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8장,그리스도인의 자유

호리홀리 2015. 6. 9. 17:01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레코-로만 문화권에서는, 이교도 신전에서 신에게 희생제사를 드린 사람이 종종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제사를 지낸 고기들을 같이 먹기 위한 잔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한 잔치는 그 신의 신전에서 열렸다(참조, 8:10).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사교(社交)적인 모임은 종교적 의례(儀禮)라기 보다는 저녁을 겸한 파티와 같았다. 그러나 이교도의 신들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런 곳에 참여하는 것이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유혹은 꽤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지 일반 문화에 대한 사회적 압박감 때문만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시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린도 교인들 중 몇몇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8:4) 자신들의 지식(gnõsis)에 자신을 갖고 이교도의 신전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만찬 자리에 참가하는 것이 아무런 해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바울이 ‘약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들은(8:7) 그러한 행동들로 인해 시험에 들거나, - 바울이 여기서 더 좋지 않은 경우로 취급하고 있듯이 - 소위 ‘강한’ 자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마음에 거리끼면서도 같이 그러한 신전의 만찬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8:7, 10; 참조, 롬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예를 들어보자. 고린도에 있는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에는 희생제사를 올리는 사당뿐 아니라 즐기기에 좋은 큰 뜰로 열려있는 여러 개의 연회장이 있었다. 부유한 고린도인들은 이 연회장에 자주 초대되었다. 이곳에서는 자주 생일 잔치, 결혼식, 신유사례(神癒謝禮) 잔치 등이 벌어졌다. 

이런 장소에 가서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사교상의 예의였다. 물론 나온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초대한 주인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부유한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잔치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어야만 하는 경우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에 아래 계층에 속한 가난한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자주 있지 않았다. 가끔 대중 모두에게 특별히 고기가 하사되는 종교 축제 때나 이런 자리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도 고린도 교인들과 바울의 주장 사이에는 야릇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8:1

교인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지식을 갖고 있다”

바울: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은 공동체를 세운다.”

   

(1) 지식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원리에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1절)

(2) 내가 신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나를 알아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2-3절).

(3) 저들의 지식: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도 아무 것도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우상과 우상의 제물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것을 먹는다 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4-6절).

(4) 그러나 이런 신학적 지식을 갖지 못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마음의 자유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우상이 옛날에 섬기던 신으로서 그 영향력이 실제로 느껴진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한 개종자들이다. 그래서 우상 앞에 가면 옛 신에게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에 대해서도 실제로 옛 신을 통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들의 표현을 빌자면 아직 양심이 약한 자들이다. 이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외부의 압력이나 식욕 때문에 그것을 먹을 때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된다. 자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행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7절, 참고,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5) 먹는 것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위 지식을 갖고 있어 자유롭다는 당신들이 신전에서 앉아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볼 때 그 준비 안 된 양심 약한 형제들도 덩달아 같이 먹으면서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러면서 이들은 예전에 벗어버렸던 우상숭배의 혼란스러운 행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겨 범죄하여 스스로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당신의 신학적 지식이 약한 형제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형제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은 당신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참고: 마 18:6, 막 9:42, 눅 17: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막 9:42]). 자유… 좋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범죄하는 일이다(8-12절).

(6) 이런 경우 나라면… 형제를 실족하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