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잠언(구속사)

잠언1:7,지식의 근본

호리홀리 2015. 4. 6. 09:27

7절의(이르아트 아도나이 레쉬트 다아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여기서 근본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①시작, 처음(beginning), ②주된, 머리된(지위; chief) ③가치(cheice;차이세) → 고르고 고른 것, 최상의 것. 이 해석을 따르면 ③은 하나님 경외는 최상의 것이다. ②는 하나님 경외는 주된(chief) 지식이다. ①은 하나님 경외는 지식의 시작이다. ⇔ 이 3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①, ②, ③ 중 선택 가능한 것은 어디인가? 지식에 있어서 하나님 경외라는 것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견해를 말하면 “지식에서 제일 원리”라는 표현이다. 이 의미는 지혜, 지식의 앞에서 언급한 속성과 관련시키면, 지식은 옳고 바른 규범과 밀착되어 있다. 여기서 떠나면 참된 지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의미에서 하나님이 제일 원리된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바른 척도이다. 하나님께서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의 근원이시다.

이것은 어떤 사실에 근거하는가? 하나님이 세계 창조주와 통치자라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세계 창조주와 통치자로 세운 질서(영계, 사회 등)에서 세운 지혜가 바른 척도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이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인격으로 세계 통치자인 하나님과 관계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창조주와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경외이다. 세계 내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이 세운 질서, 그 질서의 인격적 주체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의 제일 원리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 경외가 지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신앙의 출발이 인식의 출발이라는 것과, 그 다음에 이성의 작용은 아니며,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하나님 경외하는 활동 자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 경외는 지혜, 지식의 출발, 전제요, 근본이다. 하나님 경외하는 행동 안에서 전체 지식 추구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간 삶의 어떤 부분도, 인간 지적 활동의 어떤 부분도 하나님 경외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Luther보다 Calvin이 옳다. 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근래 잘못 적용하여 하나님 신앙인의 영역까지 말하는데, 잠언에서는 특별한 영역인 신자의 영역이다. 이것이 무조건 확대되어 일반 세상에도 동일한 원칙 적용은 힘들다. 솔로몬이 교회 지도자로서 한 말이기에 이미 신자의 영역에 제한된 것이다.

첫째가 하나님 경외가 지식의 출발점이다.

하나님 경외와 떨어질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어리석은 자는 멸시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잠언에서 지혜는 어리석은 것과 대조해서 항상 말한다. 지혜를 신앙과 대비시킨 이성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이성이 모든 인간의 활동기관이라면 이성은 인간존재의 근본으로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성은 작용한다. 이성 기능에서 두 가지로 기능을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혜롭게 또 하나는 어리석게 기능할 수 있다. 신앙을 토대로, 하나님 경외를 토대로 하는 이성 활동은 지혜이다. 이것은 바른 삶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 경외를 목적으로 하는 이성 활동을 뜻한다.

하나님 경외없는,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하는, 독자적 이성 활동을 가리켜 어리석음이라 한다. 그래서 계몽주의 시대에 하나님을 제치고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께 독립하여 이성 사역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가장 많이 활동한다. 계몽주의 시대 지식을 포용하고, 논증하나 결코 바른 것에 도달 못하고 왜곡을 초래했다. 인간 존재의 기간 동안 이성은 멈추지 않는다. 인간 이성이 모든 것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은 한계가 있다. 원시 상태도, 인간 이성은 한계에 있었다. 타락 후는 더하다. 전도서 2장에서 이것을 말한다. 이성의 판단으로 세계는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말한다. 지식을 더해 보았자 고통만 더하다고 했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이성 한계 밖의 것에 대해 신앙을 빙자한 인식론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인간 이성이 오성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신앙한다고 한다. 여기서 이성과 신앙의 기능 영역이 갈라지고, 그 대상도 구분된다. 인간 이성의 초월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통해 파악하고,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받아 누리는 것이다. 그 자체가 초월적 대상을 파악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경외 떠난 이성으로만 세계 내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세이다. 신앙과 더불어 하나님 경외를 토대로 하여 출발점으로 할 때 인식이 가능하다. 자연계의 인식은 하나님의 피조물임과, 그 안에서 비 가시적 신성 파악까지 이르러야 한다. 신앙 떠난 자연과학은 우상으로 떠나게 되어 현상 자체에 만족한다. 모든 대상에 이성은 신앙과 더불어 지혜의 바른 인식에 도달하며, 여기에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이 함께 하여 능력을 준다. 이성으로 바른 인식하게 한다. 성령의 성화 역사 말할 때 단순한 인간 활동 아닌 지적 부분까지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 아는데 있어서, 세계 아는데 성령이 바르게 인도하신다. 신자에게 있어서 영역이 구분된 이분법 아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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