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모세오경

2. 오경과 시가서와의 관계

호리홀리 2015. 3. 26. 14:36

2. 오경과 시가서와의 관계  

  구약의 세 번째 책의 군(群)은 시가서, 시편과 지혜서(잠언,욥기,전도서)이다.  이 책들이 어떻게 구약의 전체적인 내용과 통일성과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의 학문적 숙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오경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군이 어떻게 오경과 관련하고 있는지를 찾아 볼 때가 되었다.


1). 오경과 시편과의 관계

  시편의 내용은 오랫동안 개인시로 읽혀졌다.  즉 어떤 경건한 개인이 하나님과 맺은 내밀한 관계의 언어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 것이다.  그러나 H. Gunkel, S. Mowinckel,  A. Weiser 이후 개인으로 표현된 시인(‘나’)가 단순한 경건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우리’)의 대표로서의 위치를 가진 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런 시들의 개인시가 아니라 공동체적 시인 것이 명백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공동체적인 시가 실제 이스라엘의 삶에 사용된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제의적이고 축제적인 경우와 관계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매년의 3대 축제와 더불어 안식일, 정기월삭, 그리고 특별히 매 7년 초막절의 정기 언약갱신 예식 때에 (신 31:9이하) 사용되었던 시편이 이스라엘의 시편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시편의 장르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적 행위에 대하여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갱신 축제와 관련된 시편(covenant renewal psalm, 시 24,50)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곧 이어 나올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II)을 참조하라.


  하나님의 언약적 통치와 창조적 섭리에 대해서 찬양시(hymn, 시 29,113)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심에 대해서는 감사시로 반응하였다 (thanksgiving psalm, 시 27,30).  또 여호와의 언약적 저주로서 심판을 내렸을 때에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탄원시(lament psalm, 시 25,51)를 올려드렸다.  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기대는 심지어 이스라엘이 완전한 잘못으로 끝장났을 때도 가능한 것은 (Asaf psalm, 시 74,79),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그 어느 편에서도 맺은 끊을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언약관계 자체 때문이었다.  

 

또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언약적 삶을 의롭게 살았지만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자신있게 자신의 의로운 삶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당연한 도우심을 구할 수 있었다 (시 17,18).  지혜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혜시(wisdom psalm, 시 32-37)는 고대근동의 특성인 장르간의 이동이 손쉬운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지혜서와 마찬가지로 지혜시는 의와 악의 문제는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가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맺으면서 여호와를 직접 만난 가운데 경험한 그 두려워함(여호와를 경외함 Iryat Yahweh)에 돌아가는 것이고 거기서 선포된 언약적 삶을 이어가는 법칙인 언약법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여부가 바로 선과 악이 되는 셈이다. 또 독립적 단위의 시편들(Asaf psalm 시 50,73-83, Korah psalm 시 42-49,84-88, pilgrims psalm 시 120-134)은 역사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적 삶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시편 전체를 걸쳐서 자주 나타나는 신학적 주제에 있어서도 이런 오경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먼저 소위 신학자들이 ‘신현’(theophany)현상으로 묘사한 장면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중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측면에서 (시 18),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대적으로 삼아서 나타나시는 것이다 (시 50).  

 

이것은 소위 여호와의 전쟁의 이중성과 직결되는 것이고, 이런 이중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관계를 맺을 때에 경험하였던 두려운 하나님의 모습과 다시 직결되는 것이다.  그 두려운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실한데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무리를 향해서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언약에 충실하지 않는 이스라엘 자체를 향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이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신현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라는 언약당사자들이 언약관계를 맺기 위해서 공적 대면(official meeting between the covenant partners)을 하는 장면에서 유도되어 나오는 것이다.  또 시편에서 여호와의 토라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시1,19,119,15,24,), 이것은 토라가 단순한 법이 아니라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법, 언약법으로서 이스라엘의 기둥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2). 오경과 지혜서의 관계

  오랫동안 지혜서는 구약 속에서 진정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책군으로 인정되었다.  G. v.Rad같은 학자에게서 지혜서는 Luther에게서 야고보서와 같은 정경에서 이차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지혜서와 오경의 언약과의 관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잠언서의 지혜의 주종은 법과 원칙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청년기 지혜를 본다.  선은 복으로 악은 심판으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이렇게 복과 심판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진정한 여호와를 두려워함(Iryat Yahweh)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선을 행하나 실제는 그 결과인 외적인 축복만을 기대하는 삶이나, 일시적으로 복을 누리는 것 같으나 역사가 지나야 판별할 그 누리는 복 속에 숨어있는 악의 실체는 바로 이 궁극적 진리 앞에서 무릎꿇어야 하는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 고난을 당하나 악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설명할 수 없는 경륜 속에서 그 고난을 지고 사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이 진리 때문에 위로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현재는 진리에 대한 최후 심판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두 번째 지혜서이자 장년기 지혜서인 욥기가 의미를 발휘한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당장에 선의 결과가 주어지지 않고 대신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 때에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다.  모든 선과 악, 복과 흉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때에 인간이 경험하고 빠지게 되는 좌절과 절망, 자기포기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역경 속에서 이런 길로 빠지는 것을 막는 진정한 지혜는 여호와를 두려워함(Iryat Yahweh)에 있다.  
  

그러나 인생이 다 지나고 난 뒤에도 이런 골치아픈 인생의 역경을 넘어서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를 따지는 노인기의 지혜서가 전도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의 모든 화려했던 삶의 의미는 퇴색하고 단순한 생존하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 그 전부를 차지할 수 있다.  이런 타락의 길을 막아주는 진정한 지혜는 인생의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여호와를 두려워함(Iryat Yahweh)이다.  
  

그러면 이 모든 지혜서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여호와를 두려워함(Iryat Yahweh)은 어디에 기초한 것인가 ?  서양의 개인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을 의식하며 사는 것(coran deo)도 이 고대근동의 지혜서의 근원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최초의 언약을 세울 때에 하나님과 공적인 대면을 하면서 공동체적으로 경험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 것이다.  또 그 때에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그 음성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법을 들은 것이다.  이런 두려움을 경험함과 언약법을 들음이 공존하는 현상이 이스라엘의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지혜서는 오경의 언약적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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