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모세오경

제6강,오경과 구약과의 관계

호리홀리 2015. 3. 26. 14:34

 

 

6강,오경과 구약과의 관계

 

 

1. 오경과 역사서의 관계

  오경, 적어도 창세기에서 민수기까지는 ‘스토리같은 역사’(story-like history)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속에 다양한 장르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사건의 진행이 서술하는 역사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역사는 우주의 역사나 단순하게 어떤 민족의 형성 역사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이 역사는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역사적인 수단’(proper historical means)인 ‘언약’(berith)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한다.  가장 최초의 언약인 시내산 언약과 그것을 갱신한 모압(세겜)언약 뿐 아니라 이것을 예비한 족장언약이 기록된 것이다.  이 세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경의 마지막인 신명기에서 모든 것이 깨끗하게 완성되고 다음 단계의 역사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모압언약의 법적인 부분이 현재 모세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나, 그 언약의 제의적 부분이 미래 세겜에서 여호수아에 의해서 완성되어져야 할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루어졌으나 완성을 향해서 나가야 할 언약을 서술하는 것으로 신명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학자들이 오경이 아니라 사경(四經) 혹은 육경(六經)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전통을 가진 것이다.  하여간에 이런 모습을 지닌 오경 전체도 일종의 건설적인 긴장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오경과 포로전 역사서(수-왕하)의 관계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하까지의 기록은 하나님 나라의 두 단계의 역사 800년을 다룬다.  이 중에서 사사시대 400년에 대해서는 여호수아서와 사사기가, 왕정시대 400년에 대해서는 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가 취급한다.  

 

그런데 이 두 단위의 책들은 각각 하나님 나라 역사가  상승하여 정점에 이르렀다가 결국 하강하는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사사시대는 초대 사사였던 여호수아의 말기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마지막에는 12지파로 구성된 하나님 나라의 언약공동체가 내전이 일어나 서로를 죽이는 파멸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와 유사하게 왕정시대의 초기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최정점에 이른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후는 남북조로 나뉘어저 점점 하강하여 북조도 남조도 결국 망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시대 800년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서술의 목적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하나님 나라의 발전에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몰라도 궁극적인 도움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것은 역시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한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오경의 세 언약의 핵심인 것이다.


(1) 오경과 여호수아서-사사기의 관계

  여기에 오경과 그 다음의 책인 여호수아서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있다.  먼저 모압언약과, 땅과 씨와 뜻이 하나되어서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 신명기의 기록시점인 모압에서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세겜에 가서 모압언약 혹은 제 1차 세겜언약의 제의적 부분을 성취한 것을 보고하는 여호수아서(8:30-35)에서 그 완성을 읽을 수 있다.  

 

또 제 2차 세겜언약(수 24장)을 통하여 다음 세대의 씨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작정을 하여 하나님 나라가 진정으로 역사 속에서 뿌리내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므로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긴밀한 관계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고 이것에 대한 연구의 결과는 두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아예 오경이 아니라 육경(六經 hexateuch)을 하나의 단위로 간주하는 것이고 (G. v.Rad), 또 하나는 신명기를 그 후의 역사서의 이론적인 기초로 보아서 아예 신명기를 오경에서 분리하여 사경(四經 tetrateuch)을 하나의 거대단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M. Noth).


  그러나 이런 두가지 시도는 오경 전체가 뗄 수 없는 신학적인 일치를 이루며 합쳐서 하나의 거대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간과하여서 생기는 현상이다.  신명기가 그 완벽한 필치와 신학적으로 합리적이고 정연한 이론구사에 있어서 사경과 구분되나, 이것은 사경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기 보다 사경의 종합과 발전으로서의 신명기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관계가 아무리 밀접하여도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철저히 신명기의 명령을 의존하고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경과 신명기는 근원들과 저수지의 관계라고 표현할 수 잇고,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관계는 저수지와 거기서 나오는 수도관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여호수아서의 목적은 여호수아의 영웅적인 성취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그 약속한 땅을 힘으로 차지했다는 보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의 17-18장에서 볼 수 있듯이, 12지파 언약공동체가 수 8:30-35에서 완성해야 하는 모압(세겜)언약을 제의적으로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제 2차 세겜언약을 갱신하고 그 다음의 세대의 역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수 24장).  

 

여호수아서가 이 두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12지파 언약공동체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기술한다.  반면에 사사기는 그 공동체가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파괴되어가서 종국에는 12지파 공동체 자체 내의 싸움 때문에 언약공동체가 궤멸되어가는 것을 묘사한다.  즉 여호수아의 마지막(수 24장)에서 12지파 언약공동체가 세겜에서 제 2차 세겜언약을 맺음으로 견고해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사사기의 마지막(삿 19-21장)에서는 12지파 언약공동체에 자중지난이 일어나 서로를 죽이는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두 책은 오경에서 준비되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씨인 12지파 언약공동체가 그 땅에서의 삶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을 대조적으로 그림으로서 오경과 철저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은 일반적으로 알려졌듯이 단순히 신명기적(deuteronomic)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오경적'(pentateuchal)이다 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2) 오경과 삼상하-왕상하의 관계

  그 다음 단위의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기록이 삼상하-왕상하이다.  칠십인역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네 책의 역사적 신학적 연관은 아주 뚜렸하다. 칠십인역은 삼상하,왕상하 네 책을 단순히 basileion 알파,베타,감마,델타로 연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새로운 제도인 왕제도의 도입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언약인 다윗언약이, 비록 한 가계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12지파 언약공동체의 이 땅에서의 삶에 덧붙여졌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사사기에서 보았듯이 철저한 구세대의 무능함과 악함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뒤에 주어진 것이었다.  이것은 왕제도와 예언자제도를 새롭게 도입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왕제도에 대한 소극적 혹은 부정적인 출발(삼상 8,12장)을 기록하는 역사서의 필치는, 왕권에 대한 소극적인 기대(신 17:14-20)를 묘사하는 신명기의 그것과 상응한다.  왕제도와 예언자제도는 사실상 모세-여호수아-사사로 이어지는 사사제도의 계승,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완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사사인 모세의 통치권을 법적으로 행사할 왕권은 필요하였으나, 그 세습성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타락은 필연적일 수 있었다.  이것을 막기 위하여 사사제도의 카리스마적인 차원을 이어받은 예언자제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예언자제도 역시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은 각 예언자가 주장하는 카리스마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 증명할 길이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적 기원이 없는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에서 출발하는 거짓예언자는, 예언자운동의 후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기록예언자가 출현하는 8세기 이전에 이미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역사적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형성초기부터 있었던 제사장제도가 이스라엘 역사 형성에 과연 부정적인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사무엘 자신이 예언자로서뿐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명확하게 역할하였다.  

 

그 예를 사울왕이 제사권을 임의로 행사할 때에 그 결과 하나님이 사울의 왕권을 박탈할 것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심각하게 책망하였다 (삼상 13장).  삼상-왕하에서 산당(bamot)에서의 제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금하여진 이유는. 솔로몬이 제사를 드린 기브온의 산당(왕상 3:4)은 긍정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고 역사가 흐를수록 산당은 이스라엘 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행하여 갔고, 그러므로 산당예배를 금하는 쪽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것이 제사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명기에서 염려하던 것이 역사가 진행될수록 현실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즉 제사가 광야시절과 같이 증거막을 중심으로 집중화될 수 없는 상황이 가나안에서 전개될 것인데, 이스라엘이 중앙성소에 규칙적으로 나가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자연히 가나안인들이 신들을 섬기던 산당에서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종교혼합주의에 빠질 것이 당연할 것이다.  역사서에서 종교혼합주의에 대한 심각한 심판의 경고는, 이 때까지 해석되던 것과 같이, 제사제도 혹은 제사장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라고 볼 수는 없다.  

 

다윗과 솔로몬의 사역 중에서 증거궤를 예루살렘에 모시는 것과 성전을 건축하는 것 등의 제사제도의 완비가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묘사된 것은 제사제도의 중요성을 역사서가 명확히 의식하는 것을 나타낸다.  또 이것은 소위 ‘신명기적 역사서’(the deuteronomic(-mistic) historical books)에 속한다고 알려진 삼상-왕하가 신명기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제도에 대해서 상세이 언급한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까지의 책에도 의존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역사서들 속에 나타난 신학적 기초에 신명기적 요소가 있는 것은 명확하다.  사무엘의 고별설교(삼상 12장)이나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왕상 8:22-53)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부정적 미래전망은 신 28장의 저주를 깊이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미래에 중요한 것은 성전이라는 외적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언약에 충성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 24장의 모든 것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부정적인 교훈으로 제 2차 세겜언약을 맺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약의 외적인 축복이 성취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내적인 원리인, 자비와 충성(chesed weemet)이 중요한 점에서는 역사가 진행되어도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이 성전에 단지 하나님은 이름만 걸고 있는 것이고 신명기의 소위 ‘이름신학’(name theology)이라고 학자들이 이름붙인 신학적 흐름에 적합한 것이라는 주장과는 차별해야 한다.. 소위 ‘이름신학’(name theology)은 신명기의 독특한 것이라는 주장(G. v.Rad)은 서양적인 사고를 동양의 책인 성경에 무리한 적용이다.  이름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기호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나타내는 것인 점에서는 고대근동이나 중국과 한국의 문화권이나 동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성전에 둔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거기와 관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신명기의 이름신학적인 전통을, 성전 자체만을 중요시한다고 해석된 제사장적 전통과 대립구도로 만드는 것은 독일적이고 변증법적인 관습인 이원론적인 대립구도 속에 역사의 역동성을 설명하려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려고 택하실 곳”(신 12:5,11,.)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의 가치가 관련되는 곳이다.  즉 그 곳이 영화로우면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시고, 그 곳이 영화롭지 않으면 하나님 당신이 영화롭지 못하게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증거막이 중요한 것은 상징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이 그 곳을 중심으로 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성전봉헌기도에서 성전 건물과 제도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본질이 거기에 있을 수 없다는 이름신학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신 이스라엘과 법적으로 동재하셔야 했고 그 성전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창피당하시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성전에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언약의 양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 얼마나 자비와 진실로 충실한가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웅대한 성전을 짖고 나서도 엄청난 자부심으로 봉헌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에 대해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에 호소한 것이다.
  

요시아왕의 종교개혁의 위대성은 이런 언약적 원리에의 회귀에 있었다.  그가 발견한 ‘토라책’(seper hatorah 왕하 22:8,11) 즉 ‘언약의 책’(seper haberith 왕하 23:2,3)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파기하였던 언약관계를 회복하여야 할 절대적 과제를 설명하여 주었다.  이 책의 이름은 아마도 신명기가 신명기를 가리키는 용어인 torah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고 그 본질적인 내용이 언약이라는 사실은 요시야가 서둘러 행한 것이 언약갱신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 그가 그 책을 읽고 전율한 것은 아마 신 28장의 언약적 저주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기록된 여호야긴왕의 재등극(왕하 25:27-30)은 특이한 관심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왕가의 긴급한 회복에 대한 소망(G. v.Rad)도 아니었다.  또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는 진리에 아무 보탤 것도 없는 간략한 첨가(appendix)에 불과한 것(M. Noth)도 아니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중간에 허락하신 다윗선물(언약)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지키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소망의 표이다.  당장에는 다윗왕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다윗의 왕조가 생물학적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서, 그 여호야긴, 여고냐(마태 1:12)은 장차 그리스도의 생물학적 선조로서 다윗의 가계를 이어준 것이다.  


  이 책들 속에서 진행된 400년의 왕조역사가 진행되는 원리는 언약적 자비와 충성이었다.  북조의 빠른 멸망이나 남조의 늦은 파멸 모두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실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그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언약적 전쟁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소개한 것이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엄청나고 막강한 적이 아니라 이런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체제로서의 북조와 남조의 파멸이 이스라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씨, 땅, 뜻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동안 그 땅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동안 이스라엘의 범죄로 못누린 안식을 누리는 긍정적인 시간이 되었다.  씨도 전쟁 중에 잘못된 씨는 없어질 것이었다.  또 포로로 끌려간 씨 중에서 진정한 씨는 하나님은 남기실 것이고 이 씨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언약적 심판의 기간을 견디어 다시 언약적 자비의 시간이 돌아오면 그 뜻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3) 룻기의 역할

  룻기는 위의 두 책군들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하나의 지도체제(사사체제)에서 다른 지도체제(왕정체제)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룻 개인의 하나님의 자녀로 영입되는 여정의 미시적 관점도 있지만 그녀와 나오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다음 세대의 지도력이 준비되는 거시적 관점이 보다 더 본질적인 룻기의 내용이다.  

 

차세대에 부어질 은혜의 방편인 왕정체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체제를 이끌어 갈 사람이 중요한데, 그 사람을 미리 예비시키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이 삭막한 사사시대의 말기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사사기의 마지막에 “그 때와 왕이 없었으므로...‘라는 왕정을 기대하는 것과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오경과 포로후 역사서의 관계

  역사서 2부에 해당하는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라는 책군이 쓰여지던 역사적 상황은 역사서 1부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 나라의 언약적 공의(emet)를 따른 언약적 심판의 시기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chesed)의 시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완전수를 의미하는 70년이라는 언약적 심판의 완전한 햇수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 나라에 임하는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바벨론에서의 포로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역사는 재조명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의 한 축,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으로 역사를 보았던 시기는 지나갔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셨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언약적 행동의 또 다른 축, 언약적 자비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 시점에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질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문제였다.  무엇이 이스라엘인가 ?  이스라엘의 본질은 무엇인가 ?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은 페르샤의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어도 이스라엘은 지난 400년 동안 익숙했던 다윗왕가를 중심으로 한 왕정체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페르샤의 종교적 관용으로 이스라엘의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정치까지 자유롭게 하여 옛 다윗왕조의 영화에 돌아가는 것을 페르샤가 허용할 리가 없었던 것은 각 지방에 총독을 둠으로 철저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돌아온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 역사서 2부의 책들인 것이다.  역대상하는 과거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리함으로서,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는 현재의 역사진행을 묘사함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1) 오경과 역대상하의 관계

  과거의 역사를 재정리하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 것이 역대상하였다.  역대상앞부분에 나오는 엄청난 양의 족보들 속에서 이스라엘의 근본을 아담까지 소급하였고, 유다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12지파들을 이어서 묘사하고 있다.  이 족보의 마지막에 사울의 족보를 언급하고 이어서 사울의 죽음으로 마감한다 (대상 10장).  대상 전체를 통해서 다윗의 역사를 자세하게 소급하고 있다.  얼핏 보면 다윗의 역사를 통해서 다윗왕조에 대한 회복을 말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다윗이 궁극적으로 이루기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언약관계를 기초놓은 성전과 제사제도를 완비하는 것이었다.  이제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다윗조차도 궁극적으로 원하던 것이 성전과 제사제도였다면 바로 이것이 귀환한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출발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제도는 일반종교에서 볼 수 있는 제도와 같이 단순히 신을 기쁘게 하는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제도이다.  언약관계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다윗시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원초적인 제도인 셈이다.  왕정정치를 뛰어넘은 근본적인 가치를 가지는 제도인 셈이다.  이 제도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왕정체제보다 훨씬 더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는 것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다윗왕조를 재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체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이라는 데 있었다.  이것을 위해서 다윗이 노력한 기초 위에 솔로몬도 성전과 제사제도를 완비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역대하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이 두 사람의 치명적인 실수인 밧세바 사건과 솔로몬이 많은 이방여인을 거느린 사건은 생략할 정도로 집중도가 높은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 이하의 역사기록도 역시 남조 유다의 열왕들이 이 제도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어떻게 유지했던가를 겨냥하면서 묘사한다.  제사제도가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이 제도의 유지가 아니라 언약관계 자체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북조의 역사는 과감히 생략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남조의 역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나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있어서도 제사제도를 중심으로 한 언약관계의 회복을 묘사한 것은 이런 관점 때문이었다.
  

이제 그 이스라엘에 새로운 회복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비록 이 종교관용의 페르샤의 치하에서 다윗왕조를 재건할 수는 없으나, 그 다윗왕조 자체가 그렇게 원하던 성전과 제사제도를 통해서 오경이 기초를 놓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회복, 유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었다는 이스라엘 정체성의 회복의 역사적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의 페르샤의 고레스의 칙령은 이스라엘이 이제 모세시대의 원래적인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돌아갈 수 있는 위대한 소망의 나팔인 셈이다.


(2) 오경과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관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는 하나님 나라가 이러한 페르샤의 치하에서 어떻게 실제로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역사서이다.  새로운 상황 속에서 이제는 역사적 가능성이 아니라 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으로서의 역사를 이어가는가를 보인다.  이 역사를 위하여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각각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  마치 고대의 제사장 아론과 전체 지도자로서 모세의 역할을 보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하나의 목적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의 회복과 유지를 향해서 일사분란하게 행동하였다.  

 

즉 이들은 성전과 그 성전을 보호하는 예루살렘 성의 복건, 그리고 그 속에서의 언약적 삶의 중추가 되는 제사제도의 확립을 위해서 일관되게 활동하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적 삶의 순수성을 위해서 개혁운동을 일으킨 종교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 성을 복건하여 이런 종교적 삶이 원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울타리를 만들어 그 백성이 언약적 삶을 실제로 살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일에 몰두하는 정치지도자였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씨가 그 땅에 귀환하는 것이 궁극적인 관심이었다.  그래서 에스라서의 앞부분에서와 느헤미야 7장에서 귀환하는 씨의 명단이 자세하게 언급되었다.  그리고 느헤미야 11-12장에서 예루살렘에 거하는 씨들과 제사제도를 받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을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동시에 에스라 10장에서 그 씨의 반열에서 이방과 혼합되었다가 회개한 자의 씨도 명시되었다.   이러한 명단은 씨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귀환한 씨들에게 주어진 여건은 이전의 자유롭게 하나님 나라를 형성하던 시절의 것은 아니었다.  땅도 이전처럼 12지파가 소유했던 가나안 땅 전체는 아니었고 단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제한된 영역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 번째 하나님 나라의 요소인 하나님의 뜻도 제한되게 나타날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부분이 오경에 기초놓아진 언약적 삶인 이방과 섞여 사는 무리들과의 분리와 안식일법을 지키는 문제였다.  이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는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에스더서의 경우는 이방지배 하에 그 씨의 보존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 경우 언약백성 이스라엘의 보존은 마치 출애굽시절에 그 씨의 박멸을 위해서 노력하던 바로와의 싸움에서의 궁극적인 승리와 유사한 모습을 지니는 것이다.  에스더서의 궁극적인 멧세지도 오경이 제시한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궁극적 보존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감한 믿음의 용사들의 싸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서 2부의 책들은 모두 오경에서 언급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유지되는 구체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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