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베소서

에베소서1:3~14,3중 축복

호리홀리 2015. 6. 12. 12:16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내게 복을 주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복신앙’이라고 하면서, 복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의 정체를 올바르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이며, 그것이 또한 왜 복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성경의 구조는 3중구조입니다. 히브리어의 기본단어도 자음세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변화가 일어나는 구조지요. 바울 서신은 특히 3중구조를 강조합니다. 3절은 하나님의 삼중복의 선언입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그 복의 주요한 출발점 역시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두번째) 그리스도, 신령한. 하나님이 복의 시작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복의 방법(통로)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복의 내용입니다(신령한의 원어는 프뉴마입니다. 성령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본문은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내용상 세 번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각 부분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첫부분에서는 성부하나님(시작), 둘째부분에서는 성자하나님(과정/방법), 세 번째는 성령하나님입니다.

   이제 4-6절을 하나로 묶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7-10절을 묶습니다. 마지막으로 11-12절을 묶습니다. 13-14절은 마지막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세 부분만 주목하고자 합니다. 세 부분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복의 시작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복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해지는지를 말하며, 그 복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복의 시작은 하나님이라고 했고, 복이 전달되는 방식은 예수님이라고 했으며, 그 복의 결과는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메시지를 조금은 다르게, 그러면서 어떠한 점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4-6절:

   우선 복의 시작인 하나님에 대해서 봅시다. 즉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살펴보는 겁니다.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4절).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5절). 이것은 즉흥적이며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특별히 창세전에라는 놀라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어대로 표현하자면, ‘세상의 기초가 세워지기도 전에’입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입니다(5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특별히 성경은 6절에 ‘거져주시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은혜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는데, 그러한 놀라운 복을 거져주셨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의 결과는 아들이 되는 겁니다(5절). 또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6절: ‘찬미하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완벽한 뜻/예정으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어, 그분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에 강조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완벽한 복의 시작을 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7-10절:

   여기에서도 역시 앞선 말씀의 뼈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강조를 두고 있는지 보면서, 또한 꼼꼼하게 읽어봅시다.

   역시 복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교적 후반부에 나옵니다. 9절에 나오지요. 그분은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인 셈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경륜’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집을 세우다; 집안 살림을 완벽하게 해내다’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웠다는 뜻입니다. 역시 예정하십니다.

  

복의 방법에 대해서, 이 부분은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드러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것을 더욱 자세하게, 그리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에, 그의 피로 말미암아. 복의 방법은 구속됨입니다. 자유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피가 우리를 자유케 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또 다르게 말해서 ‘죄사함’이라고 했습니다.

   복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0절에 통일된 삶입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말 그대로 신령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복의 결과가 예배자의 삶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1-12절:

   이 부분은 짧습니다. 물론 복의 시작, 복의 방법, 복의 결과 모두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복의 결과에 대해서 유독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시작입니다: 여기에서도 예정하십니다(11절).

   예수님은 복의 방법입니다: 12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마지막으로 복의 결과입니다: 11절에 ‘기업’이 된다고 하십니다. 앞의 5절에서 우리가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냥 아들이 아니라,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향력있는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의 최종적인 결과입니다: 12절에, 우리가 영광의 찬송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칭송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화의 삶입니다. 신령한 삶인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하나님의 복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복은 완벽하고 치밀하며 놀랍습니다. ‘예정’이라는 단어가 모두 3번 나왔습니다(5,9,11).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예정론으로 국한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예정이라는 말과 개념은 구약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신 7:6). 바울은 철저하게 구약의 개념을 이어받은 것이구요. 어찌되었건 이 ‘예정’이라는 말의 속뜻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결정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우리가 받는 복은 그만큼 완전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엄청나게 많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나옵니다(비슷한 것으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기술이나 방법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선물입니다. 6절: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은혜가 바로 보혈을 통해서 현실화되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의 결과는 그럼 무엇입니까? 복의 결과는 본질의 변화입니다(2:8-9). 우리의 본질이 무엇이었습니까? 2:1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라고 말합니다. 3절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2:12).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이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자!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을 잇는 것과 같은 신령한 삶으로 영화되어서, 결국 칭송을 받을 사람입니다(2:22).

 

  마지막으로 13-14절을 봅시다: 왜 13-14절이 있을까요? 주된 차이가 있습니다. 13절에 ‘너희’그렇습니다. 바울은 3-12절까지 하나님의 삼중복에 대한 일반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원리라는 거지요.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삼중복이 바로 ‘너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확신시키는 겁니다. 여기에서 너희가 바로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에베소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실한 성도들’인 거지요. 그렇다!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의 성도들아! 바로 너희가 이 복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듣고/믿어/인치심(도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너희가 듣지 않았느냐? 무엇을? 진리의 말씀;구원의 복음. 바로 너희가 믿지 않았느냐? 어떻게? 그 안에서(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래서 바로 너희 안에 성령의 약속이 있지 않느냐? 어떻게? 너희 안에 도장이 찍혀있다! 이 도장이 바로 성령의 보증이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의 삼중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에베소서는 이러한 바울의 삼중복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위대한 희생을 보여주며,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 성도로 하여금, 듣고 믿어 인치심을 확신하며, 승리하는 신앙인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1. 무엇이 복인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음이 복입니다: 그분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대하여 그 계획과 뜻이 선하시고 온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됨이 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된 것이 복이라는 겁니다. 이런 관계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지요. 성경은 이를 ‘충만함’/ ‘넘치게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업을 잇는 자녀로 인정해주신 것이 복입니다. 이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흘리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기업을 잇는 것은 예수님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사실 에베소서가 말하는 기업은, 교회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잇는 것이 우리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 기업을 이어받을 자로 확실한 도장을 찍어주신 성령님이 내주하심이 복입니다. 성령의 내주는 우리가 에베소와 같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6:10이하 영적전쟁의 비결; 유일한 무기=성령의 검). 성령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해서 그분의 보증서(도장)가 유효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승리하는 것입니다.

 

2. 삼중복에 대해서

   왜 삼중복의 방식으로? 완전한 구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세 개가 완전히 잘 짜여있어야만 가능한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실제로 첫 번째는 하나님, 두 번째는 예수님, 세 번째는 성령님이 강조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자체에서 말하는 교회론에 있어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4:16을 보면, 바울은 교회를 서로 연결되는 살아있는 몸으로 비유합니다. 그 머리는 예수님이지요.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물론 복은 하나님 한 분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4:16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삼중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삼중복은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의 몸으로 충실히 기능해야 할 것인지를 반성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