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레위기

희년(레25:8-34)

호리홀리 2015. 3. 30. 14:26

                희년(레25:8-34)

                  



성경에서 '희년' 개념은 레위기 25장 8-34절에 근거한 것으로, 일곱 안식년 후 즉 49년 후 첫 번 째, 즉 50년째가 되는 해를 가리켜 말한다. 희년(禧年)은 히브리어로 요벨(    )인데, 이는 '양각(羊角) 나팔'(a ram's horn)을 뜻한다(출 19.13; 수 6.5; 레 25장; 27.18, 23-24; 민 36.4).  여호수아 6장은 특별한 나팔인 요벨과 평범한 나팔인 수파르(    )를 분명하게 구별짓고 있다. 요벨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불 수 있으며, 따라서 거룩함과 초자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반면에 보통 나팔인 수파르는 일반 백성들이 부는 것으로, 여리고 성을 함락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런 종류의 나팔이었다. '큰 나팔'(사 27.13)이라고도 불렸던 요벨은 이방 나라에 정복당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요벨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됨으로써 특별한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희년의 나팔은 온 땅의 모든 거민(居民)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레 25.9-10). 즉 자유를 선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희년은 원칙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첫째는 어떤 이유로든지 지난 49년 동안에 종이 되었던 유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환경과 형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종이 되었던 사람들에게 토지와 가족과 자유를 돌려줌으로써 세습적인 노예제도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둘째는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로든지 지난 49년 동안에 타인에게 팔렸던 토지와 가옥이 원래의 주인이나 가족에게로 되돌려지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내에서 빈부의 격차를 억제하며 이스라엘이 평등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을 기대하였다. 즉 이 희년 제도를 설정함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평등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희년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내에는 세습적인 노예제도와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희년은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준다. 첫 번째 교훈은 실제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인간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예가 해방되고 빚이 취소되며 전당잡힌 토지나 가옥이 모두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대하고도 친절한 배려인 것이다. 이런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약자(弱者)의 위치에 있었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자들을 보호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사실 희년제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했던 여러 가지 구제제도 중 하나이다. 만약 희년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였더라면 이스라엘은 모든 국가들이 부러워할 복지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볼 때, 이 희년 제도는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현실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았던 이 희년 제도는 결국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한 특징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이 제도에 담겨있는 영적(靈的)인 의미이다. 비록 이 땅에서 가난으로 인해 빚을 짐으로써 집이나 토지를 빼앗기고 더 나아가 종이 된다 할지라도, 희년에는 이 모든 것이 청산되고 원래의 위치로 환원된다고 하는 것은 죄와 탐욕으로 인해 사단의 노예가 된 우리들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사단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희년에 고향과 가족으로 돌아가며 잃었던 모든 소유와 재산과 가족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얻는 성도들의 영원한 자유와 해방 및 안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구약에 뿌리를 둔 희년 제도에 대하여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곳은 누가복음이다. 특히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 설교의 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이 희년 제도였다. 이 구절은 이사야 61장 1-2절로부터 인용된 것인데, 레위기 25장 8-34절에 언급된 희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사실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로부터 이스라엘의 해방을 예언한 것이지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 및 죄로부터의 해방과 그 결과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누가는 이사야의 희년에 대한 묘사를 예수님 시대를 묘사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구절은 마가복음 1장 14-15절과 대조가 되고 있는데, 누가는 여기서 마가나 마태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와 그에 상응하는 회개를 강조하는 것 대신에 예수님의 도래로 나타나게 될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누가는 이사야 61장 2절 중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를 생략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시작되는 구원의 시대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19절의 '은혜의 해'는 세상의 달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선포되는 시기, 즉 메시아 시대(the Messianic Age)를 가리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 1-2절을 읽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말씀한 것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희년이 이제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구약에서는 희년 제도가 명령되기는 하였어도 실행되지는 못했는데, 신약에 이르러 예수님은 이 말씀이 오늘날 성취되었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희년을 성취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또한 귀신들린 자와 소경을 포함하여 각종 병자들을 치유하며(눅 4.38-41; 5.17-26; 6.17-19; 7.1-18 등등), 이방인이나 여자나 어린이나 기타 세리 및 창기 같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힘씀으로써 주님은 희년의 정신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사실 누가복음 4장 18-19절은 누가복음의 내용 전개를 암시하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이 구절에 소개된 프로그램을 따라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고, 눈먼 자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였던 것이다.  사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 눌린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들은 사실상 모두 가난한 자의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먼저 '포로 된 자'(ai`cmalw,toij)에 대해 말할 때 '죄의 포로'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쉽다. 물론 누가복음에서 이 단어는 이런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1.77; 3.3; 24.47). 그러나 우리는 복음서에서 그의 자료의 선택 및 배열 작업을 놓고 볼 때, 누가가 인간의 영적, 육체적 측면에 모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단어를 영적인 의미로만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한 팔레스타인 정복 이후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노예로 끌려가 로마 동부지방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런 견해는 누가복음 21장 24절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들 노예 중 일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터인데, 아마도 기독교 공동체는 그 내부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있었을 것이고, 누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그러한 관습을 승인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고대세계에는 종종 빚으로 인해 포로가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사실 여기서 사용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에 해당하는 헬라어(a;vfesij)는 고전헬라어와 칠십인 역(LXX)에서는 빚의 탕감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빚으로 인해 포로가 되었다면, 그 역시 대단히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와 함께 '눌린 자'(teqrausme,nouj; 압제 당하는 자) 역시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눈먼 자', 즉 소경은 남의 도움이 없으면 전혀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정녕 거지일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누가의 관심은 복음서 자체 내에서도 자주 발견되면서 다른 복음서들과 차별화를 이루며 누가복음의 주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누가의 이런 관심이 표현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6.20; 7.22; 14.13, 21; 16.20, 22; 18.22; 19.8; 21.3. 아울러 이와 함께 누가복음에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구제의 명령 또한 이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3.11; 6.35, 38; 11.41; 12.33). 또한 누가복음 전체를 통하여 누가는 마가, 마태보다 프토코이(ptwcoi,)는 단어를 더욱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들이 보통의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따라서 남의 도움이 없으면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 불구자, 소경, 문둥병자들과 같은 절대적 빈곤 자들이라는 사실은 누가가 말하는 가난의 정도가 어떠한지를 여실하게 들어내준다고 하겠다. 한 마디로 이들은 '도시의 쓰레기'(urban drags) 같은 사람들이었다.
한편, 4장 18-19절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설교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우리는 희년 정신의 성취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등장인물은 모두 네 명이다; 엘리야, 엘리사, 사렙다 과부, 그리고 나아만. 먼저 엘리야와 엘리사는 유대인이고,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이라는 점은 아마도 누가공동체가 이방인과 유대인의 혼합공동체였을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유력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보편주의를 근거로 하여 누가공동체가 이방인만의 공동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서, 혼합공동체라 할지라도 이방인이 다수이고 유대인은 소수인 그러한 형태를 띠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 세 명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의 여자인 사렙다 과부가 남자들과 함께 소개된 것은 여자를 남자의 재산의 일부인 부속물로 간주하지 않고 남자와 동등하게 간주한 것으로써 여자들의 신장된 인권(人權)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에 대한 이런 새로운 모습은 아마도 누가공동체에서도 이미 진행중이거나, 혹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누가의 기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기근으로 인하여 굶어죽게 된 사렙다 과부는 가난하였고 아람 국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은 부자였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왕상 17.12). 이러한 차이점은 아마도 누가공동체 내에 과부와 같이 가난한 자들과 나아만과 같이 부유한 자들이 함께 공존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가난한 과부의 등장은 4장 18절의 취임설교의 첫 마디에서 가난한 자를 복음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목한 주님의 메시지에 부합한 것으로, 주님의 사역의 방향을 역시 예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그 취임설교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장시켜 거론함으로써 당신의 사역이 어느 특정한 한 부류의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이나 남자들이나 부자들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됨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이방인이나 여자나 가난한 자와 같은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증거로써 간주될 수 있으며, 이 역시 희년 정신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취임설교에서 밝힌 이러한 희년의 원리와 정신에 따라 행동하며 그의 지상사역 동안 이 땅의 포로 된 자, 눌린 자, 눈먼 자, 즉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였던 것이다(cf. 19.10). 요컨대, 예수님의 사역이 희년의 구체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가난과 질병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죄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바로 희년의 정신이다. 구약에서 명령되기는 하였으나 시행되지는 못하였던 희년 제도가 예수님의 오심과 더불어 그 사역을 통하여 그 정신 및 원리가 성취되었다는 것, 사실 이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복음 4장 18-19절은 예수님의 도래,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그리고 또한 발생해야 될 현상에 대한 기록이다. 이제 이런 희년의 정신을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려면, 우리는 죄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복음 전도에 힘써야 할 것이며, 또한 가난과 질병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구제를 베풀면서 사회봉사에 힘써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복음전도와 사회봉사, 이 두 가지 원리가 희년을 성취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된다.
희년의 정신을 따라 사신 우리 주님의 모범적 삶을 성경을 통하여 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말씀하신 희년의 원리를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럼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이 이미 성취하신 희년을 우리 시대와 사회에 구체화시킴으로써,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오늘 우리 시대에 이 땅에서도 계속하여 이루어져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