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더(구속사)

에스더9장,최후승리

호리홀리 2016. 2. 22. 18:33

하만이 내린 조서에 따르면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기로 결정된 날이었으며(3:13),  모르드개가 내린 조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학살하려고 하는 대적들에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된 날이었다(8:11, 12). 따라서 이날에는 유대인들과 그 대적들간의 살상 행위가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아달월은 바벨론식의 달() 이름으로서 종교력으로는 제12, 민간력으로는 제6, 그리고 태양력으로는 2-3월에 해당되는 때이다.

 

 '왕의 조명'은 오직 모르드개에 의해 작성된 것만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조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트''왕의 칙령'. '법령'등을 의미하는데 본 구절에서는 이 용어가 단수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사실 하만에 의해 반포된 조서는 페르시아의 관례상 어쩔 수 없이 취소되지 못했을 뿐(8:8), 왕이 그 조서의 효력을 제거하기 위한 조서 모르드개에 의해서 반포케 했다는 점에서 실제적으로 사장(死藏)된 것이나 진배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자들은 하만이 내린 조서를 근거로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행위를 감행할 것이 뻔했다.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 하만과 그 추종자들이 왕을 유혹하여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려고 음모를 꾸몄던 사실(3:7)을 가리킨다. 물론 음모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적었다. 하지만 그 음모가 조서로 구체화되어(3:13, 14) 반포됐을 때, 하만의 뜻을 좇아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하는 데 참여할 뜻을 가졌던 자들은 심히 많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제어하기를', 리쉬로트)'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 '권력을 갖다', '군림하다'란 뜻을 갖는 동사 '솰라트'의 부정사형으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만큼 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8:9;3:27;6:8). 그래서 혹자는 이를 '움켜서 쥔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Rawlinson).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 모르드개에 의해 반포된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학살하려는 자들을 오히려 죽일 수 있게 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런데 '미워하는 자''혐오감을 갖다' 혹은 '악의를 품다'. '증오하다'등의 뜻을 갖는 동사 '사네'의 분사로 이와같은 감정적인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도리어'(, 나하포크)'변하다' 혹은 '뒤집다', '전복하다', '반대로 돌다'등의 뜻이 있는 동사 '하파크'의 수동형 부정사로서 상황이 반전된 상태를 가리킨다(Keil, Lange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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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들이...각 도, 각 읍에 모여 - 유다인들의 이 같은 행동은 왕의 조서 첫조항에 따른 것이었다(8:11). 그런데 본 문구는 당시 제국내의 유대인들 전체가 한 곳에 모두 모인 것은 결코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의 각 도, 각 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르'가 본 구절에서 복수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대 백성들이 살던 모든 도시에 유대인들이 모였었음을 가리킨다(Keil).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 여기서 '해하고자 하는 자'(, 비므비크쉐이 라아탐)는 문자적으로 '자신들의 멸망을 추구하는 자'의 뜻이다. 그리고 '죽이려하니'(, 리쉴로아흐 야드)'손을 뻗다'는 뜻으로 죽이는 모습을 묘사한 단어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로 된 어구는 본서의 2:21에서는 '모살하려', 3:6에서는 '멸하고자'로 각각 번역되어 그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본 문구는 유대인들이 결코 선제 공격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사신들에게 공격을 해오는 자들 만을 자신들의 대적으로 보고 그들만을 죽였던 것이다.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 하여... 막을 자가 없고 - 문자적으로는 '막을 자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두려움이 그 모든 백성들 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의 뜻이다. 그런데 모든 민족들에게 임한 이 두려움도 8:17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려는 섭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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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은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는 데 민감한 관리들이 유대인들 편에 서기로 재빨리 결정했음을 말해준다. 원래 그들은 하만의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돕는 입장에 서야만 했다. 그런데 하만의 조서가 취소되지 않은 채, 모르드개에 의해 조서가 내려졌기 때문에 그들은 온전한 중립적 입장에 서 있어야 했다(8:9).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 권력을 장악한 신층 세력인 모르드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유대인들을 지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관원( 사르) - 왕의 신하를 가리키는 광의(廣義)의 단어이다(3:12). 이는1:3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되었다.

 

 다 유다인을 도우니 - 여기서 '도우니'(, 메나스임)'올리다' 혹은 '세우다' '일으키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나사'의 분사로서,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을 가리킨다(Rawlinson). 그러나 이것은 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을 돕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지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만일 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을 돕는다면 왕의 첫 번째 조명(3:12 - 14)를 범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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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개역 성경에는 안 나타나 있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가 4절 초두에 놓여 본절이 3절의 이유임을 말해준다.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 그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권세가 아울러 높아진 것을 가리킨다(8:2, 15 ;10:3).

 

 점점 창대하매 - 여기의 '창대하매'(, 가돌)는 앞의 '존귀하여'와 동일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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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 유대인들이 이같이 할 수 있었던 데는 관리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3)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8:11-13에 언급된 조서의 내용과 같이 대적들을 진멸했을 것이다. 한편, '대적'은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무력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던 자들이다(8:11).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 이것은 본절 앞의 문구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본서의 저자는 이 같은 동의적(同意的)대구법의 표현 방식을 빌어서 유대인들의 대적들에 대한 진멸 행위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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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이...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 본절에서부터는 5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의 진멸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본 한글 개역성경은 5절을 유대인들의 진멸 행위의 전체적 개요로 보지 않고 하나의 구체적 모습으로 본다. 그래서 본절을 번역하면서 원문에도 없는 ''라는 단어를 삽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 문구의 '도성 수산', '수산'()의 서쪽 언덕 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긴 요새 지역으로서 왕궁 이외의 다른 거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이곳은 인구가 조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Rawlinson).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도성 수산''수산'은 다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면서 하만의 열 아들도 함께 죽였는데(7-10), 그 아들들의 시체가 '수산'에서 달렸다는 언급(14)을 볼 때, 본장에서의 '도성 수산''수산'과 별 구별없이 사용된 듯하다. 한편, '죽이고'(, 하라그)8:11에서 '도륙하고'로 번역된 단어이다(3:13 주석 참조).

 

멸하고(, 아바드) - 8:11에서 '진멸하고'로 번역되었는데 이를 참조하라(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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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 사실 왕의 조서에 따른다면, 유대인들은 대적의 생명과 재산을 아울러 빼앗을 수도 있었다(8:11).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같이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대적들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 행위가 결코 더러운 이익을 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연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적들에 대한 자신들의 행위가 대적들을 멸하는 그 자체에만 의의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함으로써 하만의 아들들의 재산은, 주인을 잃은 재산 일체는 왕에게 귀속됐던 고대법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하수에로 왕의 것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약500년 전에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난후 탐심에 빠져 전리품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사건(삼상 15:17-23)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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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중요한 일은 항상 '실록(6:1)에 기록되어야 했으므로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된 자의 숫자가 왕께 보고된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왕은 그러한 관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신의 조서가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 결과 보고를 받을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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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 '에스더'는 모르드개 혹은 그밖의 소식통에 의해서 1213일에 몇 명의 대적들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살해 됐는지를 보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왕은, 에스더가 모르는 것으로 간주한 채 자신이 부하들로부터 보고 받은 바를 에스더에게 말해주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의 에스더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 수산에서 죽은 수효를 생각해 볼 때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숫자의 대적들이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사실(16)을 암시하기 위한 감탄문이다(Rawlinson).

 

 이제 그대의 소청...요구가 무엇이뇨 - 왕은 유대인에 의해서 살해된 대적의 숫자와 함께, 그 대적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세가 대단하였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이다(Schultz). 따라서 사태의 추이를 익히 알고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은 나머지 대적들을 소탕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 다시 이같이 에스더에게 '소청'의 유무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왕은 에스더와 유대인들에 대해 은총을 허락하고 또 은혜를 내릴 것을 요청케 한 것이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이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의 결과인 것이 틀림없다. , 아하수에로 왕은 난폭할 뿐만 아니라 즉흥적이고 허영심이 많은 군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수에로가 본절에서 처럼 반응한 것은 그의 성격과 마음을 여호와께서 움직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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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행하게 하시고 - 하만의 조서(3:12, 14)나 모르드개의 조서는(8:11, 12) 모두 하루 동안만 유효하였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적대적 공격을 해왔던 모든 대적들을 그 하루 동안에 모두 진멸키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오히려 남은 대적들이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유대인들에게 큰 해를 입힐 것이 뻔하였다. 그래서 에스더는 그러한 것을 미리 예견하며 대적들의 완전한 진멸을 위해 왕에게 다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자신의 개인적 원한을 갚으려는 의도에서 그러한 요청을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달게 하소서 - 유대인들이 자신의 대적들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 시체를 훼손시키는 등의 일은 멋대로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같은 권한이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1213일 하루만에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달 시간적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는 이처럼 그 다음 날인 1214일에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달 수 있게끔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청을 한 것이다. 에스더는 이처럼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 닮으로써 (1) 유대인의 대적 아각 자손(3:1)인 하만 일가가 완전히 진멸됐다는 사실을 가시화하고, (2) 유대인의 그밖의 대적 혹은 그들에게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삼상31:10)를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Paton). 한편, 이처럼 나무에 다는 것은 히브리와 페르시아에 유행했던 당시의 관습이었다(Keil & Schultz, 21:22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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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조서를...내리니...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 여기에서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이 혹자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에게 다음날도 싸울 수 있다는 것만을 허가하는 것(C.A.Moor, Keil)은 아니다. 오히려 아하수에로는 다음날의 싸움과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 수 있게 한 조서를 동시에 내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Schultz). 그런데 혹자의 추측처럼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하만이 매어 달렸던 높은 나무(7:9, 10)에 일부 달렸고, 그 나머지도 그 옆에 새로 세웠을 나무에 나란히 달렸을 것이(Paton)라는 견해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한편, 죽은 시체를 나무에 다는 것은 그 시체에 대한 대단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한 사람에서 까지도 심한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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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행위는 왕이 내린 새로운 조서(14)에 따른 합법적인 것이었다.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 여기의 '삼백 인'1213일에 미처죽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 본서 저자는 이와 같은 표현을 본절 뿐만 아니라 10절과 16절에도 기록하여 유대인들의 바른 행위와 그들의 살륙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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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 이것은 앞의 문구 '생명을 보호하여'와 동일한 의미로 봐야한다. 따라서 이것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22). 그러므로 혹자의 생각처럼 '대적들을 살륙하고 그 숫자를 보고하기 위해 싸움의 장소에서 벗어났다' 라고 하는 견해(Rawlinson)는 재고될 필요가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수산 이외의 지역에서 살해된 대적의 숫자 '칠만 오천 인'은 수산에서 하루 동안 살해된 숫자 500명에 비하면 조금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십인역(LXX)과 같이 이를 일만 오천 인으로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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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달월 십 삼 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 이것은 16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의 정당한 행위가 언제 이뤄졌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표현이다.

 

 십 사 일에 쉬며 - 수산 지역의 유대인들은 왕의 특별한 조서에 따라 '십 사 일'에도 대적들을 물리쳤다(15). 그러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은 '십 삼 일' 하루 동안에(8:12) 대적들을 진멸하였기 때문에, 그 다음날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수산...유다인은 십 삼 일과 십 사 일에 모였고 - 15절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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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은 16, 17절의 결과로서 수산 이외의 지역 유대인들이 1214일을 경축일로 지키게 되었던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알 켄) - 여기서 '''~위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 혹은 '이같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둘이 합쳐져서는 각자의 의미가 되살아나기 보다는 오히려 앞에 언급된 내용의 결론을 유도하는 접속사가 된다(2:24 ;6:6). 따라서 여기의 '그러므로'는 본절이 16, 17절의 결론에 해당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대체로 어떤 습관의 유래에 대해 설명할 때 사용된다(Schultz).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 - 여기서 '촌촌의'(, 페라우짐)'고을 고을'(, 페라조트)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요새화되어 있지 않고 탁 트인 마을 혹은 도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촌촌''고을 고을'은 곧 요새화되어 있었던 '수산'과 대조되는 수산 이외의 다른 모든 지역들을 가리킨다(Keil, Rawlinson). 이와 같은 대조에 대해서는 신3:5과 삼상 6:18을 참조하라.

 

 아달월 십 사 일로 경절을 삼아 - 이처럼 수산 이외 지역의 유대인들이 '경절''십 사 일'로 정한 것은, 그들이 그 전날에는 대적들과 싸우고 그 날에는 안식을 얻고 잔치를 베풀었었기(17)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은 '십 오 일'에야 쉴 수 있었기(15, 18) 때문에 '경절'이 다른 지역 유대인들과는 달리 '십 오일'이었다(21). 그런데 여기의 '경절'(, 욤 토브)은 문자적으로는 '좋은 날'이라는 뜻으로서, 그 날에 있었던 상서로운 역사적 사건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 특별히 정한 기념일이었다(12:14). 한편, 이 날에는 모든 노동을 그치고 그 날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며 하루를 보냈다(8:17).

 

 서로 예물을 주더라 - 이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 등에 주로 행하는 선물 교환과 거의 흡사하다. 유대인들은 이같이 함으로써 상호 연대감을 증진시키려고 했었다(Baldwin). 한편, 이러한 당시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 사이에 계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듯하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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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 모르드개가 기록한 '이 일'(1) 유대인들이 왕이 내린 조서에 따라서 대적들을 진멸한 일(5, 15, 16), (2) 유대인들이 대적들을 진멸한 후 그 다음날을 '경절'로 삼아 쉬면서 잔치 등을 베푼 일(17-19)을 아울러 가리킬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유대인들이 직면했던 위협과 파멸의 위험에서 보존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Schultz). 그러나 본 문구는 모르드개가 본서를 기록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드개는 다만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하여 그간의 사건 개요를 기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다인에게...글을 보내어 - 21, 22절에 언급된 내용의 서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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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규례를 세워 - 이는 부림절이 정례적인 공식적 절기로 지켜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의 '한 규례를 세워'(, 키옘)'~위에'를 뜻하는 전치사 ''과 함께 사용되어, 어떠한 일을 특정한 어떤 사람이 필연적으로 행하도록 의무를 부과시키는 것을 가리킨다(Schultz, 4:7 ;119:106). 그러므로 이는 어느 날을 잡아서 기리고 경축할 것을 정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나타낸다.

 

 해마다 아달월 십 사 일과 십 오 일을 지키라 - 수산의 유대인들이 '아달월 십 사일'을 자신들의 경절로 삼은 전례(18), 그밖의 지역 유대인들이 '아달월 십 사 일'을 경절로 삼은 전례(19)를 모두 존중하여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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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 여기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누아흐)'쉬다' 혹은 '안식하다', '조용하다'란 뜻이 있는 동사이다.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유다 백성들이 대적들의 위협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조용히 지내게 되었음을 나타내고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16절에 언급된 '벗어나며'17, 18절에서 '쉬며'로 번역된 '노아흐'가 파생되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 여기서 '슬픔'(42:28 ;13:2 ;23:33)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라는 왕의 조서가 내려졌을 때 온 유다 백성들이 느꼈던 감정이었다(4:1, 3). 한편, 그들의 '기쁨'은 대적들을 모두 무찌른 후 잔치를 통해서 발산되었다(17-19).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 여기서 '애통'(, 에벧)이라는 명사는, '비탄', '애도'라는 의미로 자신의 멸망을 예견했던 하만의 심정을 표현한 형용사 '아벨'과 동족의 단어이다(6:12). 또한 이 명사는 하만에 의해 내려진 조서로 공포에 사로잡혔던 유대인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4:3). 이와같이 이 용어의 사용에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주도의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길한 날'(, 욤 토브)19절의 '경절'과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서 '길한'(good)이라는 말에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 '기쁜'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악이 바뀌어 선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 이것은 모세 율법이 명령하고 있는 절기를 지키는 구체적 방법 중의 하나이다(16:14 ;8:10). 유대인들은 절기를 이같은 방법으로 지킴으로써.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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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들의...시작한 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이 대적들을 물리친 그 다음 날에 시행했던 행사를 근거로 해서 부림절 절기를 제정하기 위한 글을 유대인들에게 보냈었다(20, 21). 따라서 여기에 표현된 '자기들의-시작한 대로'라는 말은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와 동일하다.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키발). 원어는 '응낙하다', '착수하다', '받아들이다', '취하다' 란 의미의 동사 '카발'의 강조형(피엘형)으로서, '기쁨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8:7 ;2: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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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부터 26절까지는 22절처럼 부림절이 제정되기까지의 배경을 언급하고 있다.

 

 저희를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 여기서 '죽이고'(, 레후맘)'패배케하다' 혹은 '부수다'의 뜻을 가진 동사 '하맘의 부정사로서, 큰 능력을 동원하여 상대를 멸절시키는 것을 가리킨다(2:15 ;10:10 ;4:15 ;삼상7:10).한편, 이 용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을 칠 때 나타나는 대패배를 가려킬 때도 사용되었다(14:24 ;2:15, Keil, Schu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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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조서를 내려 - 왕이 하만의 형벌과 관련한 '조서'를 내렸다는 사실이 본서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총리대신을 처형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왕은 구두 명령 이외에 그것을 문서화한 별도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하달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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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26절 초두에 '그러므로'를 뜻하는 '알켄'이라는 말이 있다(19). 따라서 본절부터 28절까지는 앞 부분의결과에 해당된다(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19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 중 본절은 어떻게 해서 '부림절'이라는 절기 명칭이 정해지게 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 '부르'(, 푸르)'제비'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이다(3:7). 그런데 본절에는 이 용어가 복수 형태로 쓰여져 있어, 부림 절기로 지켜지는 날이 '두 날'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 글의 모든 말 - 모르드개가 부림절 제정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 전부를 가리킨다(20).

 

 이 일에 보고 당한 것 - '그들이 보았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그런데 이것은 곧 24, 25절의 내용인 바, 그들이 경험한 것이 모르드개의 글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Schu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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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을 정하고(, 키예무) -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와 동일한 동사이다.그러나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라는 표현은 부정사(不定詞)임에 반하여, 본 단어는 일반적 형태로서 부림절을 제정하기로 한 사람들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 - 여기서 '자기와 자손'은 부림절이 그 당대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계속 지켜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화합한 자들'(, 닐윔)'합하다' 혹은 '함께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와'의 수동 분사로서 이방 종교를 포기하고 여호와의 종교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14:1 ;56:3 ;2:11). 즉 이방인 개종자들 모두를 가리킨다(Keil, Rawlinson, Schultz).

 

 그 기록한 정기(定期) - 모르드개가 결정한 1214, 15(20, 21)을 말한다.

 

 이 두날을 연하여 - 이것은 유대인들이 혹시 한 날만을 부림절로 지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따라 언급된 말인 듯하다. 왜냐하면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최초에 그랬던 것처럼(18). 1215일 하루만을 절기로 지킬 가능성이 있었고, 그의 지역의 유대인들은 1214일 하루만을 절기로 지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19). 이 두 날 모두를 절기로 지켜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 여기서 '폐하지 아니하기로'는 페르시아의 법이 절대로 변개될 수 없었던(1:19)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부림절 절기의 지킴에 대해서도 매우 강하게 강조한 듯하다. 사실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닌 모르드개가 제정한 부림절은 언뜻 생각하면, 결코 신적인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절기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따라서 부림절이 제정되게 된 과정을 목격치 못한, 즉 체험치 못한 그 후손들은 그 부림절 절기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림 절기의 지킴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작정하고'23절의 '계속하여 행하였으니'와 동일한 어근과 의미의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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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은 내용상 27절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반복을 통하여 본서의 저자는 부림절이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 이것은 모든 지역, 모든 공동체, 온 가족이 부림절을 예외없이 지켜야 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대대로 - 부림절이 후대에도 계속 지켜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를 반영이라도 하듯 히브리인들은 오늘날까지 이 부림 절기를 지키고 있다.

 

 폐하지 않게 하고(, 로아바르) - 문자적으로는 '지나쳐 버리지 않도록'이다. 27절의 '폐하지 아니하기로'와 동일한 의미의 어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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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더와...모르드개...글을 쓰고 - 본문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모르드개가 쓴 서신 이외에(20) 또 다른 서신이 유대인들에게 보내졌음을 알 수 있다. , 그것은 다음에 나오는 '둘째 편지'이다. 그런데 여기서 '글을 쓰고'(, 티크토브)는 여성 3인칭 단수이다. 주어가 에스더와 모르드개 두 사람이어서 3인칭 복수 동사가 사용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여성 3인칭 단수 동사가 사용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여기의 글을 쓰는 일, 다시말하여 편지를 쓰는 일이 '에스더'의주도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아마도 첫째의 서신을 보낸(20) 때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후, 즉 공식적으로 제정된 부림절이 최초로 돌아오기 얼마 전쯤에 보내졌을 것이다.

 

 전권(全權)으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어근은 '이기다', '압도하다'에서 유래한 '토케프''권위', '권력', ''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러한 문자적인 의미보다도 '진정으로', 또는 '감동적으로'란 해석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Rawlinson). 한편, 이 용어는 구약에서 본절 외에 10:2와 단 11:7에도 사용되었다.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 이것은 에스더가 쓴 '둘째 편지'의 내용이 주로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 '둘째 편지'(1) 유대인들에게 에스더 자신의 선한 뜻을 표현하기 위한 인사말, '화평이 있으라'(, 솰롬)라는 말로 시작되었으며, (2) 자신이 여전히 신실한 유대 여인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진실한', 에메트)말로 메워져 있었을 것이다(Paton). 이러한 표현은 당시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말, '평안할지어다'(4:17) 혹은 '만한하옵소서'의 변형일 것이다(Rawlinson).

 

 써서 -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이를 표현하는 말이 쓰여 있지 않다. 뜻이 잘 통하도록 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인 듯하다.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 '유다 모든 사람'에는 당시 팔레스틴에서 살던 유대인들도 포함된다(3:13). 한편, '보내어'(, 이쉴라흐)3인칭 남성 단수로 쓰여졌다. 이러한 서술은 결국 '둘째 편지'가 에스더의 주도 아래 쓰여졌고(29), 모르드개에 의해서 전국에 보내졌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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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 기한 - 21절을 참조하라.

 지키게 하였으니 -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와 동일한 단어이다(27).

 이는...모르드개와...에스더의 명한 바 - 문자적으로는 '마치...모르드개와...에스더가 정했던 것과 같이'라는 말로 이는 '모드드개'가 첫째 편지를 보냈던 일을 가리킨다(Paton). 그런데 비록 20-22절에 보면 '첫째 편지'가 모르드개 단독으로 보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 편지는 에스더의 지원 혹은 지지 아래 보내졌을 것이 뻔하다. 다만 그 편지를 보내는 일의 주도자가 '모르드개'였을 뿐이었다.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 문자적으로는 '그리고 마치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는 것을 정했던 것과 같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모르드개의 첫 번째 서신(20-22)에는 '금식과 부르짖음'에 관한 명령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드개의 서신 내용 가운데는 '슬픔''애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사실(22)에 근거하여, 그의 서신 내용 중에는 '금식과 부르짖음'에 관한 명령이 담겨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Paton). ,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이 대적을 물리친 그 다음날 안식하며 잔치했던 일에 근거하여 그 날을 '경절'로 지키게 했듯이(22), 유대인들이 1213일을 인하여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4:3)에 근거하여 '금식과 부르짖음'도 그 '경절' 행사 중의 하나로 지키게끔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금식과 부르짖음'이 부림절의 두 날 곧, 1214일과 15일 중 어떤 날에 행해지게끔 명령됐는 지는 알 수 없다.

 

 에스더의 명령 - 에스더가 보낸 '둘째 편지'를 가리킨다(29).

 이 부림에 대한 일 - '부림절'을 지키는 방법과 날짜(21, 26-28)등의 내용을 가리킨다.

 견고히 하였고 - 27절의 '작정하고'와 동일한 동사이며 같은 의미이다.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 여기의 ''은 문자적으로 '그 책'으로서, 에스더서도 아니고 모르드개가 보낸 편지도 아니다. 이것은 에스더서를 쓰는 데 사용된 자료, 즉 당시 모르드개가 기록했었을 유대인들만의 역대 일지였던 것 같다. 본서의 저자는 바로 이 '역대 일지'를 통하여 모르드개의 첫째 편지와 에스더의 둘째 편지 내용도 알수 있었을 것이다(Rawl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