 있다.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의 추종 세력과 왕위를 새로 이은 아마샤의 추종 세력 사이에는 정치적 갈등, 힘의 갈등이 존속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마샤가 반대 세력을 처단할 수 있을 정도로 왕권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2)유다가 등을 돌린 에돔을 정벌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5,6절)을 갖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3)아마샤의 통치 성격이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반자들의 재판과 용병 10만을 돌려 보낸 사실(10절)에서 엿볼 수 있다.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 동양에서는 모반자의 일가 전체까지 죽여 후환을 없애는 예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아마샤는 부왕을 살해한 자들만 처형하였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감정을 억누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법적 처리를 하였다.그는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곧, 신 24:16에 근거하여 형을 집행하였다. 신명기의 법 정신, 즉 범법(犯法) 행위에 대한 사법적 형집행 원리에 있어서 범법자만 처벌한다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 이러한 군대 조직에 대해서는 민 1:2-2:34을 참조하라. 아마샤는 지금까지 국내의 혼란으로 약화되었던 군대를 다시 강화하고 조직화하였다.
삼십 만을 얻고 - 이는 아사의 군대 58만(14:8)과 여호사밧의 군대 116만(17:14-19)에 비해 오히려 작은 수이다. 이러한 병력의 감축으로 인하여 아마샤는 북이스라엘로부터 10만의 용병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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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일백 달란트 - 1달란트는 약 34kg이므로 이것은 약 3.4톤에 해당되는 엄청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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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나님의 사람 - '하나님의 사람'이란 표현은 구약에서 선지자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칭호이다(Curtis). 모세(30:16;신 33:1;수 14:6;대상 23:14;스 3:2), 다윗(8:14;느 12:24,36)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했으며, 삼손의 부친 마노아의 부인은 천사를 가리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삿 13:6,8). 그러나 위의 경우를 제외한 일반적인 용법에서는 선지자를 지칭한다(삼상 2:27;9:6;왕상12:22;13:1,26;17:18,24;20:28;왕하 1:9등).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 하나님의 사람은 아마샤에게 이스라엘의 용병을 에돔 정벌에 쓰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는 그 이유로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본절에 그 첫 번째 이유가 나오는데,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다 왕 아비야가 북왕국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때 밝혀진 것으로(13:4-12)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대로 다윗 왕통을 잇고 있으며 여호와를 예배하는 나라이지만, 북이스라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시지 않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온 에브라임 자손 - 이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최고 지파이기도 하고 그 영토도 북왕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종종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에브라임'이라 호칭하였다(사9:9;17:3;28:3;호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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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은 여기서 용병을 쓰지 않아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유다 군대가 용병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병을 쓰는 것은 아마샤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보다 우월하심에도 불구하고 아마샤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다.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 이는 '만일 왕이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전쟁에 나간다면 아무리 용감하게 싸운다해도 하나님께서는 왕을 원수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입니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카일(Keil)은 전통적인 이러한 해석에 반대한다. 그는 주절(主節)에서 동사 앞에 부정사 '로'를 삽입하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아니 하시리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즉,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함께 나가지 아니하고 힘써 싸운다면 패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과 많은 역본(KJV, RSV, NIV, NEB, JB, 공동번역)들은 이러한 카일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입장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 취지는 변치 아니하며 아마샤의 믿음을 촉구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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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할꼬 - 아마샤는 선지자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손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것인가 하는 일대 선택의 기로에 처하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더 풍성히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 눈앞의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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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노하여 - 이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용병들은 비록 삯을 받고 고용되긴 했지만 그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는 많은 전리품 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지 못한 데 대하여 분노한 것이다(Curtis). 그래서 그들은 유다 성읍을 노략하였다(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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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력을 내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하자크'는 '강하게 되다'라는 뜻의 동사 '하자크'의 히트파엘형(Hithpael:강조형 재귀)으로서 '스스로 강하게 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외형적인 군비(軍備)보강 등에 의하여 강해진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용기를 얻은 것을 가리킨다.
바위 꼭대기 - 왕하 14:7의 '셀라'는 '바위'라는 뜻의 히브리어 '셀라'를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셀라'는 에돔의 수도인 듯하며 오늘날의 '페트라'(Petra)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14:7 주석을 참조하라. 이 지역은 곧에돔 사람들에 의해 재탈환되었다(28:17;사 16:1,2;암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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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 아마샤가 돌려 보낸 용병들은 사마리아까지 되돌아갔으나 곧장 다시 돌이켜 사마리아와 벧호론 사이에 있는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유다 사람 3천을 죽였다. 이때 이들은 아마샤가 자신들을 단순히 되돌려 보낸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이같은 약탈 행위를 저지른 것 같이 생각된다. 한편 벧호론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상 7:24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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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 자손의 우상들 -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에돔 사람(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이 무엇인지 성경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유다 왕 아마샤가 패배시킨 나라의 신들을 섬기기 위해 그 우상들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그는 그 우상들의 화려하고 웅장한 외형에 현혹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승리에 도취되어 여호와를 잊는 만심(慢心)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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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백성의 신들이...구원하지 못하였거늘 - 세일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엘로헤)이 다신(多神)임은 (1)복수형 명사에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 엘로힘)도 복수로 나타내어 그 광대함이나 웅장함을 표현하므로 명확하지는 않다. (2)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명사의 서술 동사인 '구원하다'(, 히찔루)가 3인칭 복수형인 것을 보면, 분명히 '신들'이 광대함이나 웅장함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아니고, 숫자적으로 복수인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아마샤는 다신교 배경에서 온 우상들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려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면치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만 구원자이시며, 그 신들은 자기 백성인 세일 사람들을 아마샤의 손에서조차 구원하지 못한 무능한 신임을 지적하면서 아마샤의 어리석음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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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謨士)를 삼았느냐 - 여기서 '우리'는 왕과 그 신하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구문의 의미는 '어찌하여 네가 우리의 일을 간섭하느냐'이다. 아마샤의 이 반박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승리로 인하여 매우 교만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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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하고 - 이는 '모사를 구하고', '충고를 받아들여'라는 뜻으로서 아마샤가 선지자의 경고를 거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였음을 가리킨다.
오라 서로 대면하자 - 이는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게 보내는 정식 선전 포고문이다.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용병들의 약탈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대가를 요구하기 위하여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상대를 위축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때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왕에게 요구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혹자는 18절에 나오는 우화(寓話)를 근거로 결혼 동맹을 요구하였다고 추측한다(Curtis). 그러나 18절의 우화가 실제적인 사실을 반영하는 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요아스의 무분별한 행동을 지적하기 위한 풍자적인 표현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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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절의 우화는 아마샤를 모욕하기 위한 것으로서, 요담의 비유와 유사하다(삿 9:7이하). 여기서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무들'을 의인화시켰는데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지칭하여 요아스는 결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대등한 관계로 대면할 수 없다고 비꼬아 말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14:9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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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화를 자취(自取)하여 - 이는 24:20의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라는 말과 의미가 동일하다. 이는 순리에 어긋나게 교만하여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결국 파멸할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요아스가 아마샤를 따끔하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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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 이 구절은 역대기 저자가 14-16절과 연관지어 언급한 해석으로 보인다. 교만하여져서 마음이 굳어진 아마샤는 결국 선지자의 예언(16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마샤에게 강퍅한 마음을 넣어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즉, 아마샤의 교만과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방치해 두신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완악해진 그는 선지자의 예언(16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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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벧세메스 - 요아스가 유다의 중심부를 치기에 가장 유리한 고지이면서 유다땅이었던 벧세메스에 올라왔다는 것은 이 전쟁이 북왕국에 의해 먼저 시작된 것임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래서 커티스(Curtis)는, 왕하 14:11은 북이스라엘이 먼저 전투를 시작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선전 포고문을 받은 뒤 일단 유다 왕 아마샤에게 경고하고, 아마샤가 자긍하고 있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공격하였을 것이다. 한편, 벧세메스의 위치에 대해서는 왕하 14:11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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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 이는 모든 병사들이 놀라 자기 집으로 도망간 것을 가리킨다(10:16;왕상 8:66). 이처럼 아마샤의 군대는 전의(戰意)를 상실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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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 '에브라임 문'은 '베냐민 문'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예루살렘 성읍 북쪽에서 에브라임 땅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성모퉁이 문'은 옛 성벽의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다메섹으로 통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의 군대는 북쪽으로 향해 있는 모든 벽을 헐어 버리고, 유다 왕 아마샤를 포로로 잡았다. 즉, 유다는 이스라엘의 세력권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기타 성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병행 구절인 왕하 14:13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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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벧에돔의 지키는 모든 금은 -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의 전(殿) 안에 있는 모든 금은과 기명들을 '오벧에돔'이 지키던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왕하 14:14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한편 대상 26:15에 따르면, '오벧에돔'의 가문은 성전의 곳간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다.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아마샤를 잡아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간 것 같다(Josephus). 따라서 볼모로 잡혀간 사람들은 왕의 자녀들이거나 왕족일 가능성이 크다(Barker).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유다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간 것은 유다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대해 대항하지 못하게 하고, 또 이스라엘이 유다의 내정(內政)을 간섭하겠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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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가 십 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 이스라엘에게 패한 후유증으로, 아마샤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이후에도 그 세력은 회복되지 못하였고, 온갖 음모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 15년의 기간은 아마 그에게있어 형벌과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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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 이것은 무리들이 아마샤를 대항하여 모반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모반이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역대기 기자는 말한다.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 여기서 '무리'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요아스 통치 말기부터 아마샤의 통치 때까지 유다를 집권한 방백들에 대항하여 반감을 품고 있던 무리들일 것으로 추측된다. 즉,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 그 세력을 상실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24:15-19)과 의로운 백성들이 바로 그 무리들인데 이들은 유다를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일찍이 16세로 부친과 함께 통치를 시작한 어린 웃시야를 완전한 통치자로 옹립시키고자 했을 것이다(Curtis). 그리고 아마샤가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교만해져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이것을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시기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 라기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요새로서 여로보암 때로부터 애굽인을 막는 중요한 기지로 사용되어 왔다(11:9). 한편 아마샤가 이곳으로 피신한 것은 이미 위태해진 왕권을 회복시키려는 시도 때문이었거나(Payne), 아니면 다급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객에게 살해됨으로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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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 병행 구절인 왕하 14:20에는 '다윗성'이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역대기 필사자의 실수인 것으로 추측된다(Barker, Keil, Curtis). 한편 앗수르 왕 에살핫돈(Asarhaddon)의 비문에는 유다 왕 므낫세가 '유다 성읍의 왕'이라고 표기되어 있다(Curtis). 여기서 우리는 '유다 성읍'이 바로 남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후대에는 '다윗성'이라는 이름 대신 '유다 성읍'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P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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