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14장,바울의 1차 선교여행

호리홀리 2015. 6. 2. 12:48

14:1-7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160km 정도 가면 티우루스와 술탄 산맥 간에 놓여 있는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보면서, 그 강들에 의해 많은 물을 공급받는 매우 오래된 도시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터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코냐(konya)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는 여전히 헬라 도시였으며,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고니온은 서쪽, 북쪽, 남쪽으로는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동쪽으로는 또 하나의 넓은 평원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 여기가 방위의 기점이 되어 넓은 그 지방의 교통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사도들은 조그마한 마을들을 지나 이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왔다. 이 곳은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회당이 많이 있어서 사람이 많이 모이므로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함께”라는 (kata> to> aujto>)는 (함께, 공동으로)로 해석할 수 있으나 아마도 여기서는 다른 경우들처럼 “같은 방식으로, 마찬가지로”이다.즉 이고니온에서도 안디옥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하였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는” 이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믿지 아니하는”으로 볼 수 있다. 즉,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 하였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선전 활동에 의해 단념하지 않고, 심지어 그런 공작 때문에 두 사도가 거기 머물러서 오래 있어 그릇된 증거를 바로 잡아 주고 참된 증거를 하면서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말했음을 엿 볼 수 있다. 말씀과 표적 간의 밀접한 관계, 즉 표적이 말씀을 확증해 주는 것에 대해 보게 된다.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십자가의 복음이 미치는 곳에 신앙과 불신앙이 나누어진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바요(마 10:35, 눅 12:5), 데살로니가에서도 있었던 현상이었다(17:4-5) ‘두 사도들’에 해당하는 ajpostovloiV’는 ‘사도들’이라는 말이다. 본서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라고 칭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여기서도 안디옥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평화를 깨치는 소란을 피우는 선동자라고 욕을 먹을까 두려워 성내의 지도자와 협력하여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꾸몄다. 그들이 돌로 치는 등 다른 악한 일을 꾸며 습격하려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형에 처할만한 벌을 줄 때는 으레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루스다라는 이고니온으로부터 남남서쪽으로 약 6시간 걸리는 거리(45km)에 있는 카툰 세라이(Khatyn Seri)에 있으며, 계곡의 중앙에 있는 작은 산위에 세워진 성으로서 해발 약 1,100m 높이에 있으며 이고니온보다는 약 130m가 더 높다. 더베는 로마 영토의 남동쪽에 있는 국경 도시이다. 위치는 루스드라 동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말씀하셨고 또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 10:23)고 말씀하셨는데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는 주님의 이 명령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물론 이는 이고니온 지역에 대한 선교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에 불과했다. 이는 그들이 제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환할 때, 이 지역을 다시 들렸을(21절) 뿐 아니라 후에 바울이 이곳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내 그들의 신앙을 지도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14:8-18

루스드라사건

8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여기서 하반신 마비자에 대한 설명이 ‘발을 쓰지 못하는’,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란 이러한 중복적인 표현은 본래 직업이 의사였던 본서 저자 누가가가 전혀 걸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의 상태를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이 사람을 ‘네 발로 일어서라’는 말 한 마디로 완치시켜 주는데, 이는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은 하반신 마비자를 완치시킨 것(행 3:1:10)과 평행을 이루는 사건이다. 저자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베드로와 동일한 기적을 일으킨 사실을 통해 그가 열두 사도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는 사도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그의 사도됨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두 사건에서 앉은 뱅이는 나면서부터 걷지를 못했으며, 병을 고쳐준 사람이 앉은 뱅이를 “주목하여 바라보았으며” 앉은뱅이가 이적의 성공을 입증하기 위해 뛰어 걸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물론 약간의 차이점도 있기는 하다. 즉 바울의 경우는 앉은뱅이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병을 고치게 되었다. 그런데 3장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루스드라의 경우에는 고침을 받은 병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주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1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루스드라 도시로 들어가는 문에는 신전이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쓰스와 헤메가 그곳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신전이었다. 무리들의 미신적이고 심지어 광신적인 행위는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지방에 대한 배경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루스드라 사람들은 이웃지방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만일 신들이 그들의 지역을 다시 방문한다면 불친절했던 부루기아 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람들은 신들이 그들을 다시 방문했다는 그들의 믿음을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쳤다. 바나바는 쓰스 바울은 헤메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쓰스는 헤라의 주신 제우스로, 로마의 주피터에 해당한다. 제우스는 올림푸스 산위에서 세상을 분담 지배하는 신들을 총리하는 신이었다. 헤메는 로마의 머큐리(Mer쳐교)로 제우스의 대변자, 신탁 전달자, 언어의 발명자 또 웅변의 신이었다.  바나바를 제우스라 한 것은 그의 풍체가 좋았기 때문이며, 바울을 헤메라 한 것은 키가 작고 신체가 약하며(고후 10:10) 바울이 웅변을 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만일 신들이 루스드라 사람들을 방문한 것이라면, 신들은 마땅히 영광을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쓰스 산당(이 산당은 루스드라 성문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사장의 지휘 아래 제자에 사용할 소들을 끌고온 것이다. 이소들은 신들게 드려질 짐승답게, 양털로 된 화관과 리본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근심과 슬픔을 표시하는 유대적 관습이며, 주로 개인적인 슬픔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가 되는 일을 목도했을 때 취하는 행동이다(스 9:3;에 4:1;욥1:20; 마 27:65)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취급하는 것에 깊은 슬픔과 애통함을 느껴 옷을 찢고 소리질렀다.

15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이 회당에서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회중이나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뒤섞여 있는 무리를 대상으로 말할 때에, 그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근거를 찾았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교적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구약성경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창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호소하고 있다. 그는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 있는 땅과 빛나는 해와 별이 총총히 박혀 있는 하늘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질책하고 있다.


14:19-28

유대인들의 바울 박해와 돌 맞은 바울의 기적적 소생 및 안디옥 귀환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이고니온에서는 바울을 돌로 치려고 음모를 꾸몄었지만(5절) 여기 루스드라에서는 그를 실제로 돌로 쳤다. 그것은 사법상의 처형이 아니라 사형이었다. 그가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고후 11:25)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때를 가리켰던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복음의 원수들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그가 죽은 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19절)

20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루스드라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한 결론이 다시금 박해의 주제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박해가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다른 지역(“더베”)에의 선교활동을 위한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리고 21절에 의하면 더베에서의 활동은 아주 성공적이었다(“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

23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24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28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을 통과하여 갈라디아 도(道)의 최남단 지방인 비시디아로 들어와 이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밤빌리아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들은 버가에 이르러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곳은 전에 그들이 구브로(13:13)를 떠나 소아시아에 상륙했을 때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후 그들은 계속 남쪽으로 여행하여 오늘날의 악수(Ak Su)에 해당하는 카타락데스의 항구 도시 앗달리아(오늘날의 안탈랴[Antalya]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배타고 오론테스(Orontes)강의 항구를 향해 항해하였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인 1차 전도 여행은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