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여호수아(구속사)

여호수아 1:1-9,새로운출발

호리홀리 2015. 4. 9. 11:53

새로운출발(수 1:1-9)

 

      다윗의 후계자로 솔로몬이 세움 받고(왕상 1장), 엘리야를 이어 엘리사가 세움 받으며(왕하 2),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12 사도가 계승하는 이야기(마 28)와 거의 동일한 패턴이 나오고 있으며, 영적 지도력의 전환과 계승 문제에 대한 건전한 성경적 모델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 분기점을 마치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서는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세대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특이한 백성들이다. 그들은 ‘이집트의 종’으로  출발한다. 그들의 조상은 모세의 말대로 ‘유리하는 아람사람’이었다(신 26:5).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눈을 떴을 때에, 그들은 ‘바로의 종’으로 학대와 중노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바로는 너무나 지혜로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채찍과 당근으로 압박하고 무마하면서, 영원한 종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였다. 그들은 울부짖었고, 하나님은 구원자 모세를 보내어 주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다.

1.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임명(1절)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는 ‘여호와의 종 모세의 죽음’ 앞에 직면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종 노릇하던 애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자유와 해방을 준 모세가 죽었다. 고집 센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40년 간 광야생활을 하고 이제 약속의 땅의 문턱으로 인도한 모세가 죽었다. 이스라엘에게 법과 제도를 세워준 모세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수 천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지도자를 이스라엘은 잃었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슬픔뿐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가 떠날 때 극심한 혼란들을 많이 경험하였다. 역사 속에 항상 이런 어려움이 있다. 이제 더 큰 일을 해야 하고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데 ‘여호와의 종’이 죽었다

백성들이 슬픔과 혼돈 가운데 있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부르신다.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는데 있어서 여호수아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40년 동안 모세와 함께 지내면서 모세의 믿음과 삶, 철학과 신념을 눈 여겨 보며 준비되었다. 그는 그의 첫 전투였던 아말렉 전투에서 힘차게 싸웠다. 이후 그는 다른 10명의 정탐꾼과 함께 약속의 땅을 정탐을 하고 성실한 보고를 했다. 이 보고가 어려운 것은 10사람과 다른 보고를 하기 위해, 자신의 시각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십계명을 받을 때 모세 가까이 있었다. 여호수아는 단지 한 명의 새로운 지도자가 아니라 새로운 모세요 모세의 분신이다. 새 일을 위해 하나님은 새 지도자를 준비하셨고 이제는 세우고 있다. 

        2. 새 출발 새 비전(2-4절) 

  종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향하여 ‘이제 가라’고 말한다.  과거 속에 묻혀 살지 말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모세의 무덤을 뒤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모세가 훌륭하고 그와 나눈 정이 두터웠어도 새 지도자와 함께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찬란한 과거를 묻어두고 새 역사의 장을 써내려 가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죽었다고 하나님의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모세가 훌륭했고, 그의 업적이 빼어났다 할지라도 새 시대의 사람은 새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가라”(1:2). 지도자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아무리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도, 독주하지 않고 백성들과 더불어 나아가야 한다. 낙심하고 낙오한 사람도 격려하고 함께 전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동 운명체를 가진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른 사람이 세워야 한다.
        “이 요단을 건너 내가 주는 땅으로 가라”(2절). 여호수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싸우지만 구체적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맡았다. 가나안 사람과 싸우고 그들의 전차부대와 싸우고, 그들의 성벽을 넘고, 그들의 전략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차지해야 했다. 우리에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신령한 삶을 살며, 주님의 제자가 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마치 요단을 건너는 것 같다. 인간의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야 한다.

        3. 임마누엘의 약속(3-6절)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셨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절). 강한 나라들이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무서운 전설적인 용사들이, 아낙 족속들이 전차부대를 갖고 있다. 누가 그들을 당할 수 있을까? 여호수아는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가 전투적이 되고 힘을 내어 싸우면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패색이 짙고, 회의주의의 발목에 잡혀있지 않는가? 주님의 이 약속을 믿는가? 날마다 이 약속을 믿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5절). 여기에서 ‘함께 있다’는 것은 언약문구이다. 전쟁의 배경 속에서 ‘함께 한다’는 말씀이다. 이사야 7장에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실 때도 전쟁의 상황이었다. 같은 이사야 41:10 이하를 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이 반복된다. 43장에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강을 건널 때에,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다.
        구체적으로 ‘너를 떠나지 아니한다. 버리지 아니한다’고 말씀한다(5절하). 하나님의 백성은 확고하고, 강건하고, 진취적이고, 더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의존자이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홀로 설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가진 자여야 한다.
        왜 이런 격려의 말씀이 여호수아에게 필요하였는가? 그것은 단번에 완전한 승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가나안 사람은 많고 강했고 끈질겼다. 주님이 너무 쉽게 승리를 주시면, 그들의 마음은 쉽게 교만해 질 것이다. 조금씩 일을 이루어가야 한다. 성장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내와 용기로 꾸준히 그들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들의 일이 거품이 되지 않고 다 알곡으로 자라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며,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명하신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말씀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려는 모든 제자에게 주신 말씀이다(마 28:20).

        4.성결(7-9절)        

        7-8절에는 새로운 말씀이 나온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에서 주님은 개인적인 성결을 요구하신다. 언약의 표지를 지키라고 당부하신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당시에는 ‘모세의 율법’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도 이 말씀의 권위와 영감을 믿고 실천하여야 했다. 지금 여호수아는 거룩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거룩한 전쟁은 없다. 여호수아서 전체가 거룩한 전쟁이다.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는 말씀은 시편 1:2의 말씀이다. 말씀 묵상에서 힘이 나온다. 말씀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이 지혜로워 우리로 수 천명의 선생님들 보다 지혜롭게 만든다. 주의 말씀이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의 빛이시다.
        거룩한 전쟁에서 율법을 지키면, 형통할 것이다. 말씀 따라 살 때,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말씀을 떠날 때, 아이성에서 패배하였다. 우리의 싸움이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싸워야 한다. 주의 영광을 위해 살 사람은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살아가야 한다.

        5. 새 지도자 여호수아         

       만약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 연대성이 없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역할을 새롭게 해나가야 한다. 이 두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의 사역에는 뗄 수 없는 연관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모세가 했던 일을 여호수아에게 완성시키며, 모세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주신다.
        (1)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는 사명을 받는다(1:4). 여기에 나온 약속의 땅의 이상적인 경계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었다.
        (2)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신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처럼 너와 함께 하리라”(1:5). 여호수아는 모세가 누린 하나님의 임재를 계속하여 경험할 것이다.
        (3)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에 헌신하여야 한다(7절). ) 1:8은 ‘모세의 율법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임마누엘의 약속은 시내 산 언약을 충실히 지키는 자에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따라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시지만 백성들은 모세의 언약을 지켜 행할 때 형통할 것이다. 즉 순종과 불순종, 생명과 죽음의 선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여호수아는 생명을 선택한다. 그러나 후대의 이스라엘은 죽음을 선택하여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4) 모든 백성들이 모세를 대하듯이 여호수아에게 순종했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할 것입니다”(1:17). 이리하여 여호수아는 새로운 모세로 부각되어 간다.
        (5) 모세와 여호수아의 연대성은 1장뿐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요단 강을 건너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라’고 말한다(3:5). 이 명령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한 말과 일치한다(츨 19:10, 14).
        (6)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널 때 요단 강이 끊어진 것(3:13)과 다시 흐르게 된 사건(4:18)은 옛날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과 동일하게 묘사된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모세로 끝나지 않았고 여호수아의 역사 속에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7) 요단 강을 건넌 후, 주위에 있던 모든 왕들이 큰 두려움을 느낀 것(수 5:1)은 홍해를 건넌 후의 사건에 대한 반응과 동일하다(출 15:14-16).
        (8)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는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 섰다(5:13-15). 그 때, 군대장관은 “너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였다(5:15). 이것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의 신을 벗은 것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