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호리홀리 2015. 5. 4. 21:5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마 5:3-19,산상설교의 시작은 우선 삼인칭으로 시작된다 (5:3-12): "... 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이인칭이다 (5:13-16): "너희는 ...". 셋째는 일인칭이다 (5:17-20): "내가 ...". 

  마 5:13은 산상설교의 서론에서 둘째 부분에 위치한다. 이인칭이 두 번 사용된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5:14).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조의 동일성만으로도 이미 본문의 중요성이 충분하게 부각된다. 소금과 빛 또는 땅과 세상이라는 말로 내용을 대조시킴으로써 본문의 중요성을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마 5:13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본문을 정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본문은 주어부 "너희는 ... 이다"와 술어부 "땅의 소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주어부 "너희는 ... 이다"
   예수께서는 신자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있다. 신자의 신분은 스스로에 의하여 정의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땅에서 얻은 것도 아니며, 아래로부터 난 것도 아니다. 이 신분정의는 우리의 내부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신분정의는 우리의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에 대하여 깨달을 수가 없다.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가장 명확하게 깨닫는다. 우리의 신분정의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한다. 따라서 신자는 자신이 정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정해주신 인생을 사는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장차 무엇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미 무엇"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장차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고, 우리가 이미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신분은 장래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미래에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가능성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현재에 이렇다는 사실성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현재적인 신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장차 무엇이 될 것을 기대하는 기대 속에서 살기보다는 이미 무엇이라는 사실을 실천하는 실천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긴장감 있게 만드는 중대한 요소이다. 장차 무엇인가가 될 사람은 느슨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지만, 이미 무엇인가가 된 사람은 긴장된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만일에 우리가 장래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가질 것이며, 아직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느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래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신자의 신분을 현재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준다. 첫째로 소극적인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신자는 예수로부터 신분정의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을 방지할 수 있다. 우리는 쉽게 우리의 신분을 망각한다. 때로는 땅의 소금이라는 신분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그리고는 마치 땅의 소금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예수께서 신자의 신분을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는 효과를 준다. 둘째로 적극적인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예수에 의한 신분정의로 말미암아 신자는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그 역할과 사명을 충분하게 감당하는 효과를 얻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신분정의는 신자에게 엄청난 도전과 충격을 준다. 계속 그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말이다. 그 신분을 인식하고 그 신분을 표현하며 그 신분을 실현하고 그 신분을 자랑하도록 만든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위로부터 오는 신분정의를 주신 것은 그것을 인식하며 표현하며 실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신분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영광스러운 신분이다. 


  (소금) 그러면 예수께서 정의하신 신분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내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예수께서 소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이다. 소금은 고대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흔한 물질이었다  소금이란 것은 한 편으로는 가치가 있으면서도 또한 한 편으로는 쉽게 무시되는 것이다. 왜 주님께서는 하필이면 소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까? 

 

  (땅) 그것은 소금과 땅 (개역성경이 "세상"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과의 관계 때문이다. 소금은 땅 모든 곳에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소금 없는 땅은 어디에도 없고, 땅 없는 소금은 어디에도 없다. 땅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소금이 있다. 그만큼 소금은 이 땅에 일반적으로 널려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금은 아주 일반적인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땅의 소금이라고 정의한 것은 어디든지 있어야 할 존재를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땅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있어야 할 존재이다. 소금이 있지 못할 곳이 없듯이, 신자들이 있지 못할 곳도 없다. 모든 곳이 소금이 있을 수 있는 곳이듯이, 모든 곳이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신자는 땅의 소금인 것이다.
  (땅의 소금) 여기에서 우리는 소금과 땅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구태여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소금과 땅 사이에 어떤 중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소금이 땅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금은 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금은 땅에서 자리 (위치)를 잡아야 한다. 이것은 소금이 언제나 땅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는 땅의 모든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