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베소서

에베소서3장,교회의 비밀

호리홀리 2015. 6. 17. 11:43

3:1-21

  바울의 핵심메시지는 단 한마디로 ‘교회’입니다. 조금 길게 말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지는/세워지는/자라가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비밀을 깨닫게 하셔서 알게 된 이후로,  교회는 창세전부터 세워진 계획이며 섭리이며 예정이었습니다. 구약의 역사가 교회를 위한 역사였습니다. 수직적인 구원 사건은 교회라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평적인 구원 사건 역시 교회라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서로 원수되었던 우리가 한 몸을 이루어 연결하는, 곧 한 몸을 이룬 새사람으로써 조직된 유기체(有機體)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은 ‘교회’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새사람으로 조직된 유기체로써 과연 어떻게 교회의 각 부분이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2절,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 “내게 주신”; 3절: 비밀 + “알게 하신”; 4절: 그리스도의 비밀 + “깨달은 것”

   그리고 바울은 다시금 교회야 말로 하나님의 모든 섭리의 최종점이라고 강조합니다(3:9-11). 영원부터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란, 바로 10절에 나오듯이,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이어서 바울은 다시 한 번 기도를 합니다. 바로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겁니다. 바로 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바로 14-19절입니다; “지식,” “알아,” “깨달아”).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를 마무리합니다(20-21절):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것은 둘을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를 가리키는 겁니다.

   이렇게 바울은 보다 심오한 한 몸이 된 새사람(2장 11-22절)으로서의 교회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여지는 가에 대해서 말하기 이전에(4장), 하나님의 섭리 그 자체에 대하여,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교회’로 통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먼저 짚어주었던 것입니다.

 

   3장은 샌드위치기법으로 강조되고있습니다.단적으로 말해서, 3:1과 4:1이 같습니다. 3:1의 말줄임표로, 그리고 이후의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2장과 4장의 긴밀한 통일성을 헤치고 말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의 신앙과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지식에 대해서 무엇인가 거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또한 바울이 지식을 배설물취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식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지식만이 전부라는 편협함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바울이 헬라인들이 글을 쓰는 전문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헬라의 철학에 비추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차대구 구조, 헬라식 수사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지식이 전부라는 것을 거부해야하지만, 지식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성장하는 삶입니다. 이 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과 예수님은 입을 모아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식/ 깨달음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그러므로 3장 14-19절의 바울의 기도는 영적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기도문으로 삼아야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교회, 다시 말해서 깨달음이 없는 교회는 비전이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신령한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영적인 세계가 정말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봉사와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낮아지는 삶이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시간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나의 생각을 쪼개고 나의 옛사람을 쪼개서 진정한 새사람으로 만드는, 신령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불교용어가 아니라, 원래 기독교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