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말라기

말라기의 배경

호리홀리 2015. 4. 1. 13:38

말라기란 이름은 "나의 사자(使者)"란 뜻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B.C. 440-410년간에 활동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재건되었으나 오시리라 한 메시야갸 속히 오시지 않음으로
기대가 어긋나 오히려 성전 중심적인 삶이 깊은 회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 스룹바벨에 의해 포로에서 돌아왔던 사람들에게는 성전 재건이 가장 중
대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성전이 재건됨으
로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았습니다. 특히 B.C. 458
년 제사장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유대인들은 에스라의 가르침을 받아 더욱
영적인 안정을 가져왔었습니다. 에스라는 모든 백성들의 삶을 성전 중심의
삶으로 개혁시켰으며(스7:17),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였습니
다(스 7:25-26).

에스라가 돌아온지 13년 후(B.C. 445년) 세번째 포로귀환이 느헤미야를 주
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던 중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기 위하여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느
6:15). 느헤미야는 먼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개혁을 시도했으며(느 5장), 이
방인과의 결혼을 파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온전한 십일조를 생활화할 것을 가
르쳤습니다(느 10장). 그러다가 총독의 임기가 끝나자 B.C. 433년 바사의 수
도인 수산으로 왕을 섬기기위해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동안 잠잠했던 유대인들은 또 다시 죄악에 빠지기 시작했습
니다. 또 다시 십일조를 드리지 않게 되었고, 안식일을 어기며 이방인들과
혼인을 위해 강제 이혼을 강행하였고, 제사장들의 부패가 갈수록 심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에 대한 소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자연적으로 예배에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형
식적인 종교행위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깊은 회의주의와 형식주의
와 부정부패에 빠져있자 하나님께로의 신앙을 회복하고 사회적인 개혁을 시
도하고자 보내어진 마지막 선지자가 곧 말라기 선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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