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28:16~,야곱언약체결식

호리홀리 2015. 4. 16. 12:29

야곱언약체결식(16-17절)

        야곱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며, 그가 꿈에 본 환상에 대하여 반응한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그가 머물렀던 장소에 대하여 놀란다.

여기에서는 ‘이 곳’이 두 번 나타나지만, 이미 앞에서 ‘이곳’은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났다. 야곱은 이 곳의 중요성을 ‘직접 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즉, 내래이터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직접 말하고 있다.
        야곱은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며, 두려움과 수치심을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또한 그가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수치심을 느낀다. 이리하여, 야곱은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깨달으며,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그는 비로소 ‘그 장소의 진정한 성격’을 깨닫는다. 그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야곱은 분주해진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18절).  

        앞에서 우리는 야곱이 ‘돌 베개’를 하는 것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였다(11절). 이제 그 돌이 ‘기념비’ ’(monument)가 된다.

또한 앞에서 ‘계단’이 ‘세워진 것’을 보았으며, (mussab)을 보았고, 야웨께서 ‘서 계신 것’(nissab)을 보았다.

따라서 야곱은 ‘제단’을 쌓지 않고, 단지 기념비를 세우고 있다.

이것은 그가 본 ‘계단’과 그곳에 ‘서 계신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어서 야곱은 ‘기름을 붓는다.’

 여기에서도 ‘그 머리에 붓는다’는 표현이 중요하다.

앞에서 ‘계단은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다’고 하였다(12절).

 

야곱은 ‘돌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계단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음’을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워진 기념석’은 ‘계단’을 상징하는 것이 되며, 그곳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에 기름이 부어졌음을 상징해 준다.

“그러나 사다리는 잠깐 꿈에 나타났지만, 기념석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Fokkelman, 67).

       
        야곱은 그가 환상을 본 장소에 새로운 이름을 준다.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19절). 이 구절이 놀랍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동안 이곳이 이름이 없는 넓은 들판이나 계곡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곳은 ‘루스’라는 원래 이름이 있는 동네였다.

내래이터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나안 동네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을 계시의 장소로 기억하고 싶었다. 사실 루스는 마을이 아니라, ‘성’이었다.

 하나님은 벧엘에 나타나심으로써,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고 있다. 야곱은 목소리를 떨며, 엄숙하게, 그곳의 이름을 새롭게 부르고 있다. 

        야곱의 서원 (20-22절) 

       
         그는 하나님의 첫 약속(13c-14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직 두 번째 약속 만을 언급하고 있다(15절).

흥미롭게도 첫 번째 약속은 야곱에게 있어서 먼 미래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 약속은 야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야곱은 지금 그에게 필요한 약속 만을 붙들고 있다.
        야곱의 서원에서 조건절과 주절의 경계를 나누는 문제가 까다롭다. 만약 21절에서,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로 본다면, 전반절이 조건절이 되며, 하반절이 주절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야곱에게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선택하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의 제시한 조건을 이루어 주어야, 야곱의 하나님이 된다는 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달리 보지 않을 수 없다. 야곱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분명히 하나님이었다. 그는 앞에서 이미 ‘여호와께서 여기 계신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20절)로부터,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면’(21절)까지를 조건절로 보고, “그리하면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21절)를 주절로 볼 수 있다. 그 동안 하나님은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다. 이제 야곱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면~’으로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야곱은 자신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야곱의 조건 사이에는 변화가 있다.
        (1) 하나님은 ‘이 땅으로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15절). 야곱은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으로 대답한다(21절). 그는 ‘평안히’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한다. 또한 그가 돌아올 때, 그의 형 ‘에서’를 만나야 한다. 에서는 분명히 그의 귀환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인가? 이리하여 벧엘 이야기는 브니엘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이후 야곱은 ‘세겜 땅에 평안히 장막을 쳤다’(33:18).
        (2) 야곱은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구하고 있다(20d). ‘양식’과 ‘옷’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3) 야곱은 ‘길’(derek)을 언급한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벧엘을 떠남으로써 고향 땅을 완전히 떠나는 데, 가는 길이 편안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야곱의 약속 (22절) 벧엘에 세울 성전  

        그 동안 이 짧은 단락의 이야기에서 ‘돌’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야곱은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였다’(11절).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웠다’(18절).

이제 야곱은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서원한다(22절 상).

 

이리하여, 야곱이 베개 하였던 ‘돌’(11절)이 ‘기둥’이 되며(18절), 그것은 ‘기둥’에서 ‘성전’이 된다(22절). 하나님의 성전은 돌과 기둥으로 세워지지만, 그것은 야곱이 베개 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장차 드릴 십일조

        두 번째로 야곱은 십일조를 약속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여기에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의 10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고자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