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38장,유다의 고난

호리홀리 2015. 4. 10. 13:54



        37장은 요셉을 종으로 파는 이야기이며, 39장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이 사이에 유다와 다말을 주인공으로 한 38장의 이야기가 주어진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앞 37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난다. 먼저 37장에서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야곱은 음부로 내려갔다. 38장으로 넘어오면, 요셉의 다른 형제들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갔다”(1절). 이리하여 유다가 전면에 나오게 된다. 37장은 요셉의 고난을 통한 후대의 축복의 이유를 보여주며,38장은 유다의 고난을 통해서 후대의 축복을 보여준다. 고난의 질과 양은 달라도 성화를 보여준다.오경은 요셉의 실질적장자권,유다의 메시아권을 계속 보여주고있다.

 이 장은 ‘시간’ 표시를 통하여 네 개의 장면을 우리에게 소개하여 준다(1상, 12상, 24상, 27상).

        4.1.이방결혼하는 유다(1-11절)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취하여 동침하였다”고 한다(2절). 그리고 그는 ‘엘, 오난, 셀라’라는 세 아들을 낳았다. 이후에 세월이 많이 흘러,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얻었다. 그러나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였고,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제수혼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오난은 다말을 통하여 낳는 후손이 그의 것이 되지 않고, 형님의 것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씨’를 주지 않자, “이 일이 여호와 앞에 악하였으므로” 주님께서 오난도 죽이게 된다. 유다는 다말에게 ‘수절하고 집에 있으라’고 말하며, 막내 아들 셀라도 두 형의 운명을 당할까봐 염려한다(11절). 여기에서 유다는 야곱과 달리 두 아들이 죽었는데도 울지도 않고, 침묵하고 있다. 유다는 ‘다말’에게 “너는 네 친정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로 살고 있거라”고 명한다. 즉, 다말을 ‘과부’로 감금하고 있다.

        4.2. 창녀를 찾는 유다(12-19절)

        ‘얼마 후에’ 유다는 아내도 잃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유다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12절). 즉, 공식적으로 죽은 아내에게 조의를 표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두 아들을 잃고, 아내도 잃었지만, 유다는 위로를 잘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이 때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말의 행동이 대범하다.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14절). 여기에 일련의 동사들이 고리를 잇고 연결되고 있다.
        먼저 유다가 다말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16절). 그는 다말이 그의 자부인지 모르고 있다. 이것은 그가 다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자부에게 베풀어야 할 법적인 의무를 잊고 있었다. 그 동안 다말은 유다가 시키는대로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다말은 “가서... 과부로 친정집에 있었다”(원문에 따르면 11절 끝에 두 개의 동사 만 나타난다).
        유다는 다말을 한없이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아내와 사별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에 잠시도 참을 수 없었다(16절). 여기에 흥미로운 상거래가 나온다. 유다는 다말에게 “내가 들어가게 하라”고 말한다. 다말은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라고 묻는다(16절). 이 때 유다는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현찰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말은 현금을 주기까지 ‘어떤 약조물’을 주겠느냐고 되묻는다(17절). 유다는 ‘무엇이면 좋겠느냐?’고 묻고, 다말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하였다여기에서 유다와 다말의 대화와 거래는 앞 장에서 요셉이 도단에 왔을 때 유다와 형제들의 대화와 거래를 상기시켜 준다. 유다가 ‘염소 새끼’를 약속한 것은 앞 장에서 요셉의 옷을 ‘염소 피’에 묻혀 보낸 것을 상기시켜 준다. 유다는 르우벤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자신의 뜻을 이루었으나, 여기에서는 다말의 음모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유다는 다말에게 "주었고, 들어갔고, 그녀는 잉태하였다"(18절). 유다는 숨도 쉬지 않고 일을 보았다. 일을 마친 후, 다말은 다시 “일어나, 떠나가고,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옷을 도로 입었다”(19절, 창 27:14-17의 리브가와 비교하라). 여기에서 ‘과부의 의복’은 아마 ‘상복’이었을 것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요셉의 채색옷’과 르우벤의 옷과 야곱의 옷이 찢겨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유다는 줄초상이 나도 한 번도 그의 옷을 찢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말에게는 ‘과부 옷’ 만을 오랫동안 입혀두고 있었다.
        얼마 후, 유다는 아둘람 사람을 히라를 통해 딤나에 있는 ‘창녀’(qodesha)를 ‘찾게 한다.’ 유다는 다말을 일반적인 창녀로 이해하였다. 이 단락에서 ‘창녀’라는 단어는 세 번이나 나오며(15, 21[2회]), ‘찾다’라는 단어도 세 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찾지 못하였다.’ 유다는 당황하였다.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23절).


        4.3.유다의 회개(24-26절)

        석 달이 지나고 드디어 다말이 잉태한 이야기가 유다에게 들렸다.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창녀짓을 하여 임신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24절). 여기에서 ‘행음하다’(zana)와 ‘창녀짓을 하다’(zenunim)는 용어는 둘 다 앞에서 “유다가 창녀를 찾다”와 연결되고 있다. 유다는 이 소식을 듣고 표정하나 일그러지지 않고, 잔혹하게 말한다. " 그를 끌어내서 화형에 처하여라"(24절). 유다의 이 말은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그는 창녀와 쉽게 잤었지만, 며느리에겐 도덕군자처럼 행세하며, 준엄한 법관처럼 사형을 언도하고 있다. 앞에서 그는 다말에게 끝도 없이 기다리게 하였으나(11절), 이제는 단숨에 처형하고자 한다.  
        그 때, 다말은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말은 또 말을 계속하였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25절). 여기에서 다말은 ‘이것을 알아보소서’(haker-na)라고 말하였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wayaker)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한다(26절). “그는 나보다 옳도다”는 말은 매우 짧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는 무슨 말인가? 앞에서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14절)고 하였다. 즉 유다는 다말의 입장을 인정해 주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 유다도 처음에 다말에게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하였다(11절). 그러나 그는 ‘기다리라’고 만 말하였지, ‘제수혼’을 시키겠다는 약속은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오난의 죄’와 연결되고 있다(9절). 오난은 행동으로 ‘형의 씨를 보존하는 일’을 기피하였지만, 유다는 전략적으로 기피하고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시아버지’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포켈만은 “막내아들 ‘셀라’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자부 다말에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는가?”라고 묻는다(Fokkelmann, 178).
        앞의 37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판 후, 야곱에게 피묻은 요셉의 옷을 가져가서, "이것을(zo't) 우리가 발견하였사오니, 이것이 당신 아들의 옷인지 알아보소서(hakerna)"(37:32)라고 말하였으며, "그는 그것을 알아보고(wayakirah) 말하기를,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tarof toraf yosep)"(33절)라고 대답하였다. 이제 유다가 그의 약조물을 알아보고 인정하고 있다.

        4.4.  베레스와 세라(27-30절)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가면, 다말은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으며, 이들을 통해 유다의 계보가 이어진다.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은 유다가 이전에 잃은 두 아들인 엘과 오난을 보상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였다.” 이제 다말을 통하여 새로운 자녀들이 태어나고 있다. 베레스와 세라의 탄생 이야기는 전형적인 야곱 집안의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다.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27-30).
        여기에서 우리의 눈은 ‘홍사’에 집중된다. 산파들은 쌍둥이들 중에 먼저 나오려는 아들에게 “이것이 첫 번째 나온 것이다”라며 홍사를 매어주었는 데, 그가 먼저 나오지 않고, 둘째 아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출산의 순서가 역전된다. 산파들은 놀라며, 두번째 나올 아들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네가 어떻게 터치고 나왔느냐?”라며 ‘베레스’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것은 바로 야곱과 에서의 탄생 장면을 반영해준다(창25:22-26). 그 때, 야곱은 ‘붉은 에서’의 발목까지 잡았지만 밀렸고, 이제 ‘베레스’는 ‘붉은 줄’을 매어준 ‘세라’를 제치고 먼저 나오게 된다. 이후에 베레스가 유다의 가계를 이어가게 되며, 보아스의 조상이 되고, 나아가 다윗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리하여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창25:23)라는 창세기의 주제가 다시 천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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