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1:14,성육신

호리홀리 2015. 5. 5. 21:33

14절. λογος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처를 취하시고·····.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 ” 창조와 계시의 수단이 되셨던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 육신은 하나님께 적대하는 의미가 아니고 피조물이라는 하나님과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 영적인 조재와 분리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신적인 로고스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제약성을 나누게 되었다. “되었다.”는 aorist로 한 시점을 지칭한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로고스가 시간 공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창조의 중보자였던 로고스가 시공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엄청난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격 즉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그리스도의 인격의 역설을 한마디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배제해야할 오해는 2세기 말에 시작이 된 도케티즘이 배격이 된다. 어떻게 영적이고 신적인 존재가 물질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느냐? 예수가 단지 결합해서 육신이 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못박힐 때 영적인 예수는 떠나고 인간 예수가 못 박혔을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 도케티즘적인 기독론은 진정한 계시를 불가능하게 한다. 계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계시할 수 있다. 예수의 신성이 천명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계시하실 수 있다. 또 인간이 인간에게 완전하게 계시한다. 인간으로서만 하나님을 인간에게 완전히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신성 인성 둘 중 하나가 약화되면 계시가 안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로고스로서의 완전한 성육신이 완전한 계시자가 되어 하나님을 완전히 보여주고 인간이 되어 인간에게 하나님을 완전히 보여줄 수 있다.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시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가 계시되는 상황속에서 동시에 감추어져 있다. 계시되는 하나님은 감추어진 하나님이다. 인간을 통해서 계시되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보인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인간 예수만이 보인다. 성육신의 교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며 감추어짐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또 계시의 sacremental character를 나타내 준다. 하나님이 육신안에서 육신을 통해서 계시한다. 곧 인간 예수가 하는 것 말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이다. 동시에 이것은 시공에서 일어나는 물질적인 물리적인 현상이다. 이 물질적인 형상들이 영원한 하나님을 계시하는 수단들이다. 영원한 하나님을 표징해 준다. 계시해 주는 물질적인 형상들을 sacrement라 한다. sign이다. 그래서 예수가 행하는 것들 말하는 것들은 영원한 로고스의 sign들로서 물질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띄고 신성을 띈다.




“거하신다” σκηνοω라는 말은 텐트속에 거한다. 정착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히브리어의 ןכשׁ과 발음과 의미가 똑같다. 그래서 아마 요한복음의 저자가 이 단어를 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אנכשׁ라는 명사를, 명사의 원천은 동사인데 이 말은 유대교에서 중요한 신학적인 언어였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나타내는 말이 ןכשׁ, אנכשׁ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의 성막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 그의 임재하심(אנכשׁ)을 나타낼 때 어떤 외적인 현상이 나타나느냐? 구름과 빛의 현상이 나타난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ןכשׁ하고 성막에 אנכשׁ(임재)하시고 구름과 빛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보고 דבק(영광)이라 했다. 이 짧은 문장에 이런 뜻이 들어있다. 옛날 출애굽 당시 야웨가 그들 백성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의 성막에 임재하시면서 sign으로 빛이 내려 쬐고 구름을 보여주었듯이 그로 하여금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영광을 보도록 보여주셨는데 이제는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서 우리들 가운데 אנכשׁ했다. 그래서 그의 영광을 우리가 보게 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의 나타나심, 자기 백성의 구원자로 나타나심의 theophany의 완성으로 예수의 성육신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은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셔서 거하시고 나타나신 것과 같이 그 구원을 완성하는 사건이다.


“영광”이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로는 “좋은 의견” “좋은 영성”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본질의 나타나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질이 인식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이 계시되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로 인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본질, 창조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고 구원주임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다. 로고스가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을 나타내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 임재하시면 그 표로 구름과 빛의 현상이 나타났다. 구름과 빛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과 빛을 דבק라고 하고, 70인경에서는 δοξα라는 말로 나타낸다.




구약과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종말에 시온에 드러난다. 영광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지면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고 하나님의 본질을 알게 된다. 그러면 자기가 지금까지 섬기는 신들이 거짓임을 알고 우상을 버리고 시온에 와서 진짜 신인 야웨를 섬기게 된다. 이것이 선지자들과 묵시가들의 위대한 vision 이었다. 이방인들의 시온에 대한 종말론적인 순례라 한다. 선지자들의 vision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바울의 신학의 근간을 이룬다.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에 나타나는 것은 종말론적인 소망이다. 요한과 요한의 저자는 예수오심이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에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영생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2장부터 예수안에서 그가 말하고 행한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예수의 이적을 통해서(2:11, 11:4, 40)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고 특히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예수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광을 취하나(5:44, 12:43)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므로(5:41, 7:18, 8:50)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낼 것이다.




여기에 아주 심오한 사상이 있다. 예수가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예수보다 커야 한다. 그러니까 본질적인 동등함과 기능적인 순종 복종의 상태의 두 가지가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자이기 위한 조건이다. 하나님적인 로고스가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여줄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나타내려 한다. 예수의 하는 말과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말과 뜻만을 이행하니까 그렇다. 그래서 본질에서 뿐아니라 의지에서는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자가 된 것이다. 어디에서 완성이 되느냐? 십자가에서 바로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완성이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 나타난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낸다. 사랑으로 하나님의 구원자이심을 나타낸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림은 하나님의 본질을 확연히 드러낸 것이다. 십자가에 죽음이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냄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이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역으로 말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 하나님의 계시자이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을 사랑이심으로 나타내며,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에 죽음이 고난 받으심이 아니라 예수의 영광 받으심이다. 예수의 본질이 드러남의 의미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계시자,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런 역설적인 의미가 있다.




“그 영광이 아버지로 부터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영원한 로고스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아들이라는 그림언어를 쓸 수 밖에 없다. μονογηνης(독생자)라는 말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독특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바로 이와 같은 아들의 근본 의미는 상속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본질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성육신하신 그가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을 같이 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독특한 아들이기 때문에 또한 순종한 자다. 완전한 순종을 아버지께 하는 자다. 아버지의 본질에 동참하며 동시에 완전히 순종하는 자이다. 그래서 계시의 두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의 영광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는 분이다. 그 계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이다.




출 34: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은혜와 진리”라는 말은 출애굽기 34장 5절 6절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에 충실하심, 언약을 신실히 지킴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해서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는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 말은 그들을 보호, 인도, 구원하겠다고, 사랑,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은 그의 보호, 인도, 은혜에 의존해서 살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도록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약에 항상 신실하지 못했다. 이것이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자기 쪽의 의무를 신실히 지키신다. 이스라엘이 불성실하고 죄를 범할 때에도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다. 이 신실하심이 죄의 용서와 구원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구원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것을 하나님이 의롭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언약에 신실하심은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런 것을 여기서 나타내고 있다. 로고스가 성육신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인류에게 그의 창조주로서의 언약을 지키심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에게 창조주로서의 언약을 지키심이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심은 온 피조물에게의 신실하심이다. 로고스의 성육신 사건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지킨 사건, 구원의 사건이다. 또 그것은 인류에게 창조주로서의 신실하심을 보이는 행위로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사건이다. 그래서 그 성육신한 사건은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심, 구원자로서 사랑이심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낮아짐은 은혜의 사건이고 그것은 하늘에서의 실재를 이 물질의 세계에 가져온 사건이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이다. 진리라는 말은 헬라세계적인 사고로 말하면 진짜세계의 것이다. 가짜의 세계에 진짜의 세계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가 가짜 세계 시공으로 들어온 것이다. 1:14절은 복음의 주제를 천명하는 말이다. 복음을 정의하면서 동시에 요한복음의 논지를 천명하는 것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즉 성육신한 로고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하나님의 본질 곧 하나님이 사랑이고 진리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분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2장부터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 사역이 기술될 것이다. 이 삶, 가르침, 사역은 한 인간의 사역이다. 곧 육신의 세계에 일어나는 육신의 활동들이다. 그런데 이 육신은 신적인 로고스의 성육신으로서의 육신이기 때문에 그의 삶, 가르침, 사역은 모두 하나님을 계시하는 사건이다. 나사렛 예수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들임을 보여줄 것이다.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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