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13장,가장 큰 은사

호리홀리 2015. 6. 10. 09:36

사랑은 하나님의 품성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계명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은사로 제시되고 있다. ‘신령한 것’을 역설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신령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것의 의미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거창한 것을 하여 그 겉모습이 요란하고 외적 성과가 대단한 것 같아도 사랑에 동기한 것이 아니면 나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무서운 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진정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모두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사랑의 은사를 주소서.

   

그러면서 사랑의 특성을 열거한다. 여기서 열거되는 사랑의 특성은 모두 문제를 일으킨 고린도 교인들의 행태를 거꾸로 읽은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사랑은 구체적 실천으로 제시되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이 사랑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 공동체 응집의 핵심 은사로서의 사랑은 인품(人品)을 만든다. 은사로서의 사랑은 개별적으로 인품을 조성하며 이것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결집하는데 재료요 동력이요 원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은사는 일시적이고 사랑은 영구적이다. 바울이 14장에서 주목적을 갖고 기술하려는 예언과 방언도 모두 일시적이다. 온전한 것이 오기 전에 부분적인 기능을 하는 것들일 뿐이다. 아직 온전치 못한 지식과 영성을 위해 허락된 특별한 기능들일 뿐이다. 온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완성의 때에는 이 모든 부분적인 것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남는 것이 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우리를 하나님과 엮어주는 연합의 본질로서 사랑은 계속된다. 믿음과 소망조차 그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히 11:1) 믿음도 필요가 없다. 소망하던 바가 이루어질 것이니 소망도 자연 소멸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계속 이어진다. 사랑이다. 이 사랑에 입각하여 신앙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자. 사랑은 존재의 목적이며 존재의 본질이며 존재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