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룻기의 언약적해석

룻기1장:언약적저주

호리홀리 2015. 3. 11. 13:04

룻기( Ruth)

 


 

잠언 맨 마지막인 31장은 이상적인 치리자(왕)의 자세와 “현숙한 여인”으로 끝나는데  룻을 현숙한 여인의 대표적 인물로 본 것 이다. 또한 보아스를 가리켜 기보르 하일; 유력한 자 = 남자다운 남자)라고 하고 있으므로 (에쉐트 하일; 현숙한 여인)과 기보르 하일은 대조되고 있으므로 남자다운 남자의 전형과 여자다운 여자의 전형으로서 보인다. 잠언 31장도 왕과 여인의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성경은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나 모든 면에서 다 그렇지는 않다. 신구약성경의 순서는 신약 - 시내산 사본을 따른다. 바티칸 사본은 복음서-바울서신-사도행전-공동서신(히브리서)-계시록이 나온다. 구약 - 우리말 성경은 70인역을 따른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의 마지막은 역대상하이다. 에스라, 느헤미야도 마지막에 나온다.

 

그러나 이 룻기는 현숙한 여인의 기록뿐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그 근거는 초반이 ‘사사시대’라는 기록과 종반이 다윗의 족보로 끝맺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된 message임을 본다. 이것은 다윗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효성 많은 여인의 model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 각 권의 순서의 분명한 이유는 없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사건이므로,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사사시대 한 가정의 일이 룻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겠다. 만일 히브리 성경대로 잠언과 아가서 사이에 삽입하면 내용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언, 아가서는 특정 역사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솔로몬이 지었으나 특정시대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요 보편적인 내용이다).

 

룻기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인가? 룻기를 알기 위해 사사기를 보자. 사사기란 책 자체가 어떤 문맥에서 진전되어 가는가? 사사기의 진정한 면을 보기 위해 열왕기를 보면 특히 열왕기하만 보더라도 잘 나타난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을 실패한 역사로 본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볼 때 이스라엘 역사는 계속된다. 성경은 될 수 있는대로 넓은 의미로 보아야 된다. 성경신학은 성경을 개괄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사기와 더불어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와해된 것으로 보나 룻기가 등장해서 전개될 진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사시대의 막다른 상황이 무엇으로 인해 되어진 것이고,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바로 룻기가 제시해 준다. 즉 룻기가 역사의 구심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암시해 준다. 그러나 룻기는 사사시대의 한 가정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윗왕의 족보로서 중요한 사건이고 시대적인 배경의 사건이므로 위치는 70인경, 우리 개역의 순서가 더 좋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한 역사로서 특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던 사사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1:1에 보면 사사들의 시대(400여년간 4-5대밖에 안됨)에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게 된다. 한 가정이 기근 때문에 자기 삶의 터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버리고 다른 이방 땅으로 간다. 2절에 하나님 나라의 공적으로 지적된 모압지방에 나오미 일가가 가서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 땅을 떠나 삶을 포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거기서 남편, 아들들이 다 죽고 과부만 셋 남는다.

 

신명기에는 모압인을 영영토록 이스라엘 회중에 못들어 오게 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한 족속이요, 롯과 근친상간한 족속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일가가 그들과 연합된 삶으로 이방풍속을 좇고 이방여인과 혈연을 맺게 되는 것은 사사시대에 이방과 통혼하고, 삶의 공간, 문화를 공유하고 이방과 한 몸이 되는 그때 상황과 유사하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든다는 것은 레위기 26장에서는 기근이 언약 어김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고, 신명기 11:9-17절에서 이스라엘의 땅은 천수답(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주심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결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비를 주고 안주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여부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듬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의 요소로 나타났고, 이 심판으로 인해 한 가정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이방 땅에 나가 살게 되며, 또 남자들이 다 죽어 한 가정이 몰락한 사건은 그 의미하는 바가 사사시대의 전체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이 지리적 배경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윗왕조에서 나온 예수님을 암시받을 수 있다.

 

엘리멜렉 :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오미 : 사랑받는 자(beloved)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는 남편, 아내의 관계로 묘사된다. 부자관계, 부부관계로 묘사되는 관계는 지극히 친밀한 연합관계인데, 신실함과 정결함이 요구되는 관계이다. 이들의 아들은 말론과 기룐이다. 아들과 남편이 죽은 나오미는 가장 불쌍한 상태이다. 성경은 가장 불쌍히 도와야할 대상을 고아와 과부 계층이라 한다. 아들이 끊김은 대가 끊겨 소망이 없다는 말이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이 죽고 난 후 가장 소망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소망없이 멸망당할 위기의 이스라엘의 message이다.

 

1:6에서부터 사건은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것은 기근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이요 그 백성에 대한 긍휼을 의미한다. 심판이 끝나서 고향으로의 귀향하는 나오미 일가를 다루는 것이 룻기의 이야기이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난 나오미 일가는 오히려 세 과부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나오미 일가의 몰락이다. 나오미 일가의 완전한 몰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동생이 가계를 세워줄 수도 없는 아무 소망이 없는 모습이다. 나오미의 집은 바로 소망이 끊어진 가계이다.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손이 단절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희망이 꾾어진 집안으로 망한 집안이다. 유업의 땅,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에서 과부가 된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런데 룻기에서는 사사시대의 암흑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권고하시는 구원의 때를 듣고 돌아가는 내용이다.

 

과부만 셋 남은 집안에서 나오미가 하나님의 땅에 기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자부에게 각기 자기의 곳으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나의 아들이 있느냐, 나의 태가 남아 있느냐, 아들이 생긴다해도 어떻게 너희가 그들을 기다리겠느냐?’ 이것은 나오미의 처절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하여 오르바는 돌아가지만, 룻은 돌아가지 않는다.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오미는 하나님 백성의 약속의 땅을 생각했을 때, 인간적 헌신된 삶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건널 수 없는 깊은 간격을 깨달은 것 같다.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것, “보라 네 동서는 그들의 신들에게로...” 이 말은 그녀의 백성과 그 신들을 포기하고 어떤 의미에서 신앙의 결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처음에 두 사람 다 어머니 백성(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 했다. 그러나 질과 성격이 다름을 말한다. 나오미가 육적 차원에서 아무 소망이 없음을 말할 때 오르바는 돌아가 버린다. 그녀는 육적 이스라엘만 생각했었다(영적 본질에 대해 생각지 못함). 오르바의 믿음에 대해 나오미는 ‘그녀의 백성(이방)과 그 신들(우상)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서는 몰랐다. 영적 관계 맺음에 있어서 하나님 백성의 관계 본질에 대해 무지했다. 외견상 동일한 고백을 했으나 룻의 그 고백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룻의 고백은 육정(나오미에 대한 동정)이 아니고 근본 동기가 신앙적인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으로 삼음을 알았다. 어머니를 따라감은 자기 민족의 거짓 종교,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 섬김의 의미를 갖는 이스라엘에 속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섬김을 말한다. 믿음의 열조들이 묻힌 땅에서 자신은 묻히겠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의 족장들의 마지막 소망은 조상들의 약속의 땅에 묻히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신앙이다. 나오미는 믿음의 확실성 때문에 권면을 포기한다(룻의 효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돌아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여자는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부속물로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떠나 자신의 독자적인 신앙의 결단이 족장시대에도 나온다. 또 신앙의 계보는 남자에게서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이어진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는 남녀의 차이다 없다. 남녀가 다 동질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룻기의 전반적 흐름은 회복의 이야기이다. 모압에서의 처절한 삶과 기근 등은 회복의 멧세지의 배경적 역할을 하고, 그 생활에서 돌아오는 회복의 과정에서 룻이 따라붙는다. 이처럼 망한 집안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룻이 같이 오는데, 이스라엘이 다 놀란다. 그 이유는 전에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삶이 풍성했음을 보고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 도착시 이전 모습과 급변한 변모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이는 사사시대 초기의 이스라엘과 말기의 이스라엘과의 차이이다.

 

그에 대해 나오미가 말한다. ①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 ; 나오미 - 마라 . ② 풍성하게 나갔으나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 멜레아 - 레이쾀 . 나오미는 행복한 자, 사랑스러운 자였으나, 마라는 비참한 자란 뜻이다. 충만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갔으나 빈손, 모든 것이 궁핍으로 전락한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21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괴롭게 했다고 말한다. 이 역사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사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우리에게 도우라고 하셨는가? 고아와 과부는 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 옛 고대사회에서 특별히 과부는 생계가 힘이 들었다. 22절의 추수기는 과부의 삶과 비교시 고아, 과부들의 은혜의 시기이다. 하나님께서 과부, 고아들을 위해 추수 때 이삭을 남겨두게 한다. 과부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이삭줍는 시기)가 바로 추수기인 것이다. 이로보아 룻기의 주제가 회복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룻이 왜 나오미를 좇았는가? 인간적인 사랑 때문인가? 단순히 인간적인 정이 아니라 룻의 나오미가 돌아가라는 말에 대한 대답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내용에서 그 동기는 신앙적 동기였음을 볼 수 있다.

 

2:11-12의 보아스의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 네 행위를 갚으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기 위해 왔다 부모와 고국을 떠나 네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네가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로 왔다’. 이것은 곧 룻의 신앙의 결단을 말한다. 즉 리브가, 라헬, 레아에게 요구된 신앙의 결단이었다.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요구 받았던 신앙의 결단과 같다.

 

보아스를 통해서 룻의 신앙의 성격을 말하게 한 것은 중요하다. 이방을 떠나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온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룻은 아무 소망이 없는 집안에서 믿음 때문에 시어미를 좇아 이스라엘로 온다. 시어미에 대한 친절한 행위,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의지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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