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위하여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혼인시켰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자가 바로 아하시야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들었을 때 그를 문병하기 위하여 이스르엘을 방문하였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8:28,9:16,27). 이때 그의 모친 아달랴는 아들의 죽임 당함을 보고 다른 왕자들과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모든 자를 죽이고 스스로 정권을 잡았다. 그녀는 유다에 바알숭배를 도입한 자였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다에서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으로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신변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았지만 아하시야가 살해당한 후부터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자가 아닌 사람이 왕위에 오른다면 자신은 우상숭배자로 축출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 그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자신이 정권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왕의 혈통을 가진 자로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이처럼 아달랴의 정권탈취를 위한 살육이 행해지고 있을 때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구해내었다. 그리고 그를 여호와의 전에 숨겨 두고 육년을 양육했다. 여기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누이이며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약속은 사람들의 악한 생각으로도 변경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적으로든지 또는 무의식적으로든지 하나님의 언약을 방해하려 한다면 그런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깨어질 뿐이다(마21:44).
아달랴는 정권을 탈취한 후 육년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 육년은 다윗의 혈통인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가운데 장차 잃어버린 유다의 왕위를 되찾기 위하여 준비 되어가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다윗의 등불을 끄고자 했던 아달랴는 점점 몰락의 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달랴의 반역이 있은 후 칠년 째 여호야다는 유다의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계략을 세웠다. 그는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그들과 함께 아달랴를 축출하고 요아스를 유다의 왕위에 올리고자 모의 했다. 여호야다가 이처럼 군대의 백부장들과 특히 왕의 최측근인 호위병들의 백부장들과 함께 이런 모의를 했다는 것은 아달랴의 정권이 백성들로부터 이반(離叛)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는 힘으로 정권을 탈취한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힘으로 정권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에 의한 다스림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정권은 날이 더해 갈수록 백성들로부터 유리(遊離) 될 수밖에 없다. 결과를 보면 아달랴는 자신의 호위병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 자였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의 전에서 요아스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유다의 왕으로 선포했다.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11:12)” 제사장이 요아스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운 것은 그가 유다의 왕임을 선포한 것이고, 또한 그에게 율법 책을 준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공의로 통치하라는 권고이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그의 왕 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세움을 받을 수 있는 지도자는 백성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자여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도력을 행사하는 자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은 자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호야다가 무리 앞에서 이처럼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웠을 때 무리들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불렀다. 아달랴는 무리의 외침을 듣고 여호와의 전으로 가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았다. 그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의 편이 될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성전에서 쫓겨나 길가에서 죽임을 당함으로 그의 생을 마쳤다. 그는 반역에 의하여 정권을 탈취하였다. 그러나 그도 반역에 의하여 그의 정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반역을 행할 때는 반역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반역하였을 때 그들의 행위를 반역이라고 말했다. 아달랴의 모습이야말로 스스로의 죄인 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우게 했고 또한 왕과 백성들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과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우게 했고 또한 왕과 백성들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했다는 것은 그들이 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지 가르쳐서 그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다짐하게 했다는 의미다. 여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이스라엘의 왕은 이방나라의 왕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방의 왕은 백성들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다. 이것은 백성을 포함하여 나라의 모든 것이 왕의 소유라는 의미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백성들의 생명을 취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이런 권한이 없다.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도록 부름 받은 자라는 점에서 백성들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 가운데 특별한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하나의 직임이다. 따라서 왕에게 주어진 권한도 이방 나라들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직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제한 된 권한일 뿐이다. 여호야다는 백성들과 왕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가르쳤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권고한 것이다.
이처럼 유다 가운데 잃어버린 왕권이 회복 되었을 때, 유다 가운데는 개혁이 불가피했다. 유다는 그동안 불의한 권력으로 인하여 곳곳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달랴로 인하여 바알숭배가 도입 되어 유다를 더렵혔다. 그러므로 왕권이 회복 되었을 때 무엇보다 먼저 한 일을 바알숭배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요아스가 왕이 되었을 때 온 국민은 바알 산당을 헐고 제사장 맛디아를 죽었다. 이렇게 함으로 유다는 샬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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