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모세오경

3. 오경과 예언서의 관계

호리홀리 2015. 3. 26. 14:37

3. 오경과 예언서의 관계

  구약의 네 번째 책군은 예언서이다.  예언서와 관계된 예언자들은 19세기와 20세기 중엽까지 이스라엘 종교의 출발로 오해되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이스라엘 종교의 개혁가임이 점점 밝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들이 개혁의 목소리를 낼 때에 어떤 근거에서 할 수 있었겠는가 ?  또 백성들은 그들의 선포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겠는가 ?  

 

즉 선포하는 자나 듣는 자가 어떠한 행동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위하여 예언서의 선포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언서들은 그들의 활동 시기와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이 다음의 세가지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 정죄, 심판, 소망.


  그런데 그 정죄는 어떤 기준으로 되어진 것인가 ?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익히 알고 있었을 언약법을 어김에 대한 정죄이다.  이 언약법은 단지 제사법을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법의 총체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드리는 일에 익숙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사야는 오히려 제사를 그만 드리라고 까지 극단적인 경고를 한다 (사 1장, 비교 시 50편).  가장 중요한 것은 오경의 언약법이 기초를 이루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어기는 것, 우상숭배와 혼합주의, 이방신 섬기는 것 등이었다.  이것이 허물어지니 따라서 이스라엘 상호간의 윤리도 허물어지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예언자들이 심판을 선고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오경에 나타난 언약적 저주의 적용에 불과하였다 (레 26장, 신 28장).  

 

즉 그들의 추수에 하나님은 재앙을 내릴 것이고,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질병으로 고생할 것이며, 대적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대적에게 모든 것이 파멸될 것이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이 나온 애굽에 다시 들어가는, 완전히 원점으로 회귀하는 심판까지 내려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최초로 세운 언약적 저주의 실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언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지막 요소는 소망의 요소이다.  이 소망은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조건적인 소망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고 있는 중간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사 1:18-21).  이것은 언약적 축복과 저주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들이다 (신 29장).  그러나 두 번째 소망은 무조건적 소망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부어주시는 것이다 (사 2: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회복시키겠다는 선포를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도데체 어디서 온 것일까 ?  이것은 언약 자체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그리고 짧게 언급된 것들이다 (신 4:30-31, 30:5-6).  언약 자체 속에 내재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법적으로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에 그 이스라엘을 포기하고 부부가 이혼하듯이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언약을 범한 각 세대는 벌하시지만 원초적인 이스라엘 자체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chesed)가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더 나가서 하나님은 종말에(‘그 날’, ‘여호와의 날’)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징벌했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역사서에 기록되었듯이 그 씨에 대한 심판의 결과 그들의 포로로 끌려가는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 나라의 또 하나의 요소인 그 땅은 오랜만에 이스라엘의 범죄와 악에서 해방되어서 황무한채로 안식을 누리는 긍정적인 시기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획기적인 전환의 날에 대한 언급은 대체로 흐릿하게 소극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이 이 부분을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한 이스라엘은 불용광로를 통과하여서 진실된 씨로 인정될 것이고, 그 의로운 씨는 견고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언서의 신학적 내용은 철저히 오경적 언약신학의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기록예언자 1,2,3세대의 멧세지 속에서 알 수 있다.

  먼저 기록예언자 1세대(호세아, 아모스, 이사야...)는 주로 주전 723/2년의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과 관련되어 몰려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흥미롭다.  이들의 선포는 예언자의 선포의 세가지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죄와 심판을 하다가 갑자기 소망의 멧세지로 전환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왜 그런가 (호 1:1-2:23) ?  그것은 지금까지 이런 심각한 정죄와 심판을 내리고 그것을 기록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그것이 기록되어 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나친 상심을 염려하여서 지그재그로 정죄,심판과 무조건적 소망의 멧세지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예언서의 후반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강력한 무조건적 소망의 멧세지로 채워져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예언자 2세대(예레미야, 스바냐...)는 주로 주전 587/6년의 남조 유다의 멸망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의 선포는 주로 이스라엘의 정죄와 심판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언자들이 파송되었고 그들의 웬만한 선포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회개할 가능성이 없었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악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더 깊은 것이 되어갔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예언은 극단적으로 이스라엘의 정죄와 심판에만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무조건적인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소망의 정도는 훨씬 더 깊은 것이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도 더한 것이다.  예레미야의 새언약(31:31-34)의 내용은 충격적일 정도로 소망으로 넘쳐나는 것이다.  이것은 제 2경륜의 질서를 넘어서 제 3경륜 속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님 나라의 보루인 유다가 멸망하고 나서도 하나님 나라는 진행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왕정의 멸망 자체는 하나님 나라의 멸망은 아닌 점에서는 역사서가 나타내려는 진리와 동일한 것이다.

  기록예언자 3세대(에스겔, 학개, 스가랴...)는 주로 주전 540/39년의 포로귀환이 가능하게 된 고레스의 칙령과 관계되어 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서 예언서가 다르게 처방되어 제시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소망의 시대가 열려졌고, 이 시대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투쟁의 각도는 이전 시대와 명백히 달랐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인 심판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소망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진실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에스겔의 성전환상은 하나님 나라가 성전을 중심으로 회복될 것에 대한 강력한 지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제사제도나 제사장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전과 제사제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회복,유지,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평화의 언약(겔 36-37장)이라는 예레미야의 새언약보다 더 놀라운 언약이 예언되었다.  이것의 궁극적 성취는 현질서, 즉 아브라함 이후의 구약시대의 제 2경륜의 질서를 초월하여서 제 3경륜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러한 더 나은 소망을 가지고 그 시대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 이 회복된 시대의 과제는 안식일과 십일조법을 구약적으로 지키면서 구약적 관점의 하나님 나라의 씨와 땅과 뜻의 성취에 있지만, 장차 그것을 초월하는 더 강력한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서는 모두 오경의 언약적 기초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적용하고 발전시킨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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