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신학교

연대순으로 보는 신약성경

호리홀리 2023. 8. 24. 09:28

        신약개론(연대순으로 보는 신약성경) 

                    

    

                                                                                                                      박인대교수

 

  Israel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네자손에게주리라”약속한땅(창 12:1,7;13:15;17:8).

 

  2)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통로,강대국의 싸움터

 

  3)예루살렘성(해발750m,인구:예수님 당시 5~10 만)성벽 4km,성내면적 1㎢(약30만평;여의도 면적의 약34%)), 현재 성벽은 450년 전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1세 때 축성.

 

4)지형

    (1)평야지대(지중해연안):샤론평야가 하데라 근방에서 텔아비브에 있는 야콘강까지,그 아래 블레셋평야 그리고 이스르엘평야가 므깃도에서 벧산까지.

 

    (2)산간지대(레바논과의 국경에서부터 시작하여 갈릴리 산간 지방, 사마리아 산간 지방,  유대를 거쳐 네게브사막까지 높은지역입니다.

    (3)계곡지역: 북쪽의 헬몬산에서 시작하여 갈릴리 바다로 흐르고 있는 북 요단강 주변의 훌라 계곡, 갈릴리바다를 지나 요단강 서편에 있는 요단 계곡, 사해를 지나 홍해까지 걸쳐 있는 아라바 광야를 말합니다.

 

    ※ 요단강의 근원은 3줄기. 하나는 레바논에서 흘러나오는 ‘세너’이고, 다음은 헬몬산 밑에서 나오는 가이사랴 빌립보이며, 또 하나의 줄기는 단(Dan)에서 나옵니다.

 

    ‘요단강’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단에서 흐른다’는 ‘요레드 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세 줄기의 물이 갈릴리 호수에서 합쳐지고 사해에 들어가게 됩니다.

 

  3)요단강의 총 길이는 약250㎞, 갈릴리 남쪽에   있는 요단강의 길이.약205㎞.

 

  4)와디(Wadi):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데  평소에는 강바닥이 말라 있습니다. 와디럼(요르단)

 

  5)“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삿20:1,삼상3:20) 가나안 최북단에서 최남단의 지명으로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 됩니다.(남한의 1/8면적, 강원도 면적 정도, 세계 154위)석유매장량 세계2위,   신33:19~24,스블론지파,기름에 잠기리로다,아셀지파,감추어진 보배,지금의 하이파 

 

5)기후

   (1)우기:10월~3월 연 강우량은800~1000㎜.

 

   (2)건기: 비가 전혀 오지 않는 4월~9월. 비가 오지 않는 여름에는 밤에 이슬이 내리는데 연중 약 260일간 내립니다(fohn현상). 이런 섭리로 양과 염소를 키우는 목축업이 가능

 

        

     History of Israel

 

  1.족장시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창12:5)

  2.출애굽시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BC1446).

  3.사사시대/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사무엘.

 

  4.통일왕국시대(사울-다윗-솔로몬;  B.C.1050~B.C.930)

   1)사울이 40세에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됨(주전  1,020년경)(삼상 11:1-15).

   2)다윗이 30세에 헤브론에서 왕이 됨(주전  1.004년경)(삼하2:4).

   3)주전 1,000년경 다윗왕이 여부스족이 살던 시온산성을 정복, 다윗성이라 하고 수도로 정함(삼하5:7).

   4)솔로몬이 주전 960년경에 성전을 건축함(왕 상6:1). ‘제1성전 시대’

 

  5. 남북 왕국시대(주전 930년경): 솔로몬왕이 죽은 후 남왕국(유다)과 북왕국(이스라엘)으로    갈라짐(왕상 12:25).

 

  6.주전 722년, 북왕국인 이스라엘이 앗수르왕 살만에셀에게 멸망(왕하18:10) 수도 사마리아

 

  7.바벨론통치시대(주전586~538년):주전586년 남왕국(유다)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망하고, 예루살렘 솔로몬성전 파괴(왕하25:8).포로4차

 

  8.바사왕국(페르샤)통치시대(주전539~331): 주전 538년 바벨론 포로에서 스룹바벨의 인도로 귀환,(스2장).고레스, 3차에 걸쳐 귀환

 

  9. 주전 516년 제2성전 시대(스6:15).에스라

 

  10. 주전 445년 예루살렘 성벽이 느헤미야에 의해서 재건됨(느6:15).

 

  11.그리스통치시대(주전331~142):알렉산더(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점령당함. 헬레니즘

 

  12.주전168년 맛다디아와 그 아들들이 혁명을   일으켜 이스라엘 왕국인 하스모니안 왕조를 시작.

  13. 이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하누카’

 

  14. 로마 점령시대(헤롯 가족의 통치 시대)

    1)주전63년: 로마의 폼페이가 쳐들어 옴.

    2)주전37년:헤롯 대왕이 주전37년에서 주전 4년 통치.예수님 탄생은 주전4년초~3년말

헤롯이 성전을 재건하고, 많은 건축을 시행함 (예루살렘 헤롯궁, 안토니오 요새, 여리고 별장, 맛사다 요새, 사마리아성, 가이사랴 등등).

    3)주후 29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

     빌라도가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총독.

 

  15. 로마 통치시대(주전63~주후 313년)

    1)주후 70년: 로마의 티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파괴될 때 헤롯성전도 파괴됨.

    2)주후 73년: 맛사다에서 유대인들이 마지막   항거하다 자결함.

    3)주후 3~4세기: 동유럽의 알메니안 교회가 들어옴. 알메니안은 수는 적으나 지금도 예루살렘 성내의 서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16. 로마 기독교시대(비잔틴 시대)313기독교공인

    1)주후 325년: 콘스탄틴 대제, 니케아 종교회의 아리우스를 이단정죄,기독교가 국교가 됨.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이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음.

    2)주후 326년: 콘스탄틴 대제의 모친인 헬 레나가 성지 순례를 한 후 ‘예수님 무덤 교회’  ,베들레헴 탄생 교회 건축.

    3)비잔틴(Empero Heraclius)시대(313~636년)

 

  17.십자군 시대(1099년~1291년)

주후 1099년:십자군에 의해 점령됨. 이때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지역이 크게 번성하였고, 많은 교회가 섰으며 매년 수만 명이 성지 순례.

 

18. 회교 터키 통치시대

1187년:살라딘왕에 의해 점령당함. 사실 십자군이 이때 멸망한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다 주후 1291년 악고에서 완전히 멸망함. 

1492년:스페인에서 유대인추방,팔레스틴으로 귀환

 

19.회교 터키=오스만 제국 통치시대(1517~1917) 

20. 영국 통치시대(1918~1948년)

1)1920년대: 히브리어가 공식어로 됨. 첫 기브츠인 아인 하롯과 첫 모샤브인 나할랄(모세 다이얀이 태어나고 묻힌 곳)이 이스르엘 계곡에 창설됨.

2)1948년:영국에서 독립, 5월 14일 건국(한국은 48.8.15)

 

21.첫 대통령에 바이즈만 박사, 수상에 벤구리온(David  Ben-Gurion)

#48년~52년 유럽 및 아랍 각국에서 대규모 이민  #1967년: 이집트와 6일 전쟁에서 예루살렘성, 요단강 서쪽 계곡, 골란 고원과 시나이반도를 점령함

 

#한국과의 관계:동해표기,2019년 FTA,군사,경제교류,국적기 직항등 우호관계  

 

 

 

 

※요한복음 예수의 7대 표적 sign,세메이온

 

  내용 영적 의미 관련성구
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생명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음
2:1-11
2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받을 수 있음
4:46-54
3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의 영원한 얽매임에서 해방케 됨
5:1-9
4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심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무궁히 얻을 수 있음
6:1-13
5 물위를 걸으심 그리스도 안에서는
일생의 어떤 풍파도 잔잔케 됨
6:16-21
6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치유하심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빛 가운데서 살게  됨
9:1-41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됨
11:1-44

 

 

 

◆ 예수의 갈릴리 전도

예수께서 데가볼리에서 7병2어 기적 후에 마가단(마15:39), 달마누다(막8:10) 지방으로 배를 타고 가셨다. 마가단과 달마누다는 동일 지역으로 ‘마가단’은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인 막달라.

데가볼리(=데카폴리스)이방인 거주 헬라화.

데가볼리 중 제일 큰 도시;제라쉬(귀신들려 나은 자를 통해서 복음 전하게 하심)

 

 

 

      ※요한복음의 7대 선언:에고 에이미

 

  내용 영적 의미 관련성구
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심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라 어두움에 갇힌 자들을 생명과 진리로 이끄는 빛이 되심 8:12
3 나는 양의 문이라 세상에 수고한 자들이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들어가는 문이 되심 10:7
4 나는 선한 목자 세상의 위협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심 10:11
5 나는 부활과 생명이라 장차 성도들이 얻을 부활과 생명의 근거와 보증자가 되심 11:25
6 내가 곧 길, 진리, 생명이라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와 생명으로 통하는 길이 되심 14:6
7 나는 참 포도 나무 성도들이 의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영양분의 공급원이 되심 15:1

        

 

 

 

예루살렘 마지막 주간

 

◆예루살렘 입성과 월요일 

  ※감람산((橄欖山, Mount of Olives)가나안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4km, 해발 약800m.감람나무들이 많아서 감람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삼하15:30). 베다니와 벳바게가 모두 이 산 가까이 위치하며 이곳을 거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습니다(막11:1;눅19:29;마21:1).

 

◆화요일 

마24:4-44절의 말씀은 소묵시록(종말론)

 

◆수요일

        

◆목요일, 마지막 가르침과 금요일 새벽 체포까지

 

겟세마네(Gethsemane)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의 아람어 ‘갓쉐마네’에서 유래,기름은 동굴에 보관

 

◆금요일 재판 받으심

공관복음에서 곧장 대제사장인 가야바(A.D.18-36년)에게로 끌고 갔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A.D.6-15년 대제사장)에게 가서 심문을 받고 같은 건물로 추정되는 가야바집으로 이송

◆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심과 장사됨

 

◆일요일 아침: 부활

※<헤롯성전(聖殿,Temple)>헤롯 대왕(B.C.37-4)

 

이스라엘 역사상 세 번째 건축된 성전. B.C.19년경에 시작하여 10년 만에 기초 골격은 완성되었지만 최종 완공된 것은 A.D.63년경. 따라서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성전이 아직 미완성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의 구심점이었음

 

B.C.516년에 건축된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스6:16-22)이 있었지만 헐어버리고 새롭게 재건하였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B.C.959년, 왕상6:1-38)에 비해 매우 초라하였고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이두매 왕가 출신으로, 유대인들은 그의 통치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임명에 의해 팔레스틴을 통치하게 된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에 새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완공 7년 후, 주후 70년 티토에게 예루살렘 성과 함께 파괴 됨. 규모는 솔로몬 성전 보다 훨씬 웅장하고 거대했다.

성전의 축대였던 통곡의 벽은 규모가 방대해 허물지 못하고 남겨두었다.이방인의 뜰

 

 

                        사도행전 1장-12장

 

 

1.본래 누가복음과 상 · 하권 식으로 연결된 한 권의 책이었으나  주후 2세기 이후에 분리.

기록자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인 누가(Luke)로 직업은 의사. 근거는 전문 용어들과 독특한 문체들 때문입니다.

전반부에는‘그들’ 행16:10 이후 ‘우리’를 사용함.

 

누가는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을 만나  2차 전도, 드로아 부터 바울과 동행했으며,바울이 순교 할 때에도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딤후4:11).기록 연대는 주후61-63

 

2.배경: 복음의 역동성.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 강림,교회가 난관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으로 확장해 나갔음을 입증

 

①행1-12장-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도운동. 중심인물은 베드로, 동역자들은 요한, 스데반, 빌립.

 

②행13-28장-바울이 중심, 땅 끝까지 ‘전도운동’ 동역자는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등

 

◆예루살렘 초대교회 설립과 부흥 1장-2장

  1:12-14/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여인들.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주를 만나 변화 되었다. 

  2:1-4/ 오순절 성령, 예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눅11:12,행1:8)과 욜2:28-32의 예언과 언약의 성취.

 

※오순절(五旬節;Pentecost)은 ‘오십일’이라는 뜻이며 유월절 후 첫 안식일 후 50일째 되는 날(레23:15,16). =칠칠절(레23:15-21), 맥추절,초실절

 

※2:9-11절, 오순절, 예루살렘에 있다가 성령의 역사를 목격한 사람들-로마 제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하라(행1:8) 하신 명령을 실행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①바대인 ②메대인 ③엘람인 ④메소포타미아

⑤갑바도기아 ⑥본도

⑦아시아(소아시아의 서부 해안 지대를 말함)

⑧브루기아(소아시아의 내륙지역)

⑨밤빌리아(소아시아 남부해안 지역)

⑩애굽(B.C.331년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된 이래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였으며 알렉산드리아의 경우에는 유대인이 전체 인구 중 5분의 2에 해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후손들을 위해 헬라어 구약 성경, 70인역(LⅩⅩ )이  번 역 되었습니다.기원전250년경)

⑪‘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

⑫‘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B.C. 1세기경 부터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했으며 B.C.62년 로마 장군 폼페이가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오순절 성령 받은 사람들이 돌아가서 로마교회를 설립.]

⑬그레데[지중해 큰 섬, 구약에서는 갑돌(Caphtor)로 알려졌고, 신약에서 디도가 교회 지도자(딛1:12;2:1-3:11.)]

크레타문명의 발상지.블레셋족속이 이주해온 곳 

⑭아라비아(나바티안왕국;BC168-AD106 바위도시국가인 페트라)

 

2:14-36/ 베드로의 첫 번째 오순절 설교

   ①16-21절/요엘서를 인용하여(욜2:28-32)오순절 성령 역사는 요엘의 예언 성취임을 강조

   ②22-32절/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시16:8-11)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셨고(삼하7:11-16) 또한 다윗은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있음(시16:8-11) 베드로는  메시야가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

   ③33-36절/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시110:1)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은 구약을 인용,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였고 이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2:37-41/ 베드로의 설교로 3천 명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는 역사

 

2:42-47/예루살렘 초대교회의 4가지 특징

   ①경건 생활에 힘쓰는 공동체(42절)

   ②사랑으로 나누는 공동체(44,45절)

   ③친교를 나누는 공동체(42,46절)

   ④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공동체(47절)         오늘날 교회의 원형(原形).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성장 과정 3장-7장

  3:1-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이적

4:5-12/산헤드린 공회 심문과 베드로의 변론

 

   ※산헤드린 공회: 당시 로마 제국은 점령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상황에 맞게 자치 정부를 허용했고 유대인들의 자치 기관이  산헤드린[sanhedrin] 공회입니다. 로마는 자치 정부를 허용하면서도 총독의 권한 아래 예속시키기 위하여 자치장은 로마가 직접 임명하였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의장은 A.D.6-10년경 유대 총독이었던 코포니우스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 안나스(요18:13)였고 그 사위가 가야바.

 

구성원은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이며 모세가 세운 70인 장로, 민11:16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보좌하는 제사장들과 원로(元老)들, 율법학자들(랍비)로 구성

 

4:13-31/ 공회의 결의.

베드로와 요한의 석방으로 사도들과 교인들이 더욱 기도했더니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4:32-37/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바나바의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을 소개합니다(36,37절).

 

5:1-16/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성령을 속인 결과 죽은 사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초대교회는 다시 거룩성을 회복한 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더욱 부흥하고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한 것입니다.

 

  5:17-32/ 산헤드린 지도자들이 복음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사도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자, 주께서 기적으로 나오게 하시고(19-25절) 여전히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다시 잡아 공회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심문하자, 베드로가 담대히 변론하는 내용입니다(26-32절).

 

5:33-42/베드로의 변론을 듣고 분노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 하자, ‘바리새인 가말리엘’의 중재안에 의해 최소한의 벌, 태형을 받고 석방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는 것에 기뻐하며 복음 전파(42절).

 

  ※가말리엘: 당시 바리새인들의 탁월한 지도자로 율법 학파였던 샴마이 학파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힐렐 학파의 태두로서, ‘힐렐’의 직계 손자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바울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행22:3).

 

당시 산헤드린의 다수파와 의장직을 관장했던 사두개인들(17절)이 가말리엘 같은 바리새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리새파가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말리엘의 중재안(35-39절)을 수용하여 일단 사도들을 석방한 것입니다(40절).

 

  6:1-7/ 초대교회 일곱 집사

①자격(3절):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②일곱 집사의 책무(3,4절):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전파에 전념하고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의 책무를 담당하게 합니다. 후에 이들도 말씀 전하는 일(행7장;8:40), 기사와 표적까지 행하는 교회 지도자(빌립-행8:6)로 성장했습니다.

③선출 결과(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6:5 일곱 집사: 스데반. 빌립. 안디옥 사람 니골라- 계2:6,15에 나오는 니골라당.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니골라가 배교하였고 영지주의 이단 종파의 한 그룹. 니골라당은 2세기 말 사라졌음.

 

  6:8-15/스데반 집사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8,9절), 대적하는 자가 없었습니다(10절).

이에 저들은 음모를 꾸며 스데반을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합니다(11,12절). 공회에 피소된 스데반의 죄목은 성전 모독,율법을 거슬렀다는 것(13,14절).

이에 스데반을 죽이려 하지만 죽음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도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누가는 증언하고 있습니다(15절).

 

7장-스데반(면류관 뜻) 순교 직전 공회 앞에서 행한 설교로 이스라엘의 구속사를 서술하면서 유대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증인이 되었던 사울(58절)을 변화시켜 이방의 전도자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행9:15).

   

  9:1-31/ 사울 회심 사건

①1-9절/다메섹으로 산헤드린 공문을 갖고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다가 주를 만남으로 이방 선교의 계기가 됩니다.

 

②10-18절/주를 만남으로 눈이 어두워진 사울은 다메섹에서 주의 제자인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다시 보게 된 후 세례를 받고 회복됩니다.

 

③19-25절/ 회복된 사울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자 주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피신시킵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다소로 보내니라”(행9:29,30)

행11:25,26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가서

 

9:32~11:18/ 베드로의 활동

   ①9:32-43:욥바(36절) 다비다[히 영양(羚羊)]=도르가(헬) 여제자가 죽음.

룻다와 욥바는 18km 떨어진 곳,급히 와서 살림. 다비다 쿰(달리다 쿰)다비다여 일어나라“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42절).

베드로는 욥바 시몬의 무두장(가죽을 취급하는 직업)이 집에 머뭅니다.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 약 50km 떨어진 항구 도시. 가이사랴 아래 위치

   ②10:1-11:18:고넬로 집에 초청받은 베드로

 

가이사랴는 갈멜산에서 남쪽으로 약37km,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105km 지점에 위치, 헤롯이 거의 12년 동안(A.D.10-22)건설하여 그의 후원자인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초대 황제)를 기념하는 ‘가이사랴’라고 불렀으며, 총독 관저가 있는 항구 도시

 

베드로가 본 환상을 통해 주의 계시 받음.고넬  료가 보낸 하인 둘 도착

     1)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 설교(34-43)

     2)성령이 임함(44-48절)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 이태리인(행10:1), 이방인으로 최초로 세례 받은 자이며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한 사건은 이방 선교의 정당성이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이어서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11:19-22).

 

 

  ※안디옥 교회의 특징

 

   1)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교회(11:19-21)

   2)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는 교회(11:23)

   3)‘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최초의 교회(11:26)

   4)형제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11:29)

   5)기도하며 선교하는 교회(13:3)

   6)성령충만 교회(13:1-3)

   7)이방 선교의 전초기지(13:1-3)

 

바울의 1차전도/사도행전 13:4-14:28,야고보서,갈라디아서
기 간 47-49년(2년) 선교거리 약2,240k 동반자 바나바, 마가요한

 

안디옥~구브로~버가~비시디아 안디옥~더베(역순)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장군 중 한 사람인 셀류쿠스가 왕조를 세우고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헬라 제국 내에 16개의 도시를 건설하고 모두 안디옥이라 명명했습니다.

 

*성경에는 두 군데가 등장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터키의 중서부에 있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지.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시기한 유대인들이 그들을 쫓아냈습니다(13:45-50).

 

바울은 2차 3차 선교여행에서도 비시디아 안디옥을 방문했었습니다. 발굴은 1979년 본격적으로 재개되어 로마시대의 많은 유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아우구스투스 신전, 야외극장, 비잔틴 시대에 지은 사도 바울 기념교회 등

  
  >수리아 안디옥: ①
니골라의 고향(6:5) ②이방 선교의 중심지(11:19~24) ③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11:25~26) ④아가보 선지자가 기근을 예언한 곳(11:27~30) ⑤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13:1~3) ⑥바나바와 바울의 첫 번째 선교 여행 보고 장소(14:26~28) ⑦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정을 인편으로 전해 받은 안디옥 교회(15:22~35) ⑧바울이 두 번째 선교 여행 후 세 번째 선교 여행 전까지 머물렀던 곳(18:22~23) ⑨바울이 율법에 대한 이해 문제로 베드로를 책망한 곳(갈2:11~14)이며,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대도시. 인구 50~70만 명.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여 초기

기독교 선교의 전초기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의 설교/행13:15-41

   ①15-38절/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선        포.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②39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사상은 바울신학과 기독교 신앙의 제일 원리가 됩니다(롬1:17;3:28;갈2:16).

   ③15-38절/먼저 유대인에게, 다음 이방인에게,  선교 전략(롬1:16)

   ④42-52절/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자가 많이 생겼으며(43절), 온 시민들이 거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이며(44절)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었다(48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시기하였으며(45절), 반박하고 비방하였고(45절),“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내었습니다(50절). 결국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1)예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는 믿지 않았지만(요7:5) 부활 직후 개종하여 예루살렘 교회 초대감독이 되었고 49년 예루살렘 공의회 의장이었으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교회의 기둥’행12:7;15:13-21;21:18;갈1:19;2:12.

‘약대의 무릎을 가진 자’란 별명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A.D.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에 의해 돌아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첨예한 갈등이 대두되는 시기로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인 A.D.46-49년, 신약성경 27권 중 가장 먼저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2)배경: 예수께서 부활 승천한지 20년,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주의 형제 야고보가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낸 공식 서신입니다.

 

스테반의 순교(행7:54-60) 이후 개종한 유대인 성도들이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1:2-18).

 

또 유대교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로만 경건을 부르짖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실천적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고 세상에서의 행복을 더 추구하여 로마제국 전역을 두루 다니며 장사하는 등 재물의 축적에만 관심을 쏟고 미성숙한 성도들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 갈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초대 교회를 굳건히 하고자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공의회(The Conference of Jerusalem) 행15:1-35(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지도자 회의)

 

제1차 전도여행(A.D.47-49년)후 안디옥 교회에 머물 동안 유대인 성도부터 이방인 성도까지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데 있었습니다.

 

공의회의 결정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기독교의 기본교리 틀이 마련되었고,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확고한 체계를 이룩했습니다.

 

사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 결정은 문서로 작성되어 선택된 네 사람, 바울, 바나바, 유다,실라에 의해 각 교회로 보냈습니다(15:22,23).

 

 

▣갈라디아서

 

  1)기록연대:

제1차 전도 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 종교회의(49년,행15:1-29) 방문 후 50,51년경 안디옥에서 기록

 

  2)배경: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1차전도 때 온갖 고난 가운데 세운 교회. 뿐만 아니라 2차 선교에서도 갈라디아 지역이 포함되어(행16:1-6) 있었고 교회의 수가 날로 더하는 큰 성과를 맛보았습니다(행16:5).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는 성숙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쉽게 미혹되었고(갈4:8-11),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율법의 준수와 할례의 시행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갈5:4;6:12).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기까지 했으므로 심각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①갈1:1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의 정당성을 신적 기원에 두고 있습니다(2:1-10).

 

   ②자신이 전한 복음이 율법을 완성시킨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함을 밝힙니다(3:1;1:6-24).

 

   ③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3:1-4:31).

 

   ④참된 성도는 율법에서 자유롭게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핵심 단어도 ‘자유’이며  ‘기독교 신앙의 대헌장’ 등으로 불립니다. 특히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의 근거로 사용되어 ‘종교 개혁 선언문’으로도 불립니다.

 

   ⑤거짓교사(범죄자)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끊어버리라고 하면서(5:10-15), 그들에게 미혹되어 율법 가운데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온유한 심령으로 대하라고 합니다(6:1-5).로마서와 동일한 이신득의

      

 

       ◆사도행전 15:36 ~ 18:22   바울의 2차 전도여행(4년)
        48년~51년 실라,디모데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

 

15:36-41/바나바와 바울의 의견 충돌로 각각 출발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골4:10)로 1차전도 여행 시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행13:13).것을 이유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게 되었습니다(행15:36-39). 그러나 후에 화해하며 재결합(골4:10)하였고 딤후4:11에서는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으며 로마 감옥에서 나의 동역자 마가(몬24절)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동역자로 활동했으며(벧전5:13),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애굽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운 뒤 감독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기에 두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그의 집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 성령 강림 장소로 유명합니다(행1:13;2:1-4). 예수님 체포시 벌거벗고 도망간(막14:51,52) 수치스러운 과거도 가졌지만 A.D.30-70년경에  활동하면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초대 교회 태동기 등 중요한 시기에 활동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구브로(행4:36)로 갔으며 전승에 의하면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했다고 하며, 이태리 밀라노의 감독이 되어 많은 일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 때에 만나게 된 실라(행15:22)를 동역자로 안디옥 교회를 출발하여 2차 선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마가는 베드로가 지도

 

안디옥~더베~루스드라(디모데를 만남)~드로아~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고린도~에베소~가이샤라~예루살렘~안디옥

 

※빌립보는 B.C.360년경 마게도냐의 왕 필립 2세(알렉산더의 아버지 B.C.382-336년)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데 연유합니다. 이후 빌립보는 마게도냐에서 군사, 상업적으로 제일의 도시가 되었으며, 로마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켜 인구가 팽창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한 시기는 2차전도 사역 중 A.D.49-52년경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마게도냐 최초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습니다(16:14,15절).

 

  ※아덴(Athens)은 헬라의 수도이며 헬라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이며 에피큐로스, 스토아학파의 활동지(17:18)였고, 최초의 민주주의 발생지였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404)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한 뒤 사양길로 가다가 B.C.86년경 로마에 함락당하여 로마의 속국이 되고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 헬라철학이 융성헸고, 아덴에는 무려 300개의 공식화된 우상을 섬기는 종교성이 매우 많은 도시(17:22).

 

※바울의설교(17:22-31)‘아레오바고’(Areopagus) 아테네에 있는 석회암 언덕으로 재판이 열렸으며  바울은 에피쿠로스(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음)와 스토아학파(금욕주의자들로 이성을 중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과 변론하며 선포합니다. 그 결과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 등이 믿게 됩니다(17:34).

 

①아덴의 우상들은 피조된 우상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밝힙니다(22-25절)

②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밝히는데(26-28절), 아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티카 본토의 흙으로 창조되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바울은 온 인류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한 혈통임을 강조했습니다.

③29-32절, 우상 숭배는 허탄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심판을 선포하며 회개 촉구.

           

  ※고린도(Corinth)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시켜 주는 좁다란 지협(地峽)의 항구 도시입니다. B.C.146년 로마에 대항하였다가 완전 파괴되어 시민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10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었습니다.

B.C.44년경 시저에 의해 재건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B.C.27년 아가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은 로마와 그리스, 이집트와 수리아, 팔레스틴을 잇는 육상 및 해상 루트의 요충지여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여명의 여사제가 있었는데 종교적 의식의 매춘,부도덕한 타락의 도시,

아덴과 육지로는 약65km의 거리. 고린도에서  바울은 18:11절에 “1년 6개월을 머물며“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사도행전의 16번 전환)

 

 

▣데살로니가 전서

 

  1)제목: 신약성경의  네 가지 제목

①집필자 명, 마태(마가 누가 요한)복음,야고보서, ②수신자명, 디모데전,후서와 빌레몬서 

③수신지명은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④주제를 반영한 사도행전

 

  2)기록 연대는 3:6절, 고린도에서 기록하였으며 바울이 2차선교 여정 중 아덴에 머물러 있을 때 자신이 직접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하는 사정으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었고(3:1-5), 그곳에서 디모데가 고린도로 자리를 옮긴 바울에게 다시 와서 데살로니가 소식을 전했으며(행18:5)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약51년경에 기록.

 

  3)배경

바울은 2차선교 여정 중 빌립보 교회를 세운 후(행16:12-40), 데살로니가로 옮겨 두 번째 교회를 세웁니다(행17:1-7). 그러나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갑자기 베뢰아로 가서 전도하는데 이곳까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뒤쫓아 왔으므로 다시 배를 타고 아덴으로 옮겨 전도합니다(행17:10-15). 그때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1:1)를 아덴으로 불러 합류합니다(행17:15).

바울은 급하게 떠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재방문하려 하지만 좌절당합니다(2:17,18). 이에 디모데를 대신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견하여 힘을 주고자 합니다(3:2-5).

 

그 후 바울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옮겨 사역 중에 디모데가 돌아왔고 그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있음을 보고 받습니다(3:6-10). 그래서 1:2-10절에 격려하는 내용이 있으며, 잘못된 종말론에 대하여 바로 잡고자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하여 보내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전서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굳건한 신앙 상태의 보고를 듣고 기쁜 심정으로 쓴 것이라면, 후서는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오해해 규모 없는 삶을 산다는 소식(3:6-12)과 스스로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바울의 다른 편지를 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서까지(2:1,2) 교인들을 미혹하기도 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급히 기록, 살전  이후 약 2,3개월이 경과한 A.D.51년경에 쓰인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18:23 ~ 21:26 바울의 3차전도 (52세)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바울의 3차 선교 여정 / 사도행전 18:23-21:26
기 간 52-57년,약6년 선교거리 4,500-5,600km 동반자 실라

안디옥~갈라디아~(1,2차 여행지)~에베소(3년)~빌립보~데살로니가~고린도~빌립보~드로아(유두고사건)~밀레도~예루살렘

 

( 밀레도에서 에베소장로들에게 행20:24,죽음각오)

*a: 아볼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행18:24)이며 율법에 정통한 학자이며 세례 요한의 제자(행18:25) 고린도교회 지도자(고전1:12;3:4;16:12)

에베소,유대인 회당에서 설교했으나(51-52년경, 행18:26),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 강림에 대해알지 못했습니다(행16:7-15;행2:1-4;8:14-17).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 지식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아볼로를 집으로 초대해서 ‘하나님의 도’(=복음)를 잘 전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바울파와 아볼로파 등으로 대립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고전1:11-12).

행19:1에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 때는 아볼로가 이미 고린도로 간 뒤라 서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b: 바울이 에베소 회당에서(행19:8) 3개월 가르치고, 두란노서원(10절)에서 2년 동안 가르쳤으면 2년 3개월이 되는데, 행20:31에 의하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했다고 했습니다. 이 차이는 이 기간동안 에베소에서만 복음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 등과 요한계시록의 7개 교회(골2:1;4:13;계2,3장)가 세워진 것을 보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c:에베소의 아데미 여신 숭배,길이와 넓이가 각각 120m와 60m나 되는 신전이 있었으며 수많은 순례자가 끊이지 않은 도시였고 아데미 신상과 신전의 모형을 제작하여 파는 사업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우상은 헛된 것이라고 전했기에 은장색 사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소요를 일으켜 흥분한 군중들이 바울과 같이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고, 이때 에베소의 서기장이 지혜로운 말로 소동을 진정시키고 군중을 해산하게 됩니다(35-41절).

 

▣고린도전서

 

바울이 2차전도 여정(A.D.49-52년) 중에 설립한 고린도 교회에 3차전도 여정(A.D.52-57년) 유월절 경, 에베소에서 써서 디도 편으로 보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자 파당이 형성되어(이때 지도자는 아볼로) 분열을 일삼게 되었고 우상 문제는 어느 도시보다 큰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떠난 지 약3~4년이 경과한 A.D.55년경 에베소에서 디모데를 고린도에 급파, 고린도전서를 보내면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 기록.

 

  ▣고린도후서

 

1)고린도전서가 기록된 후 약 6개월이 지난 A.D.55년 말이나 56년 초에 빌립보에서 기록

2)동기: 바울은 2차전도(A.D.49-52) 중 50년경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3년이 지난 3차전도(A.D.52-57) 여정 중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알고 55년경 에베소에서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고린도전서를 보냈습니다. 이후 더 악화되었다는 소식에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여 디도에게 보낸 서신.

 

▣로마서

 

  1)더디오가 대필(16:22). 3번째 고린도를 방문하여 석 달간(행20:3) 머물면서 기록했으며, 시기는 A.D.57년 후반. 바울이 고린도에서 처음 전도, 회심한 가이오(고전1:14)가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롬16:23)자로 언급되었고, 고린도 동편 약 10km 떨어진 항구인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인 뵈뵈가 로마서를 전하는 자로 암시되어 있다(롬16:1)

  2)배경:로마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세워진 신앙공동체.

당시 로마제국은 영국에서 아라비아까지 지배한 대제국. 로마는 8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습니다.  부요했으며 상업과 무역,정치의 중심지였으며 잡다한 종족이 모인 도시였습니다. 로마 교회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간의 갈등과 마찰

①유대인 성도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긴 했으나 여전히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해

②또 이방인 성도들은 참 자유가 아닌 방종,이방 풍습의 생활 습관. 성화강조

 

사도행전 21:27~28:31 바울의 체포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바울의 4차 선교>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빌립보서

 

바울의 4차선교 여행 / 로마로 압송과 투옥  사도행전 21:27-28:31
압송항해 61년 가을-62년 봄 로마수감 61년 봄-64년 봄 선교거리 약3,800-4,000km

 

 

 

 

※안토니아 요새: 이곳의 지휘관인 ‘천부장’은 760명의 보병과 240명의 기병을 거느린 글라우디오 루시아(행23:26)이며, 예루살렘 치안의 책임자로서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22:1-21/ 바울의 첫 번째 변론- 흥분한 군중들 앞에서 유대인들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합니다(1-4절). 히브리말로 말했으며(2절), 유대인의 혈통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통 유대교에서 교육받은 자임을 확인시키며(3절) 유대교에 대한 열정으로 복음을 핍박하던 자임을 강조합니다(4절). 이어 바울은 자신이 변화하게 된 계기를 설명합니다.

 

①다메섹 도상의 체험에 대한 증거(5-11절),

②(12-21절).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사명이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이뤄졌음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없애 버리자’고 합니다(22,23절).

 

   23:1-11/ 바울의 두 번째 변론-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 임을 밝히면서 고난의 위기를 모면하고 다음 날 산헤드린 공회에서 변호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①바울과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대조적인 모습(1-5절). 바울은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비난했다가 공회원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출22:28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과(빌3:6-9;딤후4:7).

 

아나니아는 ‘회칠한 담이여’(마23:27)라는 비난을 받은 자였으며 A.D.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②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6-10절)

바울이 바리새인임을 밝히고 부활을 전한 까닭에 심문을 받는다고 주장함,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과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논쟁 가운데 천부장에 의해 안전하게 영내(안토니아 요새)로 피신시켰습니다.

 

③그날 밤 주님의 음성입니다(11절).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주님은 바울을 위로하시며 로마 전도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23:23-35/ 천부장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에게 무슨 해라도 미치면 그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야음을 이용하여 로마 시민 재판권이 있는 로마 총독에게로 이송한 것입니다.

 

24:10-21/ 바울의 3차 변론-가이사랴 총독 벨릭스 앞에서, 3가지 죄목(24:5,6)- ①개인적인 죄-전염병과 같은 자로 소요하게 하는 자 ②정치적인 죄-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유대인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항한 무리들) ③종교적인 죄-성전을 더럽혔다(유대법으로 사형에 해당)에 대하여 바울은 전적으로 부정하며 변론합니다.

 

   24:22-27/ 벨릭스 총독은 바울의 무죄함을 알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①재임 기간 동안 혹시라도 소요가 일어나는 두려움으로 ②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27절) ③바울에게 뇌물을 받기 위함(26절)이었습니다.

 

  25:1-12/후임 베스도 총독 앞, 바울의 4차 변론

바울은 로마 시민의 권리를 내세워 가이사에게 재판받게 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베스도도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로마 전도를 위한 주님의 섭리는 계속 성취되어 갑니다(행23:11).

 

25:13-27/아그립바왕(헤롯아그립바2세, A.D.48-70)은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 인사를 왔을 때에 베스도가 바울의 문제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받으려는 내용입니다.

 

  ※아그립바 왕(13절)은 행12:20-22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A.D.48-70)

A.D.48년경, 레바논에 위치한 갈기스를 다스리던 헤롯 빌립이 죽자 글라우디오 황제로부터 그곳의 왕좌는 물론 회당의 통치권과 대제사장직을 위임할 수 있는 권한을 받고 네로에게 갈릴리 주변의 도시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그립바2세는 로마 황실의 비호를 받는 가운데 팔레스틴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지방에 부임한 로마의 새 총독인 베스도를 방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6:24-32/ 아그립바 왕으로부터 바울의 무죄 증명과 로마로 이송 결정.바울은 결박한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행27,28장).가이사랴에서 출항

 

※바울과 함께 동행한 자들:

①바울과 다른 죄수들

②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백부장은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장교(행10:1;21:32)이며 아구스도대는 ‘아우구스투스의 군대’로 황제의 친위대, 혹은 황제와 지방의 주둔군 사이의 연락 임무를 담당하는 부대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③‘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누가와 함께 이방인으로 바울을 시중든 자입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에 언급된 것으로(골4:10;몬1:23,24)보아 로마로 동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④‘누가’가 동행하였습니다(행16:10-17;20:5-15;21:1-18).

 

‘유라굴라’[14절=동풍(유루스:라틴어)+북풍(아킬로)=‘동북풍’광풍의미]이며 이런 광풍은 전형적인 지형에 인해 형성된 것인데, 그레데 섬의 중앙에 솟아 있는 2,100m의 이다산맥에서 형성된 두 반대 기류가 맞부딪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바람에 휩싸이면 배가 방향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표류하다 결국에는 암초에 부딪쳐 파손되는 것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제는 안심하라”(22절)“여러분이여 안심하라”(25절)-‘안심하라’(유뒤메오)는 의학적인 용어로 마치 의사가 절망 중에 있는 환자에게 용기를 주는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27:27 2주 동안 유라굴라 광풍에 밀려 멜리데 섬(28:1)에 이르게 됩니다. 그동안 약 800km의 거리를 표류했습니다.

 

35절에서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축사하고””(36절). 배에 있는 사람의 수는 276명이었습니다. (38절)

 

28:1-11/ 멜리데 섬에서 3개월간 머물면서 일어난 두 가지 이적

 

  ※멜리데(Melita)는 현재 ‘몰타(Malta)공화국’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며, 길이 약 30km, 폭은 약 16km, 시실리에서 아프리카 해안의 북동쪽 약 34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①바울이 독사에 물렸던 사건(1-6절). 멜리데 섬 주민들이 조난당한 바울 일행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불을 피웠는데 불에 나뭇가지를 갖다 올려놓을 때 나뭇가지 사이에 있던 독사가 뜨거움으로 인해 바울의 손을 문 것입니다. 이를 목격한 원주민들은 바울이 신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지 않았고 바울을 ‘신이라’했습니다(루스드라에서도 행14:8-13).

 

②바울이 열병과 이질에 걸린 보블리오의 부친을 치유한 사건(7-10절), 보블리오는 원주민들의 대표로 바울이 안수하여 낫게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다고 하며 바울과 모든 일행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다. 결국 두 사건은 멜리데 섬을 복음화 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로마 2년간 셋집(가택연금)에서 활동과 그 이후 사역에 대하여: 로마에 도착한(A.D.61년경) 이후 2년 동안 미결수로 복음을 전하며,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였으며, 63년에 풀려나서 에베소와 마게도냐(딤전1:3), 드로아(딤후4:13),그레데(딛1:5),니고볼리(딛3:12)등으로 전도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파하다가 66년 다시 투옥되어 67년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 1차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서 순교 전까지 딤전, 딤후, 디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 셋집(가택연금)에서 2년간 머물면서 기록한 4권의 ‘옥중 서신(3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①가이사랴에서2년(행23:22-26:32 A.D.58-60)

    ②로마 1차 감옥 약 2년(행28:30A.D.61-63)

    ③로마 2차 감옥(딤후2:9;4:6,A.D.67)

 

옥중서신 기록 순서는 옥중 상반기인 A.D.61-62년에 기록한 ①골로새서 ②빌레몬서 ③에베소서이며  A.D.62-63년에 기록된 빌립보서

 

 

▣골로새서

 

  1.저자는 바울이며 1차 로마 감옥에서 기록(골4:3,18),골로새서와 빌레몬서가 함께 전달된 것으로 보아, A.D.61-62년경에 기록

 

  2)배경:에베소에서 동쪽으로 가는 주요 무역로,상공업의 중심지였으나 무역로가 이동함에 따라 이웃에 있는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 같은 도시들이 번영하게 되고 골로새는 쇠퇴하여 바울 시대에는 작은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의 유대인 이주 정책에 따라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는 작은 도시였으나 다양한 문화적 현상과 종교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나타납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며(2:1)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가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에바브라는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3년(행20:31) 동안 사역할 때 빌레몬, 아킵보와 함께 복음을 들었는데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빌레몬과 함께 교회를 세운 것으로 주로 개종한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1:21,27;2:13).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직접적인 동기는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혼합주의적인 이단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신앙을 가지며 성결한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기독(그리스도)론에 대하여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

 

 

빌레몬서(골로새 교회의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신)

 

#배경: 본서는 1차 로마 투옥(61-63년경) 중에 기록, 빌레몬은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할 때(행19:9,10) 회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도들에게 친절했으며, 그의 집이 예배 장소로 사용될 정도로 부유한 자였습니다(1:2,5-7절).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로서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그 후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후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고 또 바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가 되었습니다(1:11-13).

 

그러나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주인에게서 달아난 종은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자 하여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오네시모 자신도 도망자 신세로 마음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에게 보내면서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과 그가 주의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본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로 인하여 생긴 재산 피해는 바울 자신이 갚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1:18).

 

 

 

 

 

 

▣에베소서(회람서신)

 

  #배경: 에베소는 바울에게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2차전도 여정에서 복음을 전했고(행18:19-21), 3차 전도는 약 3년간 머물며 사역했던 곳입니다(행19:1-41). 두란노서원 

 

3차전도 여정,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눈물의 이별을 한 것(행20:17-35)과 훗날 디모데를 파송하여 성도들을 지도케 한 사실(딤후4:5) 등으로 애정이 컷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양대 이단인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로 인하여 교회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헬라문화가 교회 안에 침투해옴으로 심각한 윤리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본서를 통해 먼저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주기 위한 교회의 근원,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 교회 본질에 대해 기록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성도들이 일치하고 화합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생활과 성결한 삶, 영적 성숙을 위한 신앙의 무장강조. 특징은 ‘교회론’이며 ‘그리스도 안에서’(헬, 엔 크리스토)가 바울의 다른 서신에 비해 많은 35회가 사용되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총독이 다스리는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수리아의 안디옥과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지중해 동부의 3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에는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사도 요한(계1:11) 디모데(딤전1:3) 등도 활동, 소아시아 중심 교회로 발전

 

아구스도가 아시아의 수도로 지정 당시 약 25만이 거주하였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100개가 넘는 대리석 기둥을 가졌고 높이가 17m이며,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전 뜰이 있었고,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습니다. 오늘날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두기고:본 서신의 전달자이며(행20:4) 바울의 3차전도 여정에 동행했으며, 빌레몬서, 골로새서를 전달,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은 일(골4:7,9). 바울에게 크게 인정받던 사역자

 

 

 

 

 

 

▣빌립보서

 

  1)기록 장소: 바울이 ‘내가 당한 일’, ‘나의 매임’(1:12,13)과, ‘모든 시위대’(1:13)와 ‘가이사의 집’(4:22)은 1차 로마 감옥에서 기록

 

  2)기록시기: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가 로마 1차 투옥 상반기경 61-62년경에 기록되었다면 빌립보서는 후반기인 62-63년경에 기록.

 

  3)배경: 바울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빌립보에 도착(행16:7-12). 이에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와 점치는 소녀, 빌립보 옥의 간수와 그 가족에게 전도하였는바 그들이 회개한 후 루디아의 집에서 유럽(현재 그리스) 최초의 교회가 세워짐.

 

그들은 궁핍한 가운데서도 섬기며(고후8:1,2), 바울의 사역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헌물을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4:14). 이런 가운데 갇힌 바울을 돕던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중태에 빠졌습니다(2:26,30).

 

이 일로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근심하였으며(2:26),회복되었습니다(2:27).바울은 그를 빌립보로 돌려보내면서 격려한 것(1:3-30;4:10-20).

 

여기까지 사도행전의 기록,주후62~63년경

 

        ◆로마 1차 감옥 석방 이후 2차 감금과 순교까지  
                    <바울의 5차 선교>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후서  

      

  사도행전은 바울이 A.D.61년 로마 감옥에 투옥된 후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기록으로(28:30.31)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딤후1:16-18을 비롯하여 목회서신을 보면 로마 감옥에서 1차 석방된 후 한 차례 선교 사역(주후64~65년)을 하였으며, 다시 투옥된 사실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사가 유세비우(260-340년)의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로마 교회의 교부였던 클레멘트(30-100)도 바울이 서바나(스페인)로 선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바(롬15:24,28) 1차 로마 감옥 이후에 실행에 옮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바울이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던 사랑하는 동역자요,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목회서신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모친은 유대인 유니게, 부친은 헬라인, 외조모는 로이스(행16:1;딤후1:5)이며 루스드라 출신입니다(행16:12).

 

  1) 1:3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를 거쳐 마게도냐로 여행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바울이 서바나 지역을 거쳐 그레데 섬을 통과한 후 소아시아 지역을 방문하고 나서 마게도냐에서 에베소의 디모데에게 65년 혹은 66년경 보낸 서신으로 추정

 

  2)배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뒤 자신이 세운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을 두루 방문하던 중 골로새를 방문하고 이어 에베소를 방문하였으며 그곳에서 빌립보에서 온 디모데와 합류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을 인지한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 대처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1:3,4).

 

그런 후에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기로 한 약속(빌2:24)을 지키기 위하여 마게도냐 지역으로 간 바울은  에베소로 되돌아가 디모데를 만나보려고 했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해 목회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3:14-16).

 

 

▣디도서

 

  #배경

  로마1차 감옥에서 석방된 뒤 곧 서바나를 방문하고 그레데에 들렸다가 그레데 교회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디도를 그곳에 남겨두어 문제점들을 바로잡도록 조치했습니다(1:5). 그런 뒤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으로 돌아온 후 66년 초 디도에게 본서를 써 보낸 것입니다.

 

그레데는 지중해상에서 네 번째로 큰 섬(그레타 문명의 발상지)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였습니다. 할례 실시와 같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유대주의적 이단(1:10). 그리고 신앙과 행위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관을 가진 자들도 있었습니다(1:16). 바울은 디도를 격려, 거짓 교사들을 척결하고 교회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목회 지침

 

 

▣디모데후서 

 

1)바울이 2차 투옥되어 순교당한 때가 67년 또는 68년경일 것으로 봅니다. 특히 4:6에서 자신의 형 집행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9-13에서 겨울이 닥치기 전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맡겨둔 겉옷을 가지고 속히 와주기를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바울은 늦어도 본서를 66년 또는 67년 가을 경에 기록하여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것.

 

  2)배경

바울서신 중에서 마지막 서신입니다.  A.D.64년 로마시의 대화재로 인해 시작된 로마 황제 네로(54-68년)의 기독교 대박해가 처음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시행되다가 점차 제국 전역으로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박해로 인해 바울도 2차 투옥되어 곧 순교를 당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역경 중에 처해 있던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밖으로는 핍박에 굴하지 말며 안으로는 이단을 경계함으로 복음의 진리와 교회를 수호하라고 교훈하기 위하여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최후로 기록한 서신이며 유언과도 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강한 명령조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맡으라’(1:8), ‘지키라’(1:14), ‘힘쓰라’(2:15), ‘버리라’(2:23) 등.

 

 

  ※바울의 출생 시기와 나이

바울은 언제 태어났을까? 분명한 암시나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의 나이를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는 암시가 두 군데 정도 나옵니다. 

 

1.사도행전 7장 58절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발 앞에 두니라." 바울은 '청년'(네아니아스:30세 전후)으로 등장  

 

첫째, 스데반 순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 2~3년 내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신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AD30년 5월경에 있었으므로(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날짜는 AD30년 4월 7일이며, 다음날이 안식일이었고 또 그 날이 유월절이었으며, 유월절과 안식일이 같은 날에 겹치는 해는 AD30년 이었습니다), 따라서 스데반의 순교는 AD32년 혹은 33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대개 학자들은 32년경으로 봅니다.

 

둘째, 증인들이 옷을 벗어서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사울이 스데반 죽음의 '책임 있는 증인' 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유대교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30세는 되어야 합니다.

 

2. 결론

바울은 스데반 순교 때(AD32년경) 최소한 30세 정도 되었으며, AD 1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바울의 나이는 AD의 연대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의 위대한 역사는 만남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스데반,바나바,마가,누가,디모데등 악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가장 위대한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만남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