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서 해석(요약)

1강,스가랴서의 배경

호리홀리 2015. 4. 29. 17:12

스가랴서해석

                               박인대교수


                    1강,스가랴서의 배경


1. 역사적 배경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그러므로 언약적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역시 페르시아(=바사)에게 멸망당하게 된다(주전 538년). 고레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유다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조서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레스 칙령’이다(스 1:1-4). 이 조서는 노래하는 자 200명과 노예들 7,337명을 제외한 당시 귀환자가 대략 42,360명이라고 기록한다(스 2:64). 이들이 귀환한 것이 바로 1차 귀환으로 주전 536년에 일어났다.  통치자로 임명된 세스바살(스 5:14)은 포로들을 예루살렘으로 인솔하였고 (스 1:11), 이들은 귀환하여 번제와 제사를 드렸고(스 3:1-7). 여호와의 전을 재건축하기 위해서 성전 지대를 놓았다(스 5:16). 그러나 성전재건에 대한 역사는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고 말았다.


1) 학개와 스가랴

백성은 성전건축에 힘썼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와 교제에 대한 회복이다(슥 1:2-6).  즉, 학개의 현재적인 하나님의 일,미시적관점 그리고 스가랴의 종국적인 하나님의 일,거시적관점을 백성에게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였다.


2)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제2차 귀환이 다리오 왕(주전 522-486년 통치) 즉위 다음해인 주전 521년에 다윗의 후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예수아)에 의해 주도 되었으며(참고 스 2:2; 느 7:7; 12:1), 이들은 주전 520년경 그동안 16년이나 중단되었던 성전재건에 착수하여 다시 성전의 기초를 쌓았다(학 2:18; 슥 4:9; 8:9). 학개는 스룹바벨을 향하여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인”으로 삼는다고 예언한다(학 2:23).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서(대상 3:16-19),회복된 다윗의 왕가에 대한 소망으로 남는다(Mason, 1997:1313). 스가랴서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순”(the branch)으로 예표 되었다(슥 3:8).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주님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들로 묘사되었다(슥 4:14).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메시아적인 인물들을 예표 한다. 즉, 스룹바벨은 다윗 왕가의 대표로, 그리고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적인 인물로 예표 된다(Carpenter, 1997:810).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이방인들의 음해 공작이 에스라 5:3 이하에 기록되었는데, 다리오 왕이 성전건축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방해하던 이방인들로 협력케 하였으며, 유다의 장로들이 학개와 스가랴를  따랐기 때문에  다리오 왕 제6년 아달월 삼일에(주전516)완공되었다(스 6:14-15).

  하나님은 어떤 방해 세력도 꺾으시며, 예루살렘의 “불성벽”(슥 2:5)이 되어 지켜 주실 것을 환상을 통해 예언했다. 내부의 죄에 대해 스가랴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로 상징되는 율법(슥 7:12)의 십계명 준수를 말하며, 특히 도둑질하는 것과 거짓 맹세(거짓증언)가 유다 사회를 혼란케 하는 죄임을 지적하였다(슥 5:1-3; 8:16-17). “에바 속의 여인”으로 상징되는 악의 세력은멀리 옮기신다.(슥 5:5). 가장 인상적인 스가랴 예언의 말씀은 4:6에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하일]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코아흐)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 (루아흐)으로 되느니라.”


3차 귀환은 아닥사스다(주전 464-424년) 에스라,주전 458년 (스 7:1),

4차는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주전 445년(느 8:1, 비교 느 13:6의 재귀환).


스가랴가 활약한 주전 520년경 고대 중국에서는 공자가 활동했고(주전 551-479),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나왔으며(주전566-486년경), 한반도에는 고조선의 역사가 있었다.

2. 사회적 배경

 

  다리우스는 영토를 20개의 하부분할구역(satrapy)으로 나누었으며 각 자치구역에 총독을 임명하였다. 예루살렘 주변은 이 하부분할 구역 가운데  예후드(Yehud)라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에 속하였다. 스가랴는 예후드 지역에 살았으며,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으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첫 번째  재정적인 문제였다. 예후드는 농업에 의존하였으나 그나마도 힘들었다(학 1:5-11). 이로 인해 경제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두 번째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과 관계였다. ‘누가 진정한 남은 자인가’였다. 두 그룹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남은 자임을 주장했다. 또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 속해 있던 자들간의 긴장관계도 있었다. 남 유다에 속한 자들은 북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덜 종교적이며 순결치 못하다 하여 공동체 속에 함께 속하는 것을 주저하였다(스 4:1-3).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이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과의 긴장도 존재했다.

  세 번째 정치적인 문제였다. 원래 예후드는 페르시아 자치 구역의 일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포로 귀환이후에 예후드는 자체의 총독을 갖고 독자적 행정구역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마리아 권위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분개하였다.

  마지막 어려움은 신앙적 위기다. 혼합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을 떠나지 않았던 자들이 이방 종교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귀환 공동체 역시 변질된 혼합주의의 유혹에 직면해야 했다.(학 2:10-14). 이런 위기속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서이다.


3. 스가랴서의 신학

스가랴는 우상숭배와 거짓 선지자들, 약탈을 일삼는 지도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이자 선물이다. 그러므로 스가랴서에 나타난 회개는 인간의 책임적 반응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을 동시에 포함한다.

1:16-17에서 여호와는 돌아왔다고 선언한다. ‘돌아오다’는‘수브’가 완료형으로 언약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으며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모든 백성들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정화의 축복을 일관되게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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