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2:1-3 ,왜 판단하느냐

호리홀리 2015. 1. 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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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2:1-3

 


 

2장 1~3절 :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1 판단

 

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로 이미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므로 그들의 삶이 어떠하든지 이방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철저하게 정죄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②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받은 절대적인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실을 또 다른 구원의 증거로 제시합니다.

 


 

③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필요한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자기들을 그들과 똑같은 죄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선민의식(영적교만)

 


 

④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으며,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성경을 자랑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이방인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고 했고, 또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입견에 눈이 멀어 있어서, 성경을 읽을 때에도 그것만을 보았으며, 설교나 강론을 들을 때에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내어 버렸던 것입니다.

 


 

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이론과 자기들의 생각과 자기들의 선입관을 확증하기 위해서만 그렇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나는 유대인이고 저 사람은 이방인이다.”라고 했던 그들처럼 우리도 “나는 감리교에 속했다.” “나는 침례교에 속했다.” “나는 장로교다.”라는 꼬리표를 달기를 얼마나 좋아합니까?교회 안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우리는 몇 교구 사람에 속한다”라고 말들을 합니까?

 


 

⑥ 우리는 여기서 죄의 교활성이 우리가 듣는 진리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게 하는 방식을 대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행했던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정죄해 버림으로 자신들의 울타리를 치고 자신들을 변호합니다.

 


 

⑦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의 저주거리였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도 역시 똑 같은 방식으로 그들과 같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그들은 율법을 자신들의 입장으로 내세우는 것이고, 우리는 복음을 자신의 입장에 맞추어 내세운다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그 정신(마음)을 빼내어 버린 형식과 의식, 그리고 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안입니다.

 


 

⑧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시고 계시는데, 우리는 언제나 보이는 것들,외모에만 신경을 씁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장을 하고 진정으로 그 안에 들어있는 정신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2 진노

 

유대인에게 있어서 문제 거리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좇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필요성 또한 알지 못한데 있었습니다.

 

죄란 얼마나 교활한 것인지 이렇듯 유대인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신들이 이 끔찍한 입장에 몰렸던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포착하지 못하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자주 가장 어리석고 가장 끔찍한 죄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흔히 그들의 도덕적 조건이 참으로 통탄할 정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이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조차도 그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24절에서 그 점을 매우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어느 누구와도 다르다고 주장하면서도 자기들이 영위하는 삶의 방식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다른 민족들을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②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과 어떤 특별한 죄행을 저질렀다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점을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경건치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일 수 있으면서도 경건치 않을 수 있습니다. 경건치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경배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최상의 존재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 속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경건치 않음은 도덕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더욱 비참한 것은 자기들이 죄인들임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며 그로 인해, 어째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④ 유대인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의 잘못을 어떻게 저지르고 있었는지를 사도 바울은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의 미워하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역하는 자, 무정한 자, 부자비한 자” 등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는 한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식이었으나 우리 주님은 미워하는 것조차도 살인이라고 하셨으며,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조차 이미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는 것을 결코 지킬 수 없습니다.

 

탐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탐심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에 품고 있는 악한 생각까지도 죄라는 것을 잘 나타내 줍니다.

 


 

문제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정신입니다. 물론 그 마음속에 일어나는 죄를 행동화하면 더 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러한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는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경우에서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데, 나단 선지자가 자식과 같은 어린 양을 죽인 사실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그 일에 대하여 명백하게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는 문제였을 때는 자기가 그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일의 잘못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에 우리가 비판 받을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똑 같은 척도로 우리 자신들이 측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⑥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진리대로 되며, 그리고 언제나 동일하고 공정한 하나님의 판단은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공의가 있으므로 그 의가 죄의 판단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공의로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죄를 심판하지 않고서는 어느 사람이라도 용서하실 수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의 죽으심을 통해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죄의 눈멀게 하는 무서운 효능을 매우 명백하게 보고 있습니다.

 

죄는 전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그 인격을 파멸시키는데, 지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다른 모든 요소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고, 그 말씀이 읽혀지며, 설교되어 지고 있고 그 말씀을 자랑하고 있으나, 죄가 그 눈을 멀게 함으로서 성경을 철저하게 잘못 읽었고 잘못 이해했습니다.

 


 

죄는 자기들의 역사에 대하여도 눈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 때문에 갈대아 사람들을 들어서 징벌하셨고 그들에 의해서 파멸되어졌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던 것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될 것인데, 그런데도 그들의 역사를 읽고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죄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시대의 표적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 자기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의 삶을 계속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에 대해서 말 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우리는 언제나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 스스로 안에 있는 어느 형태의 죄든지 핑계대려고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려고 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빠지는 때에는 우리의 회개가 언제나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그 회개는 철저하지 못하면서 조금씩 치료하려고 하고 그 고통을 제거하려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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