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소명
예레미야는 아나돗출신의 제사장이었다.
아나돗은 솔로몬과 아도니야의 왕위 쟁탈전에서 밀려난 제사장들이 유배되었던 곳이다.
아도니야는 솔로몬보다 왕위계승 서열이 앞섰고 지지한 사람들도 강력했다.
군대장관 요압,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지지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뿐이었다.
결국 다윗이 솔로몬을 결정하자 분위기는 반전되어 아도니야와 그의 추종세력은 피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 아도니야는 죽었으나 아비아달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추방된 곳이 아나돗이다.
이곳으로 쫒겨온 제사장 계열은 사독계열의 다윗언약과 솔로몬 성전보다,
시내산언약의 기초위에 실로와 같은 곳을 더욱 사모했다.
소외된 제사장 그룹의 대변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예레미야,
그러나 예레미야는 환경이나 배경을 탓한 적이 없다.
그는 기득권 세력의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예언조차 거부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예레미야가 사역을 시작한 요시야 13년은 아직 종교개혁 전이라 므낫세 시절의 우상숭배가 편만한 시절이었으며 개혁이후에는 철저히 요시아를 도왔다.
그리고 안타깝게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느고에게 죽었을 때 예레미야애가를 기록하여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다.
예레미야의 두가지 환상,살구나무인 “샤케드는 ”쇼케드(지켜보다)와 비슷한 발음이다.
즉 랭귀지 프레이 (언어유희)를 통한 강조이다.
예레미야가 보고있는 것은 살구나무이나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강조한다.
또한 가지로 번역된 “막켈”은 진노의 심판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환상은 끊는 가마솥 이다.
이 환상을 통해 앞의 환상이 더욱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미 유다 쪽으로 기울어진 가마솥은 장차 유다에게 향할 재앙을 상징하는 것이다.
재앙의 이유는 언약파기(우상숭배,16절)였다.
두 개의 환상은 예레미야가 어떻게 사역 할 는지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예레미야가 평생 역동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5절 “알았고”‘구별하였고 “ ”세웠다“
자신의 의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를 속속들이 아신다.
구별은 ”카도쉬“ 시내산언약의 용어이다.
예레미야는 거부한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라 말 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
모세도 그랬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심을 알아야한다.
나의 관점에서 나를 보기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보기이다.
하나님은 언약문구를 사용하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8,17,19)
또 하나는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 ((신18:18)
이 말씀은 네가 말하는 것이 곧 내가 말하는 것이란 뜻이다.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말씀은 “내가 너를 견고한 성읍,쇠기둥,놋성벽이 되게 하였은 즉“(18) 누구도 예레미야를 대적할 이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확신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이시대의 예레미야로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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