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의 배경

호리홀리 2015. 1. 20. 21:42

5.배경

 

로마서 1:18,19절부터 끝절까지 읽어보면 도덕이 땅에 떨어진 무서운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와 같은 세상에서 빠져나온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환경에 속했던 사람들이 성도로 변할 수 있게 한 것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다른 어떤 것도 로마제국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산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또한 그 일을 해냈습니다. 그 결과 사도는 지금 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교회를 설립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세밀히 관찰해 보면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려 할 즈음에 이 편지를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20장과 로마서 16장을 함께 읽어보십시오. 로마서 16장에 열거된 몇몇의 사람들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사는 가이오라 하는 사람과,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제3차 전도여행이 끝나갈 무렵, 이 편지를 썼다는 확증이 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요점은 로마교회가 사도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세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교회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날에 제사장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중에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던 삼천 명 가운데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이 로마로 돌아가 복음을 전파하고 자기들의 삶을 통해서 그 메시지를 드러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로마교회가 생기게 된 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6. 로마교회의 성격

 


 

신약이 교회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 ‘교회들’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음을 일반적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에 여러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문안하면서 ‘그들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다른 말로 해서 그들은 어떤 큰 중심적인 건물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간의 집에서 돌아가면서 함께 모인곤 하였습니다. 이 집에서 잠깐, 저집에서 잠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교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7. 로마서를 쓴 이유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에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을 견고케 하려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회심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건전하게 회심하고 거듭났다 할지라도 위험한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지막 16,17절과 1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순진하고 무식한 신자는 그들의 말에 솔깃하기 쉽습니다. 결국 그래서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리게 될 수 있습니다. 회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견고해지고 세움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이 점이 더 필요한 세대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로마서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 점은 언제나 끈질기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난제입니다. 그 당시에도 거짓선생들-유대교를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 다른 선생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로마와 다른 지역에 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믿는 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들은 경기장 안에 있는 사자들에게 던지워졌습니다. 그들의 집은 불탔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아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를 믿는가 뿐 아니라, 자기들이 ‘무엇’을 믿는가를 알았습니다. 순교자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믿는지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당시의 순교자들은 이신칭의의 교리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심지어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누구’를 믿는 가 뿐 아니라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도 알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