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8장,엘리사의 열정적사역

호리홀리 2015. 8. 26. 11:55

여인이...호소하려 하여 - 여기서 여인 은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정당한 법적인 수속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기근을 피해 7년간 고향을, 떠나있던 동안 전토(田土)가 아마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한편 7년이란 기간은 안식년에 해당하므로 여인의 호소는 율법적인 타당성을 층분히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호소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간 것은 왕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던 당시의 사정으로 볼 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삼하 8:15). 한편 본절의 '호소'라는 말은 '부르짖다'라는 의미로서 권리 주장을 위한 법적 용어이다.

 나아갔더라 - 이 말은 히브리어 '테체'를 번역한 것으로 이는 '튀어 나오다', '전진하다', '분출하다' 라는 의미의 '야챠'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이러한 것으로 살필 때 자신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다급한 심정으로 서둘러 나선 여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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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에 왕이...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 본문에는 왕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이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넴 여인의 가정에 나타난 이적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이 왕에게 호소하러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말미암은것이다. 이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 당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하만의 계교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유사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신론(理神論)자들의 말대로 이 세상의 통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간섭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29:29).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대상 29:11,12) 그 사건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큰 일 - 이 말은 히브리어 '가돌'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더크다', '크게 되다'를 의미하는 '가달'에서 유래한 말로 '위대한 일', '놀라운 사건'등을 의미한다. 한편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어 행하신 일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5:9;9:10;71:19;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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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 본절에서는 왕이 여인에게 질문한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 여인의 집과 전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엘리사가 여인의 아들에게 행한 이적까지도 포함한 질문이었올 것이다. 한편 여인이 호소하러 온 시간과 게하시와 왕이 엘리사의 이적에 관해서 이야기한 시간과의 일치는 여인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여인의 호소는 한층 설득력 있는 것으로 왕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한지라 - 이 말은 히브리어 '테사페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친하게 이야기하다', '자세히 말하다'라는 뜻의 '사파르'에서 파생한 용어로 '사심이나 거짓이 없이 상세히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관리를 임명하여 - 여기서 '관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리스'는 주로 '한관'(eunuch)으로 번역되지만 보다 폭넓게는 '중요한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면 보디발과 랍사리스 (왕하 18:17)등을 들수 있는데 전자는 애급 왕 바로의 시위 대장이었고(37:36) 후자는 군사적으로 요직에 있는 인물이었다(C. U. Wolf,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197-180). 참으로 왕은 여인의 호소를 신중히 여기고 관리 한사람을 보내서 그녀의 소유뿐만 아니라 부재시의 소출까지도 다 회복하게 해 주었다. 이것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한 경우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선처였다(왕상 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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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대에 - 엘리사가 다메섹으로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6:13-19에서 아람 왕이 엘리살를 잡으려 했던 사건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매우 뜻밖의 일인 듯이 보인다. 한편 카일(Keil)은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다고 본다(왕상 19:15). , 이것은 본래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 받은 사명이었으나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왕상 19:16)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이 엘리사에게 전가되어 그를 통해 성취됨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엘리사가 간 곳은 다메섹의 성 안이 아니라 그 성의 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성 안으로 들어 갔다면 하사엘이 낙타를 타고 그를 맞이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9). 그러나 엘리사가 간 곳을 단순히 다메섹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추측컨대 그 지방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K. W. B hr).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 요세푸스는 벤하닷이 병든 사실에 대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6장에서 자기의 욕심에 의해(6:8-14) 이스라엘을 침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심으로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Antiquities of the Jews. ix 87) 그러나 벤하닷은 아합과 동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에(왕상 20:1) 노년에 이르러 병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G. Rawlinson).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에 이르렀나이다 - 당시에 엘리사는 아람 땅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나아만에 의한 영향, 즉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사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암시해 준다(5:17). 그래서 나아만의 치유 사건을 잘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이 엘리사를 아람 왕에게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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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 요세푸스는 하사엘을 '그 집의 충성된 자'(, 호 피쉬토타토스 톤 오이케톤)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사엘의 족보나 궁중에서의 그의 관직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 진 것이 없다. 다만 '문벌도 없는 하사엘이 왕위를 차지했다'는 앗수르의 비문을 보면 그가 비천한 데서 왕위에까지 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왕이 자신의 병에 판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엘리사에게 하사엘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는 나아만과 같은 군대 장관이었던듯 하다(K. W. B hr).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 왕은 나아만이 취했던 방법(5:5), 즉 선물을 각고 가서 하나님의 엘리사를 만난 동일한 방법으로 선지자를 맞이하게 하고 자신의 병에 관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묻도록 했다. 그리고 1:2의 아하시야 왕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란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그에 따른 의식((意識)을 나타내고 있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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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을 삼아 가지고 -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물으려 할 때에는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규례로 되어 있다(삼상9:7;왕상 14:3). 이는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23:15)는 규례가 오래 전부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람 왕 벤하닷은 일찍이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군대까지 동원했었다(6:13-15). 그러나 이제는 병중에 있으므로 엘리사의 도움을 받고자 사자를 보낸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개종(改宗)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그가 겸손하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사엘은 자기 왕 벤하닷을 가리켜서 엘리사의 아들이라고 하며 겸손히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 이것은 아람 왕과 엘리사 선지자의 관계가 크게 변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관계가 호전되었다기 보다는 병에 대한 치유 때문에 벤하닷이 이렇게 겸손해진 듯하다. 한편 하사엘도 벤하닷의 치유를 위하여 자신의 왕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엘리사에게 존경을 나타낸 것이다(G.Rawlinson). 한편 7절에서 엘리사가 다메섹을 방문한 것과 이러한 우호적 관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가 없다. 다만 6:8-231차 침입 사건에서 실패한 이후 아람 왕이 엘리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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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 본절은 히브리 본문상의 해석을 두고 많은 논란이 되고있다. 왜냐하면 원문에서 히브리어 ''의 성격과 그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1) '그에게 말하라 당신을 살리려고'(Theodort, Josehpus). 이것은 '로'를 부정사로 보지 않고 대명사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선지자가 하사엘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시킨 경우가 되어 선지자의 권위나 성격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배격된다. (2) '당신은 살지 못하리라고 말하라'(Keil). 이 해석은 ''를 그대로 부정사로 본 것이다. 이것은 2절에서 하사엘이 왕에게 "왕이 정녕 살리이다"라고 거짓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하사엘에게 돌릴 수 있고 선지자의 권위도 유지할 수 있는 유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일 것이라는 말은 되지만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히브리어 어법상 부정사(negative)의 위치가 한 정동사 앞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이 해석은 문법적인 지지도 얻지 못한다. (3) '네가 정녕 살리라'(Gesnius, G. Rawlinson). 이것은 부정사(negative) ''를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부정법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는 '당신은 병으로 인해서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해서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라는 뜻이 있다고 본다(Clericus, gerlach, B hr). 이러한 것들 가운데서 세번째의 해석이 가장 옳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해석은 문법상의 오류를 꾀할 뿐만 아니라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해석은 왕의병에 대한 대답이 됨과 동시에 하사엘이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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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같은 종 - 이스라엘 지방에서 개( 켈렙)는 시체나 각종 썩은 고기를먹으면서 온각 전염병을 옮기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66:3;23:18;삼상 17:43).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시체에 닿기만 해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11:39;19:11, 13, 16) 그 시체를 먹는 개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할 때는, '죽은 개' 또는 '개 같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삼하 9:8;16:9). 하사엘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을 '개 같은 종'이라 한 것은 베를린 비문에 기록된 대로 '문벌도 없는' 그의 신분에 대한 겸손한 표현임과 동시에 역모할 마음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구약 시대에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던 이 개는 오늘날 죄악에 빠져 죄를 짓기 위해 이리 저리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곧 부정한 개를 만지듯 죄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3:2)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과가 끝나면 세상에서 오염된 손발을 씻는 의식을 행하듯(14:8;19:21;15:20;7:2, 3) 우리들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항상 주님 앞에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겠다(고후 7:1;9:14;4:8;벧전 1:22;요일 3:3).

 알게 하셨느니라 - 이 말은 '보여 주다', '인식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라아'에서 온 '히르아니'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는주께서 엘리사에게 속환을 통해 예언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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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엘은 선지자가 일러준 대로 왕의 쾌유(快癒)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앨리사의 말을 반 밖에 전하지 않았다. 즉 하사엘은 벤하닷이 살 것이라는 사실만 말했을 뿐 그가 죽으리라는 것은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왕위에 오를 계획을 다 꾸며놓고 있던 하사엘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이 병에서 회복된다면 하사엘의 계획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을 죽일 다른 방도를 간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