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하(구속사)

역대하34장,요시야의 종교개혁

호리홀리 2015. 8. 26. 09:19

남유다에 (아달랴제외)19명, 북이스라엘에 19명의 왕들이 있었다.  이  왕들 중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두 명 뿐이다. 특히 요시야는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가령, 열왕기하 23장 25절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요시야는 여타의 왕들과 무엇이 달랐는가? 요시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인가? 요시야 관련 본문은 두 곳(왕하 22―23장, 대하 34―35장)이지만 여기서는 역대하 34―35장을 중심으로  보자.


     열왕기와 역대기는 요시야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해 주고 있다. 각각 57절과 60구절이나 할애하고 있다. 두 본문은 공히 요시야의 행적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일견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하지만 두 본문 사이에 차이도 있다. 가령, 열왕기의 주요 관심은 대대적인 ‘개혁’에 있다. 이 대대적인 개혁을 추동한 율법서의 발견과정에 대해서도 상당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왕하 22:3-20), 율법서를 발견한 ‘이후’ 이 율법서에 근거하여 총체적인 ‘국가개혁’을 단행하는 이야기가 매우 상세하게 실려 있다(23:1-20).

   반면에 역대기는 율법서를 발견하기 ‘이전’의 요시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대하 34:3-7). 통치 18년에 갑자기 성전보수공사 계획을 세웠고 율법책을 발견하자 곧바로 개혁을 단행했다(왕하 22:3)는 단선적인 열왕기의 기사를 보완해 주고 있다. 역대기는 요시야가 어려서부터 개혁을 착실히 준비해 왔음을 보여준다. 역대기의 가장 큰 관심은 유월절 준수에 있다. 열왕기는 단 두 절로 끝낸 유월절 기사(왕하 23:21-22)를 역대기는 장장 열아홉 구절에 걸쳐 보도하고 있다(대하 35:1-19). 요시야의 죽음 기사에 대해서도 열왕기와는 달리 요시야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상술한다(대하 35:20-27).

   이런 차이는 역대기가 열왕기를 자료로 집필했음을 예증한다. 곧 이 중요한 왕에 대한 열왕기서 보고의 미비한 점을 역대기는 성실하게 보완하고 있다. 요시야는 어려서 왕이 된 후 26세에 대대적인 개혁을 이루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준비했으며, 가장 주력할 개혁의 핵심으로 유월절을 겨냥했다는 점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역대기가 레위인들을 강조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민수기나 에스겔서 등 다른 구약문서에서 제사장들에게 ‘종속’된 신분의 레위인들이 역대기에서는 제사장과 종종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역대기의 레위인들의 신분격상의 신학이 본문에도 곳곳에 배어 있다. 우선, ‘레위인’이라는 단어가 평행본문인 열왕기하 22―23장에는 단 한번도 쓰이지 않은 반면, 역대하 34―35장에는 15회 등장한다. 많이 등장할 뿐 아니라, 레위인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요시야가 율법의 말씀을 읽을 때 레위인 역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음을 강조하다(대하 34:30. cf. 왕하 23:2). 또한 레위인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자’로 칭해진다(35:3). 요시야의 개혁 역시 레위인 없이는 불가능하게 생각될 정도이다. 가령, 성전보수 공사 기금도 레위인들이 거두었다(34:9). 유월절 행사에서 레위인들은 유월절 양을 잡고 가죽을 벗기는 등 제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35:5-15).


    레위인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본문에 깔려있는 역대기의 다른 사상은 이른바 ‘온(all) 이스라엘’ 사상이다. 역대기는 곳곳에서 북이스라엘 10지파를 포용하고 있다. 역대상 1―9장에 나오는 족보에서도 패망해 버린 북이스라엘 지파들을 배척하지 않고 있다. 역대기저자의 눈에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다윗과 솔로몬 시대 때처럼 언젠가 예루살렘에서 함께 예배드릴 동포들이다. 이 온 이스라엘 사상이 역대하 34―35장 본문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가령 요시야는 종교개혁의 범위를 유다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지역인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및 납달리까지 확대하고 있으며(34:5-6), 성전보수공사를 위한 지원 헌금도 북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있다(34:9). 유월절은 히스기야 때와 마찬가지로(30:1이하) 이스라엘 온 주민들과 함께 성대히 치러졌음을 강조한다.


   역대하 34―35장 본문을 둘러싸고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주제들 

   (1) 먼저 성전보수 공사 도중 발견된 율법책의 정체에 대해 학계에서는 통상 드 베테(de Wette)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드 베테는 발견된 이 중요한 율법책이 구약성서 어딘가에 틀림없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율법책을 토대로 행한 개혁의 원칙들을 열왕기하 23장에서 찾아낸 후 이 원칙에 가장 근접한 내용이 신명기에 보존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열왕기에서 ‘율법책’(왕하 22:8,11), 혹은 ‘언약책’(23:2)으로 칭해지는 이 책의 명칭은 역대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대하 34:15,30),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이라는 수식어가 새롭게 붙어있다(대하 34:14)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이 책의 정체에 관해 논의할 때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2) 역대하 35장 25절에 의하면 요시야가 죽자 예레미야가 요시야를 위해 ‘애가(哀歌)’를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구절을 근거로 구약성서의 애가서를 예레미야의 저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본문의 애도의 시는 애가서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다. 애가서의 저작설과 관련된 논의는 역대하 35장 25절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1. 요시야의 행적(34:1―35:19)

   1) 26세 이전의 행적(34:1-7)

   요시야의 직전 왕이었던 아몬은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부친 므낫세를 이어 친앗수르 정책을 고수해 나가자 반앗수르파가 그를 거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몬을 살해한 신하들 역시 소위 “땅의 백성들”에 의해 제거된다(대하 33:21-25; 왕하 21:19-26 참고). 반앗수르파를 제거함으로써 앗수르의 보복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요시야는 이런 정치적 혼란기에 왕으로 옹립된다. 그때 나이 8세였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전체 39명의 왕들 중 요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 요아스는 든든한 후원자였던 신실한 제사장 여호야다가 곁에 있었지만, 요시야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역대기저자는 불안한 독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2년 통치하고 살해당했던 선왕(先王)과는 달리 31년간 통치했을 뿐 아니라(1절)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점을 미리 독자들에게 알린다(2절).

   이어지는 본문에서 저자는 이상적인 개혁자 요시야의 생애를 소개한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음을 힘주어 강조한다(3절). 또한 통치 12년째인 20살이 되자 유다와 예루살렘을 작심하고 정결케 한다. 산당들, 아세라 목상들, 아로새긴 우상들,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한다. 요시야의 통치 12년째인 주전 628년은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이 죽던 해이다. 내정 문제로 앗수르가 팔레스틴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던 틈을 타서 요시야는 당시 앗수르 영지였던 사마리아, 므깃도, 갈릴리 지방까지 치고 올라가서 유다로 병합을 한다. 요시야는 자신의 개혁 작업을 병합한 북이스라엘 지역에도 똑같이 추진한다. 요시야의 이런 개혁 드라이브는 아마 주전 630-625년 경에 활동했던 예언자 스바냐의 심판의 메시지로 인해 촉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26세 때의 행적(34:8―35:19)

   ① 율법책 발견(34:8-33)

   20세 때 시행한 요시야의 개혁의 성공 여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후에 훌다가 유다를 향해 책망한 사실(34:23-25)을 미루어 볼 때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다. 26세가 되었을 때 요시야는 성전보수 공사를 명령한다. 왜 갑자기 성전보수 공사를 명령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전보수 공사를 하던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율법책이 그 이후 요시야의 개혁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한다. 즉 이 율법책 발견과 율법책에 입각한 대대적인 개혁은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개혁이 지지부진해지자 요시야는 누군가에게 개혁 프로그램을 율법 형태로 입안할 것을 주문했고(혹은 이미 개혁 프로그램을 율법 형태로 입안해 둔 세력과 결탁했고) 그 율법책을 성전 안에 숨겨 두었으며 결국 각본대로 성전보수 공사를 하도록 유도하여 율법책이 발견되게 했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요시야는 6년 전 개혁으로 만족하지 않고 ‘개혁’을 염두에 두고 성전보수 공사를 시작했었을 것이다. 신하 사반, 마아세야, 요아에게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령하자 이들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과 유다 주민들에게서 거둔 헌금을 모아 힐기야에게 건네준다. 성전수리가 시작되었다. 성전을 짓되 음악에 친숙한 레위인들이 감독관이 되어 영적 후원을 하자 백성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그 일에 참여한다. 그러던 중 무리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힐기야에게 준다. 이 책을 곧바로 요시야가 보낸 서기관 사반에게 건네주자, 사반은 그 즉시로 요시야에게 가져가 요시야 앞에서 읽는다. 요시야는 곧바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를 한다. 동시에 여자 예언자 훌다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보게 한다. 훌다는 하나님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임을 강조하며 유다에 임할 진노를 선포한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회개한 요시야 당대에는 그 재앙을 면할 것임을 아울러 전해 준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