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무엘하(언약적해석)

사무엘하,21장1~14,언약파기의 결과

호리홀리 2015. 4. 6. 14:15

기드온 사람들과의 언약을 어긴 결과: (21:1~14)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어겨서 이스라엘에 내려진 재난에 관한 내용이다.


A. 해를 거듭하여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1상)


B. 다윗이 기도로 그 원인을 밝힘: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임으로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김(1하~2절)

C. 다윗이 해결책을 위하여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음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이 다윗에게 요구함(3~6절)

C、.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을 내어주었고,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죽임(7~9절)

B、. 사울의 집안에 대한 다윗의 헤세드

 

1. 시체들이 잘 보살펴짐(10~11절)
2.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기브온 사람들이 목을 멘 일곱 사람들을 사울의 아버지 묘에 장사(12~14상)

A、.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심(14하)

다윗 통치 기간에 해를 거듭하는 기근(A)과 그 기근이 끝나는(A、) 틀 속에 기근의 원인을 밝히는 여호와의 계시(B)와 그 원인이 규명된 후의 다윗의 조처(B、)가 싸고 있는 핵심은 사울의 계승자인 다윗이 밝혀진 재난의 원인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는(C-C、) 내용이다.

상황적인 배경: 삼 년 동안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A. 1상)

가뭄으로 인해 기근이 초래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 드문 현상이 아니다(예, 창 12:10; 룻 1:1).
가뭄과 기근은 시내산 언약에 규정된 형벌이다(가뭄, 레 26:19하~20; 신 28:23~24: 기근, 레 26:26; 신 28:38~40, 42 참조).
언약적인 형벌의 목적은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레 26:14~39 참조).
다윗은 왕으로서 범국가적으로 내린 재난의 원인을 알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았다.

다윗의 통치 기간 중에 연속된 삼 년 기근에 대한 정확한 연대 측정은 어렵지만, 문맥에 비추어 추정해볼 수 있다.
반역자 압살롬을 피하여 도주하는 다윗에게 시므이는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고 그가 당하는 환란을 해석했다(삼하 16:8).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사울 집안에 피흘림을 초래한 기록이 없으므로, 시므이의 해석을 21장 1절에서 14절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이스라엘-기브온 조약의 문맥에서 사울 후손들의 처형은 적어도 압살롬의 반란 이전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압살롬 반란은 언제 일어난 것인가?
두로의 히람이 다윗에게 궁궐을 짓도록 백향목과 전문인력을 보냈는데(삼하 5:11), 히람의 통치 기간을 약 BC 970~940 5으로 보면, 다윗의 통치(약 BC 1000~960) 후기에 히람이 다윗에게 궁궐 건축을 도와준 것으로 간주된다.
사무엘하 12장 1절에 언급된 다윗의 왕궁을 히람의 도움으로 건축한 궁궐로 보면, 밧세바와 압살롬 반란 사건은 다윗 통치 후기에 연쇄적으로 일어났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21장 1절에서 14절의 사건이 압살롬 반란 이전이라는 것 외에 다윗 통치의 어느 기점에서 일어난 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정하기가 어렵다.
 
가뭄과 기근의 원인(B. 1하~2절)
다윗의 요청에 따라서 여호와께서 두 재난의 원인이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린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셨다.
그렇다면,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린 것이 이스라엘에게 재난이 된 것은 무슨 연유인가?
 여호수아의 정복 시대에 죽은 가나안 사람들의 피 흘림에 대한 대가로 재앙이 일어난 적이 이스라엘 역사에 없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은 히위족속으로 이스라엘이 멸절해야 할 가나안 민족 중 하나였고, 이스라엘이 그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민족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어야 할 책임이 있다(창 16:18~21; 수 1:1~6; 삿 2:20~23 참조).
그러므로 사울이 이스라엘을 위한 열심으로 그들을 죽인 것이 형벌의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무엘서 저자는 그 이유를 다른 가나안 민족들과는 달리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은 데서 찾는다(2절).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여호수아 시대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집트와 요단 동쪽의 두 왕국들에 행하신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를 정복한 것이 발단이 되어, 먼 나라에서 온 것같이 꾸민 사절단을 여호수아에게 보내어 자신들과 언약을 맺자고 제안했다(수 9:1~13).
 
여호수아와 다른 지도자들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맹세하여 언약을 맺었다(14~15절, 19절). 그 후에 그들이 바로 요단 서쪽 영토의 주요지역 - 후에 이 지역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됨 - 에 살고 있음이 밝혀져서,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27절). 비록 기브온 사람들이 국가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잃었지만,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특정한 임무를 부과시켜서 이스라엘 가운데 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기브온 사람들은 그 언약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되었고(수 9:15),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그 언약을 어긴 것이고, 그것은 바로 가뭄과 기근의 원인이 되었다.
 
 
사무엘서 주제에 비추어 볼 때, 사울이 조약을 어긴 대가가 다윗 시대에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재난이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교훈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울은 그 교훈을 받을 자격조차 없었던 왕이었던가?
 
실상은 사울은 아말렉 사건으로 은밀하게 폐위된 후(삼상 15~16장) 실권을 쥐고 있었으나, 길보아 산에서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삼상 31장) 자기마음대로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르침과 교훈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자기 중심적인 상태에 내버림을 받은 그 자체가 사울에겐 형벌이었을 것이다.
사울의 범죄의 대가가 다윗 시대에 주어졌다는 것은 그것이 다윗에게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근이 있기 전까지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아래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심(A、. 14하)”을 보라).
사울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겪으며, 그리고 자신이 아직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마지막에 실천에 옮기면서, 다윗은 군주로서 막중한 책임을 깨달았을 것이고, 자신의 임무수행이 여호와의 관계에 비추어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다윗의 조처: 기브온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요청(C. 3~6절)

사울 왕이 어긴 기브온과의 언약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다윗은 이스라엘과 언약의 상대자인 기브온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묻는 것은 지당한 것이었다. 언약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기브온과의 언약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어진 것이므로, 이스라엘이 겪고 있던 두 재난은 이스라엘-기브온 언약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다.

다윗은 사울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간주하여 기브온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내가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에 복을 빌겠느냐”(3절)고 묻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 속죄로 인해서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와의 기업인 전 이스라엘을 축복해서 가뭄과 기근이 그치는 것이 아니다.
14절에 보면, 사울의 행실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아울러 다윗이 그가 한 약속을 준수하고 난 뒤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윗의 요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로서 기브온의 존재는 이미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고 난 뒤에 사라졌으나, 당시 맺은 언약으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영원히 살게 되었고, 만일 원하면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절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화’되었든지 아니되었든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기브온 사람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언약의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기업으로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행실에 대응하는 요구를 하는데(4~6절),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사울의 성읍 “기브아9에서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여호와의 앞”이란 표현은 이스라엘-기브온 언약의 합법적인 성격과 사울 자손의 처형에 대한 사법적인 특징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기브아에서인가?
민수기 35장 33절에 의하면, 땅이 피 흘림으로 더럽혀지면,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죄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아마도 사울이 기브아에서 기브온 사람들을 처형했을 가능성이 있고, 만일 이것이 옳다면, 기브온 사람들은 자기 족속들의 피를 흘린 장소인 기브아에서 사울 후손 7명의 처형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기브온 사람들의 제안을 수락하는 다윗과 그것을 실행한 기브온 사람들(C、. 7~9절)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언약이 있다(삼상 20장).
기브온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데 있어서 그 언약을 지키는 다윗의 모습은 이스라엘-기브온 언약을 어긴 사울과 대조를 이루는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아끼고(7절).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을 내어주었고(8절),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을 보리의 첫 곡식 단(첫 열매)을 베는 시기에 처형했는데, 때는 약 사월 경이었다. 

사울의 집안에 대한 다윗의 헤세드 (B、. 10~14상)
시체는 처형된 장소에 내버렸고, 사울의 첩 리스바가 시체에 야생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기철이 시작하기까지 밤낮으로 지켰다.
 
그러므로 리스바는 시체를 여름 동안 지켰고, 비가 내리기까지, 곧 약 10월 중순, 시체는 야생동물의 먹거리가 되지 않고 안전하게 썩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세계관에 따르면, 시체가 장사되지 않고 야생동물의 먹거리가 되고 가족묘(실)에 묻히지 않는 것, 곧 열조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큰 저주(형벌)였다(신 28:26 참조).
압살롬 반란의 실패를 인식하고 스스로 목을 맨 아히도벨이 가족묘에 묻힌 것을 고려할 때(삼하 17:23), 목매어 처형된 시체를 묻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왜 리스바는 시체들을 사울 가문의 묘실에 묻지 않고 들에서 지켰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암살당한 이스보셋의 시체가 사울의 가족묘에 묻히지 않은 것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가족의 창시자인 사울이 그의 아버지의 묘에 장사되지 않았으므로, 사울의 직계 후손들이 그들의 가문 묘실에 장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을 다윗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요단 동쪽에 살고 있는 길르앗 야베스와 사울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사무엘상 31장에 사울과 요나단은 길보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벧샨에 거주하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성벽에 전시한 것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에 그 시체들을 가져다가 불에 태운 후 장사를 지내어 주었다.
 
다윗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나무에 매달려 처형된 일곱 명의 시체의 뼈를 거두어서 베냐민 땅 셀라에서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해 주었다(11~14상).
다윗은 사울의 사위였고, 요나단과는 언약의 파트너였다.
광기를 갖고 다윗을 추적하는 사울이 엔게디 광야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고, 다윗은 유리한 상황에 있을 때, 그를 선대한 다윗에게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고 요청했고, 다윗은 사울에게 맹세하고 각자 자기 길로 갔다(삼상 24:21~22).
 
 다윗이 사울의 후손 칠 명을 내어주어 사울의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였으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아낌으로 사울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게 했고, 동시에 요나단과의 약속도 지켰다.
 
그런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말라”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구약에 죽어서 장사된다는 것을 “열조에게로 돌아가다” 또는 “열조와 함께 자다”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죽어서 가족 묘실에 묻히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 묘실에 있는 약 1m정도 높이의 돌로 만든 벤치에 눕혀두고 살이 다 썩으면 뼈는 모아서 벤치 아래 있는 뼈 저장소에 넣어둔다.
 
이러한 과정이 세대가 바뀌면서 유지되므로, 사람이 죽으면 자연적으로 그의 조상과 함께 묻히게 된다.
만일 죽어서 가족 묘실에 묻히지 않게 되면, 이미 죽은 가족들과 같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사울이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이 옳다면,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서 처형된 사울의 후손들을 가족 묘실에 장사지내어 준 것은 그가 사울과 맺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다윗은 사울과는 대조적으로, 헤세드를 지킨 자였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심(A 、. 14하)
“그 후에야”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울의 후손을 처형한 그 자체로 문제가 해결되어서 여호와께서 비를 주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후”는 기브온 사람들에 의한 사울 후손들의 처형(7~9절)과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속한 셀라에 있는 가족 묘에 묻어준(10~14상) “그 후”에 여호와께서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고, 이스라엘에 비를 주셨다는 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