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혼인 잔치 비유(마태복음22:1-14)

호리홀리 2015. 3. 25. 16:17

2.3. 초청에 응하는 자, 그리고 예복을 입은 자(22:1-14)
혼인 잔치 비유(22:1-14)에서 잔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상징한다(참조. 8:11; 25:1ff.). 청함을 받은 자들이 종들을 다루는 비상식적인 태도(6절)는 21:35-36에서 이미 언급된바 있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절의 태도를 인상적으로 부각시킨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태도의 결과는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되고 있는데, 이 경고는 주후 70년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7절).
9-10절에서는 앞의 두 비유들의 공통된 결론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즉, 이와 같이 반응에 실패한 자들은 전혀 예상치 않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대체되리라는 주제이다. 하지만 복음이 보다 넓은 영역의 사람들에게 전파됨에 따라 그 복음은 합당한자 뿐 아니라 합당치 않은 자들에게도 호감을 끌게 될 것인데, 바로 이러한 주제가 11-13절에서 다루어진다. 이 후반부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에게 자유로이 열려진 가능성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원칙도 없는 자유는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거기에 어울리는 예복, 즉,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삶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참조. 21:41, 43; 7:13-27).
14절은 이 비유의 두 가지 메시지를 간결하게 요약해 준다. 많은 사람이 초대되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기를 거절하였다(5, 6절).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초대에는 응했으나 연회장에서의 규범, 즉, 하나님 나라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하였다(11, 12절). 이들 두 대상자들 모두가 '청함'은 받았지만 '택함'은 입지 못한 자들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택함을 입지 못한 이유는 모두 그들 자신의 거절에 있었다. 한편 끝까지 남은 자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ejklektoiv)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운명이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 즉, 하나님의 선택에 의존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즉, 그들이 구원을 입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속한 일임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 비유들 모두는 처음 시작보다는 마지막 결과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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