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바냐

스바냐서3장,심판

호리홀리 2015. 2. 19. 10:21

3장,심판


2:13-15절에는 니느웨의 심판을 다루고 이어서 3장에는 예루살렘의 심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예루살렘의 죄는 니느웨의 죄와 같다.

그러므로 심판을 피할수 없다. 아니 유다의 죄악은 열방의 죄악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그 분께 경배도 하지않았고 신뢰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3절은 정치 지도자, 4절은 종교지도자를 책망한다.

종교지도자는 선지자와 제사장이다.

 

선지자들은 경솔하며 간교한 자로 묘사된다.

 ‘파하즈’(경솔)는 거만하게 날뛰는 오만한 행위를 가르킨다. 

특히 이 단어는 개인의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 사용하기도 한다. (창49:4,삿9:4)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언약을 범한다.

 더구나 이교도의 의식을 성전에서 행한다. (에스겔서 참조)

  그들은 그들의 권위를 이용해서 제물을 착복하는 행위를 책망한다.


이러한 소망이 없는 세상과 달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가 대조된다.

 17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회복을 준비하고 계신다. (3:9-20)

회복의 시작은 입술이다. (9)

입술이 회복되며 하나님을 부르며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흩어졌던 열방의 백성들이 다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선포한다.

심판으로 흩어진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는 비젼이다.


구원과 용서에 익숙해 있는 백성들에게 심판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예레미야때에 심판의 메시지는 사라졌다.

그것은 심판이 온다는 전조현상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재림에 대한 선포는 사실 사라졌다.

 이단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재림을 원하지 않는 시대이다.

하여 재림은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심판과 멸망과 환란속에서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하는가? 

 3:14절 노래하라,기뻐하라,즐거워하라는 명령형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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