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

창세기18장~19장,언약의 중보자

호리홀리 2015. 2. 4. 13:07

아브라함과 관련해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17장에서 말한다면

18장에서는 사라와 관련해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신다.

 10-15절에는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경수도 끊어지고(자연적 출생의 불가능을 사라가 말함),

하나님께는 이런 일이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없다(이삭의 이적적 출생을 예고).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이 태어날 것이다.

 

창 18:16-20:18의 내용은 이삭의 출생의 context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삭 출생의 의미를 밝히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세상의 축복을 위한 대언자(=intercessor)로서 이삭에 의한 하나님 나라는 세계 전체를 위한 나라라는 것을 암시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된 세상의 표본으로서 이를 심판하시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셨다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의 의미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이 내려가셨다.

 즉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셨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약속의 자녀를 예고한 후 세상의 심판을 묘사하는 사건이 나타나는 것은 약속의 자녀의 탄생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다.

 이는 창 11장 이하와 창 12:1-3의 내용의 비교대조의 그 구조가 그대로 나타난다.

즉 창 11장의 세상의 극악한 타락과 그것을 배경으로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는 것을

 12장에 묘사해 주는 구조로 창 18:16-20:18의 내용이 이삭의 출생 사건의 context 속에서 나오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아브라함을 부르신 의미와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하다.

 

알다 = 선택의 의미이다. 이 선택의 의미는 의와 공의를 지켜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하기 위해서이다. 의와 공의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는 것과 같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방법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은 이 나라로 하여금 세상 나라가 복을 얻고, 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이와같은 일을 이루시겠다. 악한 세상 가운데 의와 공의를 행하는 나라로서 이 세상에 복을 전달하는 일을 이루겠다. 사회 정의 정도가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의와 정의이다. 이는 우리의 선한 행실, 윤리적으로 깨끗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전달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또는 전세계에 대해서 세상에 하나님 축복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이와같은 위치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대(요구)하신 것이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의 역할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하는 혈족주의자로 보는 자유주의와는 다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다스리시는데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의인을 위하여 진노의 심판을 늦추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신 것은 혈족에 대한 아브라함의 기도가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언약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이 드린 언약기도를 외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반듯이 들어주셔야했다.(19:29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우리도 아브라함같이 언약의 중보자로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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