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상

역대상2장~5장,야베스의 비젼과 기도

호리홀리 2015. 1. 14. 12:38

2:3-9:1

 

이스라엘의 아들 중 가장 중요한 유다지파부터 시작된다.

3장은 다윗의 후손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구조는 대하28:4절이 뒷받침한다.

 “하나님이 유다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가문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노라”

 

유다지파의 족보 중에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의 범죄로 인한 탈락,(2:3).

아간의 범죄(7) .

 

4:9의 야베스는 (야베츠:슬픔)운명을 극복한 인물로 길게 기록하고 있다.

 야베스의 인생역전은 그의 기도 때문이었다.

 그의 기도는 지경을 넓혀달라는 것,

많은 영향력을 끼쳤고 야베스의 비젼을 당시 1세대인 가나안 정복자들이 공유하여 승리한 것같이 포로이후인 우리도 이 비젼을 공유하자는 의도이다.

 

 제1출애굽은 제2출애굽인 포로후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교훈이 된다.

제1출애굽 당시 야베스는 개인적으로 운명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서기관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딴 서기관마을을 형성하게된다. (2:55 “야베스에 거한”은 “야베스에 속한”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같은 겐족속이다.)

 

 4장은 이방인 출신들을 기록하고 있다.

 13절의 옷니엘은 최초의 사사가 된 그나스족 출신이다.

15절의 유다지파의 지파장이며 가나안전쟁 영웅었던 갈렙 역시 그나스족출신이다.

이들을 통해 비젼이 공유되었고 그 결과 5장의 지경이 넓혀지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5:8절 “미쳤고” 9절 유프라데부터 광야지경까지 ”미쳤고“ 생축이 번성하였음이라.

  ”미쳤다“는 단어가 반복된다. 11,16,23 이로써 지경이 넓혀지는 비젼이 이루어졌다.

 20절에는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하면서 야베스의 기도중 ”주의 손이 도우시고”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2차 출애굽인 포로후 백성들인 우리들도 이 비젼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족보 이야기의 한 가운데 야베스의 비젼을 갖다 놓은 의도가 이것이다.

 또한 이방출신들을 기록함으로 참 이스라엘 문제가 해결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닌 언약관계인 것을 강조한다.

이방출신으로는 2:3,2:17,2:34-35,4:18,7:14등이 있다.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는 포로전 역사서인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서까지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포로후 역사서인역대기에 포함되었다.  역대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된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서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무리를 위하여 써진 것이다.  다시 그 씨(국민)가 그 땅(영토)에서 하나님의 뜻(주권)을 따라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목적아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무리들은 유다지파일 것이다.  그래서 유다지파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대상 2:1-4:23).  이 강력한 지파는 첫 번 가나안에 들어올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삿 1:2-21), 이 새 시대에는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되었다.  심지어는 제사장과 레위인보다 먼저 언급되었으며 사실상 역대상 전반이 거의 대부분 다윗의 행적을 다루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지파의 선조들을 소개하는 중에 야베스라는 특이한 인물을 언급한다.  유다지파의 중요성과 역동성과 관계되어서 한 인물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을 한마디로 존귀한 자(niqbad)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 당대 사람들에게 인정된 이유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그 어머니가 아들을 낳을 때에 고통, 아마 해산의 고통이 유달리 심했던 모양이다 (대상 4:9).  그래서 그 어머지는 이 아들이 해산과 관계된 특이한 방식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통의 히브리어는 ‘오체브’(otzeb)인데, 이것의 끝 자음과 중간 자음의 위치를 뒤바꾸어서 ‘야베츠’(yabetz, 한글 성경 발음으로 야베스)라고 부른 것이다.  즉 자위전환(字位轉換)을 시도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된 특이한 이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결과로 주어진 아들이라는 의미로 자음을 뒤집어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이 고통가운데 태어나서 성장한 아들의 값을 톡톡히 해 내는 역동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대상 4:10).  하나님의 축복을 과감하게 구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경을 넓혀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용한 지경을 넘어서 더 큰 지경으로 가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이런 기도는 대단히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요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자기에게 할당된 영역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넓은 지경을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형제의 것을 자기가 빼앗는 것보다 아직도 정복되지 못한 영역을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환난에서 벋어나서 궁극적인 승리를 경험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지경을 넓혀 나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독특하고 열정적인 기도를 하면서 삶을 살았던 야베스를 그 형제들보다도 더 탁월한 존귀한 자로서 정의를 내린다.  그런데 이런 점은 같은 유다지파의 조상이었던 갈렙의 딸 악사의 적극적인 삶을 연상하게 한다 (삿 1:14-15).  이스라엘의 첫 번 사사로서 역할하였던 옷니엘이 갈렙의 제안을 따라서 기럇세벨을 정복하였으므로 그 딸 악사를 아내로 주었는데, 그 남편에 그 아내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출가할 때에 과감하게 샘물도 달라고 아비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런 조상들의 적극적인 가계의 전통의 삶을 산 한 사람 야베스가 한 기도가 대상 4:10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적극성은 단순히 소위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아침마다 반복하여 자기성취를 스스로에게 암시하여 주입하는 세상사람들의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이런 성경적 적극적인 삶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 자체가 이런 적극적인 삶의 차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유다지파의 후손인 다윗은 하나님이 요구하지 않아도 400년의 수치인 여부스 사람의 성을 빼앗아서 예루살렘으로 만들었다 (삼상 5장).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아도 언약궤를 다윗성에 모셔오는 적극성을 발휘하였고 (삼상 6장) 이어서 그 언약궤를 안치할 성전을 만들 계획까지 가졌다 (삼상 7장).  이런 특심있는 적극성은 다윗의 개성 때문이라기 보다 언약적 원리 자체가 얼마든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고 다윗은 단순히 그 원리를 따라서 행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베스는 자기에게 특이한 이름을 지은 어머니의 뜻과 같이 언약적 원리를 따라서 역동적인 기도를 언약의 하나님께 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신 것이다.  이런 기도가 역대상에 있음으로서 이 기록을 읽는 1차 독자인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큰 용기를 얻고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도록 하는 목적으로 이 내용이 역대상 속에 담긴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신약시대에 야베스의 적극적인 기도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적극적일 뿐 아니라 혁명적이 폭발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야베스의 두가지 기도는 여전히 두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새 시대의 새 언약의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다.


야베스의 기도가 기록된 것은 개인의 믿음 생활을 크게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역대기 기자의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적극적으로 이루어가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운동을 위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하는 공동체를 위한 적극적인 삶을 사는 인물들을 일으키는 운동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을 이 본문은 신약적으로 말한다. 


  이제 그렇게 태어난 야베스는 첫째 기도로서 지경을 넓혀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무엇보다도 공동체적으로 할당된 것처럼 보이는 지경을 넓히는 일이 가능하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믿음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더 적극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데 두가지 예를 보일 수 있다.  먼저 기독교 역사상 1400년의 수치가 있는데 그것은 한 번도 제대로 정복해 보지 못한 이슬람종교의 영역과 그 사람들이다.  이것을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한국교회가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욕일까 ?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슬람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으로 제대로 정복되어보지 못한 교회내의 세속성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요일 2:16,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창 3:5)을 극복한 개인과 공동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  이런 정복안된 지경을 달라고 요구하는 한국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야베스의 기도를 따르는 것은 아닌가 ?


  야베스의 둘째 기도는 첫째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 지경을 넓히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따르는 고난과 환란이 자기를 피해가도록 기도한 것이다.  제 3경륜의 시대에는 대적의 차원이 육신적인 차원을 벋어나서 영적인 차원으로 발전되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그러므로 야베스 시대를 능가하는 고통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나 그런 대적자들과 환난을 주는 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육체를 죽이나 영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며 동시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 (히 12:35)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자폭단체를 만들어내는 극렬분자들이 만연한 이슬람을 이기는 방식은 우리의 이러한 각오와 실제적인 고난받음에 있는 것이다.  단순히 고난이 피해가도록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없어질 세상에 오래  남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하늘나라의 더 큰 소망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사랑의 원자탄이 되는 결단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야베스의 기도를  따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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