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에 이어 두 번째로 교회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때에라는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때란, 곧 사도들에 대한 핍박이 갈 수록 강해지고 그 결과로 교회가 더욱 든든해지는 때... 사도들로 인하여 많은 기사가 나타나던 때, 백성들이 더욱 많이 모여들기 시작하던 때... 이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6장에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문제가 일어난다.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와중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들의 과부들이 교회가 매일 베푸는 구제에서 빠지게 된다면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한다. 그래서 특별히 이 구제활동을 전담하는 일곱 집사를 뽑고, 12 사도는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힘을 쓴다. 그래서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된다 (7절). 이 구절은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우선 특별한 점은 초대 교회 내에 두 그룹,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이 바로 그들이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팔레스티나 지역이 아닌 다른 곳, 즉 이집트라든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그리스 지역 등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행 6:1 에 나오는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바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아마 순례 여행이나 아니면 이주를 통해 예루살렘에 와 있던 혹은 살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 초대 교회의 교인이 됩니다.(2장 9-11)
그러니까 초대 교회는 크게 두 그룹, 즉 유대 본토 출신인 히브리 유대인과 헬라 출신인 헬라파 유대인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파간에 문제가 생깁니다. 헬라 출신 유대인들 중 특별히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 집사가 선출됩니다. 이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헬라 이름이고 특별히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골라는 이방인으로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출신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 7 집사는 단순히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구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 만을 담당한 자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힘은 12 사도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본토 출신 히브리파 사람들이 갖고 있었다. 헬라 출신 과부들만이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증거일 것이고 또한 12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요, 오순절 사건을 통해 직접 교회를 세워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부가 구제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7 집사를 세우고 나서 12 사도들은 더욱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했다고 하는 것을 봐도 이들이 명실상부한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3절이나 5절에서 보듯이 7집사들은 모두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고 특별히 8절 이하에서 보듯이 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큰 가사와 표적을 행하며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토론하기도 하고 공회 앞에서 복음을 변론하고 증거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즉 이들의 선행조건으로 보나 그들의 하는 일들로 보나 그들은 구제 전담반으로서의 임무가 아니라 그들도 역시 복음 전하는 사도들의 일을 계승하는 자들이라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료인 빌립은 행 8장에서 사마리아 전도을 하며, 특히 행 21:8 이하에서 행의 저자는 그를 "전도자" Evangelist 라고 칭하는 것들로 미루어 봐서, 그리고 11:19 이하에서 이들이 후일 이방인 전도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점들을 비추어 볼 때 7 집사들은 단순히 오늘날의 집사라는 의미와는 다른 거의 12 사도와 동등한 역활을 했고 비중이 있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2 사도가 팔레스티나 본토 출신들의 지도자였다면 7 집사는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 헬라 출신 유대인들은 본토 출신 유대인들과는 달리 종래의 유대교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이였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율법비판 정신에 본토 출신 유대 기독교인들 보다 더 가까이 서 있었고, 더 잘 예수님의 복음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가 세세한 안식일 규정을 통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쉼을 허락하시고 은총으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주신 안식일의 원래 의미를 잃어 버렸을 때 예수님은 과감히 이를 거부하고 그 당시 안식일 법에 금지되어 있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잘 이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 예루살렘에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하신 말씀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올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리라" (막 13:2)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시면서 유대교의 가장 근본이요 그들 신앙의 기본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비판하시는 그 의미를 잘 이해했습니다.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사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가짐이, 자세가 중요함을 그들은 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하나님과 인간 간의 우주적인 화해의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이해하기 보다는 주님으로 (Lord, Herr, kyrios)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구원을 위한 모든 전제들이 사라졌다고 이해합니다. 즉 할례, 율법으로 부터 자유로운 신앙, 믿음을 통한 구원 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런 사상 때문에 그들은 유대인들로 부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 쫓겨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헬라 전 지역으로 점차 퍼져 나가면서 이방선교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이에 비해 본토 출신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헬라출신 유대인들처럼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이해합니다. 예수는 구약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시고 그의 십자가 위의 희생으로, 자신을 제사제물로 바침으로 새로운 하나님과 인간 간의 새로운 계약이 맺어졌고 이 계약 준수를 위해 계속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토 출신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사고는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상호관련에 기여합니다. 즉, 기독교가 계속 유대교 내에서 존재하도록 하며, 이들 전도자들은 회당을 계속 이용하면서 유대인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전체적인 전제하에서 이제 본문의 의미들을 살펴볼 아야 할 것입니다.
6:1-7
일곱 집사의 선택
1. 교인들 간의 분쟁(1)
몇몇 교인들 간에 일어난 불행한 분쟁은 적절하게 때맞춰 처리되었다(1절).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원망하는 자가 생겼다.
(1)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당황하였다. 복음 전파에 대한 제지가 오히려 복음 전파를 촉진시켰던 것이다. 전도자들은 매맞고 위협당하고 치욕을 당했으나 백성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고난 중에도 놀랍게 인내하고 기뻐함을 보고 그들을 찾아왔다.
(2) 그러나 제자의 증가가 원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증가하자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망한데. 그 원망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가슴을 태우는 것이었다.
ⓐ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은 '자기의 사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교회의 최초의 논쟁은 금전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구제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모았으나 그런 경우에 그 분배에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란 어려운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사도들은 불공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과부가 빠진다고 불공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불평은 근거가 없고 부당한 것인 것 같다.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실제와는 달리(헬라파 유대인이 히브리파 유대인과 비교해 보고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무시 받고 있다고 시기하기 쉽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결점인데 그들은 시비를 잘 걸고 소란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더 많이 주지 않는다고 흠을 잡곤 한다. 시기심과 탐심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반면에 불평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2. 문제해결(2-6)
① 사도들이 제안한 방법: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열두 사도는 어떤 문제도 다른 제자들을 빼고 결정하지 않았다. 사도들보다는 이런 세상사에 더 정통한 그들이 가장 나은 조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도들은 그들의 막중한 사명 앞에서 분열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교회생활에 관여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는 것이 된다. 복음전도는 사역자의 임무 중 최선의 임무이다. 그는 세상사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의 집의 외적인 일에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 ⓑ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생활을 관장할 일곱 집사를 선택하고자 했다(2절). 이 일은 이제까지 사도들이 해왔던 것보다 더욱 배려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적당한 사람을 택해야 했다. 그 사람들은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이들을 뽑아서 사도들이 안수하여야 했다. 7집사의 자격 요건: (그들은 정직해야 했다. 즉 비방 거리가 없고, 이웃에게서 성실하다고 인정받으며 신뢰받을 만하고 매사에 공정하다고 인정받아야 했다.) 그들은 성령 충만해야 했다. 그들은 지혜가 충만해야 했다. 즉 정직하고 선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지혜의 영으로서의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즉 구제 전담반이 아니라 전제조건이 바로 성령과 지혜에 있음을 볼 때 교회 내의 문제의 원인은 역시 그들의 신앙에 기인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 이 일로 인하여 나타난 사역자의 자세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4절). 첫째, 복음의 이대(二大) 강령은 말씀과 기도이다. 이것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은 발전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둘째, 복음 사역자의 가장 큰 임무는 계속 기도하고 말씀을 먹이는 것이다.
② 이 제안은 제자들과 어떻게 합의되었는가. 그 제안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단지 제안되었을 뿐이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5절). ⓐ 그들은 마땅한 사람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표가 본문에 명기된 사람에게 모아졌다. 나머지 다른 후보자 유권자들도 이에 순응하였다. ⓑ 사도들은 그들을 당면한 문제인 공궤하는 일에 임명했다(6절). 사도들은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교회의 봉직을 맡은 사람은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들은 기도로써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간구하였으며, 안수로써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수여되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또한 이 기도와 안수를 통하여 그들은 그 직무를 실행할 권위를 부여받았다.
3. 이로 인한 교회의 발전(7)
교회에서의 문제가 질서 있게 처리되자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사도들은 전보다도 더욱 말씀 전하기에 힘썼기 때문에 복음은 널리 퍼져 나갔다. 놀랍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귀화하였다. 심지어는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복음을 반대했거나 반대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 믿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크게 확장되었다.)
6:8-15
헬라파 유대인스데반의 활약상과 그에 대한 참소
그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에 대해 의아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7집사의 순기능(?)인 구제의 일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데반은 사도들처럼 복음 증거의 일에 자신의 온 힘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왜? 이런 기능들이 사도들에게서가 아니라 집사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복음의 전진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서방에 대한 복음의 전진을 위해서 이제 유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헬라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①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함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증거 하였다(8절).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스데반은 이 일들을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기적은 사람들의 가장 엄밀한 검사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② 그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과 기독교에 대해 변론하였다(9,10절). ⓐ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의 적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9절).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실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본문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논쟁했는가를 알 수 있다(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하지도 답변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앙을 갖게 되지는 않았지만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스데반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단지 스데반과 논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와 함께 하시는 그들이 경쟁할 수 없는 상대인 하나님의 영과 논쟁하였던 것이다.
③ 분개한 그들은 스데반을 체포하였다(12-14절) 결국 그는 그의 피로서 자신의 변론을 확신시켜야 했다. 논쟁으로 그에게 대답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를 죄인으로 고소하여 거짓 증언자를 세우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위증을 시켰다. 즉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지시하고 맹세하게 했다. ⓐ 그들은 정부와 군중이 다같이 그에게 대적하도록 충동질하였다(12절). 그들은 백성을 충동했다. 산헤드린이라면 그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를 대중 폭동으로 쓰러뜨리려고 했다. 또한 그들은 장로와 서기관을 충동질하여 그에게 대적케 하려 했다. ⓑ 그들은 그를 법정으로 데리고 갔다.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문자 그대로, 그들은 먹이를 덮치는 사자처럼 그에게 다려들어 그를 사로잡았다. ⓒ 그들은 그를 모함할 준비를 갖추었다.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니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11절). ⓓ 스데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난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보호하셨는지 소개되어 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절). 복음 전하는 자의 자세와 그에 대한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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