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그의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었으며(왕상 19:19-21), 스승이 떠날 때 “영감의 갑절”을 상징하는 “겉옷”을 물려 받았고(왕하 2:1-18), 엘리야를 계승한 선지자로서 여리고의 한 샘에 있는 “죽음의 물”을 “생명의 물”로 고쳤고(왕하 2:19-22),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에서 “생수”를 공급하여 큰 승리를 하는 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왕하 3:1-27). 이리하여 엘리사는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역의 확실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제 그는 개인들을 돌보며 소외된 사람들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원하며, 계속적인 생명의 사역을 이루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네 가지의 기적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다.
1. 가난한 과부와 그 아들을 채무에서 구하는 엘리사(왕하 4:1-7)
2. 수넴 귀부인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는 엘리사(왕하 4:8-37)
3. 독이든 죽을 생명의 죽으로 변화시키는 엘리사(왕하 4:38-41)
4. 배고픈 군중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엘리사(왕하 4:32-44)
1. 가난한 과부와 그 아들을 채무에서 구하는 엘리사(왕하 4:1-7)
(1) 과부의 부르짖음(1절)
엘리사의 제자들 중에 한 젊은 사람이 아무런 경제적 대책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그 가정에는 빚이 많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죽었는데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없었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찾아 와서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채무자와 남편 사이에는 합법적인 계약이 있었던 것 같았고, 이 미망인은 문제를 해결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한 순간에 집안이 무너지는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과부가 엘리사에게 한 말을 보면, 죽은 남편은 (1) 엘리사의 종(ebed)이었으며, (2) 주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채무자들이 그의 아들들을 “종”(ebed)으로 만들려고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가정이 어떻게 이렇게도 어려운 자리에 떨어질 수 있는가? 주위의 사람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했을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심을 가졌을 것이다. 시편 37편의 시인은 “내가 의인이 버림을 받거나 그들의 자식이 구걸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25-26절)고 말했는데 이 선지자의 가정에는 너무나 다급하고 비극적인 일이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었다.
그 가정에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친척도 없었던 것 같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가족과 친척들을 통하여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회 복지 제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친족 구속자에 관한 법, 희년과 안식년법(레 25:25-49), 이삭 줍기 규례(신 24:7-21), 제수혼법(신 25:5-10), 돈 빌려주는 데 대한 엄격한 규칙(출 22:25-26; 레 25:36-37; 신 23:19-20; 시 15:5; 겔 18:8) 등의 다양한 사회적 대책을 만드셔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채무에서 벗어나 가족단위로 보호 받게 하였다(딤전 5:3-4; 약 1:27).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 되었던 집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다시 종이 되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이다(출 3:6; 6:6; 13:3, 14 등). 그러나 이 본문에는 이런 대책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과부는 사회적인 안전 장치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 자식들은 종으로 팔려갈 지경이 되었다.
(2) 과부의 자원(2절)
과부가 엘리사에게 찾아와 상황을 말하며 “부르짖자” 엘리사는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선지자로서 신명기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대표적 위치에 서 있었다(신 14:29; 16:11, 14; 18:10). 또한 그는 제자의 가정을 그냥 버려둘 수 없었다. 엘리사는 문제를 가져온 여인에게 문제를 다시 던진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집 안에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엘리사는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자원을 묻고 있다. 성경의 기적은 대부분 우리가 가진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엘리야 선지자도 사렙다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켰다. 예수께서도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으며, 갈릴리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셨다(막 6:38). 하나님은 이미 있는 것으로 우리의 문제를 푸신다. 과부는 자신의 "집 안에는 기름 한 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3) 엘리사의 명령과 여인의 순종(3-6절)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웃으로부터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려서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한다. 여기에서 엘리사의 명령과 여인의 순종을 비교해 보라(Mead 167).
엘리사의 명령 여인의 순종
“가라”(halak) 나갔다(halak)
“빌려라” ------
“들어가라” ------
“문을 닫아라” “문을 닫았다”
------ “아들들이 그릇을 가져왔다”
“부으라” “부었다”
“가득 찰 때” “가득 찼다”
“옮겨 놓아라” ------
----- “그릇을 더 가져오라”
----- “다른 그릇이 없습니다”
----- “기름이 그쳤다”
위의 두 사건을 비교해 보면, 여인은 적극적으로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할 뿐 아니라, 아들들도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들들은 “그릇을 가져왔으며”, 어머니가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말할 때, “더 이상 없다”라고 대답한다. 행간을 읽어보면, 그들은 어머니와 함께 기름을 부었을 것이며, 그릇이 가득 찰 때마다 옆으로 두고, 새 그릇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온 가족이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여기에서 엘리사는 “야웨께서 가라사대”라며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단지 선지자의 권위로 말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엘리사의 말씀을 믿고 힘써 순종하였다. 또한 엘리사는 그들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가서 일하고 있지도 않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홀로 집으로 가서 스스로 일하라고 하였다. 선지자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다. 그녀는 엘리사 선지자를 신뢰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4) 부채를 다 갚고도 남은 기름(7절)
갑자기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된다. 이것은 물론 네레이터의 표현이지만, 이 가난했던 과부에게 엘리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옛날 사렙다 과부가 아들을 살린 후에, 엘리야에게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 여인에게도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가 왔다. 그녀는 사모로서 이전에도 주의 일에 동참했지만, 이렇게 실존적으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리하여 과부는 모든 무거운 빚을 갚을 수 있었고, 두 아들을 지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은 기름”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 남은 것으로 그들이 “생활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부채만 갚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자원까지도 주셨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난한 과부의 남편은 주의 일을 한다며, 자신의 가족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죽게 되었다. 그래도 아내의 눈에 비친 그는 엘리사의 신실한 제자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죽어서도 아내에게 이런 인정을 받는 것을 보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하나님에게 부했고, 그의 부를 하늘에 쌓았다(눅 12:21). 그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남은 가족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체험하게 되었다(마 6:33). 우리의 약함은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강함을 보이시는 기회가 된다(고전 1:25, 27; 12:22; 고후 12:5-10; 13:4).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자를 우선적으로 보살피신다(신 10:18).
엘리사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엘리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 엘리야를 통해 사렙다의 이방 과부를 돌보신 주님께서(왕상 17:7-24), 이제 이제 엘리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이 두 이야기는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두 기사에서(1) 과부와 그 아들이 등장하고 있다. (2) 엘리야 선지자는,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라고 약속하였고, 그대로 이루어졌으며(왕상 17:16), 엘리사는 “그릇마다 모두 기름을 부어서, 채워지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말한다”(왕하 4:4).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기름병" 모티프가 두 기사에 함께 나타나고 있다. (3) 두 선지자는 두 과부의 아들을 살린다.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실제적인 죽음에서 살리며, 엘리사는 경제적 파산에서 살린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예언자 공동체의 대표로서 약하고 소외된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언급되지도 않지만 배후에서 일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주로 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친히 갚아 주신다. 신약성경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경제적 부채를 갚아 주실 뿐 아니라 죄의 부채까지 갚아 주신다. 죄의 부채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갚을 수 있다.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영혼의 속전으로 주셨다. 그는 자신의 아들로 우리의 빚을 갚게 하셨다. 과부의 아들들은 담보로 잡혔기 때문에 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도 자기 아들을 담보로 삼으셨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우리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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