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출애굽기(언약적해석)

출애굽기3장,점술과 예언

호리홀리 2015. 4. 28. 12:12

에스겔 21:21에 보면,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과 모압을 치러 가는 갈래 길에서“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바벨론의 점술사는 바루(baru)로 불렸으며, 그들은 양과 소의 간을 해부하여 인간과 도시와 궁궐의 미래를 보았다고 한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도 당대의 이방인들과 같은 문화적 환경 속에 살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보면 이방인들의 점술을 그대로 사용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요셉은 꿈을 해몽하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잔으로 점을 치는 사람’으로 소개된다(창 44:15). 다윗은 인생의 중요한 위기에서 에봇을 가지고 하나님께 묻는다(삼상 30:7).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기업(민 26:56)과 제물(레 16:10)을 선택하고, 전쟁의 방향(잠 16:33)과 매매(욥 6:27)를 결정하였다(삿 20:9). 또한 꿈은 신탁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삿 7:13).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예 이방의 영향을 받아서, 복술가(사 2:6), 별점치는 자(암 5:26), 마법사(미 5:12), 주술여인(겔 13:18), 진언자(욥 3:8), 신접자(사 8:19), 초혼자(삼상 28:14) 등 온갖 다양한 점쟁이들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영적인 활동들은 구약의 공식적인 종교에서는 금지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종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모세는 약속의 땅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이와 같은 영적인 영향력을 염려하면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가르쳤다(신 18:9,14).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점을 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모세는“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고 말하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미신과 점쟁이, 마법사, 초혼자들 대신에 선지자를 세워서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에 있는 ‘선지자 하나’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신명기의 맥락에서 선지자 직분을 말한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주실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모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즉, 모세는 모든 선지자들(예언자들)의 원형이 되므로 그들은 모세를 닮아야 한다. 어떤 점에서 모세는 선지자들의 원형이 되는가?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와 선지자들의 관계가 가장 잘 나타난다.“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6-8절). 모세와 일반 선지자들은 모두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계시를 전하는 자들이지만, 그들이 전하는 계시는 그 직접성과 상호성과 질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반 선지자들은 이상과 꿈으로 주님을 보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계시는 모호하고 단편적일 수 있다. 그러나 모세는 주님의 절친한 친구처럼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그 계시는 직접적이고 인격적이며 명료하다.


  이리하여 고대 근동아시아의 모든 예언 문학들은 주로 점술과 주술의 술법으로 가득한 반면에 구약성경의 예언 문학은 역사 속의 이야기와 시들과 설교들로 가득하게 되며 구약 성경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구약성경의 절반 이상이 예언이다. 우리가 소위 역사서로 알고 있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신명기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예언서(Former Prophets)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예언서로 알고 있는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는 후예언서(Latter Prophets)로 분류된다. 즉 구약성경 총 39권 가운데 23권이 예언서이며 분량으로 보면 2/3 정도가 된다.

 

 

  1. 하나님의 예언
  이 세상의 예언적인 점들은 대부분 개인과 도시(나라)의 운명에 관한 것들이지만,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데 관심을 갖는다. 선지자의 원형인 모세는 시내 산에서 양을 치다가 ‘불타오르지만 불타버리지 않는 떨기 나무’에 임하신 하나님을 만난다(출 3:2). 모세는 그 광경이 너무나 신비로워서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할 때,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시면서,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음성을 들었다(5절). 그는 너무나 두려워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6절). 가시 떨기에 임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이중적으로 소개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었다”(6절). 즉, 모세가 역사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하나님이었다. 그렇지만, 그 하나님은 모세가 다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신다(14절).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므로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해 계시며 주권적으로 일하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대업을 이루게 하신 후,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신다(출 19-24장).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완고하여 황금 송아지를 만들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는 정황에서도 자신이 맺은 언약을 붙드시며, 자신을 새롭게 소개하셨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출 34:6-7).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바로 모세에게 계시된 하나님을 시대마다 증거하였다. 선지자들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을 바라 보았다(사 1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후에 총체적으로 범죄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주님은 다시 그들을 회복하신다. 그 때 주님은‘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말씀하셨다(겔 29:16).

 

 

 

  2.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예언
  “하나님을 알면 우리를 알게 되고, 우리를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칼빈의 말처럼,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난 선지자들은 자신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들을 고백으로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문체와 깊은 파토스로 말씀을 전해준 이사야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심각한 순간에 영광의 하나님을 보자 마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는 비명을 질렀다(사 6:5). 세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잘못은 남(적)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자신의 폐부를 드러내고 있다. 이사야의 자기 발견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와 같은 모습이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말하며(출 4:10), 예레미야도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 1:6)라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고백한다.

  3.미래를 보여주는 비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본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을 늘 노출시켰다. 나단 선지자는 이스라엘에서 성군으로 칭송을 받던 다윗 왕이 그의 신하인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빼앗았을 때 한 명의 부자 우화를 가지고 다윗의 양심을 두드린다. 다윗이 그의 우화에 동감하자,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며 다윗의 범죄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였다(삼하 12:1-15).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 예배가 종교적인 타성과 우상 숭배로 가득해지자,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며 하나님께서 실로의 성막을 무너뜨린 것 같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전하였다(렘 7:4,14).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사치하는 여인들을 책망하고(사 4:16-26), 아모스는 선민사회에서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파는’ 사회정의의 타락을 보며(2:6), 그들이 바라는 ‘여호와의 날’이 ‘영광스러운 빛의 날’이 아니라, ‘칠흙 같은 심판의 밤’이 될 것을 증거하였다(5:18).

  그러나 선지자들은 단지 ‘심판의 신탁’만을 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원의 전령’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회복하심을 바라보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대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점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가슴 아파하였다. 예레미야는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다”며 애통하였다(애 1:1).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바라보며,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며 다시 한 번 더 새로운 출애굽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였다(사 40:1-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페르시아 고레스 왕 때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실 날을 바라보았다(렘 31:31; 겔 36:26).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바로 이 회복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