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제2장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호리홀리 2014. 12. 9. 14:51

제2장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1. 이스라엘 거주 당시의 애굽 역사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하던 그 전후 애굽의 역사는 크게 4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 첫째는 기원전 약 1991에서 약1786에 이르기까지의 제12왕조 기간으로 이때에 애굽은 남과 북으로 갈려 있던 것이 바로왕의 주권 밑에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어 부귀와 문화를 크게 자랑하던 때요, 국경을 넘어 열방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던 때이기도 하였다.

- 둘째는 힉소스 왕조로 창건자는 애굽인이 아닌 타국인으로 왕이 된 자였다. 그는 가나안의 셈 계통인 것만은 확실하다. 애굽의 12왕조는 강력했었지만 13, 14왕조의 왕들은 단명했고 나약했었다. 이때를 이용하여 셈족들은 애굽으로 침입해 들어가서 마침내 주권을 잡게 되었다. 약 1700 B.C.에 시작된 힉소스 왕조는 약 1세기 반 동안 남과 북을 통치했으나 힉소스의 중심세력은 북부 델타의 동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왕조의 반대세력은 자연히 남부에서부터 시작되어 힉소스 왕조를 무너뜨리게 됐다.

- 셋째는 모든 왕조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18왕조로 첫 왕은 아하모세(1584-1560B.C.)였는데 힉소스 왕조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북부를 점령함으로 애굽은 아하모세에 의해 완전히 통일되었다. 그는 칼과 병거로 무장된 강한 군대를 갖게 되었고 나일강에서 유브라데스에 이르는 넓은 대제국을 이루었다.

- 넷째는 19조 왕조 기간으로 18조에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열방에 행사하던 때로100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 중에 66년간은 람세스Ⅱ,1304-1238B.C.의 통치 기간으로 람세스 왕은 군사적인 면과 건설에 많은 힘을 써서  남북 애굽의 도성들을 확장 신축했다.


2. 애굽의 압박(출1:1-2:25) - 이스라엘은 애굽에 가서 4백 여년 동안 크게 번성하여 강대해졌고 애굽의 정치 정세의 변화와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출1:8) - 야곱의 가정을 우대하고 요셉을 크게 등용했던 힉소스 왕조(본래 셈 계통)는 아하모세(1584-1560B.C.)에게 무너졌고 새로운 왕은 애굽의 본토인으로 이스라엘의 번식을 막으려고 압박했고 이스라엘을 노예로 하여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케 했다.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창성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할 때까지 한 민족국가로서의 발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왕은 번성해 가는 이스라엘을 누르기 위해 새로 탄생하는 남아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의 번식을 억제하려는 바로의 정책에는 첫째, 애굽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적대 관계로 변한 것과 둘째, 쫓겨난 전 왕 힉소스와의 어떤 내통이 있을 것을 두려워 한 점과 셋째, 이스라엘의 번식이 자기들보다 빠르고 강대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3. 모세의 탄생(출1:15-2:10) - 모세는 신생아를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이 실행되던 때로 출애굽 당시(1446B.C.)의 그의 연령이 80이었다면그의탄생은 1526B.C.였을 것이다. 그 연대는 아하모스(1584-1560B.C.)왕의 손자인 Thutmose Ⅰ(1539-1514B.C.)때이며 그는 애굽의 18왕조 중에서도 강력한 왕중의 하나로 애굽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자이다. 그는 자국 안에 외국 민족이 크게 번성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때에 모세는 탄생했고 그의 부모는 레위의 후손들로(출6:16-20)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로 어린 시절 부모의 교육이 후일 애굽에서의 교육보다 모세에게 더 큰 감화를 주었다(히11:23, 1:23-27). 석달을 숨겨 키우던 모세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을 대 바로(Thutmose Ⅰ)의 딸 공주(Hatshepsut)가 목욕하러 하수로 나왔다가 모세를 발견하게 되었고 미리암의 소개로 모세는 그의 어머니에게 돌아와서 4-5세 때까지는 키워졌다.

당시의 바로왕은 아하모스의 아들의 사위였는데 그 공주는 그의 무남독녀였으며 크게 유능한 인물이었고 법적으로도 왕위계승을 할 수 있었지만 남편에게 왕위를 계승케 하였고 공주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의 남편은 궁녀의 몸에서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일찍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어린아들 Thutmose Ⅲ(약1504-1448B.C.)가 지배하던 근 20년간은 실제로 Hatshepsut가 나라를 다스렸는데 통치의 실적도 훌륭해서 남북 애굽의 모든 문제들이 잘 정리되었고 전체 애굽이 노동력 동원에도 잘 순종했으며 그때 지은 건축물 중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석조건축인 사원이 있고 그가 세운 거대한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지금도 하나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강력한 세력을 가진 공주의 슬하에서 아들로 키워진 모세의 지위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히11:24-27).


4. 모세의 성장과 피란(출2:11-25, 행7:23-29, 히11:24-27) -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 Thebes의 궁중에서 자라났다. Thebes는 당시 정치, 문화의 중심지며 교육적인 시설도 잘 갖추어진 곳이었다. 모세는 공주의 역량 아래 권력자의 아들로 키워졌다. 그의 미래는 찬란한 것이었으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브리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으나 그 방법은 인간적 방법으로 히브리 종들을 학대하는 애굽의 감독을 죽임으로 그 일이 탄로나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다(출2:14-15). 그는 미디안으로 피하여 시내반도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며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했고 광야 생활을 통해 후일 출애굽 할 때 지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40년의 세월이 지나자 그의 생명을 찾던 YhutmoseⅢ는 죽었다(출2:23-25). 그는 강력하고 유능한 왕으로 재위 32년간 단독통치한 기간에 상당한 업적을 남겼으며 가나안과 수리아 지역을 공격했고 므깃도를 점령했다. 그때가 애굽 역사상 최대의 발전을 보았던 시대였다.


5. 모세의 귀환(출3:1-4:31) - 때가 되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모세는 거절의 대답을 했다. 이유는 백성들의 자기에 대한 불신과  '말에 능치 못한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그에게 기적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고 그의 형 아론을 대언자로 세워주시겠다는 것이었다(출3:10, 4:19, 3:11, 4;1, 행7:25, 출4:10, 4:2-9, 4:11-17). 모세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데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후 아내와 아들들을 장인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다시 돌아갔다가(출8:5-6, 출4:27비교) 호렙산에서 마중온 형 아론을 만나 함께 돌아오니 백성들은 그의 말과 행하는 이적을 보고 그들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돌보심을 알고 하나님께 경배했다.


6. 바로와의 대결(출5:1-12:36) - 모세와 아론이 애굽에서 대결했던 바로는 AmenhotepⅡ(1448-1424B.C.)였는데 부왕의 뒤를 이어 부왕이 이룩한 업적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된 유능한 인물로 교만하고 강퍅한 왕이었다. 모세는 바로에게 사흘 길 쯤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려 한다고 하였으나 거절되었다. 고역은 더 강해졌고 패장들은 몹시 학대하며 때렸다. 이때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었고 모세의 낙심도 컸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면서 그를 격려하셨다(출5:21-23, 6:1-8). 모세는 새 힘을 얻어 바로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었고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짐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의 무서운 재난으로 바로왕을 쳤다.

열 가지 재앙은 ① 나일강의 물이 피가 되게 했고(출7:14-25) ② 개구리로 온 땅을 덮게 했고(출8:16-19) ③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가 되게 했고(출8:16-19) ④ 파리 떼를 일으켜 사람들과 짐승들을 쏘게 했고(출8:20-24) ⑤ 모든 생축에 악질이 생겨 죽게 했고(출9:1-8) ⑥ 재를 뿌려 독종이 생기게 했고(출9:9-12) ⑦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게 했고(출9;18-21) ⑧ 메뚜기로 푸른 곡식을 먹게 했고(출10:4-19) ⑨ 캄캄한 흑암이 3일간 온 애굽을 덮게 했고(출10:21-29) ⑩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있었다(출12:29-33).

이 열 개의 재난은 갈수록 고통의 농도가 짙어가고 물질과 인명의 피해도 커져 갔고 영적인 교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애굽이 그렇게 숭배하는 우상종교는 여호와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명줄인 나일강과  모든 어족들과 곤충들은 그들의 숭배의 대상이었고 나일신인 개구리신 태양신은 여호와 앞에 무능함을 보여 주었다. 마침내 바로는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과 바로의 장자까지 치게 될 때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여 유월절 다음날(정월 15일, 민33:3)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출애굽의 노정에 오르게 된 것이다.


7. 유월절(출12장, 13장) -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의 제도로 교육하셨는데 그 달로 연중 첫달(아뷥월)이 되게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신기원을 이루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이 달 10일에 흠 없는 일년 된 어린 양(혹은 염소) 수컷을 준비한 후 십사일 해질 때 각 가정 단위로 잡게 했다. 그 피를 문 좌우설주와 인방에 바르되 우슬초로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뿌리게 하고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그 고기를 구워 급히 먹되 무교병과 쓴나물을 같이 먹게 했고 한 사람도 아침까지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출12:7, 22, 14-28).


8. 출애굽의 노정(출12:37, 13:20, 14:-18:) - 이스라엘 자녀들은 아뷥월 15일에 라암셋을 떠났다. 숙곳을 거쳐 광야의 끝이 되는 에담에 와서 장막을 쳤는데 출애굽 후 처음으로 장막을 친 곳이며 이스라엘의 행군이 시작된 곳이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게 됐다. 그 다음은 바알스본에 와서 진을 쳤다(출13:21-22, 14:2).


9. 홍해의 기적(출14:1-15:21) - 이스라엘 자녀들이 애굽을 떠난 후 바로의 마음이 변했다.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노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홍해 가에 진을 침으로 광야에 갇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거 6백승을 동원하여 추격에 나섰다. 이때 이스라엘 군중들의 모세를 향한 원망은 대단했으나 모세의 기도에 따라 하나님의 이적은 나타났다(출14:5, 14:3, 14:15). 앞서 가던 구름 기둥이 뒤로 옮겨지면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 앞에는 구름과 흑암이 가로 막게 하고 이스라엘에는 광명함으로 애굽의 군대가 가까이 하지 못했다.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밀매 큰 동풍이 불어 밤새도록 바닷물이 갈라져 이스라엘 자녀들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좌우로 벽이 되었다. 그들이 다 건넌 후에 뒤따라온 애굽 군대들과 병거들은 다시 뒤덮이는 물에 전멸되었다(출14:20). 하나님의 크신 이적으로 홍해의 시련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다시금 체험하게 되었고 새로운 용기로 대적과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10.출애굽 연대 -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연대를 성경(왕상6:1)에서 계산한다면 약 1446 B.C.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땅에서 나온지 480"이라 했고 그 해는 솔로몬이 왕이 된지4년(966B.C.) 되는 해였다고 했으니 출애굽의 연대는 1446B.C.(966+480)이다. 또 출애굽의 연대는 사사 입다의 기록과 출애굽의 연대를 고증하는 고고학적 자료도 있다. 또 다른 고고학적 자료는 "아마르나의 편지"인데 가나안 지방의 왕들이 애굽왕에게 보낸 긴급 원병을 청원한 문서로서 "하비루"의 군대가 침입하였으니 어서 도와주어야겠다는 것으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