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노아 홍수 후 민족 대이동
노아의 3아들과 손자16명 : 고대의 지명과 민족의 이름에 남아있다.
(The Sixteen Grandsons of Noah)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이었으며, 고대의 지명들과 민족의 이름에 노아 후손들이 남아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부터 나오고 세상은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자손들로 채워졌다. 창세기 10장에는 16명의 손자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바벨탑이 무너지고 전 세계에 흩어진 후 고대 왕국들을 세웠다.
홍수 이후의 첫 번째 세대는 아들, 손자, 증손자보다 오래 살았다.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은 각 씨족의 족장이 되었으며, 지역에서 커다란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1. 각 지역 사람들은 그들 조상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2. 그들이 거주하는 땅, 주요 도시, 강 등의 이름 또한 조상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3. 각 나라들은 그들의 조상을 숭배(worship)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우 일반적으로 조상의 이름 뒤에 그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장수한 조상을 그들의 신으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1. 야벳(Japheth)의 일곱 아들
창세기 10장 1~2절 :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1) 고멜 (Gomer)
에스겔서에는 도갈마(Togarmah, 고멜의 아들)와 함께 고멜의 자손들이 극한 북방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 38:6). 현재의 터키(Turkey) 지방이 신약시대에 갈라디아(Galatia)이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던 시대인 AD 93년 경에는 갈라디아인(Galatians) 또는 골(Gauls)은 이전에는 Gomerites 라고 불렀다. 그들은 현재 프랑스와 스페인 서쪽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는 고멜의 자손들 이후에, 골(Gaul)이라고 불렸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의 자손들(Gomerites) 중 몇몇은 현재 웨일즈(Wales)까지 이주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인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로부터 약 3백 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 또한 웨일즈의 언어 Gomeraeg 역시,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것이라 한다.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그나스(Ashkenaz)와 리밧(Riphath)과 도갈마(Togarmah)" 였다 (창 10:3).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도갈마와 아스그나스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아르메니아는 터키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터키(Turkey) 라는 지명도 도갈마로부터 파생되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 다른 이들은 독일로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독일(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2) 마곡 (Magog)
에스겔서에 의하면, 마곡은 북쪽에 살았다(에스겔 38:15, 39:2).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Magogites 라고 불렸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 이라고 불렀다.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루마니아(Romania)와 우크라이나(Ukraine)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도 스키타이(Scythia) 였다.
3) 마대 (Madai)
셈의 아들인 엘람(Elam)과 함께, 마대는 이란 사람들의 조상이다. 요세푸스는 마대의 자손들이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서 메대(Medes)라 불렸었다고 말한다. 구약에서 메대가 언급될 때마다, 히브리어로는 마대(Madai(maday))라고 쓰여졌다. 키로스(고레스, Cyrus, 페르시아제국 건설자)시대 이후에, 메대는 항상 페르시아인들과 함께 언급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왕국이었다. ‘메대와 바사의 규례 (다니엘 6:8,12,15)’. 이후에 그들은 메대를 생략하고 페르시아인들(Persians)로 불려졌다. 1935년 이후 그들은 이란(Iran) 이라고 불렀다. 메대인들은 또한 ‘인도에도 정착하였다’.
4) 야완 (Javan)
야완(Javan)은 그리스(Greece)의 히브리 단어이다. 그리스, 그리시아(Grecia) 또는 그리시안(Grecians)은 구약에 다섯 번 나타나며, 그 때마다 항상 히브리어로 야완이라 쓰여졌다. 다니엘은 ‘그리시아의 왕(다니엘 8:21)’ 이라는 단어를 인용했는데, 문자 그대로는 ‘야완의 왕’이었다. 야완의 아들들은 엘리사(Elishah)와 달시스(Tarshish)와 깃딤(Kittim)과 도다님(Dodanim) (창 10:4) 이었는데, 모두 그리스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명칭인 Elysians는 엘리사(Elishah)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달시스(Tarshish) 또는 다서스(Tarsus)는 실리시아(Cilicia, 현재의 터어키) 근방에 위치했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깃딤(Kittim)은 키프로스(Cyprus)의 성경적인 이름이다.그리스 사람들은 쥬피터 도다네우스(Jupiter Dodanaeus)라는 이름으로 쥬피터 신을 숭배했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야벳(Japheth)과 야완의 네 번째 아들인 도다님(Dodanim)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5) 두발 (Tubal)
에스겔은 그를 곡(Gog)과 메섹(Meshech)과 함께 언급하였다 (에스겔 39:1). BC 1100년 경에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1세는 다발리(Tabali)라 불렸던 두발의 자손이었다. 요세푸스는 그들의 이름을 도벨리트(Thobelites)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후세에 이베리아인들(Iberes)로 알려졌다.
"요세푸스 시대에 로만 이베리아(Romans Iberia)로 불렸었으며, 현재에는 구소련 연방인그루지아(Georgia) 에 속하는데, 지금도 그 곳의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로서 두발(Tubal)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곳으로부터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이주했는데, 부족의 이름을 따서 강의 이름도 도볼(Tobol)이라 불렸고, 토볼스크(Tobolsk)라는 유명한 도시의 이름도 불려지게 되었다.”
6) 메섹 (Meshech)
메섹(Meshech)은 모스크바(Moscow)의 옛 이름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임과 동시에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그 주변 지역 중 메스체라 노렌드(Meschera Lowland)는 여전히 메섹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고 있다.
7) 디라스 (Tiras)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라스(Tiras)의 자손들은 디라시안스(Thirasians)라고 불리웠었다. 그리스인들은 트라시안(Thracians)으로 바꾸었다. 트라키아(Thrace)는 남쪽으로 마케도니아(Macedonia), 북쪽으로 다뉴브강, 동쪽으로는 흑해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를 이루게 된다. 세계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트라키아 사람들은 야만적인 인도-유럽계통의 사람들로써, 전쟁과 약탈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라고 되어있다. 디라스는 그의 자손들로부터 두라스(Thuras), 또는 번개의 신인 토르(Thor)로 숭배를 받았다.
2.셈(Shem)의 다섯 아들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세기 10:22)
1) 엘람 (Elam)
엘람(Elam)은 페르시아(Persia)의 옛 이름이며, 페르시아는 이란(Iran)의 옛 이름이다. 카로스(Cyrus) 시대까지 이 곳의 사람들을 엘라마이트(Elamites)라고 불렀으며, 신약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2장 9절 , 오순절날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페르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엘람인(Elamite) 이라고 불렀었다. 따라서 페르시아인들은 셈의 아들인 엘람과 야벳의 아들인 마대(Madai)의 자손이었다. 1930년대 이란이라 칭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서 유명해진 ‘아리안(Aryan)’ 이란 단어는 '이란(Iran)' 이라는 단어로부터 왔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우수한 민족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아리안’ 민족은 셈족(Semites)과 야벳족(Japhethites)이 합쳐진 혼합된 민족이었던 것이다.
2) 앗수르 (Asshur)
앗수르(Asshur)는 앗시리아(As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구약에서 앗시리아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앗수르(Asshur)라는 단어로 해석이 되었다. 그는 자손들로부터 숭배를 받았다.
앗시리아 제국이 지속되었던 BC 612년경까지, 전쟁과 외교관계, 그리고 해외소식들은 그의 동상 앞에서 매일 읽혀졌으며, 모든 앗시리아의 왕들은 조상인 앗수르의 신성시된 영혼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었다.
3) 아르박삿 (Arphaxad)
아르박삿(Arphaxad)은 칼데아(Chalde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이것은 허리안 서판 (Hurrian(Nuzi) tablets)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칼데아의 창시자를 아립허라(Arip-hurra) 라는 이름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후손인 에벨(Eber)은 아르박삿의 이름을 에벨-벨렉-르우-나홀-데라-아브람을 통하여 히브리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창세기 11:16~26). 에벨의 다른 아들인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창세기 10:26~30), 그들은 모두 아라비아(Arabia)에 정착하였다.
4) 룻 (Lud)
룻(Lud)은 리디아(Lydi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리디아는 현재 터키 서부(Western Turkey)로 알려진 곳이다. 그들의 수도는 사데(Sardis) 였는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하나가 사데에 위치해 있었다 (요한계시록 3:1).
5) 아람 (Aram)
아람(Aram)은 시리아(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구약에서 시리아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람’ 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다. 시리아인들은 그들 자신을 아람인(Arameans) 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쓰는 언어도 아람어(Aramaic) 라고 칭하여진다. 그리스 제국이 확장되기 전까지, 아람어는 국제어로 사용됐었다(열왕기하 18:26).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oi, Eloi, lama sabachthani) (막15:34)” 라고 부르짖으셨는데, 그 시대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언어였다.
3.함(Ham)의 네 아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세기 10:6)
1) 구스 (Cush)
함(Ham)의 자손들은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살았다. 성경에서는 아프리카(Africa)를 함의 땅이라고 부른다(시편105:23, 27; 106:22). 노아의 손자 이름인 ‘구스(Cush)’ 는 옛적 에디오피아(Ethiopia, 아스완 남부로부터 카르툼까지)의 히브리어 단어이다 . 예외 없이 에디오피아란 단어는 항상 히브리어로 ‘구스’ 라고 기록되었다. 요세푸스는 그 이름을 ‘Chus' 라고 표현했으며, 심지어 현재에도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Chusites' 라고 불린다.
2) 미스라임 (Mizraim)
미스라임은 이집트에 대한 히브리 단어이다. 애굽이란 이름은 구약에서 수백 번 언급된다.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사람(Egyptians)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 미스라임(Abel Mizraim)이라 하였으니~”(창세기 50:11).
3) 붓 (Phut)
‘붓(Phut)’은 리비아(Libya, 이집트의 서부지역)의 히브리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세 번 번역되었다. 리비아에는 붓 강이 있다. 다니엘 시대에 이미 리비아로 바뀌어 있었다 (다니엘11:43). 요세푸스에 의하면, ”붓은 리비아를 창건한 사람이며, 그들은 부타이티스(Phutites)라고 불려졌다.”
4) 가나안 (Canaan)
‘가나안(Canaan)’ 은 훗날 로마인들에 의해서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고 불리던 지역의 히브리어식 이름이다.
‘블레셋(Philistim)' 은 Philistines의 조상인 것이 명백하며 후에 팔레스타인(Palestine)이 된 것도 확실하다. 시돈(Sidon)도 그 도시를 처음 창건한 조상의 이름이고, 헷(Heth)도 고대 히타이트족(Hittite)의 조상이었다. 또한 그의 자손들은 창세기 10장 15-18절 , 여부스 족속 (Jebusites,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었음. 사사기 19:10), 아모리 족속(Amorites), 기르가스 족속(Girgasites), 히위 족속(Hivites), 알가 족속(Arkites), 신 족속(Sinites), 아르왓 족속(Arvadites), 스말 족속(Zemarites), 하맛 족속(Hamathites)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들은 가나안에 살았던 고대인들이었다.
함의 자손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자손은 니므롯(Nimurod)이었는데, 그는 바벨론(Babel, Babylon)의 창시자였으며, 시날(Shinar, Babylonia) 땅의 에렉(Erech), 악갓(Accad), 갈레(Calneh)의 창시자였다.
2강 고대 바벨론 제국과 아브라함(니므롯과 아브라함:성 쌓는 자와 단 쌓는자
니므롯 : 노아 홍수 이후 최초의 제국 건설
(Nimrod : The first empire builder)
역사상 최초의 폭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니므롯(Nimrod)으로 함의 손자였다. 주석가들은 '니므롯'이라는 이름이 '반역(revolt or rebellion)'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니므롯 =용사
창세기 10:8절은 니므롯이 '용사(mighty man)'가 된 최초의 사람이라고 알려준다.형용사 '용사'는 창세기 10:8~9절에 세 번 사용되었다. 역대상 1:10절 참조). '용감한(mighty)'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폭군(tyrant)'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가 홍수 이후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힘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높이고,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높이려고 시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아와 셈이 아직 살아 있어서, 당시의 폭군들을 포함하여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 임한 심판을 증언할 수 있는 시기임에도, 니므롯은 권력을 강화하고, 사람들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며, 하나님께 도전하는 야심찬 행로를 추구했다. 니므롯 세대의 사람들은 약 400년을 살았을 것이다(창 11:17). 그는 계속해서 권력을 확장하고, 악을 증가시켰다.
성경은 또한 그를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으로 언급한다(창 10:9). 구약의 다른 모든 곳에서 이 단어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가리킨다.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냥을 동물 사냥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인간 사냥꾼이다. 따라서 '여호와 앞에서'(창 10:9)라는 표현은 '여호와를 대적하여'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니므롯=제국의 건설자
가인처럼(창 4:17) 니므롯은 바벨(Babel)이라는 성을 건설했다(창 10:10). 바벨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평탄한 계곡에 있는 시날(Shinar, 나중에는 바빌로니아(Babylonia, 바벨론)로 불림)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 이 지역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건조하고 황폐하다(사 13:19~22). 그러나 홍수 직후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바벨이라는 이름은 '신의 문(gate of god)'을 의미했다. 이는 바알(Baal)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얻어진 이름으로 보여진다. 거기에서 탑은 이교도 신들(pantheon)을 기리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세워졌다. 언약의 백성들은 그 도시 이름의 의미를 히브리어의 비슷한 소리 ‘바랄(balal)’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혼란스럽게 하셨다'라는 의미로 재해석했다(창 11:9).
바벨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또한 넓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단일 도시에서 인구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었다. 이것이 니므롯이 수메르에 다른 도시들을 세운 이유일 수 있다(창 10:10). 그는 이 도시들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했고, 홍수 이후의 첫 번째 왕국(kingdom)을 형성했다(창 10:10). 이것은 성경에서 언급된 최초의 제국,고대바벨론이다.
창세기는 니므롯이 앗수르(Assyria, 앗시리아)로 가서 그곳에 성읍들을 건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0:11-12). 이 지역은 처음에 셈의 후손들이 정착한 곳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은 최초의 왕국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정복하여 왕국을 확장해서 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앗시리아에서 그는 티그리스 강 유역(이라크 북부)에 니느웨(Nineveh)를 세웠고, 이것이 앗시리아의 수도가 됐다. 요나(Jonah)가 방문했던 후대의 역사를 통해, 니느웨가 상당히 넓은 지역을 차지했던 도시임을 알게 된다.
지구라트(ziggurats, 바벨탑과 유사한 것), 니므롯 지배하에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의 성상들(태양, 달, 행성, 별)과 땅에 근거한 것들(바다, 강, 폭풍)과 연관된 종교를 창시했다. 그들은 점성술의 기초를 쌓았고, 아카드(Akkad)와 수메르(Sumer)에 의해 전해졌다.
3.니므롯 =역사적 인물
'니므롯(Nimrod)'이라는 이름은 폄훼어법(dysphemism, 비방어법)일 수 있다.가장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고고학자 머레이 아담스웨이트(Murray Adamthwaite)가 CMI의 ‘Journal of Creation’글과 ‘New Bible Dictionary’에서 제시했던, ‘사르곤 대왕(Sargon Great)’, 또는 아카드(Akkad) 왕국의 창시자인 ‘아카드의 사르곤(Sargon of Akkad)’이다. 최근에 사르곤의 재위 기간은 BC 2270~2215로 측정한다. 사르곤 제국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창세기 10장(시날과 악갓)에 언급된 것과 동일했지만, 소아시아로도 확장되었다. 역사가들은 사르곤 대왕이 제국을 만든 최초의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니므롯과 잘 들어맞는다.
사르곤 왕조는 1세기 반 동안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고, BC 2215년에 사망했으며, 제국의 신민들은 그의 죽음을 듣고 반란을 일으켰다. 사르곤의 두 아들이 계승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만 통치했다. 그 후, 제국은 쇠퇴했고, 엘람(Elamites) 사람들은 남은 것들을 파괴했다. 아카드 시대 이후는 ‘우르 제3왕조(Third Ur Dynasty)’ 시대이다.
우르 왕조는 BC 약 2000년경까지 지속되었다. 아브라함은 이 시기에 태어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다(창 11:28, 31). 메소포타미아의 이러한 혼란으로부터 아모리족 왕 함무라비(Hammurabi, BC 1792-1750년 경에 통치한 것으로 보임)가 바벨론에 기반을 둔 제국을 확장했다.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권력을 통합하는데 성공했고(앗시리아 통합), 중앙집권적 질서를 회복했다. 그는 법전으로 유명하며, 그중 일부는 비석과 점토판에 보존되어 있다
5.Hammurabi
창14장의 등장 인물은 ① 시날( 바벨론 = 이라크)왕 아므라벨(לפרמא;아므라펠 Hammurabi), 아브라함이 Hammurabi와 같은 시대로 추정하며 동일인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ל(라메드;‘ㄹ’발음)가 빠져서 부인하는 견해도 있다. ② 엘라살왕 아리옥 = 이 사람은 정확치가 않다. ③ 엘람왕 그돌라오멜 = 페르시아(이란 동쪽)의 큰 세력 ④ 고임(יוג(고이)의 복수, 왕 디달(헷족속 = 지금의 터어키로서 애굽과 세력을 다투던 큰 세력이다. 애굽과 형제의 조약을 맺음). 당시 사해 일대에는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 아드마(Admah), 스보임(Zeboiim), 소알(Zoar) 등 다섯 도시국가가 있었다. 사해 일대 5개 도시는 엘람 왕 그돌라오멜(Chedorlaomer)의 지배를 받으며 엘람을 상국(上國)으로 섬겼다.13년째 되던 해 사해 5개국은 엘람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듬해에 엘람왕 그돌라오멜은 메소포타미아에서 4개국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러 왔다.성경을 볼 때 아마 다섯 왕만 배반 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전 지역에 해당하는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이 연합하여 배반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란은 소돔왕이 주도한다. 침략의 원인은 소돔의 풍부한 소금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함께 온 시날의 왕 아므라벨(Amraphel)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Hammurabi) 왕으로 비정하고 있다. 사건의 발생 시기는 BC 2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전쟁터는 싯딤(Siddim)이다.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 싯딤 전투(Battle of Siddim)에서 사해 연합군이 패배했다. 엘람왕의 군대는 사람과 재물을 약탈했다.그러면 싯딤은 어디일까. 성경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역청(tar)이다.
싯딤 벌판은 온통 역청 수렁으로 가득 찼는데,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 그들의 군대 일부는 역청 수렁에 빠지고 나머지는 산간지방으로 달아났다.역청은 원유를 추출할 때 나오는 최종 찌꺼기다. 원유가 지상에 스며나올 때 검은 액체 상태가 타르 또는 아스팔트이며, 성경은 그 역청이 많이 흘러나와 수렁을 이룰 정도였다고 했다.사해 남쪽끝 지역에는 아스팔트(asphalt) 찌꺼기가 채취된다. 로마 시대에 '유다 전쟁기‘(77~78)를 쓴 요세푸스(Josephus)는 사해를 아스팔티투스 호수(Lake Asphaltitus)라고 표현했다. 싯딤이란 곳은 사해 남쪽 일대로 추정된다.
이 전투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히고 재산도 약탈되었다. 아브라함은 그 소식을 듣고 318명의 부족 사람을 이끌고 단(Dan)으로 쫓아갔다. 단은 현재 이스라엘 동북쪽 국경지대의 도시로, 골란고원 기슭에 있다. 아브라함은 현재 시리아 영토인 다마스쿠스(Damascus)까지 쳐들어가 롯을 구출하고 함께 끌려간 사람들과 재물도 찾아왔다.
이때 같이 잡혀 갔던 살렘(Salem)의 사람들도 구출되었다. 살렘은 예루살렘(Jerusalem)의 고대 지명으로 파악된다.당시 살렘 왕은 멜기세덱(Melchizedek)이었는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El Elyon, priest of God Most High)이었다.
멜기세덱은 감사로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환영했다. 아브라함은 탈취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십일조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대목이다.
아브라함의 승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집은 너로 인하여 큰 자손을 이루겠다는 언약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집이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미래 역사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3강 성경의 7대 제국(고대바벨론.이집트.앗수르,신바벨론,페르시아. 헬라, 로마)
<1> 애굽과 요셉(창, 출, 레 ,민, 신, 여호수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B. C. 4,000년 부터 이집트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앗수르나 바벨론에 못지않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고 각국의 포로들을 동원해 거대한 건축 조형물들을 세운 나라였는데 그 힘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하는 풍요로움 때문이다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증가(출 1:7)는 풍요로운 경제력으로 제국을 꿈꾸던 애굽에게 쿠데타라는 사회적 염려로 작용되어 유대산파를 동원해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모세(출 1:9, 1:16)이다.모세를 도구로 사용한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최첨단 무기인 병거와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시키고 강대국의 몰락을 초래하는 국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부족이 아닌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는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언약(창 12:2)을 하신다.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세워진 ‘민족’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출애굽기를 지나며 나라와 민족, 온 세계가 모두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로 민족, 개인, 물질 등에 ism이라는 주의가 붙어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되어 국제 관계를 지탱하던 평화는 깨지게 된다. 제국주의는 민족을 넘어 다른 국가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 공동체를 세우게 되고 침략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제국이 망하거나 주변국에게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그러나 다윗은 130만 명이라는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제국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해 자신을 종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국주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허락하신 나라의 경계를 넘지 않는 순종으로 다윗왕국을 지탱할 수 있었다(삼하 24:9). 아브라함의 후손은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나라로 쓰임 받는 복의 통로였다(창 12:1~3). 제사장나라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고 제국은 민족을 계급화 시킨 반면 제사장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토라를 준행하여 제국위에 설수 있었다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레 26:3,8).
애굽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목축업(창 46:34)을 선택한 요셉은 부를 축적하고 고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애굽 땅에서 죽지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고 요셉의 유언에 의해 400년 후 가나안 정복을 성취한 후손은 세겜에 유골을 장사 지내며 막을 내린다(창 50:25, 출 13:19, 수 24:32). 이렇듯 성경은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구속사로 조명하고 있다.
<2> 앗수르제국과 이스라엘(요나, 나훔, 이사야, 아모스, 열왕기하, 역대하)
요나(B. C. 8c)서에 언급된 니느웨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상에 빠진 북이스라엘에게 앗수르를 통해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욘 1:2; 3:1~2)하지만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의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욘 3:9,10)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과 가축까지 아끼신다는 것을 요나서는 기록(욘 4:11)하고 있다.
앗수르 제국은 150년 후 나훔 선지자가 선포한 것과 같이 멸망의 길에 들어갔다.
열왕기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열, 역대기는 다윗과 남 유다의 역사와 북이스라엘이 200년간 7번의 쿠데타로 19명의 왕이 난립하는 피 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록하며 여로보암 같은 악한 왕들로 하나님의 계획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왕하 13:1~2; 13: 10~11; 14:23~24). 16번째 왕이된 ’므나헴(B. C. 752~742)'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을 강탈(왕하 15: 19~20)했지만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백성을 잡아갔고 마지막 19대 왕인 호세아(B. C. 732~722) 때 멸망하고 만다.
예언서는 19명의 왕들에 의해 쿠데타를 일으키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선지자인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의 능력을 두 배나 간구한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죄악의 길에서 나오지 않자 아모스 선지자를 보내어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회개를 촉구(암 1:1)하셨고 또 호세아(호1:1)를 보내시고 남 유다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를 보내시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에게 남 유다는 멸망당했다. 나훔서와 이사야서에는 B. C.609년경에 앗수르가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하 19:35~37; 사 37:36~38; 나 1:12; 나 3: 18~19). 앗수르는 수도 니느웨가 B. C. 612년 바벨론에 함락되어 주변 국가를 탄압하던 죄의 대가를 받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윗이 민족국가를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를 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거주의 경계를 만드시고 고유한 민족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앗수르 제국의 멸망을 통해 알 수 있다.
<3> 이데올로기 경영의 신바벨론 제국과 토라 경영의 하나님 나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다니엘서, 에스겔, 하박국, 스바냐, 열왕기하, 역대하)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18만 5천명이 죽어 위기를 맞은 앗수르와 남유다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한 사건(사 38: 3~5)은 동일선상에서 바벨론과 남 유다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사 39:1,2).
앗수르에 보낼 공물이 없어 성전과 왕궁의 금을 긁어모았던 초라해진 남 유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에 의해 앗수르가 패했다는 소식은 제국을 꿈꾸고 있던 바벨론에게는 충격이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소식을 들은 바벨론은 인사를 핑계로 특사를 보내 염탐을 계획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한 것이 아니라 무기고와 곳간을 보여주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런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을 보고 바벨론은 위기의 앗수르를 치고 남유다와 애굽을 점령할 계획을 세운다.
히기스기야 자신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자손들 중 몇은 치욕스럽게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고뇌(사 39:3~8)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가 55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산당을 세우고 우상 섬기는 악행을 저질러 요시야 왕이 이룬 치적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인해 남 유다를 멸망하시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왕하 23:25~26; 대하 33: 11~13).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대하 36:6~7, 10)’의 “1 차 바벨론 포로” (단 1:3~4)는 남 유다를 경영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 차 바벨론 포로”에 등장하는 에스겔을 통해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인물을 등장 시킨 이유는 혼혈주의로 인해 멸망한 앗수르와 다르게 바벨론은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 귀족과 인재를 포로로 하여 대영제국이나 일제가 행한 제국경영의 모델이 되었다. 다니엘의 꿈 해몽(단 2:19~23; 2:31~35)은 요셉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와 연결(창 40:8)되어 왕 중에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다(단 2:47; 6:26~27).
단2장의 대조는 세상나라(세속사)와 하나님나라(구속사)이다.세상나라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와의 대조이다. 바벨론의 느브는 왕이 된지 2년 후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의 술사,술객들을 불러들인다.느브가 꿈을 꾸고 두려워하는 것은 절대 권력자보다 위에 계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기가 꾼 꿈의 내용도 일러주지 않고 해석을 명하는 폭군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다니엘도 죽을 상황에 놓인다.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왕이 꾼 꿈은 거대한 신상이 왕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무서웠다(31)
신상의 엄청난 크기가 왕의 나라를 상징 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두려운 광채는 이 나라가 뿜어내는 권위를 가르킨다. 신상의 일곱부분은 다른 재료로 되어있는데 머리는 정금으로,가슴과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다리는 철로, 그리고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었다. 재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올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 뜨인돌이 날아와 신상을 부셔 가루가 되었고 날아온 돌이 태산을 이루고 온 땅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의미한다.
다니엘은 왕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 준 후 해석을 한다.
왕을 왕중의 왕이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 땅을 다스리는 왕권을 주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치자로 삼았으니 당신이 바로 금 머리인 것을 말한다.
다음의 나라들은 세계사 속에 나타날 ,페르시아,헬라,로마,열강들을 가르킨다.
이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나라는 영원 할 것이다.
왕은 하나님을 “신중의 신” “왕들의 주”로 부르며 그 분만이 비밀을 계시할 수 있으며 ,
그러므로 다니엘이 이 비밀을 알려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후 다니엘에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지위를 주었으며 친구들도 도를 다스리는 지위를 얻었다.
다니엘서를 통틀어 볼 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계 통치(세속사)와 하나님의 통치(구속사)가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땅의 정치 권력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아래 정해진 기간 안에서만 유효하고(11:27,35,36) 마침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서리라(2:44; 7:27)는 것이 다니엘서의 기본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방 권력의 다스림을 받으며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위로가 되고, 현실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희망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견뎌낼 힘을 준다
이사야서(사44:27~45:5)에서 바벨론 멸망을 예언해 놓았다.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이 주전 539년 멸망할 것이라고,멸망 150년 전에 예언해 놓은 것이다. 예언대로 바벨론제국은 고레스에
의해 주전 539년 멸망했다. 바벨론제국이 멸망하는 날의 기록이 다니엘서 5장에 나온다.
벨사살왕은 일천 명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베풀면서 솔로몬성전에서 노략질해 온
성전기물들로 감히 술을 마시며 자신이 왕이라고 뽐냈다.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쓰자 모두의 간담이 서늘했다.
And this is the writing that was written: Mene, Mene, Tekel, Upharsin.
"메네메네(מְנֵא)"는 "하나님이 왕의 나라의 시대를 끝나게 하셨다"는 뜻이고,
"데겔(תְּקֵל)"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했다"는 뜻이며, "우바르신(וּפַרְסִֽין)"은
"왕의 나라가 나뉘어 메대 사람과 바사 사람에게 주었다"는 뜻이다.
그날 밤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왕에 의해 벨사살 왕은 살해당했다.
뜨인돌과 사람의 손가락의 기독론적해석은 심판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4> 페르시아 제국 (다니엘,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역대하 등)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 고레스(키루스 2세)는 구약의 두 수레바퀴와 같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출 9:12)하게 하셨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스 1:1). 고레스는 모든 세계를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찬양하며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예물을 드리고 유다 포로들을 귀환 시킨다(스 1:1~4).
다니엘서( 6:7~8)와 에스더서( 1:17~18)에서 메대(메디아)와 바사(페르시아)라는 페르시아의 두 도시 국가가 등장하고 있는 데 통일 전 페르시아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구성되어져 있었는데 그리스에게 최초로 조공을 받고 있던 리디아(터키)의 크로이소스 왕을 2주 만에 굴복시켜 페르시아가 동방의 부를 대표하게 만든 왕 고레스는 탄생과 성장, 왕이 되기까지의 신화를 간직한 왕으로 페르시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1. 예레미야와 고레스 왕 (스 1;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스 1:1).
고레스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자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어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에 십일조를 바치고 30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며 소비를 촉진 시켜 예루살렘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였던 남유다 백성은 다른 이방인과 구별되어 유대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북이스라엘은 혼혈족 사마리아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29년간 통치하고 8년간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캄비세스는 이집트를 점령한 왕이며 폭군으로 3대 왕 다리오는 장사꾼으로 기록되어 있다.
1차포로 귀환 때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기초 공사 도중 중단 되었던 성전 건축은 페르시아 2대 왕 다리오 때 비로소 완공 되는 데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다리오 왕과 어릴 적 친구인 유대인 총독 스룹바벨이다.
2. 에스더
페르시아를 이야기 할 때 4대왕 아하 수에로(키세르 키세스)의 왕비 에스더(에 1:1, 10~12, 15~16)를 빼 놀 수 없는데 술에 취한 왕은 왕비 와스디의 나체를 잔치에 참석한 자들에게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왕후 와스디는 거절했다고 유대 고대사 “요세푸스 Ⅱ”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일로 인해 왕궁에서 쫓겨 난 왕비를 그리워하다 아리따운 처녀를 후궁으로 맞이하는 데 바로 에스더였다. 유대에 의해 몰살당한 아멜렉의 후손 하만의 원한과 모르드개의 암투(에 3:13~15)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로 왕 앞에서 지혜로 민족을 구한 에스더의 사건은 12월 14~15일 이틀간의 부림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에 9:20~22).
3. 에스라와 2차 포로 귀환(B. C.458)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는 1차 포로 귀환(B. C.537년) 79년 뒤 2차 포로 귀환(B.C.458) 때의 제사장(스 7:1)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쳤으며 페르시아의 학자로 존경 받았다(스 7:6,10).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겠다는 계획에 페르시아왕 아닥스는 직접 공문을 에스라에게 내리고 많은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스 7:12~26). 애굽의 바로 왕이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전권을 준 것과 같이 페르시아 궁중 창고의 모든 재물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마음껏 쓰라고 공문을 주었고 재판권의 시작이 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까지 아닥스는 에스라에게 허락하였다.
4. 페르시아 총독 느헤미야와 3차 포로 귀환 (B. C.445)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아닥사스 왕 20년 후 페르시아의 총독 느헤미야가 등장한다(느 1:1~3). 페르시아의 높은 관직에 올라 환란과 능욕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는 느헤미야의 비젼은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마치게 되었다(느 6:15). 느헤미야는 70년을 포로 생활이 아닌 훈련이라고 가르쳤고 귀환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쳤기에 유대 백성은 귀환한 후 한 동안 우상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4> 헬라 제국(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신구약 중간사)
구약의 끝인 말라기(말 4:4~6)와 신약의 처음인 마태복음(마 1:1) 사이에는 400년이라는 세월이 숨어 있는 것은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대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냉소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기 때문이다. (말 1:2). 아브라함부터 1,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늘 사랑하셨는데도..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400년 만에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로 오신다(요 3:16).
다니엘의 예언(단 7:6; 8: 3~8; 21~22: 11:3)처럼 알렉산더라는 헬라 제국의 영웅이 나타나 그리스 철학과 동방 오리엔트 문명을 합친 헬라 문화를 꽃 피우는데 헬라 문화의 주인인 마케도니아는 아테나와 스파르타라는 강력한 군사력 이전에는 페르시아의 속국이었지만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를 강력한 군가로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크레니데스라는 곳에서 금광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그곳을 “필립포스”라고 명명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배를 만들고 자색 염색 산업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며 사치스럽던 두로가 쉽게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들어 쓰셨던 하나님께서 알렉산더를 들어 두로 성을 불타게 하여 그 교만이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암 1:9~10; 사 23: 1~3). 두로가 멸망한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에돔에 노예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되고 말았다.
페르시아는 멸망하고 알렉산더는 파죽지세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고 정복한 지역에 그리스 문화와 헬라문화를 합하여 오리엔트 문화를 퍼트렸지만 인도의 인더스 지역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B.C.323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헬라 제국 경영의 키워드는 알렉산더가 그리스의 철학과 동방의 문화를 융합해 오리엔트 문화를 만들어 보급하며 제국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앗수르의 계급을 전제로 한 강제 혼혈 방식이나 헬라의 페르시아 여인과 마케도니아 군인들을 결혼 시켜 민족과 문화를 융합하려는 수평적 세계동포주의(cosmopolitanism)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5> 로마 제국 (마태복음~요한계시록)
1. 가이사(카이사르)
종신 독재관이었던 가이사르는 황제의 길을 열고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는데 거대한 로마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공화정에 반대하고 황제 체제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계획에 반기를 든 원로원이 가이사를 암살했지만 더 이상 거대해진 제국을 시민과 원로원의 협의체인 공화정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가이사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등극 시켰다.
2. 헤롯왕
재위 15년, 46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쌓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벌이고 A. D.70년 로마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성전 장식에 공을 들인 로마의 분봉 왕 헤롯을 빼 놓을 수 없는데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유대의 하스몬 왕조를 B. C.63년에 로마에 넘기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내전을 할 때 카이사르 편에 서서 승리하고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고 그의 아들 헤롯에게 유대를 다스리게 했다(B. C.37~4년까지).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은 한 사람이 아니라 헤롯 가문의 왕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3. 로마의 2대 황제 디베료(티베리우스)와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디베료는 A. D.14년 부터 십자가 처형과 사도행전의 초기까지 37년 간 폭정을 한 왕이며 빌라도는 디베료가 황제가 된 지 15년째에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눅 3;1).
디베뇨는 카프리 섬에서 운둔하며 문서 정치를 10년간 했고 이때 유대로 파견한 총독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였는데 헤롯이라는 유대 분봉 왕과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는 대제사장, 바리새파, 사두개파, 유대의 고위급인 서기관들 틈에서 빌라도는 카프리 섬에 있는 폭군 디베뇨에게 민란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어갈 것이라는 강박감으로 두려워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대제사장 세력은 민란을 빌미로 교묘하게 예수의 처형을 빌라도에게 요구한 것이다.
유월절에 죄수 한 명 씩을 놓아주는 전례는 소동이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유대의 정치범을 한 명 놓아줌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불만을 감소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유대의 명절이 로마 제국에는 비상 사태였던 것이다. 빌라도가 노련한 정치가이며 행정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빌라도는 이러한 유대의 풍습을 이용해 예수를 특사로 풀어주려 했지만 오히려 대제사장들은 유월절을 이용해 민란이 날것이라고 겁박하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요구한다(마 27:15~17, 21).
페르시아에서 유대로 귀환한 후 출범한 산헤드린 공회는 A. D.6년 로마로부터 유대의 최고 대표기구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 예수님의 시신을 총독 빌라도에게 요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유대인의 재판권을 담당한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마 27:1~2).
로마 제국이 A. D.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A. D.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되었고 A. D.476년 로마의 멸망으로 끝을 맺는다.
ㅃ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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