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더(구속사)

에스더1장,하나님의 구원계획

호리홀리 2016. 2. 3. 11:38

히브리성경 첫 스펠링은 '그리고'의 의미인 접속사 '와우'가 있다.이를 근거로 혹자는 본서가 이전에 일어났던 어떤 특정한 사건과 문장상의 연관성을가지고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와에히'는 종종 한 책의시작을 표하는 단순한 도입구로서 나타난다(1:1; 1:1; 1:1; 삼상1:1; 삼하 1:1; 1:1; 1:1). 따라서 여기서도 단순한 도입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Edwin Yamauchi, Keil, Schultz). 아하수에로 왕 - 에스라 4:6에서도 언급되는 B.C. 485-464년까지 통치했던 페르시아 왕이었다. 그는 다리오와 고레스의 딸 아토사(Atossa)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 다리오가 왕이 된 후 낳은 아들중에서는 맏이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Xerxes)와 동일 인물이며(Josephus),

 

'인도'는 인더스 강 서쪽 지역, 즉 오늘의 파키스탄 지역을 가리키며 인도 반도 지역을 뜻하지는 않는다(Baldwin). 이 지역은 아하수에로왕의 부친 다리오에 의해서 정복되었으나 아하수에로 당대에도 그곳 거민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었다(Herodotus vii, 65, 70). 한편,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 지역 곧 나일 강 상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캄비세스 왕에 의해서 정복되어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대에 이르러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로 정식 편입되었다(Herodotus vii, 9, 65, 69). 아무튼 '인도'는 페르시아 영토의 가장 동쪽, '구스'는 가장 서쪽이었다.

 

 일백 이십 칠 도() -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이 20구역으로 나누어졌었다고 말한 헤로도투스의 언급에 근거하여 이 '일백 이십 칠도'는 그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본적으로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소위 '왕의 대신'들에 의해 통치되었고(3 :12), 보다 세부적으로는 127도로 구분되어 각 도의 '방백'들에 의해 다스려졌다고 이해된다. 물론 이렇게 127개 도로 세분화시킨 데에는 세금 징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될 것이다(G. Ar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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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궁 - '수산'은 고대 엘람 지역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이 '수산'에서는 봄과 가을에만 통치를 하였을 뿐이고, 겨을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무(政務)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1) 왕이 일년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으며, (2) 행정부 대부분의 기관들이 위치했었으며, (3) 왕의 보호를 목적으로 철저히 요새화되었다는 점 등에서 단연 최고의 수도였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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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는 B.C. 4581223일에 있었다. 그러나 공식적 즉위 년도는 즉위 후 최초로 맞이한 정월이 속한 그 해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즉위 '삼년'B.C. 482년이다(Paton). 그때는 애굽에서 반란이 일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이스 정복을 위해 즉위한 이후부터 2년 동안 철저한 계획에 따라 무력을 증강해갔다고 한다. 본절의 잔치는 아마도 전쟁에 돌입하기 앞서 최후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듯하다(Baldwin, Huey, Keil, Schultz). 한편, 고대 사가인 크테시아스(Ctesias)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들은 보통 15,000명 정도가 참석할 수 있는 정도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여기서 '잔치'(, 미쉬테)'마시다'를 뜻하는 동사 '쉬타'에서 온 단어로서, 다량의 술이 제공되는 큰 '연회'(宴會)를 가리킨다(Baldwin).

 

 '바사와 메대'라는 독특한 표현은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가리키는 술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사''메대'는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던 가장 중요한 두 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메대''바사'에 의해 정복되었었다. 하지만 첫째, 두 민족은 동일하게 인구어족(印歐語族)에 속하여 언어나 관습 및 종교 등이 서로 거의 같았으며 둘째, '바사''메'의 정치역사적 전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두 민족은 거의 하나라고 할 만했다. 한편, '장수''귀족' 그리고 '방백'은 앞의 '방백''신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인지를 보여 준다. 그 중 '장수'(, 헤일)2천 명의 창을 가진 병사, 2천의 기병(騎丙). 그리고 1만의 보병 등 총 14천의 병력을 거느렸던 지휘관을 뜻한다(Keil1, Paton, Baldwin). 그리고 '귀족'(, 파르템)은 문자적으로는 '으뜸되는 사람'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어원(語源)의 단어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1) 페르시아 전역을 스물로 나눈 행정 구역을 맡아다스렸던 총독(Paton), (2) 왕의 곁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는 모사(Baldwin)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첫째, 페르시아 왕들에게는 실제로 조언을 해주던 모사들이 있었다는 성경의 언급이 있으며(7:14) 둘째, 이것을 뒷받침이나 하려는 듯 왕의 정무실(政務室) 계단에 모사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양각(陽刻)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사실, 그리고 세째, 제국을 스물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총독(satrap)은 광의적으로 이해할 때 '방백'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한편, '방백'(, 사르)127개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행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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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백 팔십 일 동안 - 모든 '장수''귀족' 그리고 '방백'이 이 기간 동안 줄곧 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제국의 각처를 다스리던 '방백'이나 '장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임지(任地)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당시는 제국정부에 대한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는 '방백' 등이 번갈아 가면서 그 잔치에 참여했었다고 본다.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 - 이와 같은 페르시아 제국의 경제적 강성은 여러 고대 저술가들에 의하여 언급된 바있다. 그중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왕이 매년금 14,560달란트를 공물로 받아서 그것으로 커다란 금궤를 만들어 창고에 보관하였다고 했다. 또한 아하수에로 왕은 금과 은으로 씌워진 장막, 금으로 된 긴 의자, 금으로 된 주발과 잔, 그리고 금주전자 등을 스파르타로부터 약탈하여 갖고 있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스퀼루스(Aeschylus)도 페르시아 왕궁의 방들이 금으로 씌워졌다고 말하였다(P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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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이 다하매 - 왕이 '방백''신복'을 위하여 베풀었던 180일간의 잔치(3,4)가 끝난 것을 가리킨다.

 

 왕이...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 이것은 180일간의 잔치와는 그 성격상 매우 다르다. , 180일간의 잔치는 중요한 신료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 회의적 성격까지 내포한 것이었으나, 여기의 이 잔치는 서민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았던 순수한 유흥적(遊興的)성격이었던 것이다.

 

 왕궁 후원 뜰 - 페르시아 왕궁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다(Paton). 그리고 ''에 해당되는 공간의 넓이는 약66백평방 미터 정도였었다. 따라서 이 정도 넓이의 '후원 뜰'은 대단히 많은 시민들을 위한 잔치를 갖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 -->   백색, 녹색, 청색 휘장 - 이러한 '휘장'은 잔치 장소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180일간의 잔치(4)가 초봄에 시작됐다고 가정할 경우, 시민들을 위한 7일간의 잔치가 열린 때는 늦여름으로서 여전히 햇살이 따가왔을 것이다. 한편, '백색''청색'은 페르시아의 왕들이 특별히 선호하던 제왕색(帝王色)이었다. 또한 '휘장'(, 카르파스)은 헬라어 '카르파소스'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무명천을 가리킨다(Schultz).

 

 자색 가는 베줄로...메고 - 상당히 긴 휘장을 땅에까지 늘어뜨려 고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대리석기둥 - 뜰 중간에 위치했던 궁전의 옆에 별도로 세워진 기둥을 가리킨다. 그런데 '대리석'(, 쉐쉬)은 석회석과 그것의 변성암(變成岩)인 대리석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수산의 폐허를 탐사했던 고고학자들은 페르시아 왕궁의 기둥들이 검푸른 석회석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여기의 '대리석'은 차라리 '석회석'으로 번역함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기둥'은 그 꼭대기에 한 사람이 족히 누울 수있을 만큼 굵었다고 한다(Paton).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 - 여기의 '걸상'은 편안히 기대어 앉을수 있었던 긴 의자이다(Rawlinson, 7:8). 이 의자의 골조는 그리이스 등에서 가져온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면은 금과 은으로 덮혀졌던 것 같다.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 - '화반석'(, 바하트)은 칠십인역에서 '가짜 에머랄드'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에머랄드'처럼 생긴 녹색 돌, 즉 공작석 혹은 사문암을 가리키는듯하다(Keil). 그리고 '백석'(, 쉐쉬)은 앞에서 '대리석'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운모석'(, 다르)은 칠십인역에서 '진주같은 돌 '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진주조개의 껍질 혹은 진주 비슷한 광택과 불규칙한 균열이 있는 진주암(眞珠岩)을 가리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흑석'(, 소헤레트)은 방패같은 무늬가 있는 검은 돌을 뜻할 것이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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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잔 - 유대 랍비들의 구약 성경 주석인 미드라쉬(Midrash)는 이 '금잔'을 금처럼 비싼 수정으로 된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확정지을 만한 단서는 희박하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 잔들은 결국 그리이스 군대에게 약탈되었다고 한다.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 잔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디자인되어 만들어졌으며, 이에 따라 무늬나 모양 등에서 서로 달랐다는 뜻이다(Baldwin). 아무튼 이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재력(財力)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문구라 하겠다.

 

 왕의 풍부한 대로...한이 없으며 - 문자적으로는 '왕의 손처럼 풍부한'의 뜻으로서 왕의 능력과 풍부를 과시하기에 합당한 만큼의 많은 양을 가리킨다(Schultz, 2:18).

 

 어주(, 예인 말코트) - 문자적으로는 '나라의 포도주'의 뜻이다. 추측컨대 이는 왕 자신이 마시기 위해 저장해 놓은 칼리본(Chalybon) ()의 귀한 술이었을 것이다(Schultz, P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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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가 있어...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 본절을 해석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규모'에 따른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지로 하지 않게' 했다고 함로써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규모'를 어떤 엄격한 법령으로서가 아니라 바사 왕의 일시적인 명령으로 이해하고 그 명령의 내용이 바로 각자의 자유 재량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해석이 보다 원만해진다. , 잔치석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많이 마시도록 강요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Huey). 한편,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은 대단히 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단숨에 들이키는 음주 습관을 가지고있었다. 만일 술 손님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으며, 그 손님은 술 잔에 술을 다시 가득 채운 뒤, 다시 단숨에 마시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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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후 와스디 - 아하수에로 왕의 여러아내 중 세속사에서 밝혀진 사람은 일곱 모사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타네스(Otanes)의 딸 아메스트리스(Amestris)이다. 대개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의 이 '와스디'가 바로 그 '아메스트리스'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추측건대 이 '와스디'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주기 위해 사용했던 별칭이었을 것이다. 분명치는 않지만, '와스디''달콤하다' 혹은 '사랑을 받는' 이란 뜻이다(Rawlinson, Baldwin).

 

 아하수에로 왕궁 - 수산 궁의 남쪽에 있던 왕후의 처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Rawlinson).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 페르시아의 관습으로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잔치석상에 참여하는 것이 반드시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에스더가 왕 및 하만 등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는 점은 이 사실을 넉넉히 증명해줄 만하다(5:2-8 ;7:1-4). 와스디가 이처럼 남자들과 별도로 잔치를 배설한 까닭은 (1) 남자들의 잔치 분위기는 여성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며, (2) 남자들의 잔치 장소인 '후원 뜰'(5)은 여자들까지 참석하기엔 장소가 협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Baldwin, P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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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 '제 칠 일'은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다(5). 한편, '주흥이 일어나서'는 문자적으로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곧 이것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상실한 상태, 혹은 황홀한 상태에 돌입했었음을 시사한다(16:25; 삼상 25 :36 ;왕상 8 :66 ;15: 15).

 

 어전 내시 - '내시'(,사리스)는 반드시 '거세된 환관'만을 의미치 않는다. 때로는 이 단어가 정부의 고위 관리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37:36). 그러나 여기서의 '내시'는 왕후의 처소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때, '거세된 환관'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들은 고레스 왕 시절이래 결코 적잖은 영향력을 소유했었다(Rawlinson).

 

 무후만 - '위대한 훔(Hum)에게 속하는'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 이름 '메훔반'(Meh-hum-van)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으로 여겨진다(Paton).

 

 비스다 - '거세한'의 뜻이 있는 페르시아 이름 '비스타'(Bista)의 히브리어 음역인듯 하다(Paton).

 

 하르보나 - '화려' 혹은 '광채'를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우바르바우나'(Uvarbauna의 음역일 것이다(Paton).

 

 빅다 - '신의 선물'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바가다타'(Bagadata)의 음역이다(Paton).

 

 아박다 - '선생'의 의미인 페르시아 이름 '아바기타'(Abagita)의 음역이다(Paton).

 

 세달 - '승리자'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사타르'의 음역이다(Paton).

 

 가르가스 - '욕심장이'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카르카사'의 음역이다(Paton).

 

 일곱사람 - 이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일곱 사람'을 와스디 왕비에게 보낸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중근동 세계에서 '완전한 수' 혹은 '신성한 수'로 인식되었다는 점에 근거하여, 자신의 와스디에 대한 명령(11)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취지를 '와스디'에게 암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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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후의 면류관 - 큼직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끝이 뾰족한 것이었다고 한다(Rawinson, Keil)

 

 그 아리따움을...보이게 하라 -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든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명령은 백성들에게 훌륭한 도덕적 귀감이 되어야만 했던 왕의 신분에는 걸맞지 않았다. 일찍이 루디아 왕 칸타울레스는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과시하려는 분별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마침내 왕좌와 생명까지도 상실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었다(Rawlinson). 어떤 유대 문헌은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를 면류관만 쓰고 전라(全裸)로 나오게 했다고 해석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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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후 와스디가...싫어하니 - '와스디'의 이 같은 반응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의 하나에 따라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 (1) '와스디'가 낯선 사람에게는 아내의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는 페르시아 관습을 염두에 둔 때문에(Josephus), (2) 와스디가 술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때문에(Keil1,Rawlinson, Schultz), (3) '와스디'가 당시 외모에 어떤 흠결이 있었기 때문에(유대 랍비들). (4)'와스디'가 왕으로부터 벌거벗고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Midrash,Targum)등이다. 그러나 첫째, 페르시아의 관습이 여자가 남자들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반드시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5:1-8 ;7:1-4) 둘째, 만일 '와스디'에게 외모상의 어떤 흠결이 있었다면 왕이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네째, 왕비의 나체를 신하들에게 보이려는 시도는 역사상의 그 어떤 군왕(君王)에게서도 없었다는 사실 넷째,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보통 술주정이 심했다는사실(Herodotus)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위의 네 가지 이유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왕이 진노하여 - 이러한 반응은 많은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직접 하달한 명령이 먹혀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던 때문이었다.

 

 중심이 불붙는듯하더라 - 이는 문자적으로는 '그의 속에서 불이 탔다'의 뜻으로서, 그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적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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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의 내용은 일단 잔치가 끝난 뒤의 상황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의 (11,12)로 진노를 한 것은 그 잔치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10). 그는 잔치가 끝난 다음 날 온전한 정신 가운데서 자신의 명령에 불복한 와스디의 징계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였음이 분명하다.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 '박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던 일은 아하수에로왕의 습관(Herodotus, vii, 8, 48, 234; viii, 101) 이기도 했지만, 그는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이 와스디에게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보복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했던 것 같다. 한편, '사례를 아는'(, 요드예이 하이팀)은 문자적으로는 '시대를 아는'의 뜻이며 구체적로는 '규례와 법률을 아는'이라는 말로 연이어 설명하고 있다. '박사들'(*,요드예이 하이팀)은 문자적으로 '지혜로운 자들'의 뜻이다.

 

 묻는 전례가 있는데 - 모사로부터 자문을 얻는 것이 반드시 아하수에로 왕만의 습관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 페르시아의 모든 왕들은 모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들의 정책을 현실 정치로 펼쳐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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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에게 가까이 하여 - 이것은 왕이 측근에 의하여 암살당하는 일이 빈번했던 고대국가들의 모습을 감안해 본다면, (1) 왕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은 것, (2) 왕으로부터 특별한 지위나 권한을 부여받은 것 등을 의미한다. 이같은 점을 입증이나 해주듯이 왕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은 자는 왕궁 출입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침실 출입까지도 허용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왕의 기색을 살피며 - '기색을 살피며'는 문자적으로 '얼굴을 보며'의 뜻으로서 앞의 '가까이 하여'처럼 모사들이 왕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삼하 14: 24; 18:10) 문구이다(Schultz).

 

 나라 첫 자리에 앉은 - 이것은 모사 곧 박사의 신분적 위치가 페르시아의 신하들 중 최고였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는 세사람씩은 왕의 양편에, 그리고 한 사람은 왕의 앞에 서는 등 실제로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Paton).

 

 바사와 메대의 일곱방백 - '바사와 메대'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일곱'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방백'(, 사르)은 높은 직위의 소유자들에게 두루 적용될 수있는 꽤 일반적 의미의 단어(3,11)이어서 그문맥에 맞게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단어를 '장관'의 의미로 이해하면 보다 적절할것이다(대상 27:3; 대하 26:11; 51:57).

 

 가르스나 - '검은'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케레스나'(Keresna)'호리호리한 사람'의 뜻인 '카라스나'(Karasnas)의 히브리어 음역으로 볼 수있다.

 세달 - ''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시타르'(Sitar) 혹은 ''()를 뜻하는 '크샤드라'(Kshathra)의 음역일 것이다. 10절의 '세달'과 본절의 '세달'은 전혀 다르다.

 

15절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이처럼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지칭함으로써, 와스디에 대한 법적용을 이 보다 엄격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 문자적으로는 '규례대로라면...에게 무슨 일이 있을꼬'의 뜻(Rawlins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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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무간이...대답하여 가로되 - 왕이 와스디 처리와 관련한 자문을 구하자, 일곱 모사들은 서로 협의를 한 후 그 대변인격인 '므무간'이 그 협의 사항을 왕에게 품의(稟議)하고 있는것이다(Keil). 그런데 유대 랍비들의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는 그가 서열상 가장 낮았기 때문에 왕비 징계라는 미묘한 사항을 왕에게 고()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입증 자료는 없다.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 '와스디'의 왕에 대한 '잘못'은 왕의 엄명을 거역함으로써 왕의 위신을 여지없이 실추시켰다는 데 있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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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스디의 왕명 거역이 어떻게해서 방백들이나 일반 백성에게도 그 여파를 미치는지를 말하고 있다.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 '멸시할 것'(, 레하브조트)'업신여기다' 혹은 '비웃다'란 뜻의 동사 '바자'의 사역형 부정사(不定詞)로서, (1)마땅히 중요시해야 할 가치(價値)를 비천히 여기거나(25:34; 22:8), (2) 반드시 따라야 할명령을 거역하는 것(15:31; 삼하 12: 9)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일 것이다.

 

 오늘이라도 - 이것은 (1) 와스디의 왕명 거역 사실이 신속히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2) 따라서 와스디에 대한 징계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등을 아울러 시사한다(Paton).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멸시와 분노가 꿀이지 않을 것입니다'의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멸시'는 방백의 명령에 대한 귀부인들의 반응 곧 불복종을, '분노'는 귀부인들의 불복종에 대한 방백의 반응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의 '분노'(, 카체프), 와스디의 명령 불복종에 대한 왕의 반응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단어 '진노하여'(, 카차프)와 동족어(同族語)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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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선히 여기실진대 - 신하들이 왕에게 어떤 공식적인 제안을 하기에 앞서 사용하는 상투적인 술어이다(Paton, 3:9; 5:4, 8; 7:3; 8:5; 2:5).

 

 와스디로...왕 앞에 오지못하게 - 왕후의 위()를 폐하여 일개 서민(庶民)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모사들의 협의 사항(16절 주석 참조)을 왕에게 고하면서 '와스디' 앞에 지금까지 게속 사용하였던 '왕후'라는 직위명(職位名)을 고의로 빠뜨림으로써, 그녀에 대한 폐서인(廢庶人)조치가 필연적임을 암시한다.

 

 조서를 내리되 - 문자적으로는 '왕국의 명령'의 뜻이다. 이것은 왕 자신의 사사로운 명령과 대조된다. 이처럼 왕이 일반 명령이 아닌 문서화된 공식적 명령을 내려야 된다고 한 까닭은 공개석상에서 왕명을 거역한 와스디를 공개적으로 징계하며, 그렇게함으로써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편에 대한 불복종을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을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Rawlinson).

 

 법률 중에 기록하여 번역함이 없게 하고 - 페르시아 제국의 전통(傳統) 중 하나는 일단 왕의 도장이 찍혀 법률화(法律化)된 사항은 절대 그 효력이 취소되지 않았던 것이다(6:8,9). 이처럼 왕실 내부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결코 '번역'될 수 없는 법률을 만들기까지 한 것은, 와스디로 하여금 아하수에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을 기회를 다시는 갖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함으로써 그녀가 권세를 회복하여 자신을 폐서인 시킨 데 일조(一助)를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 '나은'(, 토바)'더 아름다은' 혹은 '더 덕스러운'이란 뜻이며. '사람'(, 레우타)은 원래 '동료' 혹은 '친구'의 의미로서 거의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어떤 사람을 광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이다(Paton, 삼상 15:28).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대궐 안에 이미 살고 있는 어떤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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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서(, 피트감) - 19절의 '조서'와는 다른 단어지만, 동일한 내용임이 분명하다. '피트가마'라고 하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Huey).

 

 이 광대한 전국 - 여기서 '전국'앞에 '광대한'이라는 형용사를 삽입시킨 까닭은 (1)왕의 허영심을 부추겨서 그의 비위릍 맞추려는것(Keil), (2) 단순한 구두(口頭)명령이 아닌 반드시 널리 고지(告知)되어져야 하는 문서화된 조서가 회람되어야 될 필요성을 강력히 시사하려는 것(Rawlinson)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강을 잡으려는 목적에 따라 반포되는 왕의 명령은 제국민 누구에게나 고지되어야 하지만, 그 명령이 조서의 성격을 띠지 않으면 듣지 못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점에서,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타당성이있다.

 

 귀천을 무론하고 - 문자적으로 '큰 자로부터 작은 자까지'의 뜻으로 5절의 '대소인민'과 동일한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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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방백들이...선히 여긴지라 - 여기의 '선히 여긴지라'(, 이타브)라는동사는 3인칭 단수이고, 주어 '왕과 방백들'3인칭 복수이므로 문법적 모순인 듯 보인다. 그러나 주어가 이같이 복수일 경우라도 동사의 적극적 주체자가 한 사람일 때는 3인칭 단수의 동사를사용할 수 있다. , 여기서는 왕이 '므무간'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주체자로서 '선히여긴지라'라는 동사의 주어인 셈이다. 반면 '방백들''므무간'의 그 같은 제안의 입안(立案)과정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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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 - 여기서 '문자''방언'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 내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주로 고페르시아어(Old Persian)나 아람어를 사용했고 바빌로니아 지역에서는 아람어와 앗시리아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를 위시한 여러 동족어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는 주로 아람어가 통용되었다(Paton). 한편, 페르시아의 언어 정책에 대해서는 에스라 4장 둘째 단락 주제 강해, '페르시아 제국의 언어정책'을 참조하라.

 

 모든 도에 조서틀 내려 - 본절은 페르시아 제국이 당시 매우 조직적인 우편제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Xenophon, Paton). 우편 업무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 이것이 '조서'의 주요한 내용 자체는 아닐 것이다. 다만 '조서'의 목적 혹은 그 결과에 해당될 것이다. , 백성들은 왕명을 거역한 왕비를 폐서인(廢庶人)시켰다는 조서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한 가정내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명령 불복종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고, 또한 그 결과로 한 가정 내에서 남편의 위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이는 한 가정 내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명령이다. ,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남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경우, 아내를 포함하여 그 가정 전체는 남편의 언어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명령이다. 이렇게 할 경우, 그 가정 내에서의 남편의 위치는 보다 확고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페르시아는 수많은 민족들로 구성되었고, 또한 민족간의 교류도 활발하였기 때문에 부부간에 언어가 달랐던 경우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13:2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