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28장,하나님의 구원계획

호리홀리 2015. 6. 8. 12:18

28:1-2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 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이들이 도착한 멜리데섬은 지금의 말타섬이며 달마티아 남쪽에 있는 섬이다. 누가는 이 곳 섬 주민들을 토인이라 표현했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야만인(babarians)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선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헬라인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멜리데섬 주민들은 야만적이란 견해보다 그 선조가 셈족계통으로 페니키아인이었으며 페니키안 방언을 쓰며 철저히 로마화된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볼 수 있다. 단지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둔다면 구원을 얻었다란 표현은 오히려 어색하다. 그러나 누가는 단지 생명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적극적인 개입하심에 더 관심이 있다. 27장 9-11절에서 사람들은 바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의 말대로 풍랑을 만나고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바울은 이 일에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적극 설명하고 있고 누가는 21-26절로 기록하고 있다.

죽음의 순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면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미 시작하고 있음을 나타내려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장면은 누가복음 23장 40-43절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죄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두 명의 죄수 역시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던 자들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한 죄수가 예수에게 나를 생각하소서라며 말했고 그는 구원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즉 누가는 누가복음의 마지막 즈음과 사도행전 마지막 즈음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구원임을 이야기하려 했던 거 같다. 단지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이 구원을 얻음을 뜻하진 않는다. 바울 일행이 멜리데섬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 사건을 이끄신 주님의 계획과 그의 개입하심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누가는 쓰고 있는 것이다.


28:3-6

 

 지중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가 자연(특히 바다의 폭풍)과 동물의 왕국(특히 뱀)이 협력하여 악을 징벌한다고 믿었다. 만일 폭풍과 파선으로도 악인을 징벌하지 못한다면 동물의 왕국에서 악인을 징벌한다고 믿었다. 파선을 당해 육지에 상륙하였으나 뱀에 물려 죽은 한 뱃사람의 묘비명에 플라코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어찌하여 그는 파도를 헤쳐 육지에 왔던고. 땅에서 그를 기다리는 운명을 피하지 못하였도다.”

이런 배경 속에 바울을 보며 그를 살인자로 몰아세우는 당시의 사람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미 1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그런 문화적인 모든 배경조차 이겨낸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의 태도가 아닐까싶다. 바울이 뱀에게 물렸을 때 그가 당황했다거나 놀랐다는 기사는 어디에서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런 담대함은 사도행전 23장 11절에 기록된 주의 말씀에 기인함을 유추할 수 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거하여야 하리라”

바울은 이미 23장11절 이후부터 28장 지금의 장면까지 수많은 어려움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모든 상황속에서 여전히 로마로 가야함을 잊지 않았고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로마로 가고 있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벨릭스총독, 베스도앞에서의 신문, 아그립바앞에서의 신문, 그리고 결국엔 로마로 이송케 되고 거기서 만난 폭풍, 그 모든 상황은 바울의 신변을 위협하기에 충분했지만 바울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에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사도행전 23장 11절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주님께서 바울에게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바울은 뱀에게 물렸을 때 비록 그 곳 주민들은 바울이 죽을 것이라고 기대한 그 순간에조차 그는 담대할 수 있었다.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았고 따라서 복음을 로마에 전하지 않았기에 바울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번의 죽음의 고개에서도 여전히 주님은 그 상황 속에 개입하셔서 결국엔 바울을 로마로 이끄시는 것을 우리뿐만 아니라 바울 스스로도 알았을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누가는 주님께서 택하신 자는 그 택함 받은 자를 해할 권세가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이미 눅 10장 19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28: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기적중 제일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누가가 예수에 관하여 기록한 첫 번째 기적을 기억케 한다. (눅 4:38-40) 특별히 누가는 열병을 당시 의학적 기술이나 의학적 수단으로 낫게 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안수를 통해 낫게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장면은 6절에 기록된 말씀, 즉, 바울을 신으로 인식한 사람들에게 그런 오해에 대해 사실이 아님을, 그리고 바울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이미 증거했음을 예상 할 수 있게 한다. 사도행전 14:8-18절에서 바울은 당시에도 신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렇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8장 6절과 7절에선 그런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8절에서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기도함을 통해 기적을 일으킬 뿐 아니라 바울이 의지하는 하나님을 들어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8:11-16

바울은 이미 19장 21절에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의 다짐대로 14절과 16절에 로마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로마에서 각각 65km, 50km나 떨어진 압비오저자와 삼관까지 마중을 나온 형제들을 통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음을 기록한 것은 이미 로마에도 기독교가 존재했고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8:17-20

로마에 도착해 셋집을 얻자마자 바울은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다. 조상의 풍속을 거스리지 않았음을 증거하며 다만 예루살렘 당국에 의해 죄수로 로마인에게 넘겨졌고 로마인들은 자신을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황제에게 상소해야만 했음을 전하고 있다. 결국 바울은 죄가 없었으며 또한 그의 백성들을 고발하려 온 것도 아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이 부분을 확실히 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28:21-29

바울은 유대인들과의 만남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설명하고 예수를 전하려 애썼다. 그러나 일부 유대인들의 복음 영접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전도를 배척하자 바울은 이사야 6:9-10절 말씀을 인용하며 그들이 복음을 배척했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선다고 선언한다. 마치 누가복음 4:16-30절에서 예수의 첫 설교가 유대인을 상대로 시작했으나 그들이 그의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박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설교를 시작하였으나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배척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방인에게로 구원이 전해짐을 선포한 후 바울은 만 이년동안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했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복음전도를 할 수 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 제일 마지막 부분 바울의 선포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다시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선포이다. 하나님나라는 사도행전 처음부분(1장3절)과 마지막 부분(28장31절)에 나오는 중요한 개념이다.

28장에서 만 2년후 바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사도행전이 바울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대한 이야기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선교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  인이 되리라(행1:8)는 것이 사도행전의 주제임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예수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을 중심으로 로마로 가는 여정 가운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또한 누가는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사도행전 1장 1-3절에 간략하게 소개하며 결국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심이 핵심인 것을 이야기 하고 있고,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역시, 계속되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말씀 증거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민족에게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해져야 함을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행1:8) 거기에 순종하는 사도들의 이야기로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사도행전 28장까지의 여정 중에 바울은 그의 힘과 목숨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음 전함에 있어 아무도 금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으로 사도행전은 마치고 있다. 이 말씀은 지금도 하나님나라를 전해야 하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와 도전을 준다. 바울은 수많은 어려운 상황들과 예기치 못한 순간에조차 하나님말씀을 전했다. 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었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금하는 사람이 없다란 말은 고난이나 고통이 없다란 말이 아니라 고난, 고통의 순간들조차 하나님나라를 전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란 것이다. 모든 상황과 모든 시련을 견디며 마지막 우리 입술의 고백이 그리스도가 되야 함은 이미 바울이 그의 삶을 통해 증명했으며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차례이다. 아직 땅끝까지 복음은 전해지지 않았고 우리는 그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도행전 29장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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